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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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니체의 철학,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고 말해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 어떤 철학자, 작가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저서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쇼펜하우어가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행복해지고 싶어서 결국 불행해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펜하우어는 일평생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여덟 권이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그의 도서들과 편지, 일기 등에서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통찰과 정곡을 찌리는 인생 조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쇼펜하우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알지 못했던 사람도 이 책을 읽게 되는 순간, 옛 철학자의 독설 안에 감춰진 열망과 투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에게는 좌절이 없고 그래서 영광도 없다고 말한다. 쇼펭하우어는 반면에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선 사람에게는 영광이 주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좌절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아문 상처가 새겨져 있으며, 절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를 알고 있는 눈동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눈길을 끈다.

쇼펜하우어는 불명확한 인생에서 죽음보다 확실한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보다 명확한 전제는 없으며,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은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올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보다, 해가 지면 어둠이 찾아온다는 눈으로 목격한 사시보다,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리라는 부푼 기대보다 더욱 명확한 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쇼펜 하우어는 우리는 항상 죽음을 떠올려야 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삶이 허락된 이유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공허와 암흙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공허와 암흙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도처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죽음은 공간에 속한 육체와 시간에 대한 인지를 소멸시키지만, 삶을 이루는 기반, 즉 세계와 존재 사이에 이룩된 특수한 우정은 깨뜨리지 못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선별하고 시도하는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죽음의 감각을 일깨우는 필요조건이 되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동물과 동물로서의 인간은 고통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내구성이 강해서도, 고통에 대한 면역력이 강화되어서도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걸어가야 할 필수 과정이며, 절대로 사라질 리 없는 유한한 길이고 그 끝에 죽음이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쇼펜하우어는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완성하는 강력한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는 판단과 권위를 혼동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세상 사람들은 난제와 부딪혔을 때 권위를 따르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스스로 판단한 것처럼 착각에 빠지곤 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권위를 갖춘 말을 인용했을 뿐이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고안해낸 결론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힘들게 자신의 이해와 통찰을 동원하기보다는 타인이 떨어뜨린 몇 마디 말을 잽싸게 주워 담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삼킨 후 배설하기를 즐겨한다. 손수 수고하여 바구니에 담은 과일보다 남들이 먹다 버린 썩은 과육의 배설물을 더욱 신봉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이마저도 어려워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들은 손쉽게 지식인, 양식 있는 학자라는 이름표를 취득하곤 한다."

쇼펜하우어는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한심스레 여기고 있으며, 타인을 증오하는 중이고, 영혼과 육신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이럴 땐 그저 쉬는 게 최선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인상적이다.

"반성은 자기혐오다. 자기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인간은 뭔가 반성할만한 건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인간은 무턱대고 반성하며 자아를 성찰한다. 그럴 바에야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 낫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여행도 도움이 안 되고, 술을 먹어봐야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혐오스러운 오늘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괴롭다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시작을 펼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활동 그 자체로 본다고 말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는 뜻이고, 내가 잘 산다고 느끼는 까닭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이야기한다. 행복은 '잘하고 있다'는 지속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원했던 형상 내지는 상태를 획득하는 것을 두고 성숙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모든 과정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상태와 과정도 행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로서의 한 시기를 무사히 인고해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치는 순간, 즉 애벌레 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온전한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면 나비는 지금뿐만 아니라 인고의 절정이었던 번데기로서의 시기까지 '잘해온 것'으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 나비로 완성되어 형태의 궁극인 비상을 이뤄낸 바로 그 시점에서, 생명체로서의 모든 시기가 행복했던 것으로 입증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고난을 겪고 실패하고, 생명이 위협 받았던 것과 상관없이 그는 원했던 형태를 마침내 이뤄냈으므로 그의 모든 활동과 실존은 '행복'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며,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생식은 식물도 하는 일이며, 감각은 동물에게도 있지만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유를 인생의 본질로 삼았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행복은 사유이며,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행복이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미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살아야 하는데, 잘사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기능의 점진적 향상이 아니다. 잘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성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쇼펜하우어는 우정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우정만이 인간과 사물의 실상을 보여주며, 인간다운 정당한 삶과 방법을 말해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무엇과 친해져야 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소원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그것을 위해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인간에게는 더 크고 위대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우정은 두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정을 가진 자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자다. 한 영혼이 쓰러지더라도 곁에 있는 또 다른 영혼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어떤 경우에도 둘이 함께 쓰러지는 법은 없다. 삶이 인간에게 우정을 선물한 까닭이다."

"우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상한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내면에 자극이 되고, 분발하려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함께 진보하지 않는 우정은 나태와 방종이다.

내적인 진보는 강렬한 영혼의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깨우는 자명종이다.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우정은 자기 본위의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우리가 참다운 우정을 부러워하면서도 일상에서는 소모적인 만남을 반복하는 이유는 잠에서 깨어난 영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나의 영혼의 무지와 무감각과 게으름으로 얼룩진 나 자신을 보고 절망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나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자극이며, 자극만 받고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자극에 무뎌진다고 말한다. 이는 독서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자기 자신을 읽어버린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쇼펜하우어는 진리는 한 사람에 위해 만들어지고 창조되지 않으며, 길과 길이 이어져 전 인류가 도달하는 동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다. 기독교의 신조차 성경이라는 책의 구조를 빌어 말씀을 보관하실 정도다. 그런 책을 사람이 이길 수는 없다. 게으른 성직자들은 성경만 볼 뿐, 성경에서 받은 자극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육신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채 교리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말일 인간의 무지한 소원이 이루어져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고, 모두가 부유해지고, 늙지 않고, 사랑하게 되고, 병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후에는 권태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인생은 여백만 남게 된다.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기대해도 떠오르는 것은 거대한 백지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리운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축제가 기다려지지도 않는다. 희열도 없다. 만끽도 없다. 배부름도 없고, 포근함도 없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지겨울 뿐이다."

"나는 천국에서 권태를 깨달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느니 지금 사는 이곳에서 고난을 받고 싶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먹고 살 궁리에 연연하고 싶다. 인류에게는 고뇌로 가득한 세계, 대기의 압력이 죽을 때까지 가해지는 세계가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그런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밖에 무대는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는 방법은 나보다 더 비참한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평화로운 양떼가 동료의 잔혹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생애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삶에 연연하게 되는 정신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도 양떼와 같은 운명임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들소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사자의 의지와 사자의 송곳니에서 벗어나려는 들소의 의지 중 누구의 의지가 더욱 강렬할 것인가. 누군가를 삼키는 쾌감과 누군가에게 삼켜지는 불쾌감의 인식은 어느 쪽이 더 클 것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쇼펜하우어는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탐욕에 길들여지고, 이름을 얻은 자는 그 이름 앞에 굴복하는 이름들을 늘리려고 무고한 희생을 계획하게 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가진 자는 빼앗김을 두려워하고, 이름은 얻은 자는 기억하지 못함을 뚜려워하며 산다고 이야기한다.

"가진 자의 관심은 가진 것들을 향하고, 이름을 얻은 자의 관심은 그의 이름에만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의 영혼은 비워진 항아리와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속이 어두워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지만 직접 손을 뻗어 더듬어 보면 차가운 옹기그릇에 손가락이 아릴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계급과 부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지금 하는 일에 따라 존경과 멸시를 판단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그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해주고 있다면 그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지만 세상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방한 부자들을 존경하고, 우리의 생활을 존속시켜주는 농민와 노동자의 수고는 천시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진 자들이 머릿속에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전가하는 계획밖에 들어있지 않다. 국가는 노동자의 생활을 부유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데, 결과적으로 노동의 대가는 국가와 소수의 정치가와 기업가의 몫으로 떨어지고, 노동자에게는 힘든 과정만이 남겨진다."

쇼펜하우어는 자연은 우리를 낳은 부모인 동시에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최대의 위협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이 거대한 자연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우리의 죽음에 자연이 상심하는 법은 없다.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죽음마저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연이라는 우주의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을 무수한 위험과 고난 앞에 방치한 채 방관만 하고 있다. 그들이 죽더라도 다시 자기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죽음은 자연에게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회귀, 오랜 방황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귀소일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생의 허무를 모르는 인간은, 생활에서 고독을 경험하지 못한 인간은 모두 길들여진 타인이라고 말한다. 그 자신에게 그의 현재는 그의 본성과 대립하는 타인이다. 쇼펜하우어는 그가 '먹이'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먹이라는 환경에 안도하며 안주할수록 그는 스스로에게 영구적 타인으로 남는다고 이야기한다.

"국가는 자신을 위협하는, 길들여지지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빵을 던져주고 있다. 그 빵을 먹이고 나날이 성장하는 것은 내 안의 타인이다. 그는 나의 이름으로 가족 곁에 머물고, 나의 얼굴로 거리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의 목소리로 신앙을 고백하고, 나의 입술로 당나귀처럼 빵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어느새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쯤되면 사회는 하루에 던져주는 빵의 개수를 줄이면서 민중이 허기진 배를 느낄세라 채찍질을 가한다. 아픔으로 공복을 잊게 해주는 것이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민중이 된 타인은 고독보다 아픔을 선택하고, 사회는 형벌의 채찍 후에 몇 개의 마른 빵으로 민중을 달랜다. 6일간의 채찍질과 일요일, 단 하루의 빵이 우리가 고독을 두려워한 결과였다. 자유를 결핍보다 두려워한 대가였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은 삶에 용기와 결단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삶은 우리에게 철학을 통해 정신의 여우를 보상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고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자기 사항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사색하지 않는 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수정하는 능력과 용기는 주어지지 않는 법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첫째는 어떤 성과에도 낙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쁨과 열망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세계라는 대상을 향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못한다. 철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요구한다. 그것이 곧 용기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명한 이치에 대한 반항이다.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라면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의 정신은 그 어떤 목적에도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목표를 쫓아가서도 안 된다. 욕망이라는 의지와 여깨를 견줘서도 안 된다. 인생이란 우리의 내면에서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고유한 직관의 연속이다. 직관이라는 단어가 낯설다면 계시를 떠올려도 좋다. 삶의 순간들에게 찾아오는 계시를 우리는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에서 철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와 그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이 책은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가장 큰 결실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다."라는 칼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고통과 고난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진지한 의미를 이야기하는 쇼펜하우어의 글에 모두 밑줄을 긋고 싶을만큼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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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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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걱정, 회피에 관한 심리를 마주하고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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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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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안내서다. 40여 년간 수천 명을 치료한 불안장애 전문가인 저자는 뇌 과학과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불안과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 빠지는 원인과 여러 유형을 분석하고 만성적인 망설임과 예기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은 '1장 예기불안, 2장 만성적인 망설임, 3장 우리 뇌가 잘못된 경보에 반응하는 방식, 4장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 5장 불안에 사로잡힌 사고, 6장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 7장 치유를 향한 사고방식과 메타인지적 관점, 8장 내려놓음과 전념, 9장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10장 유연함과 자신감'이라는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예기불안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자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또는 시작한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어려운 결정, 행동, 또는 상황을 예상하고 있을 때 느끼는 불안이기도 한다. 또한 어떤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한 혼자 창의적으로 상상해낸 걱정을 사실인 양 믿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저자는 예기불안은 마치 위험을 예측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더 이상 나아가지 말라는, 아니면 적어도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한다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만성적인 망설임을 겪는 사람들은 결정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성향을 지속적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즉 선택을 못하는 것이 자신의 일반적인 태도와 방식으로 굳어진 경우이다. 저자는 만성적인 망설임은 성격 특성이 아니라 개성될 수 있는 행동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이야기한다.

"만성적인 망설임을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모든 영역에서 전반적으로 결정을 못한다.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생활의 어떤 측면에서는 선택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만성적인 망설임 때문에 결단력이 마비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적극적이고 결단력이 있지만 연애 문제에서는 소극적이며 선택을 잘 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자신감 있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지만, 미용실을 고르는 일이나 휴가 장소를 정하는 일은 어려워할 수 있다."

저자는 만성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행동하지 않았을 때 얻는 대가를 유독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행동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상상하는 일에 빠지거나, 무엇이 딱 알맞은 행동인지 알아내는 데 너무 몰도한 나머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손실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행동하지 않았을 때 역시 부정적인 대가가 뒤따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직 어떤 일을 할 기회가 남아 있는 시기를 놓치는 것,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는 것, 또래, 친구, 가족 들에 뒤쳐지는 것,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 자기 비난과 부끄러움을 낳는 것 등이 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느끼는 예기불안은 종종 '만약 ~하면?'이라는 형태로 시작된다.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뭔가 다르게 행동했기를 바라는 '~했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생각이나 감정을 피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즉 행동하면 어떻게든 후회할 것 같다고 느낀다.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행동하지 않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동안 행동하지 않는 것 자체에 대한 평가는 미루로 따지지 않는다."

저자는 감정이 솟구치는 뇌의 부위를 '편도체'라고 하는데, 편도체는 변연계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변연계는 뇌의 영역 중에서 느끼고 반응하는 부위에 해당한다. 저자는 편도체는 오로지 예, 아니오만 판단할 수 있으며, 편도체의 기능에는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섬세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가능성과 확률의 세계를 이분법적 경보시스템의 언어로 옮겼을 때 일어나는 결과다. 경보시스템은 커지든지 꺼지든지 둘 중 하나다.

"편도체는 뇌의 경보센터다. 이 경보센터는 위험에 처했을 때 경고를 보내 몸과 마음이 위협에 반응할 수 있게 준비시키려는 진화적 목적이 있다. 아마도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투쟁-도피-경직 반응이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예기불안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0으로 낮출 수 있다 할지라도, 결정할 때 겪는 어려움과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종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불안을 유발하는 활동이나 선택에서 손을 떼는 일을 합리화하곤 하지만 이런 합리화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불안 각성 자체는 사실 심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니며 위험하지도 않고 피할 필요도 없다. 또한 예기불안을 피하는 것 역시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 방법이 아니다. 저자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어떻게 매번 상상력에 사로잡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안 각정이 일어날 때 이에 대해 취해야 할 새로운 태도를 배우고, 자신의 불안한 감정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시켜 나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스트레스 피하기는 예기불안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회피가 될 뿐이다. 그리고 회피는 유연한 삶을 살아가고 도전에 직면해 자신감을 키울 기회를 제한한다. 다시 말해 모든 형태의 불안은 스트레스에 민감한 영향을 받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은 아니다."

저자는 회피의 유형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우부터 미묘하고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회피 방식이 어떤 유형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회복을 향해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그것이 행동적 회피(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일들)인지 아니면 경험적 회피(불안이 발생할 때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들)든지 관계없이 말이다.

저자는 회피는 거의 즉각적으로 불안한 감정을 완화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강력한 회피 욕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회피를 통해 얻는 불안의 완화를 일시적이다. 불안의 감소가 그에 앞서는 회피 충동과 예기불안을 부적 강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회피는 예기불안의 영향력이 커지게 만드는 동시에 스스로가 가진 통제력은 줄어들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두려움 경험을 통과하는 일을 회피하면, 당신은 자신이 충분히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고, 버스에 탈 수 있었고, 두려워했던 일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기회를 잃는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 믿는 것보다 자신이 더 강하고, 현명하고, 능력 있고, 유연하며, 실수를 해도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어떤 자기에 갔을 때 즉석에서 상황에 적응할 수 있고,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며, 후회, 난처함, 거절을 당하더라도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절대로 자신감을 쌓을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가정을 부정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한 채, 당신은 예전 기억과 상상에만 의존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뇌가 항상 지나던 오래된 경로만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벗어나 성장하고자 한다면 회피를 회피해야 한다."

저자는 예기불안은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 오히려 진정된다고 말한다. 만약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거나 해결하고자 애를 쓰면, 즉 계속 반추하거나 회피하면 예기불안은 더욱 심해진다. 저자는 빨리 진정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압박을 느끼는 가운데 예기불안을 가라앉히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마치 "빨리 잠들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만큼이나 역설적이고 불합리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예기불안 문제가 만성적인 망설임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경우가 많고, 망설임 역시 종종 예기불안을 악화시키고 부채질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만성적인 망설임은 완벽주의, 확실성에 대한 갈망,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심화된다고 이야기한다.

"완벽주의는 회색지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두 가지 비교 대상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조금 더 괜찮거나 조금 더 나쁜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하나는 완벽하게 옳고 하나는 완전히 틀리다. 따라서 스스로의 선택과 성취도 똑같이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선택과 성취를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거나 형편없다고 본다. 이런 태도가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면 내부적, 외부적으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면 자신의 성취에서 조금도 즐거움이나 만족을 얻지 못한다."

저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이 자신을 짓누를 때, 넋을 놓거나 탈진한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고 말한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동기와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어떤 내면의 감흥이 일어나 다시 한 번 움직일 수 있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문제는 동기와 자신감이 발달하는 순서가 그와는 반대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행동이 자신감, 동기보다 앞에 온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의 뇌는 더 자주 하는 행동에 더 큰 편안함과 자신감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동기를 갖두록 설계되어 있다.

저자는 '매타인지적' 관점의 핵심은 자신의 인지에 대한 의식이며, '자신의 의식에 대해 의식하는'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메타인지적 관점을 가지면 본질적으로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회피하고 싶은 충동, 결정의 어려움이 다양한 표면적 문제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 자기 마음이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그리고 생각, 기억, 감각, 감정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 등을 망라한다. 그것은 관점을 넓히고,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관찰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라고 할 때, 생각하는 '나'를 생각 자체와 나누어 확인할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치유를 향한 사고방식이 불안을 쳐부수는 기법이 아니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안을 제거하려는 어떤 시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무심코 불안한 감정과 맞서 싸우면, 이런 투쟁에 동반되는 조바심과 절박감이 생길 뿐 아니라 노력의 역설이라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불안이 없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변에 앉아 파도를 바라볼 때 그 가운데 어떤 파도가 특별하고, 더 빠르고, 더 커지기를 희망하거나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를 의도하지 않는 것이다. 사고 방식의 전환은 모든 일이 그대로 존재하는 가운데, 그저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다."

저자는 예기불안 문제에 있어서는 반복해서 자기 위안을 시도하고, 의심과 망설임을 해결하려 하고, 걱정을 떨쳐 버리려 할수록 내면의 갈등은 더욱 심각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걱정하는 목소리와 거짓 위안 사이의 대화는 오래 머무를수록 불안이 더 심해지고 지속되게 만들기 때문에 둘 사이의 대화에서 벗어나는 길을 지혜로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혜로운 마음은 그 자체로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을 제거하지 않으며, 불안이나 의심을 완화하지도 않는다. 지혜로운 마음은 치유를 향한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고 애쓰기를 멈추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중요한 것은 걱정하는 생각의 내용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생각이 어떤 식으로 떠오르고 느껴지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데, 걱정하는 생각은 보통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끔찍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걱정하는 목소리와 거짓 위안 사이의 내적 대화는 파국적 상상의 내용 안으로 계속 얽혀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한다. 생각의 내요잉 아닌, 바로 이런 얽혀 들어감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지혜로운 마음이 일으키는 메타인지적인 전환은 바로 그런 생각의 내용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는 회복을 위한 관점의 전화에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정서적 삶을 관찰하는 접근과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회복을 위한 사고방식의 전환에는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자세, 불안을 일으키는 도전적인 경험을 멀리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를 일컫는 기꺼이 임하는 마음, 그리고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스로가 상상 속의 미래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만약'이 아닌 '지금' 자신의 상태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과 걱정하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분리시키고 바로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생각의 무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은 지혜로운 마음 가까이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마음은 불안과의 줄다리기를 거부하고, 상상력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것을 삼가고, 파국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또한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의 태도는 건강한 상식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면 파국적 사고와 상상 속의 위험에 휘말리지 않으며, 의심이 들 때 이를 사실이나 예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전념하기가 더 쉬워진다.

저자는 예기불안에서 회복되면 매사에 좀 더 유연하고, 완벽주의를 덜 추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확실성과 의구심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결정도 더 단순해진다. 또한 저자는 후회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가능성 때문에 마비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끝없는 조사, 자신을 안심시켜줄 만한 것들을 찾는 일, 주저함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최선을 다해 짐작한 미래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회복은 불안을 일으키는 상상의 내용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불안한 생각, 감각, 감정이 나타나도 동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에 느꼈던 불편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억 때문에 스스로 멈추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회복은 절대로 불안을 일으키는 상상을 하지 않거나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걱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거짓 경고나 다른 불안 증상이 나타날 때 낙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회복 과정의 한 부분으로 여겨야 한다. 또한 저자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왜' 그런지 묻는 질문에 빠져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동반사적인 각성과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불안한 상상을 그냥 자신이 경험하는 일들의 배경에 존재하도록 허락해도 괜찮다. 그런 상상의 내용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애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스스로가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아직 회복중에 있으며, 자신의 뇌 회로가 재배선 되고 있는 중이라는 증거로 받아들ㄹ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에서 불안이 느껴지는 경험을 직면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무사히 통과해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일만큼 자신감을 키우고 앞으로 나아갈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없다는 글이 인상적이다. 따라서 예기불안을 이해하는 일과 더불어 행동이 뒤따라야만 동기, 자신감,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가 거절당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보장도 없지만 자신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독수리처럼,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 상황을 다룰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스스로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자신감을 키우는 일은 없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드라도 행동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매번 회피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해낼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만들어나간다. 그런 태도를 바탕으로 현재의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고, 불안을 느끼는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으며, 불안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 그런 문제가 나타난다 해도 우리가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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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2 - 죽음에 대한 인문학이야기 : 문학 속 인물편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통합의료인문학문고 5
최성민 외 지음,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기획 / 모시는사람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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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등장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깊이 성찰할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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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2 - 죽음에 대한 인문학이야기 : 문학 속 인물편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통합의료인문학문고 5
최성민 외 지음,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기획 / 모시는사람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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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지만 유일하게 나의 죽음만은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어떤 죽음'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다양한 죽음의 양상을 살펴보아 죽음을 직시하고 성찰함으로써 더 존엄한 삶에 대해, 생명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책이다.

<어떤 죽음 2>는 '문학 속 인물'의 죽음을 다룬다.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신화, 설화, 소설, 시 속에서 발견되는 죽음은 죽음에 대한 현미경적인 접근에서부터 거시적인 안목까지를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나의 죽음을 다면적으로 인식하며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마주하며 예감하며 시를 쓰는 김혜순, 허수경 시인의 시, 소설 최인훈의 <광장>, 박상연의 <DMZ>가 그리는 분단의 비극적 골짜기에서의 죽음의 의미,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카프카의 <변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의 자본주의 시대의 비극적 죽음 외에 <제망매가> 등이 그리는 '요절', SF문학이 그리는 미래세계에서의 죽음의 의미, 고대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서의 죽음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김학중은 2019년에 <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의 시들을 통해 '여성의 몸과 죽음의 근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학중은 죽음이 우리 존재의 사건적 상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 데이터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김혜순 시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진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김혜순의 시는 '죽음'이 우리를 진정한 대지로 인도하는 애도의 길임을 깨닫게 한다.

"김혜순은 이러한 지금 여기에 '죽음'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죽음은 우리가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은 우리가 함부로 대해 온 이 세계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공감이며 포옹이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지점들을 어둠 속에서 포옹하게 한다. 그것이 김혜순의 시인 것이다."

김학중은 허수경은 시에서 '죽음'의 공간을 가시화하면서 그 공간에서 단 한번도 서로 동일한 시간을 살지 못한 여러 다른 나 자신의 해후와 대화를 표현하고 그 모든 것들을 긍정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기 애도의 행위를 수행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죽음'은 삶을 마지막에 이르러 긍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작별인사임이 드러난다. 허수경이 노래한 '죽음'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생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에 올 새로운 존재들이 삶을 환대하도록 이끄는 거대한 제의라는 김학중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우찬제는 카프카의 <변신>을 이야기하며 '자본세 시대의 죽음의 상상력과 불안'에 대한 글을 전한다. 우찬제는 아버지가 진 빚더미로 인해 고통받다가 벌레로 변신하여 비극적으로 죽어 간 '그레고르'의 이야기를 담은 <변신>에서 빚진 자의 운명적 소외와 환멸적 우수의 풍경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결국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돈을 벌 수 있을 때 그는 가게에서는 믿음직한 세일즈맨이었고, 가정에서는 사랑받는 아들이요 오빠였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고 벌레가 된 그는 철저한 소외자이며, 해충에 불과할 따름이다.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일 수도 없었으며, 특히 아버지의 가학적 공격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변신 전후에 보이는 이 같은 가족 구성원 간의 부조리한 행위,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횡포, 소외 등의 밑바탕에 돈의 문제가 깔려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아들과 오빠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실존적 상황,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단지 돈볼이 수단으로만 세일즈맨을 치부한 비인간적인 고용주의 태도, 욕망하는 기계인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톱니바귀...... 이 정도라면 사랑의 상황이라기보다는 벌레의 상황이라고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 최성민은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른 죽음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 중에서 이제 겨우 어린이집을 다닐만큼 어린 아이 영우를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를 남편의 목소리로 전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 <입동>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다. 최성민은 김애란의 소설 <입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 주변의 의례적인 위로조차 얼마나 힘겨운 것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를 절실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한 생명체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죽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성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최성민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끔찍할 정도로 아픈 슬픔의 마음을 우리는 종종 '단장'의 슬픔이라 표현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슬픔이라는 의미이다. 슬픔 중에 가장 고통스럽게 아픈 것이라는, 가족의 죽음, 그중에서도 자식의 이른 죽음이 안겨주는 슬픔의 크기는 단장의 슬픔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아마도 동서고금의 작가들이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 안에서 자식의 죽음을 다시 표현해 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슬픔을 승화시켜 낸 결과일 것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읽으며 또 한번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슬픔을 정화하고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요절이라는 죽음은 특히나 비통하고 슬플 수밖에 없다. 그 상실감은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고,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애도는 슬픔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고, 죽음을 다시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다시, 우리의 삶을 위해서, 위로하는 일이다. 사람은 모두가 죽을 것이므로, 우리는 이에 공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 책에서 이상덕은 그리스와 트로이아는 서로 다른 문화였을 테지만, 호메로스가 아마도 하나의 문화로 혼동하여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원전 8세기 당시 사람들이 영웅들의 장례에 시신을 화장했고, 뼈를 골라내어 황금 항아리에 담아 화장한 자리에 놓고 봉분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고 믿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덕은 영웅들의 죽음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한 완고함 때문에 영예롭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신들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놓인 것이면서도 이를 담대하게 받아들임에도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의 슬픔은 여전하다고 말하는 이상덕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어떤 죽음 2>는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외면하기보다는 죽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문학 작품이 전하는 의미를 통해 생각해볼 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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