끊어지지 않는 사슬 - 2천7백만 노예들에 침묵하는 세계
케빈 베일스 외 지음, 이병무 옮김 / 다반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 신문기사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정말 당황스러웠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다수의 댓글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고 분노하는 내용 일색이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노예제는 고대로부터 시작된 아주 뿌리 깊은 제도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시작인 아테네 역시 노예들의 피눈물나는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 아닌가? 노예제는 그 반인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 과거에는 성직자들이 신의 이름으로 이를 승인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예제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오늘날 그 어떤 국가도 노예제를 합법화하지 않는다. 이는 인류가 그만큼 성장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동시에 노예제가 더 이상 국가나 세계 경제를 이루는 근간이 아님을 나타내기도 한다.

 

문제는 언제나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데 있다. 나는 이러한 현대판 노예가 극히 일부의 일이고 이런 일이 전 세계적 문제일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책 <끊어지지 않는 사슬>에 따르면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노예제가 버젓이 존재하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공인까지 받는다고 한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고 책 뒷표지에 나와있는 아마존 독자의 서평에 공감하게 된다.

 

현대의 노예제에 대해서 논란은 있겠지만 일단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무임금이라면 노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예전 중세 농노보다 못한 신세 아닌가? 이러한 노예제가 유지되는 것은 노예들이 가져다주는 이윤때문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무런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윤은 정말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수요가 있다한들 공급이 없다면 노예제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신매매나 사기와 같은 불법적 방법이 동원된다. 이러한 불법은 특히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벌어진다. 구소련 붕괴 후 동유럽이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교육 수준이 낮고 경제근간이 뒤흔들리는 곳에서 이러한 불법이 자행된다고 한다. 이런 나라들은 불법을 막을 수 있는 여력이 없고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들이 부패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여성들의 경우 겪는 고통은 남성들보다 심할 경우가 많다. 고통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느냐만은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 외에 성적 착취를 당한다는 점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 이들은 인신매매나 사기를 당한 후 쉬지 않고 가사노동에 시달리거나 윤락가에서 성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주인들은 엉터리로 이자를 계산하여 이들을 풀어주지 않고 계속해서 부려먹는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사악한 행위의 주체가 여성일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 포주나 여주인이 남성들보다 더 악랄하게 부려먹는 일이 꽤 있는 것 같다. 반대로 노예 상태로 전락한 이들을 구하는 여성들도 꽤 있지만 이러한 노예제를 다룰 때 에 관한 선입견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인신매매나 사기 같은 경우 인류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이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더욱 내 머리를 헤집는 사실은 네팔이나 인도 같은 경우 사실상 성노예인 여사제 제도가 존재해서 노예제를 종교, 문화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다 복합적인 문제이며 노예제를 사람들이 아예 긍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이 세상에 노예는 없다는 인식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데 새삼 깨닫게 해준다.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이유 중 무력분쟁과 환경파괴가 있다. 로마가 전쟁이 없어진 후 노예들이 급감하여 사회혼란이 일어난 것처럼 전쟁과 노예제는 가까운 관계에 있다. 현 무력분쟁이 휘말린 지역은 정부나 반군이나 모두 어린 아이들이나 성인을 사실상 노예로 만들어 전쟁에 참여시키고 있다. 인권이라는 이름과 국제사회의 중재는 이 지역들의 혼란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환경의 파괴는 그 지역 공동체의 근본을 무너뜨려 이들이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환경파괴야 어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지만 그 결과 노예제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이 노예들이 다시 환경의 파괴에 종사하게 되는 악순환적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경로로 노예가 되는 이들은 비인간적인 대우와 환경, 그리고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영양실조나 척추 불구와 같은 건강상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각종 성병에 노출되어 고통스러워한다. 대부분의 노예주들은 이들의 고통에 큰 관심이 없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의 소모품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인권에 대한 이론을 고찰하지 않더라도 노예제는 직관적으로 볼 때 폐지되어야 한다. 노예제는 범죄 네트워크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과거와 달리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경제에 매우 적은 비중만을 차지하고 있다. 노예제가 폐지되더라도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인류의 윤리적 수준 역시 노예제를 혀용하고 있지 않다. 과거와 달리 노예제를 폐지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시대에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이 책의 저자는 여러 단위의 주체들에게 제안을 던지고 있다. 이 중 개인들이 실현할만한 것들도 꽤 있다. 먼저 우리는 퇴직 기금 같은 자산을 노예제를 이용하고 있는 회사들에게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탄원서를 보낸 수도 있으며 주변의 노예제의 징후를 감시할 수도 있다. 감시는 매우 중요한데 만약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앞의 신문기사의 여성이 그러한 일을 당할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또한 주변사람들이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았다면 이장문 씨와 같은 일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특기나 기술을 노예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제공할 수도 있고 공정무역 상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개인이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활동이다.

 

여러 가지 이유와 경로로 노예제가 존재하며 이는 우리의 인간성을 위협한다. 비록 아주 적은 숫자나 지역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노예제를 인정한다면 인권은 위협받을 것이고 우리 역시 이러한 처지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우 이 책의 내용과 같은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자본가가 주인이 되고 노동자가 노예가 되는 노예제에 가까운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일자리에서 쫓겨날지 걱정해야 하며 물가는 오르는데 최소임금은 아주 조금 오르고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노예제가 없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