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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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인 하진(哈金: 본명 金雪飞)의 단편집 <멋진 추락>은 외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뉴욕 플로싱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하나같이 부푼 가슴 안고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에 왔다는 점이다.

 

고국의 가족들 생계를 위해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기꺼이 몸까지 파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고국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에 정착한 아들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대간 갈등을 톡톡히 겪는 노부부도 있다. 


하 진의 <멋짓 추락>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실제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이주민이 세운 나라인 미국 주류 사회에 완벽하게 동화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이들의 '이중생활'은 왠지 낯설지 않다. 바로 우리의 친척 이모나 작은 아빠 혹은 사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지난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이민 붐이 크게 일었었다. 미국에 친인척 한 두명 두지 않은 이들을 찾아 보기가 어려울 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진의 소설 속 주인공들과 비슷비슷한 삶의 모습을 연출했으리라. 집 나서면 친구가 가장 큰 의지가 된다는 중국 속담처럼 해외에 나가면 동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동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직업을 얻고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동포 변호사를 고용해 비자 문제를 해결한다.


사원에서는 승려에게 급료를 주지 않는 게 분명했다. 여기에 오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미국에 가면 한몫 잡을 수 있다고 허풍을 떨며 그들이 여기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때문에 그는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고향 사람들의 눈에 부자이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리석었다. 너무나 어리석었다. 돌아가면 그는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식 성공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자신을 파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바꿔야 했다.

                                                                                                   - '멋진 추락' 中-


서로 접촉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해외 동포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중에는 의외로 같은 동포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해외에 나가면 오히려 동포보다는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기대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거나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되기도 한다. 하진의 단편집 타이틀이기도 한 <멋진 추락>의 쿵푸 사부 '간친' 역시 동포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지만 오히려 미국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벚나무 뒤의 집>의 후옹 역시 몸을 팔면서 홍콩 출신인 '크로크'부터 경제적 착취를 당한다.


중국인 갱들은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해 마피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퍼뜨렸다. 일부는 그저 소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크로크는 마피아가 아닐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후옹과 나를 쉽게 파멸시킬 수 있었다. 그는 두목은 아닐지 모르지만 갱일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우리 가족들한테 해를 끼칠 수 있는 조직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벗나무 뒤의 집' 中-


작품에 대한 짧은 식견은 이 정도로 하고 작가 하진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솔직히 단편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멋진 추락>을 독서 목록에 포함시키게 된 계기가 작가에 대한 호평 때문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서의 쟁쟁한 수상경력과 그의 작품을 번역한 왕은철 교수(전북대 영문과 교수)의 '옮긴이의 말'때문이었다.


하얼빈이 고향인 하진은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의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1989년 '톈안문 사태'를 겪게 되면서 다른 중국의 해외 체류 지식인들처럼 귀국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영어와 모국어(중국어)을 모두 사용하여 작품을 발표한 보기 드문 작가라고 한다. 이 정도면 작가의 정치 사회적 코드는 명확해 보인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하진이라는 작가가 미국 사회에서 환영받을 기본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첫번째 장편 <기다림>이란 작품으로 미국의 펜 포크너상과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전쟁 쓰레기>,<광인일기>, <카우보이 키친>, <니하오 미스터 빈>, <남편고르기>등등 역시 미국 문단에서 이민자로서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직 작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문학작품으로써 평가받기에 앞서 '혹시 부지불식간에 미국식 '입맛'에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또한 작품으로써 대중에게 평가받는 존재이지만 작가 역시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작가의 국가관(특히 정치적 입장)과 민족관 그리고 인생관에 따라 엇갈린 평가와 호불호(好不好)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 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기도 한 '톈안문 사태'는 서방 국가들에게는 중국을 평가하는 또 다른 '잣대'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는 톈안문 사태가 중국의 민주화 운동으로써의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어찌됐건 이 시기에 조국에 돌아가지 않은 해외 체류 유학생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 대륙에서 '반독제 지식인'이라는 꼬리표를 자의반 타의반 갖게 되었다는 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점은 이들이 과연 서방 주류 사회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력인가 하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80년대 후반 톈안문 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실시한 중국인 체류 허가 제도를 '개인적'으로 이용하여 미국에 정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누 가 뭐래도 그 당시는 '냉전 체제'가 아직 종식되기 전으로,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필두로한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체제상 우위를 선전하고 싶었을 것이고, 톈안문 사태로 귀국을 포기한 중국 유학생들이야말로 선전용으로 충분히 이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중국 대륙은 해외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중국계 작가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선입관 때문에서라도 나는 하진의 작품을 차례 차례 섭렵해 나가리라. 그의 눈을 통해 중국 사회와 그 일부라 할 수 있는 중국계 이민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계 특히 조선족들의 삶과 생활을 다룬 작품들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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