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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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인류를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불멸의 방법을 찾던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인공지능으로 나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고 심지어 똑같이 생각하도록 만든 '디지털 클론'을 디지털 세상에 살려놓는 것이 그 방법이다. 전 세계의 개방자들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의 내밀한 대화부터 인간의 뇌까지 디지털 세상에 그대로 옮겨놓는 기술을 완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의 영혼만은 계속 살려두는 것이다.

<두 번째 인류>의 저자들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삶과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디지털 클론을 만들었거나, 디지털 클론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디지털 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듣는다. VR로 죽은 딸을 다시 만난다는 내용으로 전 세셰적 화제를 몰고온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부터 돌아가신 아버지를 인공지능으로 되살린 '대드봇', 죽은 친구를 스마트폰 앱으로 관생시킨 '고 로만', 자신의 삶, 기억, 생각까지 전부 기록하는 '메멕스', 7만 개의 클론이 살아가고 있는 '이터나인' 등 실제 디지털 클론으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잇다. 2부에서는 실제로 디지털 인간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만나 기술 개발의 현주소를 묻는다. 인공지능이 더욱더 사람처럼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 모델 개발, 비언어적 표현의 학습부터 디지털 클론이 모방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뇌과학 연구와 뇌 에뮬레이션이라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까지 전 세계 인공지능 개발의 최첨단 기술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1장 인간 유한성의 끝, 2장 불사의 몸이 된다는 것, 3장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4장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다, 5장 축복받은 자들의 섬, 6장 잊고 싶지 않아, 7장 산 채로 묻히다, 8장 영혼이 죽어서는 안 된다, 9장 육신에서 벗어나다, 10장 인공적인 언어, 11장 인공지능과 의식, 12장 진정한 나, 13장 잊을 수 없음, 14장 영원한 삶'이라는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5년쯤 전부터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각 대화창마다 다른 자아를 보이며 매일 같이 스마트폰에 의식의 흐름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국의 선전부터 루마니아의 이아시, 미국의 패서디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지의 개발자들이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의 내밀한 대화에서 추출한 개인의 성격은 물론 인간의 행동 양식까지 활용해 모방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 세계 수많은 국가을 여행하며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종교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불멸성을 추구하는 선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디지털' 불멸성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목표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도 내면만은 계속 살려두는 것이다. 마치 SF 영화의 줄거리처럼 들리지만 이런 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과연 이런 미심쩍은 기술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이 기술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디지털 세상에서 '불멸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디지털 복제 인간(클론)으로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이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자신들이 만난 소니아와 제임스가 제임스 본드 영화 <007 골든아이>의 공동 각본가인 앤드루 캐플런에게 마치 넷플릭스를 구독하듯이, 미래에는 유가족들이 매달 못 이용료를 지불하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이 묏자리나 납골당을 임차해 이용하는 것처럼 고인의 봇을 구독하는 것이다.

"대드봇과 맘봇은 과거의 끊임없는 속삭임, 누군가가 살았던 삶의 끊임없는 흐름, 그 사람이 살면서 말하거나 들은 모든 내용의 집약체로서 원래대로라면 그냥 사라졌을 고인의 목소리를 입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존재다. 어떤 사람의 삶이 스릴러인지 삼류 영화에 가까울지 한편의 시와같을지 아니면 허무맹랑한 연극일지는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 달렸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 경험은 같은 것일지라도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가 겪는 것은 다르다. 저자는 어떤 사건이나 경험의 마지막이 우리의 기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카너먼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밝혀낸 수많은 기억 왜곡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연구 결과로 인간의 기억이 기록으로서 얼마나 신뢰도가 낮은지 알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더 안전하고 풍부하게 만들 해결책으로 기술적인 도움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왜 기억이라는 것을 그토록 가치 있게 여기는지, 누군가가 우리의 기억을 의심하거나 지적하면 왜 기분이 나쁜지, 왜 우리는 그토록 완고하게 우리의 기억이 맞는다고 우기고 또 때로는 기억을 반대로 기억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는데 자신이 여태까지 경험하고 듣고 보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한 것들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여태까지와 같은 성격, 의견, 선호도, 관심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같은 약점, 결핍, 허점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기억을 잃으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된다. 나 자신이 지금 여기에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존재와 행동에서 비롯된 여태까지의 인생사가 없다면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나를 어떤 인간으로 생각하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기억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경험과 모든 사건이 나를 나로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을 잃거나 더 이상 기억을 믿지 못하게 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저자는 '경험'하려면 우리를 둘러싼 변하기 쉽고 무상한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저자는 때때로 이런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영혼에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측정하는 일에서부터 멀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려야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려고 할수록, 우리 삶을 더 최적화하려고 할수록, 행복을 극대화하려고 할수록, 삶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기를 더 감시하려 할수록 우리는 그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해질 수 없는 좀비가 될 위험이 커진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며 웨어러블 기기로 항상 자신의 상태를 측정하는 행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야만 한다는 운명을 공유한다. 즉, 우리는 죽어야 하는 자들의 공통체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죽은 이후에는 어떨까? 영혼이 올라갈 천국 없이도 죽은 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신체가 없는 영혼들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인터넷만한 곳이 또 있을까? 불멸의 디지털 영혼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비장소로서 보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저자는 인터뷰를 하러 다니느라 온 정신을 기울이며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의 세상은 자신들에게는 생소한 곳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술로 우리 삶을 영원히 연장하기를 꿈꾸고 인간이 곧 클라우드에게 계속 살게 되리라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그곳의 인간은 데이터로 만들어졌으며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졌다. 섬뜩하고 수상한 세상이다. 저자는 지금 전 세계의 기술 연구소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아이디어, 그 모든 것이 생겨나기 전에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놓여 있으며, 지금과 같은 기술 맹신을 우리를 어디로 이끄며,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을 우리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독자에게 질문한다.

저자는 1993년 7월 13일, 리버풀에서 태어난 제임스에 대해 소개한다. 그는 양쪽 발과 한쪽 손의 피부가 없는 상태였다. 제임스는 아주 희귀한 유전적 결함인 수포성 표피박리증을 앓고 있었다. 이 질환은 어딘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는 병이다. 갓 태어난 아기 제임스의 피부는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너무나도 약했다. 제임스는 약한 피부 때문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저자는 간호사는 제임스의 부모에게 EB를 앓는 사람들은 대개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 사망하며, 또한 대부분은 암에 걸린다고 알려주었지만 밝고 활기찬 제임스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도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임스가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늘 기술이었다. 특히 인터넷은 제임스에게 축복이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제임스의 약한 신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그는 '환자'가 아니라 '원래 모습'인 유머 감각이 있고 재치 있으며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인물이었다. 제임스는 스물한 살 때 온라인 채팅방에서 미국 텍사스에 사는 맨디를 만났다. 두 사람은 온라인 연인이 됐다. 제임스는 원래 피부로만 느끼던 간지러운 감각을 마음으로도 느끼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신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반드시 영원토록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자아도취적인 꿈이거나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 세상에 여태까지처럼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죽은 후 남은 가족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인지 깨달았다. 예를 들어 무거운 병을 앓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만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디지털로 남겨두길 원하는 부모들은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우르자헤가 세운 스타트업이나 이터나임, 히어애프터를 비롯한 많은 온라인 서비스 업체의 주요 고객이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이런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진정성이란 결국 영혼이라고 말한다. 인간 또한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심각한 질병, 트라우마, 다른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음식부터 예술을 넘어, 영혼의 수행부터 성과 성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과 나 자신에게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이기 위해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 구성하고 짜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흥미롭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모가 변하듯이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이며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오리지널이다.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의 디지털 클론을 만들려는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문이 아닐까? 만약 인간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누구를 클론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어느 날 디지털 클론이 더 잇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구식 버전으로만 남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저자는 모든 것이 인터넷에 저장되어 낡거나 지워지거나 흐릿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 두 번째, 세 번재, 네 번째 기회가 나타날 희망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타불라 라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깨끗한 상태의 판자를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인생의 판자를 뒤집어 다시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프트 파워', 즉 분산되어 비동시적으로 실행되는 형태의 권력이야말로 지배 권력의 미래라고 말한다. 저자는 확실한 점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자가 디지털 부활자가 된 고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 또한 결정하리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미래에 우리는 살아 돌아온 고인들과 과거의 경험이나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디지털 존재가 된 고인들이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그랬을 방식으로 새로운 사건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러면 인지 편향(소망, 소원, 자기기만) 때문에 고인을 그들의 새로운 행동 양식에 따라 재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마치 우리가 사랑했던 고인인냥 생각, 행동, 소망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전혀 무관한 타인의 목적인 담긴(혹은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 조종과 조작에 저항력을 잃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술이 진짜와 인공적인 것 사이의 빈틈을 더욱 촘촘히 매우는 데 성공하수록, 그리고 버추얼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신체가 있는 존재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성공할수록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오리지널'인지 아니면 디지털 클론인지가 점점 덜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아무리 학습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리지널과 클론, 본보기와 복제품, 현실과 상상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저자는 그러다가 결국 사람들은 차이점을 찾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고 지치는 일인지를 깨닫고 시뮬레이션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에는 큰 위험이 숨어 있는데, 허구가 '대안적 사실'이 되면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왜곡을 사용해 새로운 인종차별, 혐오, 선동을 손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지털 불멸성이라는 아이디어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이 망상의 산물 이상의 존재였던 적이 없지만, 신 또한 상상의 존재 이상이었던 적이 없지만, 천국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 또한 신앙심에서 우러난 소망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가정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믿으려는, 인간을, 그리고 대단히 무의미한 일이기는 하나 자신이 가장 많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찾으려는 인간을 막지는 못했듯이 말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깊은 욕구 때문에 디지털 영혼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제 더 이상 종교도 우리에게 그런 의미를 제시할 수 없고, 신경과학은 심지어 우리에게서 그 의미를 거칠게 빼앗으려는 중이다. 대부분 사람은 우리가 '나'로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호르몬의 칵테일이자 착각으로 왜곡된 이미지이자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살지 못한다. 매순간 언제든 삶이 갑자기 끝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모든 기능이 멈춘 신체의 부패밖에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부활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클릭 한 번에 삭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와 이성이 모든 형태의 미신과 모든 시대의 종교를 없애버린다고 잘못 믿고 있는 바로 그곳, 실리콘 밸리에서 발생한 신화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넘어간다. 그곳의 신도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을 위한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의 불가사의한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점점 더 몸집을 키워 가는 이 신화를 결코 웃으며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신화는 위력적이다. 진실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신화는 아직 발생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종교의 탄생 설화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영혼의 르네상스다.

인류에 관한 태곳적 개념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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