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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든 말든 - 나는 본질을 본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아주든 말든>은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작가 소노 아야코는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불화로 이혼에 이른 부모 밑에서 자란란 외동딸의 기억에 단란한 가정은 없었으며 선천적인 고도근시를 앓았기에 작품을 통해 표현된 어린시절은 늘 어둡고 폐쇄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조리는 소노 아야코를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소설가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시대였으나 반골 기적인 소노 아야코는 망설임 없이 소설가의 길을 택했다. 소노 아야코는 평생 독신을 꿈꾸었지만 같은 문학 동인지 멤버였던 미우라 슈몬을 만나 22세의 나이에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노 아야코는 50대에 이르러 작가로서 또 위기를 맞는다. 좋지 않은 눈 상태에 중심성망막염이 더해져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한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경 없이도 또렷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본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거울 속 자신은 이미 주름진 반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치원 때부터 대학까지 미션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신에게 비추어본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핵심이 되어주었다. 결혼 후 친정 어머니와 두 분의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사아오면서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찰을 담아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1부 관계의 본질, 2부 사랑의 본질, 3부 인간의 본질, 4부 행불행의 본질, 5부 삶의 본질, 6부 운명의 본질, 7부 자연과 신에 대하여'라는 6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자신을 추궁하지 말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무슨 일에나 앞에 '기껏해야' 라는 말을 붙여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껏해야' 라는 말은 결코 상대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지위나 명예, 돈이 없어져도 상대를 존경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소노 아야코의 글에 공감한다. 자신을 추궁하지 않는 것은 상대가 가진 것에 따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다.
소노 아야코는 관련 없이 있을 수 있을 때만 상대를 무조건 좋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 가까이서 실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대의 약점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관련 없이 있을 수 있을 때만 상대를 무조건 좋게 생각할 수 있다. 관계를 맺으면 자연히 상대의 실체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책에서 소노 아야코가 인간의 삶이 지닌 양면성에 관해 전하여 인상적이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혜택도 받지만 피해도 입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타인에게 주는 피해보다 받지 못한 혜택을 더 생각하는 존재라는 소노 아야코의 글은 인간의 너그럽지 못한 마음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글로 눈길을 끈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요소를 갖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점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 사회에 도움을 준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사회로부터 혜택도 받지만 피해도 입게 된다는 말이다.
혜택만 받고 피해는 전혀 없는 사회라는 건 아예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외부에서 받은 혜택은 잊어버리기 쉽고 피해본 것만 오래도록 깊이 간직하는 존재하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에서 소노 아야코가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연한 모습을 이야기하여 흥미롭다. 인간의 절망이야말로 인간적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사정 안에는 고독이 존재하며 그것은 인간을 단련시킨다는 소노 아야코의 글은 완전한 인간을 향한 엄격함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이 자기 생각대로 안 된다는 것에 누구나 애초에 절망하는 장소가 바로 도시다. 그리고 절망했다고 해서 사회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절망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 배후에는 다른 사람이 짐작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 고독감이 인간을 단련시키는 면도 있다."
이 책에서 소노 아야코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 깊은 본질은 이야기한다. 소노 아야코는 자기 주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소노 아야코는 나와 눈을 맞대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기쁘게 하는 바로 주변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우리들은 모두에게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두'란 누구를 칭하는 것인가? 그것은 멀리 있어서 별 상관없는 사람들을 칭하는 것이다. 가까이 있어, 그 언동 하나하나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코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 주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데 어떻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만약 멀리 있는 신은 멀리 있는 사람처럼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소노 아야코는 인간을 멋지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을 때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익에 도움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다움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인간을 멋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사람에게 위기감이 들 때가 아닐까?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사람, 위험한 작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 득실을 떠나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 어려움을 감내하는 사람... 이들을 지켜보는 제삼자로서는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맘이 든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운명을 크게 바꿀 만한 어떤한 힘도 내게는 없다고 생각하면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그 순간, 나는 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정신,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지수란 다름아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자신 이외의 것에 진심을 전하고 있는가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더구나 그것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이익을 보고 싶다, 나 자신은 어려움을 당하고 싶지 않다, 비난받고 싶지 않다,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일은 먹을 거리나 얻어 먹으려 하는 개들도 하는 행동이며, 인간으로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소노 아야코는 진리에 도달하기에 앞서 진실을 알고 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먼저 알고 난 이후에 우리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진리라는 말은 아주 약간은 위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 말은 진리에 도달하기에 앞서, 진실을 알고 인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즉, 자기가 얼마나 어설픈 인간인지 깨닫는 것도 하나의 진실이며, 이 세상에는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진실이다. 그러한 것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이상주의자에게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유는 없다고 봐야 한다."
소노 아야코는 거짓말이라는 것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허구의 언어인 문학을 읽고 허구의 영상인 영화를 보면서 웃고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이유는 거짓말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상상력이 더해져 창조된 허구는 인간의 삶을 반성하고 통찰하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예술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도 진실이 남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소노 아야코는 참된 평화와 용서는 자기가 상처받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평화와 용서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깊이 이해한 후에야 깨달을 수 있다.
"참된 평화와 용서는 자기가 상처받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평화라는 것이 남은 살고 나는 죽는 일이라고 한다면, 평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허울 좋은 이야기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이 세상에서 거의 힘을 갖지 못한다."
소노 아야코는 병이나 고통이 인간에게 겸허함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삶의 큰 고통을 경험한 자만이 타인의 상처를 깊이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이나 고통이 인간을 부드럽고 여유롭게 하는 경우가 곧잘 있는데, 그것은 그때까지 자신감에 가득 찼던 사람도 믿기 어려울 만큼 겸허해지기 때문이다. 겸허함이라는 것은 건강과 원만한 환경이 주어졌을 때에는 좀처럼 몸에 배기 어려운 '향기'이다."
소노 아야코는 가난은 인간다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가난 속에서 인간의 마음에 배려와 인내와 겸허가 자라난다는 소노 아야코의 글이 눈길을 끈다.
"풍요로움은 때때로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어 위험하지만, 가난은 인간다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하려면 엄격한 자율 정신이 필요한데, 가난 속에서는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에 배려와 인내와 겸허가 자란다. 물론 난폭함이나 막무가내 행동, 도덕적인 감각의 결여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소노 아야코는 약자는 상대 안에서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동시에 발견하기를 두려워하며 자기와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소노 아야코는 폭력적인 사람은 모두 약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강한 힘은 폭력이 아닌 따스한 말과 사랑을 베푸는 자비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 속에 위대한 부분과 비겁한 부분, 섬한과 둔감함이 공존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약자는 상대 안에서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동시에 발견하기를 두려워한다.
바르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결코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남몰래 싸우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강자다. 자기와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약자이다.
강한 듯 보여도 폭력적인 사람은 모두 약하다. 그리고 그 약한 성격은 평생 치유되지 않는다."
소노 아야코는 언제 죽어도 미련이 없게끔 인생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납득과 단념이라고 말한다. 납득과 단념은 삶을 집착하지 않고 인생의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
"인생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납득과 단념이라고 생각한다.
납득하려면, 매일 인생의 손익을 계산하는 짓일랑 그만두고 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해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고 생각하는 버릇을 들인다. 게다가 나는 사소한 일이라도 즐길 줄 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이라 생각하는 것은 다른 이의 장점을 유머러스하게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재밌고도 좋은 일들로 가득하다. 만약 사후에 저 세상이 없어도 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서 신의 축소판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났고,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멋진 자연과도 조우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죽어도 미련이 없게끔 준비하는 중이다.
납득과 더불어 '단념'도 필요하다. 이것도 젊을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 노력은 해보지만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인생은 사회가 어떤 형태가 되든, 원형 자체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는 다는 것이 당연하다' 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노 아야코는 신은 천천히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듯 인간이 충분히 고통 받고, 길을 찾아 헤매고 스스로 상처받으며 답을 찾아내길 기다린다고 말한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할 때 어른같은 신은 공평히 빛과 비를 내린다.
"신이 만약 어른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착한 이에게만 햇빛과 단비를 내리고 나쁜 이에게는 암흑과 메마른 사막만을 주려 하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나를 포함한 절대 다수의 속물들은 연명하기 위해 모두 신이라는 무서운 존재의 비위를 맞추며 필사적으로도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할 것이다. 선악의 의미도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저 신이 내리는 평가에 일회일비하며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어른이다. 신은 천천히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듯 인간이 충분히 고통 받고, 길을 찾아 헤매고 스스로 상처받으며 답을 찾아내길 기다리신다.
기껏 그 나이를 먹고도, 유치한 논공행상을 함으로써 남 못지 않게 사람을 다루고 있다고 믿는 단순한 경영자 같은 구석은 전혀 없다. 모든 이에게 공평히 빛과 비를 내리신다. 이 광경만큼 냉정하고도 장대하며 관대하여 나를 전율케 하는 것도 없다."
<알아주든 말든>은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삶의 혜안과 통찰을 담은 어록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