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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하느님 - 유일신 신앙에 대한 김경재 교수의 본격 비판
김경재 지음 / 삼인 / 2015년 2월
평점 :
흔히 아브라함 계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유일신 신앙이라 부른다. 유일신 신앙을 개신교회에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뜻이라고 가르친다. 나머지는 다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르기에 이 세 종교는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가장 격렬히 싸워왔다. 이런 아이러니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김경재 교수는 ‘이름 없는 하느님’이란 책을 통해 기존의 유일신 신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유일신 신앙을 이야기 한다. 그의 생각은 이미 역사적 예수 관련 서적을 읽은 내게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유일신 신앙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깊게 숙고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책에 따르면 유일신 신앙에서 ‘유일’을 숫자로 간주하는 것은 유일신론을 왜곡하는 것이다. 일을 숫자로 보는 것은 다신론이나 일신론에 더 가깝다. ‘유일’은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한’이라 볼 수 있다. ‘한’은 숫자 1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꽉찬, 온전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경재 교수에게 ‘유일’은 어떤 궁극적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떤 한 인격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아브라함 계 종교만이 유일신론이라고 볼 수도 없다. 힌두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심지어 유교에서도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경재 교수는 우리 한민족에게 이미 하느님 사상이 있었고 그 하느님 사상이 우리나라에 전래해온 다른 외래종교들을 다 포괄했다고 말한다. 이를 최치원은 풍류도라 일컬었다.
이 풍류도는 불교, 유교를 만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냈으며 19세기 혼탁한 시대에 동학, 원불교로 다시 살아났다. 이는 김경재 교수의 해석이지만 풍류도에 대한 전제를 수용한다면 이 해석이 그리 비약적인 것은 아니다.
이상의 내용을 생각해볼 때 보수주의 기독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공격은 과한 측면이 있다. 궁극적 실재, 유일신은 하나이나 이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다양할 수 있으며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종교다원주의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한다.
김경재 교수도 인정했지만 설령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종교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교는 물건처럼 쇼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팬클럽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종교에서 이를 배제한다는 건 몽상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종파적 하나님을 통해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갖은 폭력이 거룩한 성전으로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세계 기독교회들 중에서도 보수적이다. 창조과학은 물론이고 문자주의적 성경해석을 고수하는 편이기도 하다. 또한 기복신앙과 엮어져 오로지 자기 자신이 잘 되기 위한 소승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다른 종교나 해외에 나가 성경에 근거도 없는 땅밟기를 할 정도로 제대로 된 신학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종파적 종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재 교수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들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사멸 뿐이다. 유럽만 보더라도 교회에는 노인들이 대다수라고 하지 않은가. 한국 교회라고 딱히 다를 거 같진 않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생각이다. 기존의 생각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온전하게 하는 대안이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하다. 이 책은 그 디딤돌이 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