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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 <약탈적 금융 사회>의 저자는 빚 때문에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빚을 진 자신을 책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지고 연체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향하는 비난 대신, 못 갚는 것을 안 갚는 것으로 간주하는, 못 갚을 만큼 빌려 준 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지금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과도한 빚을 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약탈적이라고 명시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려받겠다는, 약탈이 허용된 사회에서나 볼 법한 채권자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도 없고 노후는 비참해질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이자율이 낮아 저축하면 손해지만 빚을 내서 투자하면 그것이 지렛대가 되어 부자가 될 것이란 달콤한 거짓말도 끊임없이 들었다. 현금을 쓰면 손해,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혜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월급날마다 카드 결제액으로 뭉칫돈이 빠져나가 허탈해졌다. 빚을 갚느라 생활비가 부족해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빚을 내서 충당하면 된다고 여겼다. 이자가 점점 생활을 조여 오면서 빚이 폭탄으로 변해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공포에 길들여져 갔다.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한 노동과 시간에 갇혀 자존감과 이타심을 버리기 시작했고 시민 의식은 실종되었다. 내가 아파트 한 채로 벌어들이는 돈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이라는 것쯤은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서로를 착취하더라도 그저 돈 벌어 나만 부자가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책 <약탈적 금융 사회>는 1부 대한민국은 채무 노예사회, 2부 약탈적 금융과 그 공조자들, 3부 99퍼센트의 채무 해방을 위해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책 1부에서는 채무자의 진짜 이름은 노예,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가계 부채 1000조 시대를 '하우스 푸어', '전세 푸어'. '학자금 푸어', '워킹 푸어' 등 온갖 푸어 시리즈가 채우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빚에 의존해야 하고 그 빚에 따라붙는 이자를 감당하느라 돈을 벌어도 생계에 허덕이는 푸어족이 거의 모든 계층에 있다. 원금은 상환하지도 못하고 이자만 납입하며, 심지어 기존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리는 '생계형 대출' 가구가 늘고 있다.
"빚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식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채무 상환을 못하는 것은 딱하지만 애초에 상환 능력을 초과해 돈을 빌린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거두지 않는다. 그런 상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 채권 추심이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조차 모른 척한다. 채무자는 상환 능력이 있을 때는 금융 회사의 고객이지만 상환 능력을 상실하자마자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략한다."
채무자를 노예 의식에 가둬 버리는 이데올로기는 가혹하고 부당한 빚 독촉을 받거나 채무불이행에 따른 사회적 제재를 당하는 당사자들조차 부당하다고 여기지 못하게 만든다. 채무자들은 과도한 빚으로 신음하게 된 상황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죄의식까지 느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구제 제도를 이용하는 것마저 망설인다. 상대적으로 채권자는 언제나 당당한 강자이다. 분명 능력 이상의 빚을 공급한 채권자에게도 문제가 있는데, 자기 능력만큼만 빌렸어야 한다며 채무자에게만 가혹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폭풍이 칠 때 입산 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과 반대로 금융시장은 위험에 대한 판단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내맡기면서 책임 또한 철저히 개인에게만 따져 묻는 구조이다. 그에 따라 '자신의 신용도를 스스로 평가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만약 상환 능력을 뛰어넘는 돈을 빌려서 갚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순전히 채무자의 몫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빚 상환 강요조차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처벌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적 프레임 안에 확실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 패배감처럼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이야기한다. 경제적 결과에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을 부여한 탓에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채무자의 패배감과 자기 책임 의식은 금융 앞에서 극에 달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수준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 권력과의 결탁 문제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금융권에서는 모든 책임을 투자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이 같은 '내 탓' 논리는 그간 금융회사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학습시킨 결과이다. 금융권이 불완전 판매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사람들에게 '내 탓'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온 것이다.투자 실패, 채무 상환 등 모든 책임을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금융회사에만 철저히 유리한 지금의 시스템은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금융 소비자의 의식이 깨어야 한다. 자신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큰일이라는 학습된 의식을 버리고 '소비자가 먼저'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은 길게 보면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이바지한다. 소비자의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이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당장 멀쩡해보이는 자신의 금융 상품부터 살펴보자. 제대로 알고 가입한 것이 몇 개나 되는가? 내가 선택한 금융회사는 파산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금융의 맨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이다. 진짜 도둑에게 날아가야 할 화살이 자신을 향하도록 방치한 사이 약탈적 금융은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리고 소비자 책임 뒤에 숨어 있는 상황이다.
"신경경제학 분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 두 가지의 자아가 있다. 계획하는 자아는 이성적, 분석적이며 자신의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 노력한다. 이에 비해 행동하는 자아는 감정적, 즉각적이며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사람은 이 두 가지의 형태의 자아가 내리는 명령에 의해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 결정을 내려 행동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할 때 알람을 맞추는 것은 계획하는 자아, 끄고 다시 자는 것은 행동하는 자아의 영향이라고 한다.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파산이나 워크아웃 같은 구제 제도를 이용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바로 감성적이고 연상적인 자동 시스템, 즉 행동하는 자아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빚을 지고 제때 갚지 못하면 금융권에서는 이미 연체료라는 징벌적 요금을 부과한다. 이처럼 금전적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죄의식이나 부끄러움까지 느끼는 것은 이중부담이다."
저자는 금융기관의 탐욕과 약탈 해위에 대응하기 위해서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기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공적 통제의 첫걸음은 배당 제한이다. 장사가 잘된다고 이익을 대부분 주주에게 배당하는 행태를 제한해야 한다. 수익은 주주 주머니로 다 들어가고, 통제되지 않는 위험으로 망할 정도가 되었을 때는 국민이 손실을 부담한다. 저자는 주주 유한책임의 원칙을 관철시킬 수 없는 금융기관은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거듭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월가 점령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져 금융기관에 책임을 묻고자 요구하는 세상이다. 그 변화는 채무자에게만 과하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주입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현대사회에서 금융이 없는 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금융에 문제가 생기면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삶이 파괴된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주식회사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원칙인 자기 책임의 원칙과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인 주주 유한책임의 원칙만을 적용할 수 없는 조직체이다."
책 2부에서는 약탁적 금융과 그 공조자들이라는 주제로 우리는 언제부터 빚의 노예가 되었나,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 서민 두 번 죽이는 파산,회생,워크아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약탈적 금융 행위는 칼든 강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이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대출은 가계 파산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점은 약탈 행위가 전혀 약탈인 줄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광고와 언론, 대형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과 블로그 마케터,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숨어 있는 설득자'들은 기어코 엄마들의 주머니를 터는 데 성공한다. 그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엄마들의 과시적 모성을 탓할 필요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과시적 모성을 충족시켜 주려고 생애 첫 이동 수단부터 '빚'으로 소유한다. 문제는 어린 시절의 소비 형태가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단지 브랜드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비 결제 및 금융 이용 방식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카드 결제와 빚에 의존하는 모습을 간접 경험했기 때문에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신용카드 결제가 고정관념이 되어 버릴 위험이 크다. 대학생이 되면 빚에 의한 소비를 별 부담 없이 받아들이던 데서 벗어나 빚 갚기와 밥벌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당장 대학 문을 나서면 청년 실업이라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데 등에는 빚짐까지 짊어졌다. 요람에서 일어나 혼자 앉을 만큼 자라면 수입 유모차를 타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노스페이스 점퍼를 교복처럼 입다가, 이제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체크카드를 지갑에 넣게 된 20대들은 빚을 내지 않으면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는 개그 소재 같은 혈실만 일찌감치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은 서막에 불과하다. 결혼과 동시에 집을 구하고 자녀 출산 및 양육, 교육 비용을 감당하려면 다시 빚의 사이클에 올라타야 한다. 부모가 물려준 빚이 자녀의 빚으로 이어지는 야만적인 빚의 대물림 구조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안타깝게 여겨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일을 우리는 자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갚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분명히 알면서 굳이 돈을 빌려 준 뒤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하는 행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바로 약탈적 대출이라고 한다."
요즈음 평범한 가정의 일상은 할부와 대출, 마이너스 통장과 보험료 등 기본 생활비와 상당 부분이 금융으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 빚이 일상화되면서 이제는 평범한 가정조차 금융 없는 생활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수기 비데, 공지 청정기, 연수기 등 이른바 렌털 4종 세트를 사용하고 유모차를 할부로 구입한다. 유아 동화 전집과 가족 캠핑 장비를 할부로 구입한다. 매월 집에 딸린 대출금 이자로 소득의 30퍼센트 이상을 지출한다. 매주 대형 마트에 장보러 가서 20여 만원을 3개우러 무이자 할부로 결제한다. 자동차 할부금도 매달 빠져나간다. 종합보험은 기본이고 운전자 보험과 상해보험을 추가로 가입했다. 가장의 사망에 대비한 종신보험과 아이 출산에 맞춰 가입한 어린이 보험도 유지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2년 약정 할부로 구입했고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할부금과 주택 할부금은 줄지 않는데 사교육비에서 대학 등록금까지 대출금이 추가될 예정이다."
저자는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을 꼬집어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민을 노예로 만들고, 약탈적 대출로 집을 빼앗고, 이익은 기업에게 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만드는 금융과 빚도 자산프레임이다라고 말하고 머니게임을 부추기고 빚을 내서 신용 등급을 관리하게 만드는 꼼수를 쓰는 언론과 전세금 상승을 부추기는 전세자금 대출, 대출 확대가 서민 금융 대책이라는 정부, 월급날의 보람을 빼앗고 카드론 뒤에 숨은 카드사의 탐욕, 사채와의 공생, 카드값을 갚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현실, 대형 마트엔 약하고 영세 상인에게 강한 신용카드의 행태를 비판한다.
"약탈적 금융이란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갚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만약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제공한 자산을 채권 대신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담보자산을 회수할 가능성이 큰 줄 알면서도 소득 수준 이상의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약탈적 대출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책 <가난뱅이의 역습>에 등장하는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스스로 유쾌한 가난뱅이가 되어 보는 것도 좋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책 3부에서는 99퍼센트의 채무 해방을 위해라는 주제로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 자유인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일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몇몇 시민 단체에서 일명 '빚을 갚고 싶을 사람들'(빚갚사)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채무자 단체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또한 참여연대, 민생연대, 금융소비자협회, 희망살림, 에듀머니,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도 이전부터 '서민금융보호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고리 사채와의 전쟁, 금융 감독 부실 지적, 금융 소비자 및 채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 약탈적 금융 정보 독점 및 금리 담합 의혹 등을 비판하며 금융위원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물론 서민 가계 안정과 보호를 위한 다양한 입법을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라도 서로 연대해 힘을 모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금융회사가 유포하는 '내 탓'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고, 사금융업체의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출 장사와 채권 추심을 막는 보호막을 만들 수 있다."
저자는 파산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파산 후 면책을 받더라고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자산은 남겨 주고 파산시켜야 한다. 빚을 탕감받고 새 출발하려는 과다 채무자에게 파산 제도가 진정한 전환점이 되려면 면책 결정이 신속히 내려져야 한다. 또한 개인회생으로 하우스푸어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채무자의 경제 여건에 맞춰 빚을 조절하는 개인 회생 제도도 좀 더 현실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채무 변제 기간을 5년에서 3년 정도로 줄여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비만 남겨둔 채 모든 수입을 빚 갚는데 올인하는 채무자에게 5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담보대출도 구제해줘야 한다. 현재 개인 회생 제도에서는 집에 딸린 빚은 조정 대상이 아니다. 최저생계비를 뺀 나머지 소득을 모두 신용 대출 원금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하는 회생 제도의 특성상 신용 대출액의 2배가 넘는 담보대출을 갚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담보대출도 회생 대상 채권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 담보대출은 제외하는 지금의 개인 회생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하우스 푸어는 실질적으로 사후 구제를 받을 길이 없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 고질적인 빚보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과다 채무자가 채무 상환이 불가능해서 파산이나 개인 회생을 통해 면책 판정을 받더라도 보증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보증인도 파산이나 개인 회생 절차를 함께 밟지 않는 한 주 채무자가 면책되더라도 보증인은 보증 채무를 애초 계약대로 상환해야 한다. 이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낭비이다. 보증인까지 파산으로 내몰리거나 재정 상황이 악화돼 주 채무자의 회생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주 채무자는 보증인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파산이나 개인 회생 절차를 회피하게 된다. 결국 보증인을 인질로 내세워 채무자가 채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협박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주 채무자가 개인 회생을 신청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변제 계획으로 변제하지 못하는 부분만 보증인에게 청구하게 해야 한다. 이밖에도 고리 사채를 뿌리 뽑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자제한법을 개정해 연 30퍼센트인 제한 금리를 선진국 수준인 연 20퍼센트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대부업체와 여신 금융기관도 이자제한법의 적용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제한 이율을 넘는 고리대의 경우에는 이자 약정을 무효로 하여 이자를 전혀 받을 수 없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제한 이율의 2배를 넘는 고리 대출의 경우에는 채무자를 약탈하려는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에 의자뿐 아니라 원금에 대한 약정도 무효화해야 한다. 불법 고리대를 추구하는 약탈자는 원금마저 고스란히 날릴 수 있다는 사회적 경고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다.
가계 빚 1000조원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계가 1000조 원이라는 빚더미에 앉게 된 데에는 금융권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금융권에서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계 채무가 조정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바로 이런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 금융복지상담센터가 필요하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금융을 주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이자율만 조정해도 될 채무자를 사채 시장에서 내몰리지 않게 하고, 일부만 줄여 줘도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을 파산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 돈에 대한 스트레스와 빚에 대한 강박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이 이성적으로 재무관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융권 인사가 아니라 채무자와 소비자 입장에 선 전문가의 객관적인 진단에 따라 적절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그와 더불어 제도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파산과 회생 제도가 개정되어야 하고 공정채권추심법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융 시스템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상위의 결정권자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약탈적 금융조차 시장 논리로 합리화시켜 대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언론, 금융 감독 당국, 금융권 주주들과 경영 문화가 바로 우리를 빚더미에 앉힌 장본인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날카로워져야 할 때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빚에 저당 잡히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더욱 늘려 온 그들을 향해 우리도 미국의 월가 시위대처럼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