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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진화생물학자다.
원제가 <Guns, Germs, and
Steel(1997년)>인 <총, 균, 쇠>는 일찍이 <제3의 침팬지>로 인류 멸망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는 저자의 명작이다. 세상에 나온지 10년이나 지나서야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실, 이 책은 평소 애용하는 도서관의 소장 목록에는 올라 있으나 서가에 책이 없었다. 물론, 대출된 상태도 아니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흔한 일은 아니기에 담당 사서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아무래도 책이 분실된 것 같다며 희망도서로 신청하시면 구입해
놓겠단다. 도서관 사서로부터 책이 들어왔으니 대출해가라는 안내전화를 받았다. 희망도서는 신청자에게 우선 대출권이 있으나 이틀이
지나면 일반인들에게 대출하게 된단다. 그나마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본인은 어디서 왔는가'가 추가된 증보판(600여 페이지)을
접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인류의 역사는 인종의 차이가 아닌, 환경적
차이에 의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저자의 위대한 여정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인 1972년 뉴기니
해변을 거닐다가, "우리 뉴기니 사람은 과거 어떤 경로로 뉴기니에 오게 되었으며, 유럽의 백인들은 지난 200년 사이에 어떻게
뉴기니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소?"라고 물어온 그곳 원주민인 얄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조류를 연구하던 저자의 위대한 통찰력은 이처럼 사소하고도 바보스러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저자가 그 당시 식자층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백인우월주의라는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
발전의 헤게모니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총, 균, 쇠>라는 명저를 접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한참이나 더
기다렸어야 했으리라.
저자는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어떤 대륙보다 빨리 발전할 수 있었고, 다른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식량생산에 있다고 보았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수렵채집 시대를 마감하고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식량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였다. 주시하다시피, 메소포타미아 평원(일명 '비옥한 초승달지대')과 황허유역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식량 생산과 정착생활이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프리카도 아메리카 대륙도 아닌, 유라시아
대륙 그것도 근동지역과 중국의 황허유역이어야만 했을까? 바로, 가축화/작물화의 재료인 야생 동식물의 대륙간 차이 때문이다.
식량 생산이야말로 대규모 인구로 성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간 사회가 부족사회를 거쳐 추장 사회로 다시 제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잉여 식량의 생산이 절대적이었다. 잉여 식량의 생산은 바로 남은 식량을 분배하는 일을 담당할 사람 즉 우두머리가 탄생할
기회와 함께 식량 획득에 직접적으로 동원될 필요가 없는 전문가 집단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면서 과학기술과 사회제도의 발달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바로 총과 쇠의 탄생이다. 이 밖에도 기술자 및 종교인 그리고 군인계층을 먹여살리게 되면서 정착 농경 생활을
앞서 시작한 지역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즉, 여전히 채집이동생활에 머물러 있는-집단과의 충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신대륙이 유럽인들의 침입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총칼로 무장하고 말을 타고 쳐들어온 구대륙인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일찍부터 가축화가 이루어져 세균에 대한 내성이 생긴 유럽인들로부터 옮겨진 병원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가축화와 작물화할 수 있었던 '재료'들이 유라시아에 집중되었던 걸까?
이
건 전적으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얼룩말과 코뿔소 하마 들소 등 아프리카 초원의 대형 초식동물을 일찍부터
길들려 가축으로 삼으려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키울 수 있는 동물로 선택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이 많아야 했으니 맹수는 일단 탈락이었고, 인간을 공격하지
않으며 무리를 짓는 특징이 있어야 하며 무리를 이끄는 리더를 알아보고 따르는 습성이 필요했다. 그래야 주인을 알아보고 복종하게
되므로... 이처럼 일명,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따라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은 그 많고 많은 동물들 중 고작 소, 돼지, 양,
말, 개, 닭, 양봉낙타, 염소, 거위 등 예일곱종류에 불과했다.
한편, 인류의 출현이 다소
뒤늦어, 인류가 건너간 후 남획으로 거대초식동물이 멸종한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대륙은 진화를 거친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며 서서히
문명화되기 시작할 시기에는 가축화할 동물군이 이미 멸종한 뒤였다. 유라시아 대륙인과는 달리 운이 없었던, 처음부터 불리한 출발일
수 밖에 없었다.
이들 대륙과는 달리 기린, 코뿔소, 코끼리, 얼룩말 등이 살던 아프리카는
인류가 처음으로 출현한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동물들은 미숙한 인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인류에게 붙잡혀 멸종당하지 않을 기술을 함께
진화시켜 멸종은 면했지만, 하나같이 가축화에 적합한 조건들을 모두 갖고 있지 못했다. "부르심을 받은 자 많으나, 선택받은 자는
드물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대륙과 아프리카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믿기 어렵지만 순전히 이와같은 지리적인
'우연'때문이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유라시아 대륙이
곡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에 유리하여 일찍부터 정착생활을 하면서 문자 제도 기술 등등을 발전시켰다면, 어째서 같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아시아의 중국 대신 유럽이란 말인가? 고대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중국은 나침반 종이 화약 등을 유럽보다 먼저 발명하는
등 15세기까지 인류 문화 발전을 선도하지 않았던가?
이와같은 질문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 있은 해답은 바로 '중국은 통일되어 있을 때가 많았던 반면 유럽은 언제나 분열되어 있었다'라는 단 한마디로 요약된다.
즉,
중국은 작은 영주국으로 분열되어 치열하게 경쟁하던 유럽과는 달리 통일되어 있어 '경쟁속에서의 발전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독단적인 지배자가 내린 단 한번의 결정으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리는 우(愚)를 피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가 들고 있는
다음의 사례야말로 '통합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요, 분열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1405
년~1433년에 일곱 차례의 선단이 중국을 떠나 항해했는데(환관 정화의 원정), 중국 조정의 두 파벌(환관과 그 반대파)사이에
권력 투쟁이 일어나 반대파가 승리하자 곧 선단 파견이 중단되었다. 결국 조선소마저 해체하고 해야 항해를 금지했다.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던 중국은 한번 결정이 내려지자 중국 전역에서 선단 파견이 중단되었고, 일시적이었던 이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다시 배를 만들어 그 일시적 결정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또 새로운 조선소들을 건설하려 해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조선소가 한 곳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에서 있었던 이 같은 일들을, 정치적으로
분열된 유럽의 탐험 선단이 항해를 시작했을 때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탈리아인으로 태어났지만 프랑스의 앙주
공의 신하가 되었고, 다시 포르투갈 왕의 신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포르투갈 왕에게 서진(西進) 탐험을 위한 배를 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메디나 세도니아 공에게 호소했지만 그 역시 거절했다. 메디나 첼리 공에게도 호소해
보았지만 또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국왕과 왕비에게 호소하자 그들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다시 요청했을 때는 결국
허락해주었다. 그 당시 만약 유럽이 통일되어 앞의 세 왕후 중의 한 명이 다스리고 있었다면 남북아메리카의 식민지화는 무산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분열에서 비롯된 이 같은 결과는 중국의 통일이 빚어낸 결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 조정은 해외 항해외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따금씩 중단을 결정했다. 14세기에는 정교한 수력 방적기의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산업 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났고, 세계의 시계 제작 기술을 선도하고 있던 기계식 시계를파기 또는 사실상 전폐해
버렸으며, 15세기 말 이후에는 기계 장치나 기술 전반에 걸쳐 후토하게 되었다. 통일의 이 같은 잠재적 해로움은 현대 중국에서도
다시 위력을 발휘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휩쓴 문화 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한명 또는 소수의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 때문에
전국의 모든 학교가 5년 동안 문을 닫았던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p602~604 中-
현재, 빠른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의 힘은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 측면이 없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전체를 통합한 상태에서
쉽게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전방식은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서는
치열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발상의 전환'에 따른 기술 도약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과연 중앙집권식 통일왕국의
재건설을 꿈꾸고 있는 현대 중국이 지방분권식 민주제도에 기초한 미국식 자유 경쟁과 창의성을 따라잡아 과거의 패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총, 균, 쇠> 증보판에 실린 에필로그에 의하면 1997년 책이 나온 이후, 저자는 이미 이와 같은 질문들을 빌 게이츠를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이들로부터 받았음을 알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인의 기원을 밝힌,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제목의 특별
'부록'은 그동안 한일 양국 사이에서 끊이없이 논란이 되어 왔던 문제에 대해서 당사국 출신이 아닌,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의
학문적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심장에게 다가온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농경과 기타 선진문물을 조몽인-일본 원주민인 홋가이도 아이누이족을 몰아내고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전수하면서 야오이문명을 탄생시켰으며, 그 어느 어족(語族)과도 동일점을 발견할 수 없었는 일본어는 한반도의
고구려어를 어원(語原)으로 한다고 한다. 현재 한반도에서 쓰이고 있는 한국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신라는 그 당시 백제 고구려와는 달리 일본과의 교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이질성 역시 충분히 설명되는
문제라고 한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왜곡으로 일관하려는 일본에게 보내는 '경고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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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넓은 마음을 가져야 위와 같은 통찰력을 갖을 수 있을까?
방대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마음 한켠이 싸늘해졌다.
이
와 같은 명저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한국을 비롯한 국가가 아닌, 미국을 포함한 서양에서 주로 탄생하는걸까? 하는 오래된 궁금증이
풀리면서 동시에 그동안 배우고 쌓아온 지식들이 왠지 통찰로 인도하는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인 건만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