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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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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시인 세사람과 하응백 문화평론가 한 사람이 오래도록 연모해온 시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자 연애편지다. 그들은 이 책의 연애편지들은 시를 읽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이며 각각의 개성으로 시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시를 읽고 자유롭게 시를 하고해야 한다. 방향을 정해놓고 시를 읽을 필요는 없다. 인생과 사랑에 정답이 없듯 시를 읽는 것에도 정답이 없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가장 자유롭게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첫번째로 정호승이 사랑하는 시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최승호 시인의 <자동차에 치인 눈사람>을 읽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릴 때 만든 눈사람은 햇볕이 나면 햇살에 녹아서 죽었지, 이렇게 자동차게 치여 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눈사람의 죽음에서 인간 삶의 자연스러움과 당연함을 배운 것 같다. 눈사람은 햇살이 나면 자연스럽게 녹는데, 그것은 눈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눈사람은 차에 치여 죽는다. 이 얼마나 슬프고 당혹스러운 일인가. 눈사람마저 차에 치여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눈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21세기. 인간을 복제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눈사람은 만들려고 하지 않는 21세기. 설혹 눈사람이 태어난다 해도 자동차에 치여 죽어버리는 그런 세기의 삶은 불행하다."

 

정호승 시인은 신경림 시인의 <봄날>에 나오는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은 꼭 자신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말없이 새벽에 일어나 손자가 자는 방에 군불을 지피는 것이 바로 사랑의 원형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그리 호들갑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랑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러한 은근한 희생을 수반한다.  

 

"나는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희생이 바탕이 되지 않은 사랑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자기의 몸을 온통 자식들에게 먹이로 제공한 뒤 일생을 마치는 거미도 있다고 한다. 사랑에서 희생의 본질은 그런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에서 두 번째로 소개되는 시인의 이야기는 안도현이 사랑하는 시이다.

안도현 시인은 황동규 시인의 <방파제 끝>이라는 시를 이야기한다. 그는 황동규를 읽으면 시가 묘사의 양식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지독할 정도로 들여다보고, 냉정할 정도로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황동규 시인의 시를 많이 읽어보고 싶다.

 

"시를 공부하는 문학청년들이 황동규라는 이름을 통과해야 하는 이유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 <즐거운 편지> 때문이 아니다. 그 아릿아릿한 연가풍의 시를 읽는 일도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황동규 시인의 매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의 절제력을 잃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문학공부한 무엇인가. 그것은 말과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를 청므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시를 고백의 양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백지 위로 토해 놓으면 다 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는 자아도취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한테 빠져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검증해서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비로소 시는 제대로 된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무한정 고백만 늘어놓을 일이 아니라, 세상과 사물을 묘사하는 법을 연마하는 게 중요하다."

 

안도현 시인은 1997년에 나온 미당의 <80소년 떠돌이의 시>를 이야기한다. 그는 이 시의 감동은 시집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여든을 훨씬 넘긴 노시인이 놀랍게도 소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고 온다고 말한다.

 

"미당의 오감은 날이 갈수록 소년을 닮아간다. 어른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사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소년은 단순하게 세상을 읽으려고 한다. 삶의 갈등과 고뇌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래 미당의 시에 나타나는 단순성은 이 세상을 한 바퀴 휘휘 돌아본 뒤에 마침내 다다른 시선의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과 인생의 산전수전 끝에 미당은 천진함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책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에서 세번째로 소개되는 시인의 이야기는 바로 장석남이 사랑하는 시이다. 책을 읽으면서 장석남이라는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스타일이 매력적이다. 어딘가 모르게 나와 닮아있는 감성을 발견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숨어살기를 꿈꾼 적이 여러 번이다. 그것이 이 세상을 버린다는 것을 뜻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숨어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삶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터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나서보았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가족을 포함해 사회적인 위상이라는 것은 작든 크든 있게 마련이어서 그 안에 한 개인의 일은 늘 얽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숨어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위상에서도 좀 작게, 조그맣게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 도잠의 귀거래를 운운할 만한 것은 못 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요 어쩌면 그렇게 한다는,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사회적인 의미망 속으로 깊이 얽혀드는 사회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생각되었던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내게 와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습니다(말을 거는 것이 누구인지 나인지 당신인지 사랑이라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내게는 그런 운명이 평생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도둑처럼 내 안에 들어와 나가지 않고 벌써 몇 달째 살림을 살고 있습니다. 듣던 음악도 그전에 듣던 음악이 아니고 바라보는 책상 모서리도 예전의 책상 모서리가 아닙니다. 생전 처음 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많습니다.

이즈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걸어오는 말소리가 귓속에서 바람에 시달리는 전선줄처럼 웅웅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엄밀하게는 당신이 걸어오는 말은 아니지요. '내 속에 들어온 당신'의 말이지요. 그 말에 나는 아무런 응답도 할 수 없습니다. 우선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곤 합니다.

순리에 대한 발견의 서글픔이요, 순명에 대한 발견이 설움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문제도 그런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왠지 나는 당신과의 만남을 그저 순명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그저 우리는 강가에 가서 안ㅇㅈ아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란 없는 건인가요. 정말 그런가요.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겠습니다."

 

장석남 시인은 김수영의 시 <거미>를 이야기한다. 김수영이 말하는 고뇌가 인간의 보편적이고 내밀한 공간으로 동시에 육박해 들어간다.

 

"김수영이 사랑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시는 발견되지 않는다. <거미>는 아마도 김수영의 시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시에 속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개인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김수영에게 가장 깊고 내밀한 세계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관한 한 김수영의 이 관찰과 경지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만큼 간절한 경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생에서는 누구나 몇 번쯤 사랑에서는 다른 무엇에서든 거미가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비극인가. 나도 거미다!"

 

장석남 시인은 오규원 시인의 <분식집에서>라는 시를 이야기한다. 틈이 생긴 사랑 때문에 낙태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의 뒷맛이란 더할 수 없이 을씨년스럽다. 그것은 마치 폐허의 공토에 모여 수런대는 찢어진 비닐 봉지들의 집회 현장을 바라보는 느낌과도 흡사한 무엇일 것만 같다. 장석남 시인은 이 시를 매우 슬프다고 말한다. 이 시의 제목은 소박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눈물 겨울 지경이라고 말한다.

 

"창백한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무중력 상태의 공중을 가듯 아무 말이 없이 걸어가는 거리. 결론도 없는 회의의 침묵. 이 세상 전분에 대한 죄책감. 절망이란 이 세상 전부에 대한 죄책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일러 '꽃피는 절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오규원 시인의 <분식집에서>에는 맨 끝에만 마침표가 찍혀있다. 이상한 것은 그렇다면 왜 다른 마침 부분에는 그 점을 찍지 않고 맨 끝에만 찍은 것인가. 나는 절망이라는 단어에 혐의를 둔다. 그것은 내 착각일 수 있지만 미안하게도 즐겁다. 왜 미안한가. 절망에게 즐겁다고 해서다.

'나'는 계단 위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다. 그는 내려가는 것이 희망인데 무엇이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보기에 계단 그 자체다. 그 위태로움. 계단은 상징적이든 지시적이든 오르내리는 인간의 편리의 산물인데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목적한 바까지 끝까지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아니 끝까지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내려가는 것이 희망이다. '나'의 삶은 계단 위에(이 계단은 급경사의 계단이다!) 오래 앉아 머물고 있는 위태로운 삶이다. 삶이 힘에 겨우면 가벼워져야 한다.

나무는 그 성장을 위한 자본인 나뭇잎이 무겁다. 당연히 그 나무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희망이다. 반대로 바닥에게는 낮은 창문도 희망이다. 여러 희망이 서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로 섞여 있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분식집에서 만나는 희망들이란 어떤 것들인가. 그것은 떼어버리는 것이 희망이다. 낙태를 하고 분식집에 와서 라면을 먹는 아이는 불량하고 몸 생각을 안해서 라면을 먹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먹는 라면일 수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몰랐던 여자와 아침까지 잔 남자아이는 진짜로 모르던 여자가 아니고, 한 진지한 여자로서, 말하자면 한 여자를 발견한 그래서 새롭게 보이는 여자와 아침까지 잔 남자이다. 그들이 낙태를 한 것은, 그들이 그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그 둘 사이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둘에게 닿는 사랑이 너무나 척박해 생긴 그런 지경인 것이다. 그들은 낙태를 할 정도로 애정에 굶주린 영혼들인 것이다. 그들의 희망은 꽃피는 절망이다. 그들에게 이 도시의 라일락꽃은 절망일 수밖에 없다. 웃는 꽃이 아닌 우는 꽃, 시든 꽃은 빨리 떨어져야 하는데 바람이 불지 않으니 그걸 보는 것도 난감하다."

 

책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에서 네번째로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사랑하는 시를 이야기한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은 이성복 시인의 <편지,1>에 대해 말한다.

 

"첫째 의미 문장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부터 생각해보자. 대개 사랑에 빠진 연인은 상대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다. 친구 사이라면, 대개 주고받기의 관계다. 오늘 내가 짬뽕을 사주었다면, 내일 너는 나에게 짜장면을 사주어야 한다. 오늘도 짬뽕을, 내일도 짜장면을, 모레도 볶음밥을 내가 너에게 사주어야 한다면, 나흘 후에는 나는 너를 만나지 않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렇지 않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또 그다음 이어지는 수많은 날도,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무진무진 깊은 광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렇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도 변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은 어려워진다. 내가, 혹은 당신이 변할 수도 있고, 궁합이 맞지 않다고 헤어짐을 강요당하는 수도 있고.... 그래서 시인은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라고 표현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혹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다 어렵다. 시인은 괴롭다. 기껐 내 사랑이 이 정도라니. 시인은 훌쩍 여행을 떠나본다. 이때 여행이란 당신에게서 벗어나기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당신에게 가까이 가기다.

옆에서 보면 사랑은 다 그렇다. 측은하고 유치하고. 그러나 자신이 해보면 또 다 그렇다. 위대하고 결정적이고 운명적이고... 사랑은 불연속적인 두 개체가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심심하고,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하나로, 오락가락하다가, 그 힘든 시소놀이를 하다가 사람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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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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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약탈적 금융 사회>의 저자는 빚 때문에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빚을 진 자신을 책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지고 연체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향하는 비난 대신, 못 갚는 것을 안 갚는 것으로 간주하는, 못 갚을 만큼 빌려 준 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지금의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과도한 빚을 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약탈적이라고 명시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려받겠다는, 약탈이 허용된 사회에서나 볼 법한 채권자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도 없고 노후는 비참해질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이자율이 낮아 저축하면 손해지만 빚을 내서 투자하면 그것이 지렛대가 되어 부자가 될 것이란 달콤한 거짓말도 끊임없이 들었다. 현금을 쓰면 손해,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혜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월급날마다 카드 결제액으로 뭉칫돈이 빠져나가 허탈해졌다. 빚을 갚느라 생활비가 부족해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빚을 내서 충당하면 된다고 여겼다. 이자가 점점 생활을 조여 오면서 빚이 폭탄으로 변해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공포에 길들여져 갔다.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한 노동과 시간에 갇혀 자존감과 이타심을 버리기 시작했고 시민 의식은 실종되었다. 내가 아파트 한 채로 벌어들이는 돈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이라는 것쯤은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서로를 착취하더라도 그저 돈 벌어 나만 부자가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책 <약탈적 금융 사회>는 1부 대한민국은 채무 노예사회, 2부 약탈적 금융과 그 공조자들, 3부 99퍼센트의 채무 해방을 위해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책 1부에서는 채무자의 진짜 이름은 노예,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가계 부채 1000조 시대를 '하우스 푸어', '전세 푸어'. '학자금 푸어', '워킹 푸어' 등 온갖 푸어 시리즈가 채우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빚에 의존해야 하고 그 빚에 따라붙는 이자를 감당하느라 돈을 벌어도 생계에 허덕이는 푸어족이 거의 모든 계층에 있다. 원금은 상환하지도 못하고 이자만 납입하며, 심지어 기존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리는 '생계형 대출' 가구가 늘고 있다.

 

"빚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식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채무 상환을 못하는 것은 딱하지만 애초에 상환 능력을 초과해 돈을 빌린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거두지 않는다. 그런 상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 채권 추심이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조차 모른 척한다. 채무자는 상환 능력이 있을 때는 금융 회사의 고객이지만 상환 능력을 상실하자마자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략한다."

 

채무자를 노예 의식에 가둬 버리는 이데올로기는 가혹하고 부당한 빚 독촉을 받거나 채무불이행에 따른 사회적 제재를 당하는 당사자들조차 부당하다고 여기지 못하게 만든다. 채무자들은 과도한 빚으로 신음하게 된 상황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죄의식까지 느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구제 제도를 이용하는 것마저 망설인다. 상대적으로 채권자는 언제나 당당한 강자이다. 분명 능력 이상의 빚을 공급한 채권자에게도 문제가 있는데, 자기 능력만큼만 빌렸어야 한다며 채무자에게만 가혹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폭풍이 칠 때 입산 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과 반대로 금융시장은 위험에 대한 판단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내맡기면서 책임 또한 철저히 개인에게만 따져 묻는 구조이다. 그에 따라 '자신의 신용도를 스스로 평가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만약 상환 능력을 뛰어넘는 돈을 빌려서 갚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순전히 채무자의 몫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빚 상환 강요조차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처벌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적 프레임 안에 확실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 패배감처럼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이야기한다. 경제적 결과에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을 부여한 탓에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채무자의 패배감과 자기 책임 의식은 금융 앞에서 극에 달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수준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온갖 부정부패와 부조리, 권력과의 결탁 문제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금융권에서는 모든 책임을 투자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이 같은 '내 탓' 논리는 그간 금융회사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학습시킨 결과이다. 금융권이 불완전 판매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사람들에게 '내 탓'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온 것이다.투자 실패, 채무 상환 등 모든 책임을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금융회사에만 철저히 유리한 지금의 시스템은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금융 소비자의 의식이 깨어야 한다. 자신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큰일이라는 학습된 의식을 버리고 '소비자가 먼저'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은 길게 보면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이바지한다. 소비자의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이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당장 멀쩡해보이는 자신의 금융 상품부터 살펴보자. 제대로 알고 가입한 것이 몇 개나 되는가? 내가 선택한 금융회사는 파산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금융의 맨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과도한 자기 책임 의식이다. 진짜 도둑에게 날아가야 할 화살이 자신을 향하도록 방치한 사이 약탈적 금융은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리고 소비자 책임 뒤에 숨어 있는 상황이다.

 

"신경경제학 분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 두 가지의 자아가 있다. 계획하는 자아는 이성적, 분석적이며 자신의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 노력한다. 이에 비해 행동하는 자아는 감정적, 즉각적이며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사람은 이 두 가지의 형태의 자아가 내리는 명령에 의해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 결정을 내려 행동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할 때 알람을 맞추는 것은 계획하는 자아, 끄고 다시 자는 것은 행동하는 자아의 영향이라고 한다.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파산이나 워크아웃 같은 구제 제도를 이용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바로 감성적이고 연상적인 자동 시스템, 즉 행동하는 자아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빚을 지고 제때 갚지 못하면 금융권에서는 이미 연체료라는 징벌적 요금을 부과한다. 이처럼 금전적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죄의식이나 부끄러움까지 느끼는 것은 이중부담이다."

 

저자는 금융기관의 탐욕과 약탈 해위에 대응하기 위해서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기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공적 통제의 첫걸음은 배당 제한이다. 장사가 잘된다고 이익을 대부분 주주에게 배당하는 행태를 제한해야 한다. 수익은 주주 주머니로 다 들어가고, 통제되지 않는 위험으로 망할 정도가 되었을 때는 국민이 손실을 부담한다. 저자는 주주 유한책임의 원칙을 관철시킬 수 없는 금융기관은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거듭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월가 점령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져 금융기관에 책임을 묻고자 요구하는 세상이다. 그 변화는 채무자에게만 과하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주입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현대사회에서 금융이 없는 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금융에 문제가 생기면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삶이 파괴된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주식회사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원칙인 자기 책임의 원칙과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인 주주 유한책임의 원칙만을 적용할 수 없는 조직체이다."

 

책 2부에서는 약탁적 금융과 그 공조자들이라는 주제로 우리는 언제부터 빚의 노예가 되었나,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 서민 두 번 죽이는 파산,회생,워크아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약탈적 금융 행위는 칼든 강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이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대출은 가계 파산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점은 약탈 행위가 전혀 약탈인 줄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광고와 언론, 대형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과 블로그 마케터,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숨어 있는 설득자'들은 기어코 엄마들의 주머니를 터는 데 성공한다. 그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엄마들의 과시적 모성을 탓할 필요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과시적 모성을 충족시켜 주려고 생애 첫 이동 수단부터 '빚'으로 소유한다. 문제는 어린 시절의 소비 형태가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단지 브랜드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비 결제 및 금융 이용 방식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카드 결제와 빚에 의존하는 모습을 간접 경험했기 때문에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신용카드 결제가 고정관념이 되어 버릴 위험이 크다. 대학생이 되면 빚에 의한 소비를 별 부담 없이 받아들이던 데서 벗어나 빚 갚기와 밥벌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당장 대학 문을 나서면 청년 실업이라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데 등에는 빚짐까지 짊어졌다. 요람에서 일어나 혼자 앉을 만큼 자라면 수입 유모차를 타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노스페이스 점퍼를 교복처럼 입다가, 이제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체크카드를 지갑에 넣게 된 20대들은 빚을 내지 않으면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는 개그 소재 같은 혈실만 일찌감치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은 서막에 불과하다. 결혼과 동시에 집을 구하고 자녀 출산 및 양육, 교육 비용을 감당하려면 다시 빚의 사이클에 올라타야 한다. 부모가 물려준 빚이 자녀의 빚으로 이어지는 야만적인 빚의 대물림 구조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안타깝게 여겨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 일을 우리는 자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갚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분명히 알면서 굳이 돈을 빌려 준 뒤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하는 행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바로 약탈적 대출이라고 한다."

 

요즈음 평범한 가정의 일상은 할부와 대출, 마이너스 통장과 보험료 등 기본 생활비와 상당 부분이 금융으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 빚이 일상화되면서 이제는 평범한 가정조차 금융 없는 생활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수기 비데, 공지 청정기, 연수기 등 이른바 렌털 4종 세트를 사용하고 유모차를 할부로 구입한다. 유아 동화 전집과 가족 캠핑 장비를 할부로 구입한다. 매월 집에 딸린 대출금 이자로 소득의 30퍼센트 이상을 지출한다. 매주 대형 마트에 장보러 가서 20여 만원을 3개우러 무이자 할부로 결제한다. 자동차 할부금도 매달 빠져나간다. 종합보험은 기본이고 운전자 보험과 상해보험을 추가로 가입했다. 가장의 사망에 대비한 종신보험과 아이 출산에 맞춰 가입한 어린이 보험도 유지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2년 약정 할부로 구입했고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할부금과 주택 할부금은 줄지 않는데 사교육비에서 대학 등록금까지 대출금이 추가될 예정이다."

 

저자는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을 꼬집어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민을 노예로 만들고, 약탈적 대출로 집을 빼앗고, 이익은 기업에게 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만드는 금융과 빚도 자산프레임이다라고 말하고 머니게임을 부추기고 빚을 내서 신용 등급을 관리하게 만드는 꼼수를 쓰는 언론과 전세금 상승을 부추기는 전세자금 대출, 대출 확대가 서민 금융 대책이라는 정부, 월급날의 보람을 빼앗고 카드론 뒤에 숨은 카드사의 탐욕, 사채와의 공생, 카드값을 갚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현실, 대형 마트엔 약하고 영세 상인에게 강한 신용카드의 행태를 비판한다. 

 

"약탈적 금융이란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갚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만약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제공한 자산을 채권 대신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담보자산을 회수할 가능성이 큰 줄 알면서도 소득 수준 이상의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약탈적 대출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책 <가난뱅이의 역습>에 등장하는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스스로 유쾌한 가난뱅이가 되어 보는 것도 좋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책 3부에서는 99퍼센트의 채무 해방을 위해라는 주제로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 자유인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일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몇몇 시민 단체에서 일명 '빚을 갚고 싶을 사람들'(빚갚사)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채무자 단체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또한 참여연대, 민생연대, 금융소비자협회, 희망살림, 에듀머니,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도 이전부터 '서민금융보호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고리 사채와의 전쟁, 금융 감독 부실 지적, 금융 소비자 및 채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 약탈적 금융 정보 독점 및 금리 담합 의혹 등을 비판하며 금융위원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물론 서민 가계 안정과 보호를 위한 다양한 입법을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라도 서로 연대해 힘을 모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금융회사가 유포하는 '내 탓'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고, 사금융업체의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출 장사와 채권 추심을 막는 보호막을 만들 수 있다."

 

저자는 파산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파산 후 면책을 받더라고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자산은 남겨 주고 파산시켜야 한다. 빚을 탕감받고 새 출발하려는 과다 채무자에게 파산 제도가 진정한 전환점이 되려면 면책 결정이 신속히 내려져야 한다. 또한 개인회생으로 하우스푸어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채무자의 경제 여건에 맞춰 빚을 조절하는 개인 회생 제도도 좀 더 현실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채무 변제 기간을 5년에서 3년 정도로 줄여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비만 남겨둔 채 모든 수입을 빚 갚는데 올인하는 채무자에게 5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담보대출도 구제해줘야 한다. 현재 개인 회생 제도에서는 집에 딸린 빚은 조정 대상이 아니다. 최저생계비를 뺀 나머지 소득을 모두 신용 대출 원금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하는 회생 제도의 특성상 신용 대출액의 2배가 넘는 담보대출을 갚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담보대출도 회생 대상 채권 목록에 포함시켜야 한다. 담보대출은 제외하는 지금의 개인 회생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하우스 푸어는 실질적으로 사후 구제를 받을 길이 없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 고질적인 빚보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과다 채무자가 채무 상환이 불가능해서 파산이나 개인 회생을 통해 면책 판정을 받더라도 보증인은 보호받지 못한다. 보증인도 파산이나 개인 회생 절차를 함께 밟지 않는 한 주 채무자가 면책되더라도 보증인은 보증 채무를 애초 계약대로 상환해야 한다. 이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낭비이다. 보증인까지 파산으로 내몰리거나 재정 상황이 악화돼 주 채무자의 회생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주 채무자는 보증인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파산이나 개인 회생 절차를 회피하게 된다. 결국 보증인을 인질로 내세워 채무자가 채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협박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주 채무자가 개인 회생을 신청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변제 계획으로 변제하지 못하는 부분만 보증인에게 청구하게 해야 한다. 이밖에도 고리 사채를 뿌리 뽑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자제한법을 개정해 연 30퍼센트인 제한 금리를 선진국 수준인 연 20퍼센트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대부업체와 여신 금융기관도 이자제한법의 적용을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제한 이율을 넘는 고리대의 경우에는 이자 약정을 무효로 하여 이자를 전혀 받을 수 없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제한 이율의 2배를 넘는 고리 대출의 경우에는 채무자를 약탈하려는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에 의자뿐 아니라 원금에 대한 약정도 무효화해야 한다. 불법 고리대를 추구하는 약탈자는 원금마저 고스란히 날릴 수 있다는 사회적 경고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다.

 

가계 빚 1000조원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재무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계가 1000조 원이라는 빚더미에 앉게 된 데에는 금융권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금융권에서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계 채무가 조정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바로 이런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 금융복지상담센터가 필요하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금융을 주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이자율만 조정해도 될 채무자를 사채 시장에서 내몰리지 않게 하고, 일부만 줄여 줘도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을 파산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 돈에 대한 스트레스와 빚에 대한 강박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이 이성적으로 재무관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융권 인사가 아니라 채무자와 소비자 입장에 선 전문가의 객관적인 진단에 따라 적절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그와 더불어 제도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파산과 회생 제도가 개정되어야 하고 공정채권추심법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융 시스템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상위의 결정권자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약탈적 금융조차 시장 논리로 합리화시켜 대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언론, 금융 감독 당국, 금융권 주주들과 경영 문화가 바로 우리를 빚더미에 앉힌 장본인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날카로워져야 할 때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빚에 저당 잡히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더욱 늘려 온 그들을 향해 우리도 미국의 월가 시위대처럼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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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요즘 사랑에 관해 많이 생각하는 날이다.

사랑이 아팠던 날 제목만큼 듣고싶은 이야기가 많을듯하다.

 

 

 

 

 

 

 

 

 

 

 

우리가 사랑할 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랑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행복한 습관을 알려주는 이야기 기대된다.

 

 

 

 

 

 

 

 

 

 

 

 

 

에디터가 이야기하는 도시의 사생활 궁금하다.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최민석의 에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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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려면 함께 가라 - 피자헛, KFC, 타코벨을 성공으로 이끈 얌브랜드의 혁신 전략
데이비드 노박 지음, 고영태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책 <이기려면 함께가라>는 외식브랜드인 피자헛,KFC,타코벨의 모기업인 얌브랜드의 CEO인 데이비드 노박이 쓴 저서이다. 그는 혼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교육 프로그램인 '함께 나아가기'를 개발했다. 이 책은 바로 '함께 나아가기'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기는 팀을 만드는 기본기부터, 강력한 열정과 신뢰를 심어 주고,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며, 잠재력과 충성심을 극대화하는 활용법을 소개한다. 

 

책 Part1에서는 리더의 마음가짐으로 자기 자신이 되라, 열정적인 학생이 되라, 신뢰의 힘은 강력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진정성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진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복잡한 문제다. 본래의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자신감과 지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아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 타인에게 투사하고 싶은 이미지를 고민한다.

자기 자신이 되라는 말이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주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적절한 방법과 시기를 찾아야 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힘이 된다. 자신을 꾸미지 않고 정직하고 개방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또한 리더의 솔직함은 구성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공개하는 리더를 위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기여할 것이며, 그들이 곧 지지자가 될 것이다.

 

"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이 되는 능력을 "특별한 진정성"이라고 칭한다. 리더는 언제나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하지만, 동시에 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필요도 있다."

 

열정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지식과 아이디어를 우선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팀원들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다. 왜 배움이 중요할까? 더 많은 것을 알수록 더 좋은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상에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려고 굳이 애쓸 이유가 없다.리더는 직원들이 두려움 없이 의견을 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는 문화는 곧 보상과 연결된다. 또한 리더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칭찬해 주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칭찬은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솔직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모르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즉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유대감이 돈독할수록, 그가 당신을 지지하고 도와줄 가능성도 커진다.

 

책의 Part2에서는 훌륭한 리더가 되기위한 실행의 단계를 이야기한다. Part2에서는 있는 그대로 말하라, 비전을 제시하라, 협력을 얻어내라, 이기는 조직을 만들어라, 함께 성공해야 한다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목표를 달성한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설득력 있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의 비전을 자신들의 목표로 체계화하면 더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다. 참여 없는 헌신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비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목표를 달성했을 떄 얻게 되는 혜택이나 결과, 원하는 미래의 못브이다. 만일 당신이 성취하고 싶은 비전을 만들고,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문화는 만드는 것이다. 진정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싶다면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저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기업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문화가 필요하다. 직원들이 즐거우면 고객도 행복해지고, 그 결과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문화가 성공적인 기업이나 팀의 토대가 된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과를 이끄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문화다.

 

책의 Part3에서는 리더로서 활력을 유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Part3에서는 변화를 홍보하라, 장애를 극복하라, 인정하고 보상하라, 변화에는 끝이 없다는 주제로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다. 고객들에게 새로운 상품을 팔듯이 직원들에게 당신의 목표를 인식시키고 변화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성공을 향하는 길에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보지 못한 걸림돌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을 올바르게 추진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측정이 필요하다.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성과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동기를 부여해 준다. 언제나 배울 점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넘친다. 변화에는 결코 끝이 없다. 끊임없는 변화가 자신을 개발하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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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뱀파이어 스토리콜렉터 12
크리스토퍼 판즈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책 <대통령의 뱀파이어>는 <블러드 오스 : 피의 맹세>에 이은 2편이다. 1편인 소설 <블로드 오스 : 피의 맹세>는 초자연적 존재들로부터 대통령과 시민들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뱀파이어 케이드, 그리고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젊은 정치인 잭의 활약상을 그린 뱀파이어 작품이다. 뺀질한 바람둥이 정치인과 최강 뱀파이어 비밀요원의 결합이 만드는 신선한 이야기 소재가 소설을 읽는내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책 <대통령의 뱀파이어>에서는 1편에 나왔던 파트너인 잭과 뱀파이어 케이드가 등장한다. 초자연적 존재로부터 대통령과 시민들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뱀파이어 케이드는 정체불명의 도마뱀과 싸우면서 도마뱀 바이러스를 알게된다. 또한, 2편에서는 그림자 기관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등장한다.

 

"그림자 기관이 그의 나이만큼 오랫동안 활동해온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케이드는 오직 즉각적인 위협에만 집중해왔다.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적은 우거진 숲속에 몸을 숨긴 짐승만큼이나 찾기 힘들다. 눈앞에 정면 공격이 펼쳐지기 전까지 음모는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달려드는 어떤 적도 가볍게 물리칠 수있다고 믿을 만큼 오만했고, 또 능력이 있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 믿음을 산사이 깨어버릴 때까지 그는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뿐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떠오르는 위협은 무시할 수 없었다. 과거에 인간의 무능함이나 탐욕, 사악함, 악의 정도로만 일축했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서로 뒤얽히기 시작했다. 따로 놓고 보면 그저 그의 길고 요상한 인생을 구성하는 단순한 사건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합쳐놓으면 지금껏 존재조차 몰랐던 적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세상 이면의 어딘가에 숨어 그를 지켜보고, 행동하고, 대응과 무시라는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악당의 모습이. 이 상대의 모든 것은 비밀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림자 기관이 존재의 흔적은 지우려애쓸 때마다 오히려 그들을 덮고 있던 가림막이 조금씩 걷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점점 과감하게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그 모습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명백했다. 응시할 곳을 제대로 짚기만 하면 그것은 배경 속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발견되면 두 번 다시 숨을 수도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자 기관의 인물인 북에 대한 특징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감정을 이입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어떤 행동들이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지도 알고 있었다. 단져지는 모든 가상적 상황에서 그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릇된 옵션을 선택했다. 다른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과 달리 그의 그런 선택은 뒤틀린 이기심이나 미래의 이득 따위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북은 선발 과정을 마저 거치지도 않은 채 그림자 기관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사디스트가 아니었다. 그가 품은 악의는 순전히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타고난 재능이나 다름없었다. 생전 처음 쥐어본 바이올린을 능숙하게 연주해내는 천재적 명연주자처럼, 북은 대번에 상대의 약점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졌다.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역시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그레이브스가 케이드에게 한 대사가 인상적이다. 한 나라가 갖는 커다란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역사의 결과는 뒤바뀔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힘을 우연히 갖게 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신의 은총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건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린 이 엄청난 힘을 얻기 위해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일으킨 모든 전쟁들, 소소한 잔혹 행위들, 지뢰 줍는 아이들. 하지만 우린 아직 갈 곳이 멉니다. 베트남전, 아니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우린 전쟁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본 적이 없어요. 세상이 느끼는 고통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얘깁니다. 우린 빚을 지고 있어요. 우리가 누구에게 그걸 갚아야 하는지 당신도 알 겁니다."

 

인간에게 감염되는 도마뱀 바이러스, 그림자 기관의 위협으로부터 잭과 뱀파이어인 케이드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그림자 기관의 그레이브스라는 인물을 통해 특히 정치적 권력과 암투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레이브스에게는 원자재로 쓸 인간들이 필요했다. 갑자기 사라져도 세상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재소자들 대부분은 불평가, 존재감 없는 유령 인간, 노숙자, 정신병자, 방랑자, 또는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반갑지 않고, 잊힌 사람이라고 어딘가에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가 한둘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전장이나 포로수용소에서 실종된 이들도 군의 전산 시스템과 등기 명부에 올라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지 않고 함부로 끌고 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 각지에서는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교전 지역에서, 또는 재난 지역에서 그런 아이들을 수십 명씩 데려와도 세상은 크게 호들갑 떨지 않았다. 케이드는 진작부터 그레이브스가 아이들을 이용해 뱀머리 괴물을 만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레이브스는 이 아이들을 바이러스 배양기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끔찍한 공포를 만들어내기 위해 희생되고 있는 포근한 둥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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