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 도심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빈부격차
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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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제의 핵심은 모순이다. 사람과 돈이 도시로 모이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은 심화된다. 부동산은 폭등하고 임극격차는 커지고 중산층은 무너진다. 그렇다고 도시를 없앨 수는 없다. 도시가 형성되고 자본과 인재가 모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위기가 도시에서 비롯되었다면, 해결책도 도시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쓴 책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는 오늘날 경제의 핵심 중추로 자리 잡은 현대 도시가 가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이 책은 '1장 도시의 모순, 2장 승자독식 도시화, 3장 엘리트의 도시, 4장 젠트리피케이션, 5장 도시 불평등, 6장 서열화 확대, 7장 모자이크 대도시권, 8장 교외지역 위기, 9장 글로벌 도시화 위기, 10장 모두를 위한 도시화'라는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새로운 도시 위기의 실제적인 핵심은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도시 엘리트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훨씬 더 열악한 도시인들의 경제적 고립과 불안 증가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결국 세계의 많은 대도시를 바꾸고 있는 것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슈퍼 갑부가 아니라 대거 교외지역의 집을 팔고 슈퍼스타 도시의 콘도, 아파트, 타운하우스를 구입한 스타트업 창업자, 벤처 자본가, 고임금 기술 전문가를 포함한 풍족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도시를 떠나는 사람은 비교적 소수이며, 전반적으로 이들 도시의 주택가격을 끌어올리는 도시회귀 현상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도시회귀 현상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담을 준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중매체의 집착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 만성적이고 누적된 도시 빈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자체와 새로운 도시 위기의 심층적인 역학을 이해하는 전제조건으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은 미국의 새로운 계층의 지형적 분호가 특별히 도시 공간에 나타난 것이며, 또한 가장 활발하게 재도시화 과정이 일어나고 도시 공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장소에서 가장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많은 주목을 끌고 있고 비싼 슈퍼스타 도시와 태크허브 도시의 중요한 문제다. 이런 도시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유발하는 고통은 실제적이며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훨씬 더 긴급한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거의 관련이 없는 훨씬 더 많은 지역에서 인종적으로 집중된 가난이 계속 심화되는 문제이다.

변화에 반사적으로 저항하거나 새로운 도시 전입자들을 공격하기보다 더 적절한 대응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지역, 특히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지역에 대한 투자를 막는 것은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 사실, 도시 정책의 실제적인 과제는 도심의 경제적 재활을 도모하는 시장의 힘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주택 옵션, 경제적 기회, 지역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의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 질서의 최상이 계층의 과도한 승자독식과 최하위 계층의 고질적인 빈곤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것은 세계화, 자동화와 같은 경제의 커다란 구조적 변화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회적 합의를 무효화하고 미국 노동자의 임금을 축소해온 정책적 선택-세금과 복지 혜택의 축소, 반노동조합의 조치-의 결과이기도 하며, 이런 선택은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되돌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경제 성장을 만드는 요인이 바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도시 위기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은 도시 경제의 우발적인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특징이다. 불평등과 경제 성장은 동일한 경제 동력에 의해 발생한다. 집중과 성장이 함께 가듯이 집중과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은 도시가 성공하면 따라붙는 역설적이고 고통스러운 지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집중은 경제 성장에 필요하지만 불평등은 그렇지 않다.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성장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런 노력은 더 많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불평등과 성장의 관련성은 사전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도시도 선택권이 있다. 그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도록 허용하여 최하층 사람들이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아니면, 경제 성장을 희생시키지 않는 재분배 정책이나 다른 정책 도구를 이용하며 불평등과 싸우면서 성장을 확대할 수 있다."

저자는 소득 분리는 가장 부유한 지역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분리적인 행태를 보인다. 부자들은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 장벽을 쌓아 가난한 집단들과 불리시킬 자원이 있다. 부자들은 경기를 관람할 때 전용 고급 좌석을 차지하여 붐비는 옥외 관람석에 앉은 대중들과 자신을 분리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소득에 따른 분리에 더하여 사람들은 교육수준에 따라 분리된다고 이야기한다. 교육은 우리의 소득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며 소득이 제공하는 혜택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큰 장애에 부딪힌다. 이밖에도 저자는 우리의 삶은 교육과 소득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형성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노동은 소득을 발생시키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적 분리의 결합은 치명적이다. 이것은 상위계층의 혜택을 강화하는 한편 하위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심화 및 지속시킨다. 이 둘을 함께 고려하면, 이것은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기회의 영속적이고 역기능적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기회의 차이는 세대를 지날수록 더 악화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더 부유한 지역에 살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나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 오늘날 젊은 성인에게도 부모의 수입은 자신의 주거지역을 선택하는 데 핵심 요소가 되었다. 슈퍼스타 및 테크허브 도시의 과도하게 비싼 주택가격은 점점 더 많은 젊은이가 그곳의 주택을 구입할 수 없게 되는 걸 의미한다. (...) 계층과 주거지의 위치는 현재만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 결헙하여 서로를 강화한다."

저자는 다양한 유형의 경제적 분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몇몇 유형의 대도시 지역에 더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경제적 분리를 규모가 크고 인구밀도가 높고 경제적으로 성공적이며 다양성이 높은 대도시에서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이런 결과는 새로운 도시 위기의 핵심적인 모순을 반영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즉 대도시는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높은 임금을 제공하고, 첨단기술 산업과 최고의 인재가 가장 많이 모이고, 인구 밀도가 가장 높고, 가장 많은 대중교통을 제공하고, 가장 다양한 문화가 있고,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적 분리가 가장 심한 곳이다.

저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충격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백인, 저학력자, 종교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리적으로 보면 그의 지지자들은 주로 백인과 저학력자가 많았으며, 일반적인 공장 노동계층과 서비스계층이 집중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불안정성이 큰 카운티의 거주자들이었다. 저자는 교외지역에 나타나는 새로운 도시 위기는 실제로 미국 정치를 폭넓게 바꾸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미국의 민주당 지역과 공화당 지역을 실제로 분리하는 것은 주 경계가 아니라 인구밀도라고 말한다. 과거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는 대도시와 인구밀도가 높고 더 많이 도시화한 지역에서 대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반면 공화당 후보자는 인구밀도가 낮은 교외지역, 규모가 작은 도시, 농촌 지역에서 우세했다. 이처럼 인구밀도는 대통령 선거에서 점점 중요한 핵심 단층선이 되었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의 놀라운 승리는 이처럼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교외지역, 특히 러스트벨트에서 상당한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오랫동안 유지됐던 민주당의 푸른 장벽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에서 승리할 수 잇었다. 이 주들은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통과되고 토론토에서 롭 포드가 등장할 수 있게 만들었던 곳들과 같은 유형의 지역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교외지역의 심각한 위기가 초래한 깊은 정치적 불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경고다."

저자는 교외지역의 위기는 오랜 기간 지속됐던 값싼 성장의 시기가 끝났음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성속한 도시에 새로운 지하철, 터널, 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비용에 비하면 미개발 지역에 도로와 인프라 시설, 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하는 아주 값싼 방법이었고 이는 현재도 여전하다. 교외지역 확장은 값싼 경제 성장의 핵심 엔진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에는 확산이 아니라 집중이 혁신과 경제 성장의 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교외 지역의 위리를 극복하고 경제적 번영을 회복하려면 교외지역이 인구가 더 밀집되고 더 환경친화적인 공간이 되고, 토지이용이 더 복합적이고, 대중교통으로 도심지역과 더 많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교외지역에 살기 원하지만 교외지역의 성장은 도시화한 지식 경제의 수요와 부합하지 않는다. 국가의 귀중한 생산 역량과 부가 지속가능하고 질 높은 성장에 꼭 필요한 지식, 기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투자하는 대신, 가구당 세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교외지역에 주택을 건설하고 유지하고 그것을 지원하는 도로와 추가적인 외곽지역을 개발하는 데 너무 많이 낭비되고 있다. 교외지역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절정이나 경제 성장 엔진이 아니다."

저자는 대규모 빈민 지역이 계속 유지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오늘날 가장 빨리 도시화하는 지역 중 가장 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개발되지 않은 곳이며, 반면 1세기쯤 전에 도시화한 지역은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곳이었다. 둘째, 지금 세계는 훨씬 더 넓어졌고, 더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가장 많이 도시화하고 있는 지역들은 인구가 가장 많이 밀집한 곳이다. 셋째, 상당수의 도시화는 사람들이 전쟁, 내전, 극심한 폭력, 자연재해를 피해 기존 도시로 대량 이주한 결과다. 저자는 이주자들의 대량 유입은 그들을 흡수할 수 있는 도시의 능력을 쉽게 초과하고, 그 결과 엄청난 수의 새로운 이주자들은 결국 대규모 빈민 지역의 열악한 주거지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넷째, 세계와 자체가 도시 빈민을 확대시킨 범인이다. 광범위하게 연결된 세계 무역체계의 발전은 과거에 보다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달성했던 도시, 지역 농업, 지역 산업 간의 오래된 연결을 파괴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열악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이나 창의성이 아니라 그것을 더 나은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결국 이런 지역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과 지역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활용하고 증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 시설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급격하게 도시화하는 많은 도시의 빈민들은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더 폭넓은 경제적 기회로부터 단절시키는 도시 외곽에 갇혀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농촌 지역에서 이주하는 가난한 사람, 특히 아프리카의 팽창하는 도시로 향하는 이들 중 다수는 흔히 도시가 제공하는 기회를 만나기 어려운 도시 주변의 빈민가나 임시 주거지역으로 유입된다.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은 대개 인구밀도가 높긴 하지만, 카이로, 델리, 콜카타, 마닐라, 뭄바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들은 도시 외곽이 확산하는 속도도 서구의 도시보다 훨씬 빠르다.

"도시 문제 해결의 핵심은 연결성이다. 기본적인 인프라, 가령 포장 도로나 대중교통을 추가하기만 해도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도시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법 거주 지역과 택지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도시 블록의 평균 크기는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 도시가 훨씬 더 크다. 그러면 도로 건설에 필요한 충분한 토지가 배분되지 않는다. "

저자는 전 세계 도시의 새로운 이주자들, 그리고 도시 주거지역과 정부는 성장과 발전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혼자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국제 개발 정책은 도시와 도시 건설을 핵심 주제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국가가 아니라 도시가 경제 및 사회 발전의 기본적인 원천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전 지구적 도시화는 세계가 당면한 엄청난 도전과제 중에서 가장 큰 과제이며, 기후 변화, 에너지 이용, 빈곤, 경제적 기회와 같은 커다란 위기와 과제에 영향을 주고 또 여러 측면에서 이것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더 생산적이고 더 번영하며, 더 지속가능하고, 더 사회통합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당면한 과제 중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새로운 도시 위기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많은 측면에서 새로운 도시 위기는 그동안의 엄청났던 미국의 변방 개척이 최종적으로 끝났음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확장은 더 이상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신뢰할만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오늘날 미국 경제의 회복은 도시와 교외지역의 더 집적되고 밀집된 성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의 위기가 도시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해결책도 도시다. 만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을 누리려고 한다면 더 온전하고 공평하게 도시화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필요한 투자 규모는 벅찰 정도이지만 역대 최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이미 사용하는 자원을 활용한다면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새로운 중산을 만들려면 수천만 명이 힘들게 종사하는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를 고임금 일자리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새로운 도시 위기 중 가장 고통스럽고 심란한 문제는 도시와 교외 지역 모두에 고질적이고 집중된 빈곤이 확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재의 빈곤퇴치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나는 사람중심 접근방법으로 가난한 가정에 자원을 제공하거나 그들이 더 좋은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소중심 접근방법으로 학교에 투자하고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범죄와 폭력을 줄임으로써 열악한 지역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도시 위기는 역사적인 분수령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도시, 교외지역, 국가가 지속가능하고 사회통합적인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 것인지, 아니면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과 계층 분리의 희생자가 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승자독식 도시화의 분리와 모순을 원하는지, 아니면 더 온전하고 더 공평한 모두를 위한 도시를 원하는지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문제이며 싸움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경제와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도시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함께 모여 지역사회를 구축함으로써 매 단계의 인간 진보를 이끌어왔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도시 주도의 성장이라는 유리한 기본적인 논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한 직선 형태로 항상 진보하지 않는다. 새로운 경제 질서의 등장과 그것을 안정화하고 그 혜택을 더 폭넓은 집단에 확산하는 제도와 정책의 확립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오랜 시차가 존재한다. 우리의 마지막 황금시대-1950년대의 대규모 중산층의 등장-은 산업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한 후 한 세기 동안의 노력과 투쟁의 산물이엇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경제적 진보와 번영의 길은 우리의 도시와 더 낫고 더 사회통합적인 도시화의 등장에 달려 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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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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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에서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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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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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인류를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불멸의 방법을 찾던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인공지능으로 나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심지어 똑같이 생각하도록 만든 '디지털 클론'을 디지털 세상에 살려놓는 것이 그 방법이다. 전 세계의 개방자들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의 내밀한 대화부터 인간의 뇌까지 디지털 세상에 그대로 옮겨놓는 기술을 완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의 영혼만은 계속 살려두는 것이다.

<두 번째 인류>의 저자들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삶과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디지털 클론을 만들었거나, 디지털 클론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디지털 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듣는다. VR로 죽은 딸을 다시 만난다는 내용으로 전 세셰적 화제를 몰고온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부터 돌아가신 아버지를 인공지능으로 되살린 '대드봇', 죽은 친구를 스마트폰 앱으로 관생시킨 '고 로만', 자신의 삶, 기억, 생각까지 전부 기록하는 '메멕스', 7만 개의 클론이 살아가고 있는 '이터나인' 등 실제 디지털 클론으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잇다. 2부에서는 실제로 디지털 인간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만나 기술 개발의 현주소를 묻는다. 인공지능이 더욱더 사람처럼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 모델 개발, 비언어적 표현의 학습부터 디지털 클론이 모방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뇌과학 연구와 뇌 에뮬레이션이라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까지 전 세계 인공지능 개발의 최첨단 기술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1장 인간 유한성의 끝, 2장 불사의 몸이 된다는 것, 3장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4장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다, 5장 축복받은 자들의 섬, 6장 잊고 싶지 않아, 7장 산 채로 묻히다, 8장 영혼이 죽어서는 안 된다, 9장 육신에서 벗어나다, 10장 인공적인 언어, 11장 인공지능과 의식, 12장 진정한 나, 13장 잊을 수 없음, 14장 영원한 삶'이라는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5년쯤 전부터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각 대화창마다 다른 자아를 보이며 매일 같이 스마트폰에 의식의 흐름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국의 선전부터 루마니아의 이아시, 미국의 패서디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지의 개발자들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의 내밀한 대화에서 추출한 개인의 성격은 물론 인간의 행동 양식까지 활용해 모방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 세계 수많은 국가을 여행하며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종교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불멸성을 추구하는 선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디지털' 불멸성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도 내면만은 계속 살려두는 것이다. 마치 SF 영화의 줄거리처럼 들리지만 이런 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과연 이런 미심쩍은 기술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이 기술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디지털 세상에서 '불멸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디지털 복제 인간(클론)으로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이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자신들이 만난 소니아와 제임스가 제임스 본드 영화 <007 골든아이>의 공동 각본가인 앤드루 캐플런에게 마치 넷플릭스를 구독하듯이, 미래에는 유가족들이 매달 못 이용료를 지불하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이 묏자리나 납골당을 임차해 이용하는 것처럼 고인의 봇을 구독하는 것이다.

"대드봇과 맘봇은 과거의 끊임없는 속삭임, 누군가가 살았던 삶의 끊임없는 흐름, 그 사람이 살면서 말하거나 들은 모든 내용의 집약체로서 원래대로라면 그냥 사라졌을 고인의 목소리를 입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존재다. 어떤 사람의 삶이 스릴러인지 삼류 영화에 가까울지 한편의 시와같을지 아니면 허무맹랑한 연극일지는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 달렸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 경험은 같은 것일지라도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가 겪는 것은 다르다. 저자는 어떤 사건이나 경험의 마지막이 우리의 기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카너먼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밝혀낸 수많은 기억 왜곡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연구 결과로 인간의 기억이 기록으로서 얼마나 신뢰도가 낮은지 알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더 안전하고 풍부하게 만들 해결책으로 기술적인 도움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왜 기억이라는 것을 그토록 가치 있게 여기는지, 누군가가 우리의 기억을 의심하거나 지적하면 왜 기분이 나쁜지, 왜 우리는 그토록 완고하게 우리의 기억이 맞는다고 우기고 또 때로는 기억을 반대로 기억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는데 자신이 여태까지 경험하고 듣고 보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한 것들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여태까지와 같은 성격, 의견, 선호도, 관심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같은 약점, 결핍, 허점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기억을 잃으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된다. 나 자신이 지금 여기에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존재와 행동에서 비롯된 여태까지의 인생사가 없다면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나를 어떤 인간으로 생각하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기억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경험과 모든 사건이 나를 나로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을 잃거나 더 이상 기억을 믿지 못하게 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저자는 '경험'하려면 우리를 둘러싼 변하기 쉽고 무상한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저자는 때때로 이런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영혼에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측정하는 일에서부터 멀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려야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려고 할수록, 우리 삶을 더 최적화하려고 할수록, 행복을 극대화하려고 할수록, 삶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기를 더 감시하려 할수록 우리는 그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해질 수 없는 좀비가 될 위험이 커진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며 웨어러블 기기로 항상 자신의 상태를 측정하는 행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야만 한다는 운명을 공유한다. 즉, 우리는 죽어야 하는 자들의 공통체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죽은 이후에는 어떨까? 영혼이 올라갈 천국 없이도 죽은 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신체가 없는 영혼들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인터넷만한 곳이 또 있을까? 불멸의 디지털 영혼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비장소로서 보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저자는 인터뷰를 하러 다니느라 온 정신을 기울이며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의 세상은 자신들에게는 생소한 곳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술로 우리 삶을 영원히 연장하기를 꿈꾸고 인간이 곧 클라우드에게 계속 살게 되리라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그곳의 인간은 데이터로 만들어졌으며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졌다. 섬뜩하고 수상한 세상이다. 저자는 지금 전 세계의 기술 연구소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아이디어, 그 모든 것이 생겨나기 전에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놓여 있으며, 지금과 같은 기술 맹신을 우리를 어디로 이끄며,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을 우리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독자에게 질문한다.

저자는 1993년 7월 13일, 리버풀에서 태어난 제임스에 대해 소개한다. 그는 양쪽 발과 한쪽 손의 피부가 없는 상태였다. 제임스는 아주 희귀한 유전적 결함인 수포성 표피박리증을 앓고 있었다. 이 질환은 어딘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는 병이다. 갓 태어난 아기 제임스의 피부는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너무나도 약했다. 제임스는 약한 피부 때문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저자는 간호사는 제임스의 부모에게 EB를 앓는 사람들은 대개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 사망하며, 또한 대부분은 암에 걸린다고 알려주었지만 밝고 활기찬 제임스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도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임스가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늘 기술이었다. 특히 인터넷은 제임스에게 축복이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제임스의 약한 신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그는 '환자'가 아니라 '원래 모습'인 유머 감각이 있고 재치 있으며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인물이었다. 제임스는 스물한 살 때 온라인 채팅방에서 미국 텍사스에 사는 맨디를 만났다. 두 사람은 온라인 연인이 됐다. 제임스는 원래 피부로만 느끼던 간지러운 감각을 마음으로도 느끼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신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반드시 영원토록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자아도취적인 꿈이거나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 세상에 여태까지처럼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죽은 후 남은 가족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인지 깨달았다. 예를 들어 무거운 병을 앓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만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디지털로 남겨두길 원하는 부모들은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우르자헤가 세운 스타트업이나 이터나임, 히어애프터를 비롯한 많은 온라인 서비스 업체의 주요 고객이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이런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진정성이란 결국 영혼이라고 말한다. 인간 또한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심각한 질병, 트라우마, 다른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음식부터 예술을 넘어, 영혼의 수행부터 성과 성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과 나 자신에게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이기 위해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 구성하고 짜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흥미롭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모가 변하듯이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이며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오리지널이다.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의 디지털 클론을 만들려는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문이 아닐까? 만약 인간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누구를 클론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어느 날 디지털 클론이 더 잇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구식 버전으로만 남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저자는 모든 것이 인터넷에 저장되어 낡거나 지워지거나 흐릿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 두 번째, 세 번재, 네 번째 기회가 나타날 희망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타불라 라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깨끗한 상태의 판자를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인생의 판자를 뒤집어 다시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프트 파워', 즉 분산되어 비동시적으로 실행되는 형태의 권력이야말로 지배 권력의 미래라고 말한다. 저자는 확실한 점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자가 디지털 부활자가 된 고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 또한 결정하리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래에 우리는 살아 돌아온 고인들과 과거의 경험이나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디지털 존재가 된 고인들이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그랬을 방식으로 새로운 사건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러면 인지 편향(소망, 소원, 자기기만) 때문에 고인을 그들의 새로운 행동 양식에 따라 재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마치 우리가 사랑했던 고인인냥 생각, 행동, 소망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전혀 무관한 타인의 목적인 담긴(혹은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 조종과 조작에 저항력을 잃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술이 진짜와 인공적인 것 사이의 빈틈을 더욱 촘촘히 매우는 데 성공하수록, 그리고 버추얼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신체가 있는 존재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성공할수록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오리지널'인지 아니면 디지털 클론인지가 점점 덜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아무리 학습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리지널과 클론, 본보기와 복제품, 현실과 상상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저자는 그러다가 결국 사람들은 차이점을 찾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고 지치는 일인지를 깨닫고 시뮬레이션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에는 큰 위험이 숨어 있는데, 허구가 '대안적 사실'이 되면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왜곡을 사용해 새로운 인종차별, 혐오, 선동을 손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지털 불멸성이라는 아이디어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이 망상의 산물 이상의 존재였던 적이 없지만, 신 또한 상상의 존재 이상이었던 적이 없지만, 천국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 또한 신앙심에서 우러난 소망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가정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믿으려는, 인간을, 그리고 대단히 무의미한 일이기는 하나 자신이 가장 많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찾으려는 인간을 막지는 못했듯이 말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깊은 욕구 때문에 디지털 영혼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제 더 이상 종교도 우리에게 그런 의미를 제시할 수 없고, 신경과학은 심지어 우리에게서 그 의미를 거칠게 빼앗으려는 중이다. 대부분 사람은 우리가 '나'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호르몬의 칵테일이자 착각으로 왜곡된 이미지이자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살지 못한다. 매순간 언제든 삶이 갑자기 끝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모든 기능이 멈춘 신체의 부패밖에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부활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클릭 한 번에 삭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와 이성이 모든 형태의 미신과 모든 시대의 종교를 없애버린다고 잘못 믿고 있는 바로 그곳, 실리콘 밸리에서 발생한 신화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넘어간다. 그곳의 신도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을 위한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의 불가사의한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점점 더 몸집을 키워 가는 이 신화를 결코 웃으며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신화는 위력적이다. 진실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신화는 아직 발생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종교의 탄생 설화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영혼의 르네상스다.

인류에 관한 태곳적 개념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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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9
주형일 지음 / 한국문학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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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용하기 위한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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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9
주형일 지음 / 한국문학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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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미디어란 생활의 필수재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의 일상 속 곳곳에 미디어가 스며들어 있다. 미디어는 모든 정보의 원천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셜미디어 중독, 사이버 불링, 가짜 뉴스 등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미디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출판사 한국문화사의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제9권 <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는 역사 속 미디어의 궤적부터 최첨단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현상까지 두루 살펴보면서 디지털 원주민에서 필수적인 역량으로 자리 잡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은 미디어 관련 진로를 앞두고 있는 청소년, 보다 능동적인 미디어 생비자로 살고자 하는 디지털 시민들에게 진정한 미디어 리터러시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이 책은 '1장 디지털 시대를 사는 힘, 미디어 리터러시, 2장 격동의 역사 속에 미디어가 있었다, 3장 영화가 보여주는 미디어의 겉과 속, 4장 디지털 혁명, 인류를 초연결 사회로 만들다, 5장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미디어 효과의 모든 것, 6장 기호를 알면 미디어가 보인다, 7장 차이와 갈등을 넘어 소통하는 미디어'라는 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미디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가장 기본적인 미디어인 우리의 몸에서부터 오늘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를 이용해 우리는 상호작용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 삶을 영위해간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미디어를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리터러시(literacy)는 문해력을 뜻하는데,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더 나아가 문장을 이해하고 글을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저자는 최첨단 디지털 환경하에서 건강한 시민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필수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시민들은 미디어 콘텐츠를 활동을 감시하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콘텐츠를 비평하고 미디어 활동을 감시하는 능동적 이용자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정보를 찾고 평가하며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 '디지털 리터러시'는 코딩 기술에서 시작해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사회를 살아가는 디지털 원주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디지털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디지털 원주민 세대는 미디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디어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관계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능력'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디어의 발명과 발전은 단순히 기술과 지식이 축적된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진화하는 과정에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사회적, 문화적 요구와 필요성이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을 부추긴다. 동시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지배하는 미디어의 속성은 사화외 문화가 형성되고 유지, 발전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근대의 정신은 인쇄술의 발명을 촉진해고, 인쇄 미디어는 근대의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의 미디어에 비해 새로운 미디어가 더 우수한 것은 아니며, 새로운 미디어가 과거의 미디어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종이책은 전자책과 공존하고, 편지는 이메일과 공존하며, 오프라인 영화관은 OTT와 공존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확산은 과거의 미디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전 미디어가 가지고 있었던 기능과 역할을 변경한다. 책은 말을 좀 더 놀리정연하게 만들었고, 텔레비전은 영화를 좀 더 화려하고 거대한 스펙터클로 탈바꿈시켰다. 텔레비전에 맞서기 위해 영화 스크린은 대형화되었고, 소리와 음향 기술은 더 생생하고 현장감을 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미디어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와 맞물리며 전개된다. 미디어는 인간의 몸과 정신을 확장하면서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다. 사람과 세상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공간을 더 빠르고 더 가깝게 경험하며 한다."

저자는 사방에 편재하는 디지털 미디어는 사람들을 항시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참여'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사용자가 엄청난 양의 정보에 쉽게 접근하 수 있도록 해주면서 동시에 정보를 쉽게 조작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의 단편들을 모아 자신의 방식으로 고치고 수정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든다. 저자는 브족사회의 특징적 활동인 '브리콜라주'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은 디지털 시대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으로 장착되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파급력이 큰 분쟁에 대해 텔레비전은 획일적이고 규범적인 내용을 보도하지만, 1인 미디어 채널들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의결들을 표출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1인 미디어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기억한다. 저자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수많은 다른 기억이 공존하고, 다른 사건에 대한 다른 경험이 각각의 '작은 마을'안에서만 공유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세계의 지구촌이 해체되고 사람들이 다양한 속성과 가치관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부족화'가 나타났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가 만들어낸 수많은 부족사회가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고 이야기한다.

"브리콜라주는 프랑스 말로 여러 가지 도구와 재료를 이용해 필요한 것을 만드는 작업을 의미한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부족사회 사람들은 당장 손에 잡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디지털로 전환된 아날로그 콘텐츠와 새로 제작되는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것에 멈추지 않고 콘텐츠를 수정, 해체, 혼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일상적 활동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다수의 송신자와 다수의 수신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실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미디어를 소유하고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세계의 모든 사람을 향해 송신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은 오히려 분열되고 해체된다."

저자는 영화는 발명된 이후로 지금까지 현시과 관련해 두 가지의 상반된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한다. 에드슨이나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초기의 영화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뒤 상상의 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픽션 영화가 영화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영화는 한편에서는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운 현실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미디어의 역할을 요청받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고 상상하는 꿈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주는 미디어의 역할도 부여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안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영화는 실재하는 현실로부터 나온 영상일 뿐만 아니라 현실처럼 보여야 하는 것에 대한 영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미디어의 세계는 '미디어의 현실' 그 자체일 수는 없지만 동시에 '미디어의 가능한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허구의 세계를 재현하지만, 그 허구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저자는 시청자들은 자기 집 거실 소파에 앉아 타인의 비극, 곤경, 치부, 고통을 안전하게 시청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텔레비전 방송사는 시청자의 욕망에 편승해 선정적으로 자극적인 영상을 방송하면서 시청률을 올리고 수익을 극대화한다. 저자는 카메라 영상의 속성, 시청자의 욕망, 방송사의 영리 추구가 한데 모여 뉴스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위한 콘텐츠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최근에는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을 이용한 1인 미디어가 지배적인 미디어로 부상하면서 상업적 목적을 위해 선정적, 폭력적 영상을 이용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게다가 돈벌이를 위해 조작하고 연출해서 만든 가짜 뉴스까지 활개를 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시각적 자극만을 즐기는 구경꾼이자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는 한 우리의 은밀한 욕망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높은 조회수를 유도하고 많은 구독자 수를 확보해 소득의 안정성을 얻고자 하는 1인 미디어 창작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해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게다가 직업의 불안정성이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무모하고 충돌적인 행동, 불안과 우울,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공적인 언론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것도 1인 미디어 콘텐츠의 선정성과 반사회성이 확산되는 배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소셜미디어와 1인 미디어의 사용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한 범죄나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은 문제들의 발생 빈도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한편에서는 개인 정보 유출을 조심하고 프라이버시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고 사생활을 공개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프라이버시 패러독스'라고 부르며, 사람들은 개인 정보 유출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작은 금전적 보상에 쉽게 해인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집 거실에서 가족 모임을 하며 촬영한 사진을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개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온라인 활동은 오프라인보다 더 편하고 자유롭고 간편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쉽게 감시되고 측정되고 추적될 위험성이 공존한다. 온라인에서는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든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판을 관리할 필요를 느낄 때 비로소 온라인 활동을 제어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즉,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필요와 제약이 온라인 활동을 제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1세대 SNS로는 싸이월드, 블로그와 같은 제한된 네트워크가 있다고 말한다. 오프라인 인맥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개인 콘텐츠가 주를 이루었다. 저자는 그다음 2004년부터 등장한 2세대 SNS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이 있는데, 관계가 불특정 다수로 확대되면서 선호 콘텐츠를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강화된 특징을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후 2010년경부터 대세오 떠오른 3세대 SNS에는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링크드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시각이나 영상을 중심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큐레이션이 핵심이며, 관심사에 따라 작은 단위의 소셜 플랫폼으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자가 알고리즘이 필터링한 특정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하며, 선택적 노출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필터 버블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자신의 신념이나 태도와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선택적 노출을 구조적으로 조장하는 디지털 미디어 안에서 나와 같은 목소리만을 들으며 안주하기보다는 불편하더라도 필터 버블을 깨뜨리고 더 넓은 세상의 다양한 의견들을 경험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나 훨씬 건강한 일일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1인 미디어 채널, 소셜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생각과 태도가 유사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사람들의 확증 편향이 더욱 강화된다. 그 결과 충분한 토론 없이 쉽게 결정을 내리고, 한번 결정된 것은 바꾸려 하지 않는 경직된 '집단하고', 그리고 집단의 의사결정이 구성원 개개인의 평균치보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집단 극화' 현상이 나타난아. 실제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선택적 노출은 정치적인 양극화를 조장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거꾸로 자신들의 인식의 틀을 편협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벽에 스스로 갇히는 셈이다."

1960년대에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자 조지 거브너는 오랜 기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들이 소비하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의 모습을 현실의 모습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미디어의 '문화계발 효과'라고 불렀다. 대중이 현실세계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실제 현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미디어가 전달하고 보여주는 세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거브너는 당신의 지배적인 미디어였던 텔레비전을 예로 들면서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란이 많을수록 사회 현실이 텔레비전에 묘사된 섹례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거브러는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은 비슷하기 때문에 매스 미디어의 콘텐츠를 과다하고 지속적으로 보게 되면 누구나 세상에 대한 비슷한 미미디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거브너는 이를 '주류화 현상'이라고 불렀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계속 같은 세상을 보여주는 매스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같은 세상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매스 미디어가 세계에 대한 지배적인 주류의 생각과 의견을 만들어 유통하기 때문에 매스 미디어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류 의견에 동조하면서 주류화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매스 미디어에서 보던 것과 유사한 사건을 현실세계에서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은 매스 미디어의 세계를 더욱더 현실이라고 믿게 된다. 저자는 거브너는 이를 '공명 현상'이라고 물렀고, 매스 미디어가 제공하는 사건과 현실의 사건이 일치하면서 사건에 대한 현실감이 증폭되는 현상이 바로 공명리가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사소한 폭력 사건에 휘말려 피해를 입거나 폭력을 목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매스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보게 되면, 현실에서 경험한 사건을 머릿속으로 지속적으로 재생하게 되고, 결국 현실세계를 실재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딥페이크 기술은 사람의 눈으로는 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한 가짜 영상을 만들어낸다. 메타버스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굳이 현실세계의 정체성과 같아야 할 필요가 없다. 디지털 미디어는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멀티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모두가 갖고 있는 비판적 이성의 능력을 이용해 현실의 문제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가 만든 정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그들이 믿는 진실에 확신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진실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목과 투쟁과 갈등이 일어난며, 이러한 갈등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 미디어가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누구나 쉽게 익명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폐쇄적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집단사고와 확증 편향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탈진실 시대에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다. 수많은 1인 미디어 채널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진실을 표출한다. 빅데이터 기반의 AI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신념과 감정에 어울리는 콘텐트를 추천하면서 사용자만의 진실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든다. 서로 다른 진실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이제 하나의 진실이 공유되는 유니버스가 아니라 수많은 진실이 각자의 세계를 구성하는 멀티버스이다."

저자는 탈진실 시대에 모두가 각자의 진실을 가진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탈진실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윤리적 태도는 공감애를 갖고 타인의 진실을 '번역'하면서 이해하려는 태도라고 강조한다. 이때 메시지는 정보만이 아니라 감정을 포함하며,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는 것은 궁극적으로 타인과 함께 이 세상을 산다는 느낌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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