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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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는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습전략의 정보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서울대의 모습을 통해 결국 우리 대학들이,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이 과연 진정한 인재를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

이 책은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최우등생들을 비교 분석하여 흥미롭다. 이는 저자가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공부법을 분석하면서 저자 자신이 포착한 문제들이 서울대만의 특징인지, 아내면 세계 명문대들의 공통적인 특징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였다.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달거나 하지 않고 최대한 그대로 흡수하려고 하는 반면, 미시간대 학생들은 교수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교수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서울대에서의 공부는 교수 중심인 반면, 미시간대에서의 공부는 상대적으로 학생 중심인 것이다.

"서울대에서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고 명료하게 업무를 분담해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계쩍으로 체크하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디렉터형 리더'를 좋은 리더로 생각한다. 리더가 팀을 장악하여 강력한 디렉터십으로 이끌고 가는 경우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잇기 때문에 효율적인 리더십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미시간대에서는 마치 인기 MC 유재석과 같이 팀원이 고루고루 발언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배분하고 팀의 의견을 모두 함께 이끌어 나가는 중개자 역할의 '코디네이터형 리더'를 좋은 리더로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팀프로젝트에서의 '공정'에 대한 기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대 학생들은 팀원들 각각의 능력에 맞게 업무가 분담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미시간대 학생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모든 팀원이 골고루 참여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부족한 팀원에게까지 기회를 주느라 최종 결과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불공정한 것이고, 미시간대 학생들에게는 뛰어난 팀원만 계속 더 많이 하고 부족한 팀원은 역할을 박탁당해 학습 기회의 빈익빈부익부가 생기는 것이 불공정한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뜨거움이 배제된 청춘'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생에서 최고로 뜨겁고 열정적인 나이임에도, 이들은 대단히 절제되어 있고 완벽하게 자기조절을 하며 체력도 시간도 감정도 철저하게 관리하는, 대단히 차분하고 이상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서울대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이들에게는 설레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자신의 열정을 쏟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는 나에게 설레게 할 만한 대답을 하는 최우등생은 한 명도 없었다."​

저자는 비판적 창의적 학습은 수용적 학습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대학 수업은 수용적인 학습자가 우수한 성적을 받도록 허용하고, 비판적 창의적 학습자는 좋은 성적을 받도록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잘 길러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능력이 현실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잇기 때문이다. 비판적 피드백은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거나 불편한 트집처럼 여겨지고, 창의적 생각은 엉뚱한 것 혹은 괜히 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미국 미주리대의 데이비드 조나센 교수의 말은 특히 인상적이다.

"창의력은 어느 분야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특정 영역에서의 특정 창의력이 있을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는 매우 창의적이었지만 아마도 연극을 했다면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글쓰기에서의 창의력은 기계공학에서의 창의력과 전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역에 따라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이나 수업도 완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창의력 향상은 그 자체로 말이 안 되는 거죠.

내용이든 이론이든 창의력이든 실제 문제나 실제 맥락이 없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어떤 창의력이든 특정 맥락 속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론을 적용하고 응용한 상태가 아닌 그냥 이론으로만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가르칠 필요가 없죠. 어떤 이론이 실제에 적용되는 상황이 되면 수많은 문제와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문제와 갈등은 한 전공 분야만으로는 대부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그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맥락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히틀러가 나치를 만들 당시 밤마다 자기 전에 읽었던 책이 무엇인지 생각해 봣나요? 그 책이 히틀러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거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요? 창의력도 반드시 맥락 속에서 길러져야 합니다."​

저자는 대학 교육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무엇을 기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는 서울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이 제기된 문제는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를 생각해보았을때, 학생, 교수, 대학, 정부, 사회 모두가 이 문제와 연관된 주체이다. 저자는 우리 대학 교육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직접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수들의 책임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교수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는 대학이라고 말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책임은 학생이나 교수가 아닌, 대학의 리더십과 시스템에 있다.

"교수들에게 있어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일은 연구 실적을 쌓는 것이지, 자신의 강의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함에도 현실적으로 보다 많은 보상이 있는 연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수업을 최신 내용으로 업데이트하거나, 학생들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재를 새롭게 설계하거나, 학생들의 과제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주는 등 교육과 관련된 일들은 연구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요하지만, 현재의 교수평가 방식에서는 이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교수들이 수업을 조교들에게 맡기고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구조다. 교수들에게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란 '잘하면 좋겠지만 그냥 지금까지처럼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굳이 내가 개혁하지 않아도 아무도 별 문제 삼지 않는, 그리고 심지어 그게 문제라고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대학 교육의 문제는 곧 교육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결국 현재 서울대 최우등생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방식의 공부를 대학에서도 지속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가가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너무도 세세하게 정해 놓고 교사에게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고 있는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우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몇 년의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양성해야 할 역량에 대해 거시적으로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그 외의 모든 교육 내용과 방법은 교사에게 일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편일률적으로 국가가 만들어내는 똑같은 교육이 아니라 교사가 자유롭게 수업과 평가 기준을 설계하는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교육권을 국가에서 교사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저자는 '우리는 왜 대학교육을 받으며 대학에서 양성해 배출하는 졸업생들이 어떤 능력을 가진 인재가 되기를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 대학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의 대학 교육은 현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당면한 과제들이 단 하나의 증면 가능한 답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읽어 낼 수 있는 창조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미 생산된 지식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교수의 답을 하나의 정답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분위기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도, 발휘할 수도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문제해결력에서 문제발견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 교육은 학생들에게 궁금한 문제를 발견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먼저 스스로 궁금해하기 전에 학교에서 먼저 '이런 것을 궁금해해야 한다'고 알려 준다. 궁금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실패해 보는 과정을 거칠 기회도 주지 않는다. 바로 답을 알려 줘 버린다. 비판적으로 토를 달거나 창의적으로 변경해 볼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수용적으로 숙지해야 할 대상으로서 전달한다. 생각하는 방법,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를 숙지하는 것이 오늘날의 대학을 포함한 우리의 학교 교육이다."​

저자는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떠돌아 다녔던 유태인들의 교육법을 이야기하여 인상적이다. ​유태인들은 빈손으로 쫓겨나도 가지고 갈 수 있는 '머릿속의 지식'을 자산으로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곳에서 유용했던 지식이 다른 곳에서는 쓸모없어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되면서, 어느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생각해 내는 방법'이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생각해 내는 방법, 즉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혼자서 스승의 지식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대신, 스승의 관점에 계속 도전하는 질문을 하도록 교육받고 훈련되어 왔다. 저자는 자신이 2000년대 초반 고려대에서 강의를 할 때 '교수가 대답하지 못하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할 경우 A+를 주겠다'고 수업 방식을 학생들에게 제안하였다고 말한다. 이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질문을 발굴하기 위함이었다. 저자 자신은 수업 시간에 이전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 어느 학기보다 많이 배웠고 이는 최고의 강의평가 결과로 나타났다.

"말을 하게 하는 교육, 책의 내용과 교수의 생각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나의 생각을 하게 하는 교육. 그렇게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의 행동은 교수가 유도한다. 학생들이 말을 안 하는 것은 교수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발굴할 줄 알아야 한다. 교수는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데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학생의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저자는 학생들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수업의 방식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듣는 교육에서 말하는 교육으로, 질문이 없는 교육에서 질문을 발굴하는 교육으로, 우리의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이 바뀔 수 있도록 제도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도와 정책의 변화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교육 패러다임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통해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교육 패러다임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깨닫는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기 힘들다. 입시 위주의 교육, 취업을 목표로 하는 대학교육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질문하며 성장해가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교사, 사회 전체가 모두 새로운 교육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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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1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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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11월호 행복일기에는 '버스에서 펼쳐지는 삶의 영화'라는 이혜림님의 '생각버스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흥미롭다. 생각버스 프로젝트는 '버스에서 생각하고, 버스에 대해 생각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글을 읽고 '생각버스' 블로그에도 방문해보았다. '노을에 붉게 물든 채 내는 승객들의 말소리, 밖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가 버스 안에 들어와 아름답게 반짝였다. 어느새 버스는 낭만적인 작은 영화관으로 변해 있었다.'라는 말하는 이혜림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노선을 정해 그 버스와 어울리는 문화 키워드는 잡지 <생각버스>로 묶기로 했다. 서울 아현동 가구거리와 웨딩타운, 홍대 미술학원거리처럼 특화거리를 많이 지나는 탓에 정류장마다 간판이 휙휙 바뀌는 7011번은 '간판', 원형 노선인 110A,B번은 '시계', 그중 시계방향 노선은 '미래로 나가는 시간', 반시계방향 노선은 '과거를 들춰보는 시간'이란 이름을 달아 소개했다."

 

샘터 11월호의 기생충에게 배우다'라는 서민 교수님의 칼럼 제목은 '버린 개는 개회충으로 돌아온다'이다. 서민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부쩍 개회충 환자가 늘어난 이유는 아파트 붐이 일었고,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개를 버리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개회충은 집에서 기르는 개에 의해 전파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가 개회충에 걸리려면 개회충의 알을 먹어야 하는데, 사료 등을 먹으며 자라는 개가 개회충에 걸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오히려 밖으로 쫓겨난 개가 먹을 것이 없어서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개회충의 알을 삼키며, 그 몸에서 자란 개회충은 개의 대변을 통해 여기저기에 알을 뿌린다. 그 알이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소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키는 아저씨들에게 전파대 '개회충증'이 일어난다." 나는 현재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이 글에 많이 공감했다. 서민 교수의 이번 칼럼은 개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 아닐까...

 

"개를 버리는 일은 그 개를 밑바닥의 삶으로 내모는 잔인한 짓이기도 하지만 개회충을 확산시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개를 버리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를 입양할 때 자신이 이 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버린 개는 개회충으로 돌아온다."

 

샘터 11월호 '사물의 시간'에 소개된 주제는 '영원한 청년 작가'의 혼이 깃든 책상으로 소설가 최인호 1주기전에 관한 소식이다.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던 칼럼이다. 최인호가 우리 곁은 떠난 지 1년,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마음을 모아 1주기전을 열였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컴퓨터가 널리 보급된 요즘에도 몽블랑 만년필을 들어 원고지에 직접 글쓰기를 고집했던 최인호 작가. 이번 전시에는 생전에 작가와 특별한 교분을 나눴던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과 작가의 유족, 여백출판사가 소장한 유품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한다. 소설 창작뿐 아니라 그림에도 능했던 최인호 작가의 '화가 최인호'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기대되는 전시이다.

 

"앉은뱅이책상이 있다. 2008년 발병한 침샘암으로 투명하던 소설가 최인호가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우던 그 자리다. 작가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손톱이 빠진 손가락에 고무 골무를 끼우고 매일 원고지 20~30매의 글을 토해냈다. 원고지 1,200매에 달하는 마지막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이 책상 위에서 태어났다. 아끼던 몽블랑 만년필의 펜촉이 휘어질 때가지 써내려간 원고들은 스스로에게 울리는 기도였다."

 

조선대학교 교수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덕희의 산책'에는 고흐의 다락방이 소개된다. 고흐는 어릴 때 집에서 나와 37년 동안 38곳에 몸을 의탁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집을 가져보지 못한 자에게 허락된 곳은 카페와 식당, 여인숙뿐이였다. 카페 3층에 있던 다락방의 모습에서 고흐의 삶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라부 카페는 오베르의 노동자와 농민이 드나들언 소박한 곳이었다. 고흐는 이 카페에 딸린 다락방과 식사를 하루 3.5프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페는 사람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치게 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썼다. 실제로 고흐는 그곳에서 미쳐가는 정신과 싸우며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고, 싸구려 포도주와 담배에 의지해 피로와 고독을 견뎠다."

 

"하늘을 향해 난 쪽창을 통해 고흐는 멀리 교회의 첨탑과 공동묘지의 담장을 보았으리라. 그는 들판에서 밀을 거두어들이는 농부들 속에서 인류의 죽음을 읽어냈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그에게 죽음은 밀이 뿌리내렸던 대지로, 또는 별이 빛나는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린 뒤 발작을 일으킨 고흐는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동행자로 밀밭 위에 까마귀를 그려 넣은 것일가.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고흐는 다음 날 도착한 테오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흐는 이 막다른 방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샘터 11월에 소개된 기독교 신학자이며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의 종신교수인 현경님의 '이별 후 집을 샀다.. 이젠 우주가 내 집'이라는 칼럼이 인상적이다. 현경님이 말하는 '대리모를 통해 자신을 낳아준 생모와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라는 두 명의 어머니가 있음'을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이 감동적이다. 현경님은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살다가 서른한 살에 융 분석가에게 꿈을 분석 받는 과정에서 생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경님은 집이나 땅을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 현경님은 세 채의 집이 생기면서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Home, Sweet Home(즐거운 집)'은 누군가 내게 주는 게 아니라는 것, 내 안에 'Home'이 있으면 세상 어딜 가든 그곳이 나의 집이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 모두 나의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경님은 이제 거북이처럼 마음의 집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이생에서 풀어야 할 마음의 숙제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타고난 카르마(업)에 따라 숙제는 다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그 문제를 이생에서 풀어야 하지요. 그렇지 못하면 살면서 그 문제에 빠져 똑같은 고통을 반복하거나 숙제를 다음 생까지 가져가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무의식도 DNA도 대물림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모두 '다른 여자'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더콤플렉스든, 전 부인이든, 아니면 나 몰래 만나는 다른 여성이든... 저는 항상 그런 숙제를 가진 남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렸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힘이 없어 못 풀던 문제를 성인이 되어 풀어 보고 싶은 무의식의 열망이었겠지요."

 

"저는 이제 꿈이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떠날 때, 돌아갈 집을 그토록 그리워 하느라 생긴 집 세 채만은 이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지요. 여성 예술가, 운동가, 학자, 수행자들이 1년씩 무상으로 머무르며 자기 치유와 정진,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마고 여신의 집'으로요. 그들이 여신의 집에 살며 여신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이 우주 어딘가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저는 죽은 후에도 많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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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월급쟁이 나는 경매부자 - 쫄지 말고 경매하라
온짱 박재석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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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월급쟁이 나는 경매부자>는 월급쟁이에서 82억 경매부자가 된 온짱의 경매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하루 2시간씩 쪽잡을 자면서 룸살롱 낙찰, 복잡한 지분 경매, 유치권 경매 등 다양한 경매 성공사례를 통해 현재 매달 3,000만 원의 월세 수익을 올리면서 종합 부동산세 400만 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납부하고 있다. 저자인 박재석(온짱)은  다음 카페 <온짱이 하하는 경매 이야기>를 통해 왕성한 강연을 펼치면서 경매 물건 건정부터 명도, 소송, 최종 세입자와의 임대차계약까지 경매의 전 과정을 전국의 회원들과 함께 하며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3년간 경매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직접 부딪쳐가며 얻은 소중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경매 이야기를 전한다.

"2011년 2월, 평생직장인 줄만 알았던 대기업의 팀장 자리가 M&A의 여파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앞이 캄캄했다. 온짱을 믿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신 어머니,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 한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어깨를 아주 묵직하게 눌렀다. TV에서 보던 명예퇴직자들의 모습이 온짱의 얼굴과 겹쳤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흔 가까이 된 평범한 일반 사무직 출신이 재취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박했다. 한 달간 고심 끝에 온짱은 경매를 새로운 인생 승부처로 정했다. 온짱은 자신의 열정과 의지를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경매에 '덤볐다.'"

 

"온짱이 직접 경매를 해보니, 경매에는 특별한 조건도, 적성도 필요 없었다. 직장이 있든, 나이 많은 정년퇴직자든, 살림만 하던 주부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경매였다. 경험이나 학식, 자본, 나이 따위는 경매에 아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흔히 경매라고 하면 연상되는 온갖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 이론과 절차고 사실 경매 현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온짱이 확신하는 성공하는 경매인의 조건은 단 두가지다. '뜨거운 열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다. 이것만 있다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 책은 1부 월급쟁이에서 온짱으로, 2부​ 경매 따라하면 쉽다, 3부 1,2천만원으로도 워세 받는 임대인이 될 수 있다, 4부 월급쟁이를 탈출하려면 정신 상태부터 바꿔라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경매 성공사례들을 통해서 경매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경매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경매 실전 경험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유용할 것이다. 저자는 경매의 어려운 용어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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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 40가지에 답하다
김용전 지음 / 샘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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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커리어 컨설턴트로서, 현재 KBS1라디오 [성공예감 김원장입니다]에서 ‘직장인 성공학’ 코너를 맡아 6년째 방송 중인 김용전님이 쓴 책이다. 이 책은 개별적인 직장 문제의 현명한 해결책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문제해결에 대한 근본 원리를 다루고자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길에 대한 필자 나름의 철학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KBS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에서 '직장인 성공학'을 맡은 지 어언 6년이 흐르다 보니 그 사이에 쌓인 청취자들의 질문이 400여 건이 되며 그중에서 방송 소재로 다루어진 것만도 250여 건이 되는데,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비슷한 질문들이 반복되어 들어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갈 즈음에 다시 깨달아진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직장 문제가 곧 우리네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는 근본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1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2부 멀리 가야 하는가, 높이 올라가야 하는가?, 3부 불려야 하는가, 줄여야 하는가?, 4부 섞일 것인가, 구별될 것인가?, 5부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밖으로 나가야 하나?, 6부 유연해야 하는가, 강직해야 하는가?, 7부 이끌 것인가, 따를 것인가?, 8부 참아야 하는가, 맞서야 하는가?의 8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직장인의 다양한 고민들을 사례와 함께 소개하며 조언과 함께 철학적인 본질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경주와 같다는 뜻에서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우리가 마라톤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달리기를 시작한 뒤 어느 시점에 이르면 호흡이 아주 곤란해지는 세컨드 윈드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숨이 끊어질듯이 옆구리가 당기고 가슴이 아픈 것이 세컨드 윈드의 증상인데 희한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 편안한 호흡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즉, 세컨드 윈드를 넘기고 나면 이후는 호흡이 안정되면서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숨이 멎을 듯한 세컨드 윈드가 찾아오면 노련한 마라토너는 호흡이 안정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인내와 결실'을 이야기하며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 점에 공감한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하나의 사실이 있다.

즉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꼼짝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은 능히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곤란은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있다.

그들은 그 곤란한 장벽 앞에서 굴하지 않고 힘차게 뚫고 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공에 다다랐다."

 

저자는 직업의 단어를 이야기하며 업으로 숭부하라고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어떤 기여를 하며 그래서 거기에 어떤 보람이 있고 마침내는 내가 어떤 성취를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매진하면 돈도 잘 벌리고 승진도 술술 되고 선배를 추월해서 팀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막 어떤 일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라면, 먼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러고 나서 '돈 벌기 위해서'라는 항목을 빼고 다섯 가지 정도만 확실하게 정리해보라.

 

"직업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직의 측면인데 이는 그야말로 '생계유지를 위해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업의 측면인데 '보람을 느끼고 자아 성취를 위해서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직장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은 '직'만 보고 일하면 오히려 먹고살기가 어려워지고, 승진도 잘 안 되고, 후배가 팀장으로 먼저 온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소망인지 열망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환경을 탓하고 생계를 걱정하고 주위의 만류에 머뭇거리면서 용기가 없는게 아닌가 하고 가슴만 치지 말고, 정말 그 길이 내가 열망하는 길인지 아니면 그저 소망하는 길인지를 먼너 점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생각만 하면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삶을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 해도 누구든지 과감하게 그 길로 나서지 않겠는가?"

 

저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비결은 겸손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해서 먼저 그 일을 하고 나머지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 그들고 그 현명함과 겸손을 보고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도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지자 본질이 보이게 되었고, 그 결과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철학적인 본질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직장인이 겪는 까다로운 문제 40가지를 출근길의 깨달음과 퇴근길의 성찰을 통해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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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장서의 괴로움>은 오자자키 다케시의 2007년 고분샤 신서에서 출간한 <독서의 기술>에 이은 책 이야기 제2탄이다. 이 책은 1장 책이 집을 파괴한다, 2장 장서는 건전하고 현명하게, 3장 장서 매입의 이면, 4장 책장이 서재를 타락시킨다, 5장 책장 없는 장서 풍경, 6장 다니자와 에이치의 서재 편력, 7장 장서가 불타버린 사람들, 8장 책이 사는 집을 짓다, 9장 트렁크 룸은 도움이 될까?, 10장 적당한 장서량은 5백 권, 11장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12장 '자취'는 장서 문제를 해결할까?, 13장 도서관이 있으면 장서는 필요 없다?, 14장 장서를 처분하는 최후 수단이라는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책이 집을 파괴하는 장서의 괴로움을 이야기한다. 나의 방도 책의 범람으로 가득차 있으니,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듯하다.​

"책이 아무리 많더라도 책장에 꽂아주는 한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듬직한 '지적 조력자'다. 하지만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바닥이며 계단에 쌓이는 순간 융통성 없는 '방해꾼'이 된다. 그러다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범람은 결국 '재해'로 치닫는다. 아직은 책의 범람이 지하에 머물로 다행이지만, 이윽고 1층을 잠식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계단을 따라 2층까지 밀로 올라오면 정말이지 '대참사'가 따로 없다."​

저자는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고 말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저자는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으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장서를 엄선하고 응축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역시 책은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오사다 히로시의 대담집 <대화의 시간>에서 해부학자이자 사상가 요로 다케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읽으면 장서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창정궤(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오는 말) 위에 책이 한 권 놓여 있고, 그걸 손에 들고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독서입니다. 읽고 난 책은 없어도 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재미있는 일이지요. 장서와 독서의 관계에는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시다와 함께 잡지 <비평>을 만든 동료이자 영문학자인 니시무라 고지는 <쉬는 시간에 읽는 영문학>에서 요시다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요시다의 장서는 필요한 5백 권, 피와 살이 되는 5백 권만 가지고 있었다. 시노다는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열어볼 수 있는 책이 책장에 5백, 6백 권 있으면 충분하고, 그 내역이 조금씩 바뀌어야 이른바 진정한 독서가'라고 썼다. 올바른 독서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노다 하지메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책 5백 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족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저자는 책장 없는 장서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소개한다. 영화 속에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한달 후, 일 년 후>가 몇 번이나 화면에 잡히는데,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이 조제다. 그녀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책을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에게 책장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제라 불리는 소녀가 그 많은 장서를 어떻게 보관했는지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조제의 방엔 책장이 없다. 모든 책이 다다미 위나 옷장 속에 쌓여 있다. 살풍경한 방 안 여기저기에 책더미만 쌓여 있어 책의 성에 갇힌 공주와 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조제에게 책장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책장을 살 금전적 여유가 없다. 또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조제는 책장 위쪽 단에 손이 닿지 않는다. 제 앉은키 높이쯤까지 책을 쌓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구분해서 쌓아올리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책을 좋아하는 이 고독한 소녀에게 책장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저자는 전자서적에 대한 곱지 않은 이선을 이야기한다. 책갑에서 책을 꺼내 읽기 전에 먼저 만지고, 책장을 펼치는 동작에 독서의 자세가 있다는 저자에 말에 공감한다. 저자는 전자서적은 전자 콘텐츠이지,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자서적은 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라고 말하는 종이책을 향한 저자의 애착은 나와 생각이 같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장서를 한꺼번에 처분하기 위해 '1인 자택 헌책시장'을 추진한 저자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1인 자택 헌책시장'은 집에 책이 많은 나도 한번쯤 실천해보고 싶다. <장서의 괴로움>은 책으로 넘쳐나는 장서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종이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엿보이는 책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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