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작부터 자자한 명성을 들어온 작가였다.

<달려라, 아비>는 20대초반에 이미 대상문학상(수상작: 노크하지 않는 집)을 수상하면서 일찌감치 문단에 데뷰한 작가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문학적 천재성을 타고난 작가들이 무릇 그렇듯, 김애란 역시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다. 특히, 독특한 언어적 표현은 가히 탄성을 불러 일으킨다.


' 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ㅡ조글조글한 주름과, 작고 빨리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때 말이다. 그때 나의 몸은 말(言)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말을 모르는 모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p8 中-


천진난만한 여아를 마주하며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떠올리고, 뜻하지 않은 반가움의 상징인 편지의 도착으로 아기의 탄생을 형언하는 그 발칙한 상상력에 처음부터 압도되었다.

무책임한 아빠를 두었으며 또 딱 그만큼한 무책임한 엄마를 둔 주인공의 '가족 로망스'는 해피엔딩이라 할 순 없어도 해피엔딩처럼 따듯하다.


여자를 덜컥 임신 시켜놓고는 출산하던 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남자...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그리고 아빠로 둔, 모녀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을 터. 거친 삶의 질곡들이 작품 속 곳곳에서 은연 중에 튀어 나온다. 작품 해설에서는 이를 두고, '원치않는 탄생이라는 걸 거부하기 위해 아버지를 긍정하면서 정신적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는 주인공 '나'의 '긍정적인 의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처럼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긍정적인 시선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남자를 이해하고 사랑한 엄마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하여,

나는 김애란 작가의 초기 대표작 <달려라, 아비>의 또 다른 미덕을 주인공의 어머니에게 돌리고 싶다. 


어머니는 그날 밤, 아버지가 왜 집을 나갔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또 절대 물어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침울한 표정을 보자 울컥하니 신경질이 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매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버지가......미안하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이 사람 말로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나는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부분에?" 나는 편지를 훑는 시늉을 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에 와서 매주 잔디를 깎았습니다'라는 부분을 짚어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기."어머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부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손으로 곱게 매만졌다. 그때 나는 농담 잘하고 씩씩한 내 어머니가, 한번도 울어본 적 없으나 성대가 부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p26 中-


인간에게 모친의 이미지는 일맥상통한다.

아 들이건 딸이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뭐랄까 서로를 끌어당기는 지구와 달 사이의 인력만큼 강한 운명으로 엮여 있다고 한다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자석의 양극과 음극처럼 합일을 이루어내지 못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영향력을 투사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누구나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다. 아버지가 없는 경우일지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부친의 부재'라는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애란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는 물론이거니와, <스카이 콩콩>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등등 여러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탄생과 존재 가치를 아버지-부재 여부와 상관없이-와의 관계 속에서 끈질기에 추구하고 있다.


전파상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형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스카이 콩콩을 타며 놀 만큼 어리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나'는 인간이란 그저 지면에서 2~3미터 높이의 가로등이 그려내는 원주율과 지구 원주율 사이에서 복작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만큼 어른스럽다. 바로 이 점이 주인공 '나'가 옥상에서 콩콩거리며 스카이 콩콩을 타는 행위가 절대로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열심히 스카이 콩콩을 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굴러떨어지는 돌을 언덕위로 계속해서 굴려 올리는 시지프시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주인공 '나'는 스카이 콩콩을 타면서 짧은 한순간 지상에서 우주로 '도약'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다.  



한편, 1인 가구의 각박한 도시 생활을 그려낸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노크하지 않는 집>은 작품 전반을 걸쳐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외로움과 서글픔이다. 노동의 소외라는 후기산업화 시대를 거쳐 노동의 종말이라는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의 자화상으로 읽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90년대 초반 대학에 다니던 내가 한, 첫번째 아르바이트는 바로 명동과 압구정동의 정해진 지점에서 하루종일 유동 인구를 연령별 성별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모 대기업이 일본식 체인점을 여는데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일본의 '로션'이라는 편의점이었다. 그 후 월드컵을 전후로 하여 도시의 요지(要地)를 속속 점령하기 시작한 편의점은 그로부터 고작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인적이 드문 농촌 마을까지 깊숙히 들어가 있다.  '과연 이런 곳에 사람이 살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24시간 연중 무휴'라는 익숙한 로고의 편의점 간판이 인가의 불빛보다 먼저 나그네를 맞이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작품 해설 속의 지적처럼, 21세기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획일화된 '편의점(패스트푸트점 포함)'과 '대형마트' 그리고 '원룸'이라 하겠다. 비록 가족과 관계가 단절되더라고 편의점과 대형마트와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이제 더 이상 편의점 혹은 대형마트의 이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거부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되었기때문이다. 가족보다 편의점의 존재가 더 중요해진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소름이 돋는다. '아니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속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임을 우린 모두 너무나 잘 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변두리 원룸촌의 일상적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히 보호되는 편리한 생활공간이어야 할 그곳이 어서 빨리 탈출해야만 할 것 같은 으시시한 '귀신집'처럼 다가온다.

고시원 사람들은 서로 옆방에 누군가 사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통성명은 커녕 서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묵계라고 한다. 

바로 '소통의 부재'다.

인간은 존재하나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웃간 소통이 단절된 사회는 생물학적 '생존'만 존재할 뿐 정신적 '생활'은 없는, 도시의 무덤이라 하겠다. 그 무덤 속에서 주인공 '나'는 절규한다. '미안해요, 무서워서 그랬습니다'라고......


서로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더더욱 돈독해지는 인간관계의 부재야말로 우리 모두가 직면해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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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이다.

다만, 굳이 소설의 3요소(인물, 사건, 배경)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인물과 배경의 부각이 너무 커서 사건 즉 '스토리의 부재'라는 점에서 소설 읽기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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