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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미술관
강민지 지음 / 아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1968년부터 색의 역사를 연구해온 프랑스의 학자 미셸 파스투로에 따르면 파란색은 18세기부터 유럽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으로 자리잡았고,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색으로 꼽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색 가운데서도 유독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세에는 성보마리아의 옷을 표현하는 색으로, 12세기부터는 유럽 왕권을 대표하는 색으로 사용되었고, 청신호, 청사진, 블루오션 등 긍정적이고 새로운 활로를 의미하는 단어에도 등장하는 파랑. 하지만 파란색은 눈부시게 찬란한 긍정의 의미만 내포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블루'라고 하면 우울과 고독, 차가움과 냉정, 슬픔과 불안 같은 정반대 의미 또한 포함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파란색'의 매력이 아닐까.
파란색은 채도와 명도에 따라, 또 역사적 맥락에 따라 품고 있는 문화사적 의미가 다르게 전달된다. 그렇기에 색을 다루는 화가들에게 파란색은 감정과 감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다. 그리고 여기, 각자의 인생에서 마주한 희망, 사랑, 고난, 슬픔, 고독을 다채로운 파란색 물감으로 화폭을 채운 열다섯 명의 화가들이 있다. 때로는 환희에 빛나는 '코발트블루'로, 때로는 절망에 빠진 '프러시안블루'로 내면을 푸르게 채색한 화가들. 책 <파란색 미술관>은 파란색이 돋보이는 그림을 중심으로 작품에 녹아든 예술가들의 삶과 감정의 파고를 따라가며 그들의 예술 여정을 살펴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도 저마다 내면을 채색할 '나만의 파란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연의 빛과 색채로 세상을 물들인 화가 모네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미술계의 '성실함과 지구력의 아이콘'으로서 인상주의를 개척해나간 모네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지나치기 쉬운 자연과 빛이라는 모티브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기에 별 관심을 주지 않는,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자연을 소재로 본인만의 감각과 개성을 담아 우리에게 감동과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모네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분지족의 삶이 진정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현인으로 다가온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다양한 미술 사조 가운데 인상주의가 많은 이의 사랑을 지금까지 꾸준히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은 고유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인상주의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떠한 해석도 필요하지 않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솔직하고 투명한 미술이 주는 시각적인 쾌락이 아닐까 합니다. 색채가 빛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다는 인상주의의 신념으로 하나의 모티브 아래 몇 시간이고 몇 달이고 철저히 같은 곳을 관찰하고 탐색하고 연구한 화가는 기나긴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모네가 유일합니다."
저자는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예찬한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가족과 친구, 연인과 같이 주변 '사람'에 중점을 두고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예찬한 인상주의 화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르누아르 예술 세계의 과도기에 그려진 <우산>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파리의 어느 봄날에 길 위의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고 걸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우산>은 무엇보다도 의상과 우산을 포함해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파락 색조가 흐린 날씨와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며 이들을 더욱 차분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구현하는 데 일조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림은 언제나 즐겁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르누아르는 "그림은 아름답게 드려야만 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힌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이전의 그 어떤 화가도 그린 적 없는 유쾌하고 즐겁고 밝은 분위기로 담아낸 르누아르처럼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어렵고 고단하지라도 환한 긍정의 희망을 담아 생각을 전환해본다면, 우리 '인생의 그림'도 따스한 온기와 빛으로 가득 물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르누아르는 대중에게 화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1890년 이전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겪었습니다. 또 젊은 시절에는 장티푸스로, 나이들어서는 극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붓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고 몸무게가 47킬로그램까지 빠지며 건강 문제가 그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어요. 1870년부터 이듬해까지 치러진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은 그를 절망과 공포로 휘몰아 넣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르누아르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아픔과 실연, 고난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생애 동안 6000여 점을 그린 그의 캔버스에는 이 같은 상황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사랑과 행복, 삶을 예찬하는 노래만이 황홀하고 상쾌하게 울려퍼지죠."
저자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탈피해 새로운 미술을 향해 나아가 현실을 일으킨 화가, 파란색 그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프랑스 현대 작가 이브 클랭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IKB를 개발해 자신만의 파란 세상을 표현하고 잔 클랭처럼 독자들에게 뜨거운 열정으로 이루고 싶은 세상이 있는가를 질문하며 꿈꾸는 나만의 세상을 그려보기를 권한다.
"<캘리포니아>는 작품을 보지 않더라도 제목에서부터 클랭이 사랑하는 파란색으로 장관을 이룬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하늘과 산타모니카 해변이 떠오릅니다. 클랭은 자신의 첫 작품이라며 서명했던 니스의 파란색 하늘을 항상 가슴에 담아두었다고 해요. 그후로 클랭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언제나 파란색으로 푸르게 가꾸어나갔죠. 그가 그토록 파란색을 좋아한 이유는 자신이 가고자 한 비물질의 세계, 즉 바다와 하늘, 우주의 색이 바로 파란색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클랭은 우주의 별이 되기 전, 캘리포니아의 빛나는 맑은 파란색의 하늘과 바다, 그 너머에 있는 우주의 생명력을 IKB로 표현하고 싶었나 봅니다."
"혁신과 창조는 파괴에서 시작됩니다. 낡고 진부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나와야만 새로운 세상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멋지게 실천한 이브 클랭. 그 덕택에 미술은 더이상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각하는 것'으로 진보할 수 있었어요."
저자는 슬플 때도 행복할 때도 언제나 예술만을 찬미하며 독특한 색채 기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화자이자 파블로 피카소의 영원한 라이벌 앙리 카티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앙리 마티스가 1938년에 완성한 <두 명의 댄서>아 1947년에 제작한 <재즈의 이카루스>는 컷아웃 기법으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들에서 활력이 솟아나는 역동적인 분위기는 배경과 인물이 아주 강렬한 파란색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마티스에게 파란색은 '무한'의 색이었습니다. 질병의 고통 때문에 힘에 겨운데다 무거운 벨트까지 차고 있어야 했기에 평생을 천직으로 삼고 걸어왔던 화가의 길이 좌절되는 건 아닌지, 전쟁만큼이나 큰 상심과 두려움의 시간을 겪었을 마티스에게 파란색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회복과 미래에 대한 낙관의 색, 무엇보다 움직임의 제약 속에서 너무나 간절히 누리고 싶은 자유의 색이었을 겁니다."
"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짜넣은 질물인 태피스트리의 도안으로 마티스가 1946년에 완성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폴리네시아, 바다>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바람을 총체적으로 담은 역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로 196센티미터, 가로 314센티미터의 압도적인 크기에 마티스의 자유의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파란색과 그 위를 너무나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는, 마티스 예술 생애에서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이국적인 무늬와 흰색의 다양한 바다 생물이 그의 내면에 자리한 자유에 대한 열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흡사 세계가 다시 태어난 듯 모든 것이 새롭다. 자연의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윤기가 드른다. 그 누구도 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대수술을 받고 난 후 새로 얻게 된 삶의 소중함 속에서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된 마티스가 한 말입니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빈 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아를에 대한 빈센트의 환희와 감동은 1988년 아를데서 새출발한 빈센트가 그해 5월에 그린 <아를 근처의 작은 길>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를 근처의 작은 길>의 일관성 있고 조심스러운 붓 터치로 표현된 하늘에서는 아를에서 빈센트가 느끼는 심적인 자유로움과 넉넉함, 편안함이 전해지는 듯하고, 캔버스 맨 위쪽 끝에 채식된 짙은 파란색에서는 빈센트가 아를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최대치의 행복감과 안정감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아를의 푸른 하늘은 그 바로 아래에 앙증맞게 자리한 노란색의 소박한 이층집과 대비되어 광활하고 넉넉한 분위기로 가득한 이곳의 정취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아를의 넓은 들판 사이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그린 것인데, 화면 앞쪽을 보면 앞쪽에서 시작되는 노란색 길이 왼편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배려심 많은 마을 주민이 무성히 자란 풀들을 옆으로 치워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편하도록 길을 터놓은 것 같네요. 그 길 양옆으로는 아빠의 듬직한 어깨처럼 커다랗고 우직한 잎사귀들이 풍성하고 빼곡하게 달려매우 넉넉해 보이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요.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처럼 '감탄할 만한 아를의 파란색 하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옅은 파란색에서 시작해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차 짙어지는 파란색 그러데이션은 그 높이만큼 더 깊어지는 듯 보입니다. 마치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프랑스 아를로 이어지는 화가로서의 빈센트의 삶을 표현한 것 같지 않아요?"
"빈센트가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채워간 아를에서의 삶은 그의 고달프고 힘겨운 생애에서 가슴 벅찬 희열과 희망으로만 가득한 하루하루였으며, 화가로서 가장 큰 성장을 이끌어낸 순간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빈센트는 차갑고 외롭기만 한 자신의 가슴을 따스하게 품어주던 아를이라는 곳에서 어느 멋진 날 우연히 발견한 장면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죠. <아를 근처의 작은 길>을 그린 그날, 빈센터의 청아하고 순수한 눈동자에 비친 끝없이 파란 하늘과 들판이 얼마만큼이나 신비롭고 매혹적이었을지 조용히 눈을 감고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저자는 경제 대공황을 맞은 20세기 미국에서 산업화된 거대 자본주의 도시를 살아가게 된 인간의 소외와 고독의 일면을 이미지로 구체화해 보여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세상을 떠나기 7년 전인 일흔여덟 살에 호퍼는 밝은 느낌을 넘어 안락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작품인 <일광욕하는 사람들>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나무의자에 팔을 걸치고 앉아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은 떨칠 채 그저 무념무상으로 자연이 선사하는 빛의 넉넉함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듯해 호퍼의 작품 중 가장 평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저자는 항상 한두 명의 인물만 외로이 등장하던 호퍼의 이전 그림과 달리 여러 명이 무언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싸며 보듬어주는 듯해 더욱 편안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빛은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호퍼가 느끼는 고독과 소외 속에서도 당당하고 멋지에 살아가고가 하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매개체였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빛은 호퍼를 살게 하는 힘이었어요. 이번 주말에는 편한 신발을 신고 햇빛 아래서 정처 없이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손에는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말이에요. 복잡하기만 한 도시에서 느끼는 적막함과 외로움은 모두 증발되어버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가볍고 포근한 희망의 울림만으로 가득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