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쉿! 도서관의 비밀을 지켜 줘 - 책과 함께 행복했던 아홉 위인 이야기, 경기문화재단 2011년 하반기 우수아동도서
이만순 지음, 최정인 그림 / 토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예나 지금이나 모든 엄마는 바쁘고, 또 모든 아빠도 바쁘다. 농경사회 때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거의 없던 시대라고 해서 여성들이 한가했던 것은 아니었고,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나도 이루는 것 없이 늘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아이의 표현대로라면 "평화롭지 못한 엄마"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잘 때면 책을 꼭 읽어주던 일도 슬그머니 그만두어 버리고, 게임 제한과 숙제 챙기기 외엔 거의 아이를 내버려두는 편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홍길동> 등 몇 권의 만화책을 애써 골라 사준 것이 주효해서 아이가 조금 폭넓게 책들을 꺼내서 가지고 노는 눈치이긴 하다.
한겨레신문 주말서평란에서 본 이 책을 일부러 적어두었다가 주문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독서과제가 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한심한 내용들이기도 하고, 아이도 너무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독서과제에 대해 체념하고 나니 아이도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대안으로 다시 책읽어주기를 시작했다. 우선 아이는 책의 내용보다 엄마가 자기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그 형식을 굉장히 즐긴다는 느낌을 최근에 받았다.
이 책은 우리집의 책읽어주기 부활 프로젝트^^의 첫번째 목록이다.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도서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한 책 같다. 도서관에 사는 요정들의 파티장에서 도서관을 사랑하고 도서관에서 행복했던 이른바 위인 몇 사람의 이야기가 짤막짤막하게 이어진다. 그 위인들이란, 앤드루 카네기, 칸트, 힐러리 클린턴, 허균, 이반 일리치, 스티븐 스필버그, 이사도라 덩컨, 히파티아, 박봉석 등 아홉 명이다. 위인의 면면을 보고서 사실 구매를 망설이긴 했다. 힐러리 클린턴에 카네기라니... 하지만 찾아보건대 도서관을 이런 아이디어로 접근한 책도 없는 것 같아 일단 읽기로 했다.
오늘밤 이반 일리치 편을 읽어주었는데,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건 이 때문이다. ''이반 일리히로 내게 더 익숙한 이 사상가는 을유판 문고본 <탈학교의 사회>로 여전히 내 기억 한켠을 붙잡고 있는 중요한 사람이다. 본문의 내용을 조금 인용해보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지구를 구할 방법을 가르쳐 드린다고 하니까 이렇게들 모이셨군요. 그럼 이제부터 지구와 인류를 구할 영웅이 되고 싶은 꼬마 친구들에게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보다 더 쉽게 영웅이 되는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구를 구할 방법은 딱 세 가지... 바로 자전거와 시와 도서관이지요.. 엄마가 자동차를 타고 대형 할인점에 가려고 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시장으로 가라고 일러 주세요... 나보다 잘 싸우는 친구가 개똥을 밟고 미끄러졌을 때, 배꼽을 잡고 웃지 못했다면 집에 가서 몰래 시를 쓰세요. 슬픔도 시로 쓰세요. 화나는 일도 시로 쓰고요.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커질 테고, 시를 읽는 사람은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도서관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배움터입니다. 도서관은 학교처럼 시험으로 점수를 매기지 않으며, 이 책 읽어라 저 책 읽어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자전거와 시와 도서관... 우리 아이는 매일 시 한 편 필사 프로젝트를 수행중이고 목하 자전거타기에 열중해 있던 차라, 뭔가 자신이 지구를 구할 '영웅'에 가깝다는 으쓱함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도서관은 좀 부족한데... 하며 멋쩍어하는 아이... 책의 재미가 섬광처럼 아이를 비추고 지나간 듯했다. 이건 무엇보다 이반 일리치 사상의 위대함 덕일 것이다. 인물들의 면면을 더 보충한다면 훌륭한 읽어줄거리가 될 법도 한 책이다. 특히 조선의 개인 서재 개념과 도서관 개념을 연결하는 시도를 통해서 문화적 균형을 고려하는 태도를 더 뚜렷하게 부각시킨다면 좋겠다.
아이에게 책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시길 어른들에게 권한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신중히 고른 시 한 편 또는 짧은 이야기 한 편 정도를 꾸준히 읽어주며 아이와 공감대를 만들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가노라면, 교육의 새로운 개념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아이와 어른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