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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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쉰세 번째 소설선, 안보연 작가의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는 2024년 1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일 뿐으로 존재감 없이 살았던 수영이 무작위적 폭력성을 가진 언니 수미, 이타적인 행위를 가장한 폭력성을 지닌 노견 클리닉센터 원장의 모습을 통해 선택 불가했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변화를 갖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수영은 폭력적인 언니 전수미와 살면서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 제일 참담하게 부러지는 줄은 모르고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수영은 전수미에게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던 생각과 달리 가는 곳마다 전수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수영은 전세사기를 당하고, 물류센터에서 인간다운 노동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개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성을 감추고자 하는 노견 클리닉센터 구원장의 직원으로 일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돌이켜보면 전수미는 자신을 해치는 일만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치와 모욕을 견디는 건 항상 주변인들이었고, 평안을 구걸하는 것도 주변인의 몫이었다. 멋대로 사람을 휘둘러 지배력을 확인하는 것,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 전수미는 엄마 아빠의 불안을 양분 삼아 하루가 다르게 전능해진 셈이었다."

"전수미와 함께 사는 동안은 매일매일이 불안했다.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누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전부 공포스러웠다. 쏟아지기 직전까지 물이 차오른 가느다란 물병처럼 집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견뎌야 했다. 존중받고 싶어 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나를 기를 쓰고 찍어 눌러야 했다.

나를 무시하는 것.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손쉽게 나를 짓이기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묵인하는 것."

"취업 준비를 해도 면접장에서 내게 주어지는 건 모욕적이고 치졸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제일 먼저 무시당하고 항상 크게 다쳤다. 급여의 상당 부분을 떼어먹히고 손쉽게 교체당했다. 그래도 나는 매일같이 노력했다. 전수미와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이 책에서 상황이 절박한 사람들을 우선해 직원으로 채용하여 그들의 약점을 잡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의 민낯을 보여주는 노견클리닉센터 구원장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나는 말입니다. 반려동물도 가족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같잖은 소리라고 생각해요. 의사결정권도 선택권도 권리능력도 없는 게 무슨 가족인가요. 개들이 짖거나 물건을 부수면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개를 내다 버립니다. 개가 이웃을 물기라도 하면 세상 합당한 이유를 찾았다는 듯 안락사시켜요. 그저 시간이 흘러 개가 늙었을 뿐인데도 인간들을 억울해합니다. 개한테서 악취가 난다고, 털이 빠지고 피부병이 생겨 흉측해졌다고, 돈이 많이 든다고 화를 내요. 세상에 그런 가족이 어딨습니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은 좋은 보호자입니다. 그분들이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자만할 수 있도록 내버려둬요. 주제넘게 굴지 말고."

"여기 개들은 모두 늙고 병들었어요.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또 필요합니까? 개들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죽기 위해 여기로 왔어요. 죽기 위해 마련된 곳에서 제때 죽는 거죠."

폭력적인 언니 전수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살아온 수영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비밀 속에 숨지 않고 가족을 상처 입히더라도 비밀을 토해내는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수영은 언니 전수미가 자신이 저지른 형량을 받길 바라며 내부 고발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자신은 언니 전수미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는 수영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비밀을 삼킨 채로는 자작나무처럼 위로 뻗어 나갈 수 없다. 비밀은 너무 크고 무거워 나를 땅속으로 가라앉힌 뒤 도무지 도망칠 수 없게 뿌리로 옭아맬 테니까. 그러니 나는 모든 비밀을 토해낼 것이다. 더는 세계의 뒷면에 나를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전수미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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