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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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인 하진(哈金: 본명 金雪飞)의 단편집 <멋진 추락>은 외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뉴욕 플로싱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하나같이 부푼 가슴 안고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에 왔다는 점이다.

 

고국의 가족들 생계를 위해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기꺼이 몸까지 파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고국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에 정착한 아들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대간 갈등을 톡톡히 겪는 노부부도 있다. 


하 진의 <멋짓 추락>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실제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이주민이 세운 나라인 미국 주류 사회에 완벽하게 동화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이들의 '이중생활'은 왠지 낯설지 않다. 바로 우리의 친척 이모나 작은 아빠 혹은 사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지난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이민 붐이 크게 일었었다. 미국에 친인척 한 두명 두지 않은 이들을 찾아 보기가 어려울 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진의 소설 속 주인공들과 비슷비슷한 삶의 모습을 연출했으리라. 집 나서면 친구가 가장 큰 의지가 된다는 중국 속담처럼 해외에 나가면 동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동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직업을 얻고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동포 변호사를 고용해 비자 문제를 해결한다.


사원에서는 승려에게 급료를 주지 않는 게 분명했다. 여기에 오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미국에 가면 한몫 잡을 수 있다고 허풍을 떨며 그들이 여기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때문에 그는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고향 사람들의 눈에 부자이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리석었다. 너무나 어리석었다. 돌아가면 그는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식 성공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자신을 파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바꿔야 했다.

                                                                                                   - '멋진 추락' 中-


서로 접촉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해외 동포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중에는 의외로 같은 동포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해외에 나가면 오히려 동포보다는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기대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거나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되기도 한다. 하진의 단편집 타이틀이기도 한 <멋진 추락>의 쿵푸 사부 '간친' 역시 동포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지만 오히려 미국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벚나무 뒤의 집>의 후옹 역시 몸을 팔면서 홍콩 출신인 '크로크'부터 경제적 착취를 당한다.


중국인 갱들은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해 마피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퍼뜨렸다. 일부는 그저 소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크로크는 마피아가 아닐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후옹과 나를 쉽게 파멸시킬 수 있었다. 그는 두목은 아닐지 모르지만 갱일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우리 가족들한테 해를 끼칠 수 있는 조직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벗나무 뒤의 집' 中-


작품에 대한 짧은 식견은 이 정도로 하고 작가 하진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솔직히 단편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멋진 추락>을 독서 목록에 포함시키게 된 계기가 작가에 대한 호평 때문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서의 쟁쟁한 수상경력과 그의 작품을 번역한 왕은철 교수(전북대 영문과 교수)의 '옮긴이의 말'때문이었다.


하얼빈이 고향인 하진은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의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1989년 '톈안문 사태'를 겪게 되면서 다른 중국의 해외 체류 지식인들처럼 귀국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영어와 모국어(중국어)을 모두 사용하여 작품을 발표한 보기 드문 작가라고 한다. 이 정도면 작가의 정치 사회적 코드는 명확해 보인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하진이라는 작가가 미국 사회에서 환영받을 기본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첫번째 장편 <기다림>이란 작품으로 미국의 펜 포크너상과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전쟁 쓰레기>,<광인일기>, <카우보이 키친>, <니하오 미스터 빈>, <남편고르기>등등 역시 미국 문단에서 이민자로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직 작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문학작품으로써 평가받기에 앞서 '혹시 부지불식간에 미국식 '입맛'에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또한 작품으로써 대중에게 평가받는 존재이지만 작가 역시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작가의 국가관(특히 정치적 입장)과 민족관 그리고 인생관에 따라 엇갈린 평가와 호불호(好不好)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 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톈안문 사태'는 서방 국가들에게는 중국을 평가하는 또 다른 '잣대'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는 톈안문 사태가 중국의 민주화 운동으로써의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어찌됐건 이 시기에 조국에 돌아가지 않은 해외 체류 유학생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 대륙에서 '반독제 지식인'이라는 꼬리표를 자의반 타의반 갖게 되었다는 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점은 이들이 과연 서방 주류 사회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력인가 하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80년대 후반 톈안문 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실시한 중국인 체류 허가 제도를 '개인적'으로 이용하여 미국에 정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누 가 뭐래도 그 당시는 '냉전 체제'가 아직 종식되기 전으로,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필두로한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체제상 우위를 선전하고 싶었을 것이고, 톈안문 사태로 귀국을 포기한 중국 유학생들이야말로 선전용으로 충분히 이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중국 대륙은 해외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중국계 작가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선입관 때문에서라도 나는 하진의 작품을 차례 차례 섭렵해 나가리라. 그의 눈을 통해 중국 사회와 그 일부라 할 수 있는 중국계 이민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계 특히 조선족들의 삶과 생활을 다룬 작품들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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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드디어 '개인' 서재를 마련했다.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되고 만들게까지 된 데에는 순전히 '물만두'덕분이었다.

전설의 블러거 '물만두'말이다.

지난 겨울 초입부터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물만두와 그녀의 서재를 알게 되었다.

감동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 역시 책께나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방대한 독서와 수준 높은 리뷰는 많은 이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다면...?

바로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

 

정말 그렇다.

독서는 삶을 바꾸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나 역시 주먹구구식 독서를 하다가 작년 여름부터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친김에 알라딘에 서재까지 만들어 좀 더 많은 블로거들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아직 시작이고 또 욕심따윈 내지 않으련다.

그저 꾸준히 천천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단상들을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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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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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에는 '一方水土一方人'이란 표현이 있다. 사람은 나고 자란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인인 아라이의 작품은 전혀 중국적이지 않다. 중국 소설 특유의 익살이나 허풍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흔적조차 없고 서사적 구조 또한 단순하기 그지없다. 중국인에 의해 중국어로 쓰여진 소설이 '중국'답지 않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작가가 그만큼 중국인의 색채를 띄고 있지 않거나 중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1959년 쓰촨성 서북부 티베트 자치구인 마얼캉현에서 태어난 작가는 티베트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이 '중국적'이지 않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티베트인은 중국 한족과는 전혀 다른 생활풍습과 종교와 사유세계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당대 작가의 작품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아라이의 목소리는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을 비우고 오롯히 티베트적인 분위기에 젖어 보려 노력했으나 몇 몇 작품을 제외하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티베트와 티베트인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적고 얕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라이의 작품은 신,구 시대의 변화와 위협받는 민족 정체성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아려한 아픔을 자아낸다.

 

 

거라는 빈총을 내던지면서 소리쳤다.

"왕! 왕왕!"

"왕왕! 왕!"

그가 흉내낸 사냥개 소리는 경쾌하면서도 낭랑하게 숲 전체를 가득 채웠으며, 그 누구도 자신을 침범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이 동물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거라가 오늘 총을 쏜 것이 처음이라면 개 짖는 소리는 마을 전체에서 제일 잘 냈다. 그는 여러 곳에서 개짖는 소리를 배웠다. 사람들이 말했다. "거라, 한번 짖어봐."그러면 거라는 왕왕 짖어댔다.

(.....)

 

"거라는 자신이 엄마와 똑같이 피를 흘렸고 엄마와 똑같은 신체적 고통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밖에선 눈 내린 뒤의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방 안에선 화로 속의 불꽃이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따스한 공기 속에서는 아들과 엄마의 피냄새가 떠다녔다.

(.....)

 

엄마가 말했다.

"그 곰 정말 크더라."

"엄마의 비명소리를 들었어요. 많이 아팠어요?"

"많이 아팠지. 듣기 괴로웠나 보구나?"

"아니에요. 엄마"

엄마가 눈물을 반짝이면서 머리를 숙여 거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엄마의 몸에서 젖냄새와 피냄새가 물씬 났다. 거라의 몸에서도 한약냄새와 피냄새가 물씬 났다.

아라이, <소년은 자란다> 中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년 거라와 역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동생을 출산하는 엄마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피'이다. 소녀가 출산의 고통을 겪은 후 여자로 거듭나듯, 소년 역시 사냥을 통해 남자로 거듭난다. 소년은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는 사이, 동네 아이들의 사냥을 따라갔다가 무섭게 자신을 추격하는 곰을 쓰러뜨린다. 진정한 남자의 길로 자신을 이끌어줄 아버지가 없는 소년은 이렇게 스스로 성장한 것이다. 마치 엄마 쌍단이 떠돌이 몸으로 지촌 마을에 정착하여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들 거라를 낳고 또 다시 거라에게 예쁜 여동생을 낳아주었듯이...

 

 

아라이의 <소년은 자란다>는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짧은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주제의식과 함께 시각과 청각 뿐만 아니라 후각까지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작품은 새하얀 눈(雪)이 내리기 시작하는 어느 날. 출산을 앞둔 엄마와 아들이 흘리는 붉은 피(血)가 선명한 시각적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총소리와 개짖는 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가 간간히 귓전을 울린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의 젖비린내와 엄마의 젖냄새 및 피비린내 그리고 거라의 상처에서 나는 한약냄새와 피냄새 등이 콧속을 파고 든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기승전결에 따른 스토리 라인이 선명한 명작 한편을 접한 기분이다.

 

훌륭한 작가는 '경험을 재현하지 않고 주제를 구현한다'고 했던가.

이 점에서 볼 때, 아라이는 자신이 성장한 티베트 마을 지촌에서 겪은 경험을 배경으로 '인간과 삶'이라는 주제를 아주 잘 구현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소년은 자란다>이외에도 마차가 마을에 들어온지 채 십년도 안 되 트렉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마는 마부의 이야기인 <마지막 마부>와 도량형 통일이 된 줄도 모르고 여전히 800g을 한근으로 표시하는 구식 저울에 일편단심 목매달며 살던 늙은 촌부를 그린 <옛 저울추> 그리고 사원에서 보물을 훔친 도둑을 잡아 가둔 후 훔친 보물을 빼돌리려는 경찰과의 추격전 끝에 고작 맥주 한병 훔친 죄밖에 없는 '쌍지'의 헛된 죽음을 묘사한 <막다른 길>등이 인상적이었다.

 

 

끝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국 작가 채만식이 1940년대에 쓴 <소년은 자란다('없어진 아버지')>란 중편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라이의 작품과 동명소설로, 간도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이 작품은 <탁류>와 함께 채만식의 대표작이라 하니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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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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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1998년 출판된 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20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양대 문학상 중, 나오키상은 순수문학작품에 수여되는 아쿠타가와상과는 달리 대중적인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1년에 상,하반기 두번에 걸쳐 수상작들이 결정된다고 한다.

 

일단 이 작품은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리고 무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방사형으로 연결시켜나가면서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살인사건을 기술(記述)토록 하는, 매우 기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사회파 추리소설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미유베 미유키는 '초고층아파트의 일가족 살인'이라는 사건을 둘러 싸고 독자와 두뇌게임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독자의 궁금증은 미야베와 함께 한 관련자들 인터뷰에 동행하면서 서서히 사건이 아닌 '사람과 그들의 삶'쪽으로 관심 방향이 바뀐다.  미야베는 지극히 충격적인 일가족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8,90년대 일본 사회를 해부하고 고발한다. 

 

담보대출, 경매, 버티기꾼, 카드깡, 미혼모, 고부갈등, 가장의 가출, 이혼, 노인학대 등등...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라는 단 한편의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로 언급되는 모든 현상들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녀의 이와같은 실험은 사회 문제와 병리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점에서 볼때, 작품의 타이틀이 '원인'이 아닌 '이유'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유'는 '원인'에 비해 어감상 상당히 '능동적'이다. 즉, 행동이나 결과를 부르는 피할 수 없는 혹은 자연스러운 것을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유'는 어떠한 행동이나 결과를 유발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것에 더 가깝다. 

 

대단하지 않은가.

작가는 4인 가족 살인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것을 자연스러운 '원인'이 아닌 인위적인 '이유'라고 본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후유증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전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일본인의 근면, 성실함은 부동산 신화와 그 거품 속에서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더 이상 근면과 성실함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은 일본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실감이자 배신감을 갖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실감과 배신감이야말로 일가족 살인 사건의 공범이자 진범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전쟁과 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는 지금 놀라울 정도로 일본을 닮아 가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부를 획득한 사람 중, 부동산 열풍의 '혜택'을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뻔한 월급을 알뜰하게 모아 내집을 마련한 가정이 얼마나 될까? 담보대출로 내집을 마련했다고 기뻐하지만 사실 그거 월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주인이 아닌 은행에 '월세'를 내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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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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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는 작가는 작품과는 상관없이 왠지 모를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하진 역시 그런 작가 중에 한명일 것이다.

 


본명이 진쉐페이(金雪飛)인 하진(哈金)은 1956년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톈안먼 사태를 접하고 귀국을 포기한 채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일찍이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전미도서상' '플래너리 오코너상' '펜 포크너상' '어네스트 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했다. 솔직히 그의 명성에 이끌려 읽게 된 그의 소설집 <멋진추락>은 미국 이민자의 생활을 다룬 작품들로 그럭저럭 읽어 내려갔지만 그의 명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빼어난 단편작품을 쏟아내는 작가도 있지만 장편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에게 단편은 잔잔한 '소품'과도 같은 존재일 뿐,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의외로 많은 법이다. 이에 신중하게 하진의 장편 소설 되도록이면 대표작을 골랐다. 역자 또한 믿을만 했다.

 

<광인>은 톈안먼 사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톈안먼 사태가 평범한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와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고전시의 대가인 양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의 예비사위이자 제자인 주인공 완지안과 팡반핑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돌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양교수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터무니없는 소리들을 해대면서 시작된다. 양교수로부터 조각 조각 떨어져 나온 참담한 현실과 진솔한 고백을 통해 베이징대 대학원에 지원하려던 지안은 흔들리고 만다.


잠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떠났던 반핑의 고향 마을에서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접하면서 지안은 자신이 가고자 했던 학자의 길이 실은 '사무원'에 불과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려지는 도마위의 고깃점'에 다름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물 한동이를 위해 5km 이상을 왕복해야 하는 가난한 마을 농민들이 마을에 들어와 영화를 찍는 촬영팀으로부터 일당 1위안을 받고 영혼을 파는 것처럼...


그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도마위의 고기를 자르는 칼'이 되고자 하지만 이 마저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를 통해 1989년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던 당시, 중국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교수가 문화대혁명의 혹독한 고초를 견뎌내면서도 학자의 길을 고수해왔지만 그의 삶 역시 좌절과 배신 그리고 물욕과 권력에의 지향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광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진심을 고백함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진은 80년대 후반 중국 지식인 앞에 펼쳐져 있던 숨막히는 현실을 양교수의 헛소리(?)와 식당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올빼미'라는 미치광이의 모습을 통해 또 한번 극대화시킨다.

 


메이메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웠던 평범한 '룸펜'이었던 지안은 결국 양교수의 죽음과 함께 자신만 몰랐던 아니 어쩌면 알고도 외면해 왔던 냉정한 현실에 놀아났음을 알고 무력감에 빠진다. 그의 베이징행은 사실 그 어떤 정치적인 색깔을 띠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한롱의 사암마을로 떠난 것처럼 잠시 잠깐의 외출이요 일상 탈출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짧은 잠깐의 '한눈팔기'가 그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터닝포인트'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는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하리라.

 


하진의 인생도 그러했을까. 너무나도 순식간에 뜻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거친 세월들을 걸어왔던 건 아닐까? 그저 지안의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통해 진실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개인적인 동기들이 정치 행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메이메이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베이징으로 돌진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이유에 근거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우리 역사서들은 언제나 개인적인 동기들을 제외시켰다. 나는 나이 든 혁명주의자들이 적군(赤軍)이나 공산당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정해진 결혼을 피하거나 빚을 피하거나 충분한 음식이나 옷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종종 말했던 걸 떠올렸다. 개인을 움지이고 따라서 역사의 동력을 일으키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들이다.

 

-<광인> p435-

 

중국 본토에서 하진의 작품이 출판되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사태로 망명한 자국인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톈안문 사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단 한번도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중국 대륙에서 톈안먼 사태는 집단 망각에 빠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하진과 같은 이들이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톈안먼 사태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역사적 기록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역자인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에 따르면, 하진의 작품은 샨사의 <천안문의 여자>,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등과 확연히 구분되며 이들 작품들과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기회가 되면 샨사와 다이 시지에의 작품을 읽어 보리라.

 


역자가 이미 밝혔듯이, 이 작품은 영어로 쓰여진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기에 중국적인 표현 등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성장(省長)을 주지사로 표현한다거나 중국의 화폐단위인 '마오(分)'를 '펀'이라고 옮긴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양교수가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연대가 부적절한 것 같아 지적하고자 한다.

 

그 여자가 누구지? 그녀는 그가 스물아홉이던 1930년에 그와 같이 있었다. 그녀는 양 교수의 부인 이전에 있었던 누군가였음이 분명했다. 메이메이는 지금 스물네 살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태어났다고 했다. 양 교수가 서른 두살이던 27년 전에 결혼했다는 의미였다. 미지의 여자가 그를 퇴짜 놓은지 3년이 지나서 였다. 그는 수십만 명의 지식인들처럼 1950년대 후반에는 박해를 받지 않았다.

-시공사 <광인> 하드양장본 229쪽-

 

잘 알다시피,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89년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기 2~3개월전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 몇일 간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양교수의 딸 메이메이가 1989년 24살이라는 뜻이므로 양교수는 27년 전인 1962년 32세에 결혼을 했다는 의미이므로 그의 출생 연도는 대략 1930년도가 된다. 그러므로 본문 중, '그녀는 그가 스물아홉이던 1930년에 그와 같이 있었다' 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번역의 오류인지 작가의 착각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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