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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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의 작가 엘리너 캐턴은 28세의 나이로 두 작품만에 세계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을 거머쥔 천재 작가이다. <루미너리스>는 황금을 둘러싼 그릇된 탐욕과 엇나간 운명을 그리고 있다. 뉴질랜드 골드러시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를 배경으로 정교하게 얽힌 미스터리를 펼쳐놓는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인물인 12명의 남자는 황도 12궁을 대표하여 그에 맞는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나머지 인물들은 행성에 속해 이들 사이를 넘나든다.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핵심 핵할을 수행하여 전체의 흐름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점은 작가 엘리너 캐턴이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으로 완벽한 구조를 이루어냈는지 보여준다.


1866년, 크게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을 찾아 뉴질랜드에 도착한 남자, 무디. 그날 저녁, 그는 황량한 금광 마을 호키티카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12명의 남자로 구성된 비밀 모임에 끼어들게 된다. 실종된 젊은 갑부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창녀,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의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 삶에서 밀려나 세상의 끝으로 모여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무디는 어느새 인간의 운명과 황금이 별자리처럼 얽혀드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크라운 호텔 흡연실에 모인 열두 남자는 마치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된 무리인 듯 보였다. 뿔단추가 달리고 노란 무명, 삼베, 능직으로 만든 프록코트와 연미복, 노퍽재킷 같은 각양각색의 옷차림과 행동거지를 보면, 서로 오갈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고 조수가 뚜렷한 도시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는 열두 명의 사람이 어쩌다 한 객차에 올라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p.13)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크라바트, 은색 손, 어둠 속에서 나직하게 헐떡이던 그 이름. 그 장면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작은 세계 같았다. 정신이 거기 머무르는 동안 원래 세상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한편에는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화하는 커다란 세계가 있고, 또 한편에는 공포와 불안으로 이루어진 작고 정적인 세계가 있다. 두 세계는 구 안의 구처럼 서로 꼭 맞아들어간다."
(/ p.41)

“법정에서 증인은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물론 그것은 그 자신의 진실이지요. 증인은 두 가지 조건에 동의를 합니다. 그의 증언이 모든 진실을 포함해야 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중 두번째 조건만이 진정한 한정 요소가 됩니다. 첫번째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자유재량에 달려 있죠. (……) 여러분은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씀하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야기 내용만이 전부라고 제가 믿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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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니체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7
이진우.백승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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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니체>는 철학자 니체라는 인물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저자인 이진우, 백승영 저자가 니체에게 묻고 싶은 다양한 질문들에 답을 한 책이다. 니체는 '철학은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찾는 실존적 행위다. 여기에 철학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철학은 곧 삶에 봉사하는 삶의 기술이자 삶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인생교과서 니체>는 위대한 건강을 갖춘 인간들의 위대한 미래, 철학적 의사이자 계몽가이자 교육자였던 니체가 심혈을 기울여 제시했던 청사진의 구체적인 모습을 탐색해볼 수 있는 책이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조산아인 우리.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목적을 위해 하나의 새로운 수단을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건강을, 이전의 어떤 건강보다도 더 강하고 더 능란하고 더 질기고 더 대담하며 더 유쾌한 건강을 필요로 한다.(...) 즉 위대한 건강을 - 이는 사람들이 보유하는 것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획득하고 또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삶을 위한 삶'과 '삶을 거스르는 삶'이다. '삶을 위한 삶'은 진정한 삶을 오늘에서 내일로, 그리고 내일에서 죽음 이후의 내세로 연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거스르는 삶'은 '본능에 대적하는 삶'이다. 우리는 본능을 긍정하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본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모습이 결정된다. 본능을 인정하고 가꾸지 않으면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진정한 삶은 충동, 욕망, 쾌락, 본능의 부정과 포기가 아니다. 진정한 삶을 오히려 이제까지 부정되고 배척되었던 것, 즉 우리의 몸과 쾌락, 그리고 본능과 욕망을 인정함으로써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의 유혹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만의 이상을 만들어갈 때 가능한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본능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획득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니체는 "관점적 평가와 가상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한, 삶이라는 것은 전혀 존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욕망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투쟁한다면, 우리 인생은 천박한 쾌락주의나 금욕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데카당스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욕망과의 투쟁은 바로 삶의 목적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이상’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 p.26)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다음과 같다. 위험하게 살지어다! 그대들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가에 세우라! 그대들의 배를 미지의 바다로 내보내라! 그대와 동류의 인간들, 그리고 그대들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살라!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지배와 소유자가 될 수 없다면, 약탈자와 정복자가 되라!"


니체는 <즐거운 학교>의 한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니체에 의하면 삶과 죽음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 삶도 죽음의 한 형식일 수 있다면, 죽음도 독특한 방식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다. 죽음에 관한 모든 철학적 성창은 실제로 니체의 문제의식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체는 죽음을 삶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니체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제시하는 종교적 거짓말은 삶을 파괴하는 허위의식이라고 단언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는 결코 세계의 바깥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바로 '이 세계', 즉 현세를 살아가는 구체적 존재다. 우리가 사고 있는 이 세계의 앞에도 그리고 뒤에도 결코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삶에 대립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삶은 죽음의 한 형태일 뿐이며, 그것도 매우 희귀한 형태다."


니체는 불멸에 대한 믿음이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버렸다는 인식에서 신으로 대변되는 영원한 생명을 부정한다.니체에게 "무신론은 본능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신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긍정하기 때문에, 니체가 신의 죽음을 데 그토록 철저하게 선포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니체는 제때에 살지 못하는 자는 결코 제때에 죽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오늘에서 내일로, 그리고 내일에서 죽음 이후의 내세로 연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진실하게 살라고 말한다.

"죽음은 우리의 삶을 단순히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다. 삶을 완성하는 ‘자유로운 죽음’을 원한다면 이제 우리는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한 망상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죽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죽음이 우리의 삶을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
(/ p.83)


'나는 누구인가', 니체는 이 물음 자체를 해체시켜버린다.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알 수도 없다. 이제까지 나에게 덧씌워진 가상의 허울을 던져버리고 찾고자 하는 진정한 나는 또 다른 허상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니체는 '영혼', '정신' 또는 '나'로 불리는 인간의 본질을 부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진정한 자아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끊임없이 해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들어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자신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아모르파티를 '전체 세계의 필연성'에 대한 사랑이자 그 필연적 세계를 담보해내고 관계적 질서를 '같이 만들어가는'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제시한다. 아모르파티는 독자적 개체로서의 자신에게만 오로지 집중하고 자신의 개별적 삶만을 독립적으로 구성해가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아모르파티의 진정한 의미는 나와 세계 전체의 운명을 같이 짊어지는 사랑이라는 데 놓여 있다. 그것이 바로 나와 세계에 대한 운명적 사랑, 나를 포함한 이 세계 전체가 필연이고 거대한 관계망이라는 점에 대한 긍정인 것이다.


"아모르파티라는 사랑. 그것은 이 세계 전체의 관계성과 필연성에 대한 사랑이기에, 그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의 필연성과 관계성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즉 세계의 모든 것을,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하다거나 우연이라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않고, 모두가 다 거기 그렇게 있어 야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긍정하는 사랑 말이다. 그래서 아모르파티는 곧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게 되는, 인정하는 사랑이자 긍정하는 사랑이다.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도 하는 이런 사랑, 인정과 긍정의 사랑, 니체는 우리에게 이 세상 속 모든 것에 대해 이런 사랑을 하기를 요청한다."
(/ p.128)


권력은 삶의 전제조건이며 동시에 문화의 토대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명령하고 압도하려면,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에 대해 권력을 가지려면 그 사람이 인정하고 따를 수 밖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진정한 권력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전제한다. 니체는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천재의 예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천재를 존경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작품에 쏟아부은 힘 떄문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사용한 힘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 권력은 사악한 것인가?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는 삶의 전제조건이며 권력관계는 서로를 극복하고자 하는 어떤 것의 징후에 불과하며 진정한 권력은 항상 내면의 힘을 요구한다고 답한다.

"왜 우리는 권력을 추구하는가? 니체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자기극복이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해석해야 한다. 나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이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권력을 부정할 수 없다. 권력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 p.192)


모든 도덕과 윤리는 한결같이 욕망의 통제와 절제를 요구한다. 왜 우리는 삶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욕망과 충동에 대해 이처럼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 니체에 의하면 욕망과 충동의 인정이 그에 대한 부정과 억압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우리가 욕망을 이성적으로 통제한다고 말하지만 이 경우에도 실은 이성이 다른 욕망, 즉 욕망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욕망을 절제하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한가함과 무위는 정신적 여유를 전제한다. 그것은 성찰과 명상의 시간을 의미한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성찰의 힘, 명상의 힘, 생각의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 반성하고 판단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의 중요성은 자주 간과된다. 현대세계에 그 현상은 가속화된다. 분주함과 바쁨이 이제는 노동의 덕목을 넘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니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우리가 노동을 놀이고 삼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개인과 사회의 결단이다.

"‘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될 뿐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면’이라고 물어보는 이 사유실험은 니체 철학에서 삶 자체의 건강성 확보를 위해 개인적 결단을 촉구하는 역할 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바쁜 노동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한가한 놀이자로 살 것인지를 결단하는 데도 유용하다. 내가 종사하는 이 일이 과연 영원히 반복해도 좋을 정도의 것이어서, 그 악마의 말이 축복처럼 들릴 것인가? 아니면 단 한 번만의 반복이라도 이미 저주 그 자체일 것인가? 이를 생각해보라는 권유도 되기 때문이다."
(/ pp.214~215)


"모든 신은 죽었다." 니체가 선언하는 '신의 죽음'은 신앙인들의 무게중심을 신에게서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성찰이며 인간 안에 내재하는 신성을 주목하자는 권유이자 동시에 인간 자신과 세계를 사랑하게 만드는 신 개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종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자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성의 회복을 위한 철학적 시도이기도 하다.


니체에게 신이 죽었다는 사실은 결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적절한 '거리 두기'가 진정한 웃음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체가 학생일 때 겪은 일화는 어떻게 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암시한다. 니체의 유머는 물론 엄숙하고 고루한 교사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해 니체는 벌을 받게 되었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니체의 철학적 태도로 발전되었다. 진지한 삶을 살아내려면 웃을 줄 알아야 한다. 신의 죽음 이래 우리의 삶에는 결코 주어진 목적과 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이 없기에 삶의 목적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우리가 설정한 목적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에서 목적과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분명 희극이다. 이 희비극을 견뎌내려면 우리는 웃음을 필요로 한다.


"지루한 일을 유머를 통해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모든 발언들에 농담의 옷을 입히는 쪽지를 썼다."

"우리의 삶에는 이성뿐만 아니라 비이성적 충동도 필요하고, 진리뿐만 아니라 허구적 환상도 필요하다. 이러한 비극적 인식을 담담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삶을 웃으면서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삶을 긍정하자. 내일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웃자."
(/ p.265)


병든 개인과 건강한 개인은 무엇으로 측정되는가? 니체에 의하면 그 기준은 노예성과 주인성이다. 주인성은 자기지배의 힘, 자신에 대한 책임의식 및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자유에 대한 열망과 실천,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지, 자신의 삶의 계율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주권성, 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의지, 진정한 적이 곧 벗이라는 점에 대한 통찰, 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 전체가 거대한 관계체라는 점에 대한 인식, 그 관계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인정 및 긍정 등을 주요 요소로 한다. 반명 노예성은 자기지배력의 부재, 자유 대신 복종, 자기챔임에의 의지나 의식 대신 자신의 외부에 대한 책임회피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시선, 주권성 대신 타율성, 주인적 존재에 대한 미움과 원한의식과 보복심리, 삶의 향상에의 의지 대신 평균성에 안주하기, 무리를 짓고 무리 속에서 무리의 삶의 원칙을 추종하면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무리본능,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 대신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을 주요 요소로 한다. 주인성의 노예성에 대한 지속적인 승리, 그 승리는 곧 건강성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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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의 보물상자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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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의 보물 상자>는 <무지개 곶의 찻집> <쓰가루 백년 식당> <당신에게> <스마일, 스미레!> <푸른 하늘 맥주> <붉은 노을 맥주> <여섯 잔의 칵테일> <나쓰미의 반딧불이> <바다를 품은 유리구슬>의 일본작가 모리사와 아키오 신작 장편소설이다. 소설 <미코의 보물 상자>의 주인공 미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조부모 밑에서 자란 미코의 특기는 매일 '작은 보물'을 찾는 것이다. 다섯 살 크리스마스 때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손거울이 달린 '보물상자'에 담긴 보물은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물건들이다. 홀로 딸 '치코'를 낳고, 엄마 역할을 다하기 위해 유사성매매와 간병 일을 하는 미코. 미코는 아무리 괴로워도 주변에서 작은 보물을 찾아 간직하면 누구든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미코는 성매매 여성이자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면 인생에 조금 지친 싱글맘이 되고 다음날 아침 6시부터는 간병인의 모습이라는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소설 <미코의 보물 상자>는 미코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고 치코라는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코가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이 미코라는 여성을 각자의 위치에서 떠올리며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저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도 사회 속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통증을 느낄 때마다 상처를 핥기 위한 새로운 인격이 필요해진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갖추게 된 다양한 인격을 능숙하게 가려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이라는 범주에 속하게 된다. 그제야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고 피해갈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고, 약한 타격으로 끝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기 안에 생성된 수많은 인격을 들춰내고 대체 어느 것인 진짜 나인지 고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 모두 진짜 '나'이니까. 사람은 누구든 행복해지고 싶고, 안정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솔직하게 드러낸 자신의 모든 것을 누군가가 다 받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연기하는 다중 인격을 우선 나 자신이 먼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물론 나도 성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매매도 훌륭한 일이야. 자부심을 가져도 돼’라는 허울 좋은 말을 들으면 구역질이 난다. 싱글맘 대부분이 ‘빈곤층’인 이 나라에서 치코와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낫다. 아니, 있는 편이 훨씬 나은 게 당연하다. 궁핍한 어른은 마음이 피폐해져서 자식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로 인한 갖가지 사건 사고로 뉴스가 도배되는 세상이다. 나는 그런 인생은 사절이다. 치코는 나와 ‘다른 아이’여야 한다."
(/ p.22)


미코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의 낡은 집에 밴 냄새를 떠올린다. 주변에서 작은 보물을 찾아 간직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 엄하게 미코를 대했지만 미코의 손은 고마운 손이라고 말해주던 할머니의 가르침은 미코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괴로워도 주변에서 작은 보물을 찾아 간직하면 누구든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쳐주셨다. “무서웠던 할머니도 좋은 말을 해주셨어요.” “어, 뭔데? 가르쳐줘.” “미코의 손은 고마운 손이야. 너의 두 손은 타인에게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거란다.” “고마운 손이라…….” 나베짱이 굳은살 박인 자기 손을 응시했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사람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이다."
(/ p.36)

"나의 집요한 질문에도 아내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후. 그건…….” 아내는 2층에 있는 미코에게 들리지 않게끔 하려는 듯이 자그마한 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 나는 아내의 의도를 듣고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거니까.” “…….” “여보, 부탁해요.” “…….” 아직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 p.67)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미코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시모야마 구미와가 미코를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미코는 연약해보이지만 작은 것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아이였다.

"나는 멍하니 생각하며 걸었다. 미코의 장갑은 그물코가 촘촘했다. 태그가 없는 걸 보니 이것도 할머니가 떠준 모양이다. 낙엽처럼 짙은 갈색의…… 별로 예쁘지도 않은 장갑. 나는 여태까지 손으로 뜬 장갑을 껴본 적이 없다. 왠지 궁금해져서 손가락을 슬쩍 넣어보았다. 투박하고 뭔가 촌스러운 감촉. 손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해보았다. 털실 때문에 손등이 조금 따끔거렸다. 하지만 미코 말대로 따뜻했다."
(/ p.89)


"미코는 하찮은 물건을 주우면서도 늘 기뻐했다. 까마귀 깃털이라든지,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라든지, 초롯빛이 나는 돌멩이라든지..... 정말로 하나같이 시시한 물건뿐이었다. 어쩌면......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도 보물이라며 기뻐할 수 있는 그 아이가 나보다 훨씬 행복한지도 모른다. 미코믐 하찮은 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 나에게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미코가 중학교 3학년때 보건교사로 일하던 여성인 이가와 나나와가 기억하는 미코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가와 나나와가는 미코가 선물한 일기장을 통해서 중학교 시절의 힘들었던 자신의 상처를 어른이 된 지금 치유해간다.

"어쩌면 나와 미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은 복잡하고 갑갑한 가정환경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실이다. 그 실이랑은 별개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애정의 바다’에 갈증을 느껴왔다는 점. 달콤하지만 위험을 내포한 연인 사이의 그런 ‘애정’이 아니라, 농밀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그래서 안심감을 주는 ‘애정’을 마음속 깊이 원해왔다는 점이다."
(/ p.138)


"당장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내면에서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이 더러운 충동을 옛날처럼 문장으로 옮길 수 있다면 기분도 조금은 후련해지지 않을까? 그걸 미코가 읽고 공감해준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써야 할 내용은 정해졌다.

엄마가 죽은 후 내 마음을 지배해온 감정은 마치 검은 그림물감과 같았다는 것. 그 물감이 아빠와 아이코 씨를 지웠고, 그때마다 내 마음도 검게 더럽혀졌다는 것. 모두 시커멓게 칠해지면 정말이지 죽고 싶어졌다는 것. 지금도 내 안에 검정색 물감이 존재하기에 나를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자신을 옛날만큼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평생 계속되는 로맨스를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격언과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쓰자 지금 당장.

나는 테이블 위에 내팽개쳐둔 가방에서 미코에게 선물받은 일기장을 꺼냈다. 그러고 다이어리에 달려 있는 볼펜을 빼내어 잡았다.

표지를 넘기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첫 문장은.....

나는 아이코라는 사람이 싫다."


"그 무렵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실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다. 환경을 사랑하기는커녕 그 환경에 없는 것만 줄기차게 요구했다. 엄마라는 존재,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는 도시락, 모성이라는 이름의 사랑과 관심......

내가 처한 환경을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했어야 했다. 내가 만약 그 환경 속에 존재했던 아빠의 사랑과 아이코 씨의 다정한 배려에 조금이라도 눈을 돌렸더라면... 나는 어떤 나날을 보내고,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사리 후미야와는 학교도 제대로 안 가고, 와키타가 소개해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도 무단결근으로 잘리고, 송금받는 돈이 적어서 늘 생활비가 모자라고, 허름한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람은 알코올 의존증인지 밤마다 괴성을 지르며, 와키타 말고는 애인은커녕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남성이었다. 대인공포증으로 사회생활에 힘들어하는 남성 아사리 후미야와는 미코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해주던 미코의 할머니, 미코의 손은 고마운 손이 되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아사리 후미야와는 미코의 하얀 손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대인공포증인 내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대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리 세상이 넓다 해도 미코뿐이다. 미코는 타인의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타인이 하는 일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분명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흐음, 알겠어. 바이바이”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 것이다. 그 극단적인 담백함이 대인공포증인 내겐 ‘구원’이자……, 그와 동시에 ‘고통’이었다."
(/ p.178)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줄곧 '혼자'였다. 공부를 이유로 야구를 그만둔 후 친구가 갑자기 줄었고 성격도 어두워졌다. 일상에서 색채가 사라졌다. 중학생이 된 후로는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꼈고, 그 때문에 따돌림도 당했다. 사람이 점점 무서워졌다. 나는 서서히 '혼자'가 되어갔다. 그래도 공부하여 도쿄에 있는 대학에만 들어가면, 옛날처럼 야구를 시작하기만 하면 다시 좋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다."

"미코의 소중한 ‘보물상자’가 뒹굴고 있다. 경첩이 비뚤어져서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지난밤 내가 발로 차서 부서뜨렸다. ‘보물상자’가 부서졌을 때, 미코의 마음도 함께 부서졌다. 내가 아무리 때려도, 난폭하게 범해도, 미코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처럼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만 주르르 흘렸다."
(/ p.192)


'신주쿠 루비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 미코의 사장 구로키 류스케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코는 자신의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작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도록 자신의 눈을 훈련시켜온 덕분이라고 말한다.

"혹시 어머니는 이 편지를 쓰고 싶어서 ‘채소 선물’을 보내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상자와 마음의 뚜껑을 동시에 닫고 편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 많은 채소를 어떻게 한다지? 순간 미코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업소 아가씨로서는 드물게 부지런히 요리를 하는 여자다. 네 살배기 딸 치코 때문이다. 감기 걸린 미코와 한창 자랄 나이인 치코. 무농약 채소가 갈 곳은 정해졌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골판지 상자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 p.225)

미코는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들어?” 어찌된 일인지 마치 타인의 목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마치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으음, 어떨까…….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죽고 싶을 만큼 나쁘지도 않아요. 그보다 나는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거든요.” “비교하지 않아?” “네. 비교하지 않으면 내 인생도 특별할 건 없죠. 나도 그냥 보통 사람이에요.” “그렇군.” “내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내 눈을 훈련시켜온 덕분일 거예요.”
(/ p.253)


<미코의 보물 상자> 끝부분에는 미코의 나이가 쉰 한 살로 딸 치코가 바라보는 미코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엄마와 딸은 보이지 않는 빛으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그래서 내가 아프면 엄마도 울고, 엄마가 슬프면 나도 우는 것이다."


치코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유흥업소 출신이라는 소문이 퍼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인 미코는 치코에게 "치코 마음도 사포로 닦이고 있었으니 굉장히 아팠을 것 같아.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을 갖게 됐잖아. 바로 여기"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상처 입지 않게끔 만들어져 있어." "마음은 상처 입는 게 아니라 연마되는 거거든. 거칠거칠한 사포 알지? 사포로 문지르면 따끔따끔 아프겠지만 한 번 두 번 분지르다 보면 결국 반들반들 빛이 나잖아."라는 엄마 미코의 말은 치코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죽음을 원하는데도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냉혹한 급우들과 교사들. 내 마음은 그들에 의해 갈기갈리 찢어져 치사량에 이를 만큼의 피를 뚝뚝 흘렸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내 마음 한가운데에 '은신처'가 존재했고 그곳만은 상처 없이 보호받고 있었다. 그 '은신처' 안에 내 '본질'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본질'이란 머리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이며, 어쩌면 '무의식'이라 불러도 되는지도 몰랐다. 혹시 '무의식'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걸까?

아무튼 내 마음 한가운데에 있는 '은신처'가 '무의식'을 굴곧 지켜주었고, 그 '무의식'에 새겨진 말이 내가 나 자신을 죽일 수 없었던 이유인 건 틀림없었다.

사람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야.

내 '무의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세 번째 ‘사랑해’라는 글을 눈으로 읽고 있을 때 시야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아…… 하면서 엄마 수첩에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급히 옷소매로 닦았다. 볼펜으로 쓴 글자라서 번지지는 않았지만, 얇은 종이가 조금 구겨져버렸다. 내가 태어난 후로 수첩에 기록된 엄마의 ‘오늘의 보물’은 거의 대부분 내가 한 행동이었다.
(/ p.292)                                  


소중한 거울을 보물상자 뚜껑 안쪽에 붙여서, 미코가 열면 늘 얼굴이 비치도록 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할머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미코가 늘 들어있도록. 할머니의 사랑은 미코에게, 미코의 사랑은 딸인 치코에게로 전해진다. 미코의 이름은 은혜로울 혜. 메구미. 치코가 배 속에 있을 떄부터 줄곧 치코에게 엄마 미코는 은혜로운 말과 은혜로운 생각을 전해주었다. 미코의 딸은 치코. 행복한 아이. 행복한 치코는 은혜로운 엄마 미코의 딸로 행복한 아내가 된다. <미코의 보물 상자>는 미코의 모델이 된 '제리탄'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작가인 모리사와 아키오는 말한다. 이 책의 일본어판 표지와 각장의 대문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 후지사토 이치로 씨의 소개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유흥업소에 나가고 힘든 간병 일을 하면서도 무척 밝고 예의 바른 데다 행복하게 웃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는 강인함과 현명함을 겸비한 그녀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소설 <미코의 보물 상자>는 <무지개 곶의 찻집>과 <당신에게>와는 또다른 강인하면서도 따뜻함을 간직한 여성 미코의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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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간디 - 사랑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6
류성민.류경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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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시리즈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 19명에게 묻고 싶은 인생의 질문에 대해 각 계의 대한민국 대표 학자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 인생의 화두라 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저마다 어떻게 생각했는지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인생교과서 간디>는 류성민, 류경희의 글로 구성되었다. 간디에게 묻고 싶은 28개의 질문 중 한 질문에 두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고, 한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마지막 29번째의 질문은 독자 스스로 만들어보고,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간디라는 인물을 오래 연구해온 두 저자는 오늘날 우리 개인과 사회에 간디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같이하지만, 각각 다른 시각으로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같은 주제에 대한 두 저자의 다른 해석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생교과서 간디>는 1부 삶과 죽음, 2부 나와 우리, 3부 생각과 행동, 4부 종교와 철학이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마하뜨마 간디로 알려진 모한다스 K. 간디(1869~1948)는 인도를 독립으로 이끈 인도의 민족주의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러나 간디를 단순히 정치가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그는 정치뿐 아니라 종교와 사상,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과 예술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인, 행동하는 정치가이자 사회개혁자였고 종교지도자이기도 했다. 간디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급격한 변화와 갈등을 경험하던 시기에, 비폭력주의 노선을 통해 인도의 개혁과 독립 그리고 인류의 궁극적인 해방을 추구했다. 간디는 정의로움과 사랑이 우주와 인간사회가 그 토대로 삼고 있는 변경할 수 없는 최고의 법칙이라 믿었다. 저자는 간디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보편적 휴머니즘에 근거한 자기 신념과 이상을 실현하려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간디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근거는 그가 사뜨야 즉 진리라 믿는 것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었다. 간디는 신을 진리라 불렀고 또한 진리를 신이라 불렀다. 그에게 진리는 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주와 사회의 질서이자 법칙인 다르마 즉 정의로움과 그가 '사랑'이라고 표현한 아힌사 즉 비폭력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보편적 선이었다."

간디는 배우자 선택은 물론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이나 사탸그라하 운동을 하게 된 것 등등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것들 모두가 그의 꿈도 아니었고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가 살던 인도 사회의 관습을 따르다 보니 벌어진 것,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자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그래서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바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이러한 물음이 간디로 하여금 '진리'를 찾게 만든 것이다. 간디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간에 그것이 진리를 찾는 길인지를 고민했다. 그 진리가 그에게는 신이었다. 그가 인생의 많은 실험을 통해 찾은 그 방법이 '아힘사'였다. 진리가 목적이라면 아힘사는 그 수단이었다. 아힘사를 통해 진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아힘사라는 수단을 통해 진리라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했고 그것이 곧 그가 실천한 사탸그라하 운동이다. 간디는 진리란 목표일 뿐 그것의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가도 보았다. 간디는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진리에 이르고자 했다. 간디의 사띠아그라하 운동은 남아프리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던 인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투쟁에서 시작되어 인도에서 독립투쟁으로 이어졌다.

간디는 "삶은 갈망이다. 삶의 의미는 완성을 추구하는데 있고 그것은 자아실현이다"라고 말한다. 간디가 삶을 갈망이라 말한 것은, 삶을 진리를 실현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들을 끊임없이 행하며 살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간디가 행복에 대해 말한 것들에서도 모두 그의 경험과 깊은 성찰을 볼 수 있다. 간디는 행복을 두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외면적인 것, 이를테면 부괴영화와 같은 어떤 물질적이거나 외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등 이원적이고 상반되는 것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경계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참된' 행복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세상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행복 뒤에는 슬픔이, 슬픔 뒤에는 행복이 있다. (...) 비집착은 이러한 서로 반대되는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 앞에서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의 열쇠는 진리에 대한 예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리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진리 탐구에 성공하려면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등등 이원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간디가 힌두교의 이상적인 삶의 단계를 그대로 밟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자신이 그러한 단계를 중시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한 진리를 위해 그는 늘 포기하는 삶을 살았다. 학업을 위해 자신의 카스트에서 배제되는 것을 감수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먹는 것도, 부부의 성생활도, 온갖 훈장과 명예도, 재산도, 소유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에게 그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행복한 것이었다." (/ p.59)

간디의 글은 자신의 경험(실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쓴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 있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고,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간디의 글쓰기 방식은 사실상 그의 삶의 방식과 같은 것이었으며, 그의 사탸그라하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된 방벙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탸그라하 운동들에서나 간디의 글과 행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의사전달 방법은 사실에 입각하는 의사전달 자세라고 말한다. 간디가 변호사로서 제일 중요한 교훈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사실이 지닌 힘을 알게 했고, 사실이 곧 진리라고 고백케 했다. 간디가 의사전달에서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였다. 이밖에도 간디의 중요한 의사전달 방법은 그의 사탸그라하 운동에서 가장 중시했던 아힘사, 곧 비폭력이었다. 간디가 1930년에 사탸그라하 운동 자원자를 위한 규율을 만들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도 비폭력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의 공격을 공격으로 대응하지 않고 상대방의 분노에 대해 분노를 품지 않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그래서 분노로 인해 내려진 명령에는 복종해서는 안 되며,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거나 욕설하는 것도 금지했다.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라도 상대방을 모욕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라고 했다. 끝으로 모든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간디는 부단히 끈기를 갖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노력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그의 가장 근본적인 의사전달 방식이 될 수 있었다. 간디의 인간관은 그의 종교적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신적인 본질이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인간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아무리 악하고 폭력적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도 신이 부여한 신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어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간디의 의사전달 방법의 근본인 것이다. 간디는 최대한 사실에 의거해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펼친다.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며, 할 수 잇는 한 자신의 모든 노력을 동원해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한다. 동시에 상대방의 처지를 충분히 배려한다. 그러기 위해 요구사항이나 주장을 최소화한다. 어떤 경우에도 분노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어떤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대한다. 그리고 인간의 선한 신적 본질을 믿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설득하고 기다린다. 이렇게 하면 서로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사가 전달되고 모두가 만족하는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간디의 비폭력 개념은 수동적이거나 나약한 힘 또는 무저항으로 오해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간디는 비폭력이 오히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힘이자 강력한 저항의 무기임을 역설했다. 간디는 비폭력이 결코 도피나 나약함이 아니며 폭력보다도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비겁함을 없애고 자기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며 언제라도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하고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폭력이 갖는 강력한 힘을 '악에 대한 능동적인 저항방법', '인류가 행사할 수 잇는 가장 위대한 능력', '인간이 고안한 어떤 무기보다 강한 것', '폭력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 등 여러 가지 표현을 통해 전달하려 애섰다. 그리고 폭력의 상징은 무기이나 비폭력의 방해는 신이라 말했다.

"비폭력은 적극적인 힘으로 나약함이나 소심함의 여지가 없다. 비폭력은 최고 질서의 능동적 힘이다. 영혼의 힘, 또는 우리 안에 있는 신의 파워다."

간디에게는 악을 선으로 갚는 것, 사심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 육체적 욕망을 이겨내는 것, 어떠한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비폭력(아힘사)으로 폭력을 이기는 것,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단지 관리하고 있다고 믿으면서(무소유) 기꺼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 등등 그가 실험하면서 그 가치를 알게 된 모든 도덕적 행위들이 그의 종교적 핵심이었고, 진리(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간디는 신에 대한 신앙 없이는 그러한 도덕적 행위를 실천할 수 없다고 믿었다.
"나와 종교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도 이웃으로 여긴다면 그의 종교는 ‘이웃종교’가 되고, 그는 ‘이웃 종교인’이 될 것이다. 간디에게는 그 어떤 종교도 이웃종교였고, 그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이웃 종교인이었다." (/ p.384)

"간디는 바라보면 볼수록 참으로 멋진 인도인이었다. 그는 인도의 종교와 문화 속에서 살았고 그 삶에 충실했던 인물이었다. 바로 그 점이 그를 세계적 인물이 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가장 인도적이었기에 가장 세계적이 될 수 있었다고, 그는 어느 곳에서든, 어느 때이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이로써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간디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진리의 추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의 물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 p.423)

"간디는 자신의 에고이즘을 초월한 보편적 신념과 가치를 어떤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완수해낸’ 인물이다. 적어도 간디라는 한 인물의 생애에서는 간디주의가 철저히 실천되고 실현되었다.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자리한다. 따라서 간디의 진리실험은 그의 삶에서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 p.429)
<인생교과서 간디>는 인도의 위대한 인물 간디의 삶과 철학을 배우고 간디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통해 진실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 소중한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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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 시인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기 아우름 7
김용택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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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는 김용택 시인이 말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기'에 관한 인문학 책이다.


"이 책은 그동안 했던 강연을 녹취해서 다음 세대에 맞게 다듬고 보충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놓고 보니 그동안 내가 써놓았던 글들을 다시 정리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린 공부를 너무 많이 합니다. 아는 게 너무 많아요. 아는 것을 써먹기도 전에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생가개 보면 몰라서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써먹지 못해 힘들어 합니다. 나는 아는 것을 써먹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전해 주러 다닙니다.
나는 나무를 좋아합니다. 강물을, 바다를,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무는 정면이 없습니다. 경계를 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늘 완성되어 있고, 볼 때마다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왜 늘 완성되어 있는데, 왜 늘 달라 보일까요.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고, 볼 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볼 때마다 다르다는 말은 자기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나무는 햇빛과 바람과 물을 받아들여 자기를 늘 새롭게 그립니다. 눈이 오면 눈을 받아 들이고 새로운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지요.
받아 들이는 힘, 그 힘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힘입니다. 공부란 실은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날 일을 받아들여 세상을 새롭게 그려 내는 힘입니다."

이 책은 1장 보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이다, 2장 자연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쓰다, 3장 가르치면서 배우다, 4장 사는 것이 공부고 예술이 되어야지, 5장 길 없는 산 앞에 서 있는 너에게(인터뷰)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일이다.
산을 바라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을 가르쳐야 한다.
바라보아야 무엇인지 알고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그것이 내 것이 된다.
그럴 때 아는 것이 인격이 된다."

김용택 시인은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철학이고, 그런 삶을 우리는 철학적인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삶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철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신념이 있다. 신념이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믿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그러한 신념이 있을 대 어제와 오늘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상이 또 새로운 글이 되고, 새로운 과학이 되고, 새로운 철학이 되고, 새로운 집이 되고, 새로운 길이 되고, 새로운 스마트폰이 된다. 삶을 정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새로운 것들은 시선을 끌게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김용택 시인은 그 새로움이 예술일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고 전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게 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내 것이 될 때 인간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려는 행동과 실천 즉, 아는 것이 인격이 되는 것이지요. 아는 것이 인격이 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와 깊이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관계는 갈등을 불러옵니다. 갈등이란 둘 사이의 긴장을 말해요.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는 거지요. 모두들 자기가 옳다고 싸움을 하면 시끄럽고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을 조절하고 조정해서 서로 화해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 조화로움을 찾다가 보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곧 삶이고 예술이고 정치이고 교육입니다.
(/ pp.86~87)"

김용택 시인은 2008년 퇴직하고 나서는 강연을 다녔다. 첫째, 김용택 시인은 지식을 쌓아 세상을 자세히 보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평생 공부를 했다. 김용택 시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담겨 있는 신문을 읽은 후 마지막으로 시를 찾아 읽는다. 김용택 시인은 시를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둘째, 김용택 시인은 예술적 감성을 놓치지 않고 살았다. 미술관을 찾아다니고,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고, 연극도 보러 다녔다. 세번째는 '생태적인 삶'이다.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도와주는 게 생태이다. 사람들이 편하고 안락하게 살려고 자연을 죽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용택 시인은 '나름대로 사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김용택 시인은 남의 100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60점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60점이 정말 귀해진다고 말한다.내 것, 내 희망, 내 사랑, 내 삶...... 귀하고 소중한 내 것들이 모이면 세상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 된다는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시를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을 넓히고, 넓힌 생각을 조직해서 표현하는 법을 빨리 알게 되지요. 시는 이슬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 주는 아름다운 힘이 있습니다. 감성을 확장해 줍니다. 그 감성이 이성과 논리가 되고 신념이 되어 나타나지요. 세상을 아름답게 가꿉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피어 있는 꽃,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가만히 서 있는 나무, 높이 뜬 달빛 아래 굽이돌아 흘러가는 강물, 어둠을 뚫고 가는 강물, 아침과 저녁에 듣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늦여름 쏟아지는 느닷없는 소낙비...... 아내가 해놓은 밥까지 다 사는게 예술이 되었습니다.
일상이, 삶이 곧 예술이 되어 주었지요. 삶의 예술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지요. 크고 위대하고 화려한 것들이 아니라, 문득 이마를 스치는 바람 한 줄기, 길가에 핀 작은 풀꽃 한 송이의 감도잉 세상을, '그곳'을 바꿉니다."

"모두 자기가 원하는 세상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지요. 그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을 평생 싫어하며 살수는 없지요. 그래서 나는 늘 나름대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나름대로 자기의 삶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 내용이 들어있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김용택 시인의 말을 꼭 명심해야겠다.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있으면 손에 쥔 것만 내 것이지만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세상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한 가지만 손에 꼭 쥐고 있지 마세요. 눈멀어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 손에 쥔 것을 놓아 보세요. 누구나 다 길 없는 산 앞에 서 있습니다. 인생은 누군가가 내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길 없는 산에 들어서서 스스로 길을 내며 가는 것입니다. (…) 내가 낸 길은 폭우가 쏟아져도 쉽게 유실되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폭설이 내려 쉬이 묻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세상이 바로 보일 것이고, 내가 갈 길이 더 뚜렷해질 것이고, 두려움과 부러움도 엷어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 고개에서, 어느 굽이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며 삶의 긍정을 얻게 되겠지요.
(/ pp.155~156) "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김용택 시인이 추천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한 편에 깊이 공감한다.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는 받아들이는 힘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삶에 대해 김용택 시인이 전하는 글이다. 주변의 작은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표현하여 일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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