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을 책들을 선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 또 절감하고 있다.

세상은 넓고 읽을 것들은 부지기수로 쌓여 있는지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중독되어 '읽는 이유'를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생각없이 살면, 습관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생각없이 읽다가 생각없이 사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에만 안주하지않기 위해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오래되니 패턴이 생기더라...

솔직한 느낌보다는 평가를 하게 되고 줄거리 요약에만 집중하는, 한마디로 영혼 없는 글쓰기가 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일단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책읽기의 습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을 나누고 비율을 정해 지켜나가기로 했다. 현재 나는 4:1에서 3:2 비율 사이를 오고가고 있다. 

 

그 다음 문제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을 어떻게 선정하고 그 기준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다.

읽고 싶은 책은 사실 특별한 선정 기준이 필요 없다. 그냥 그저 눈길 가는대로 손길 가는대로 읽으면 되니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소위 '읽어야 할 책들'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주로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읽어야 하는 책'을 선정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까 한다. 

 

일단, '읽어야 하는 책'의 선정에 앞서, ''읽어야 한다'라는 것은 누구의 혹은 어떤 관점에서 정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자신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 책'들을 결정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둘 중 하나다. 이미 시대를 선도하는 지성을 갖추고 있어 독서의 도움이 필요없거나 아니면 절대무지와 절대오만의 늪에 빠진 불쌍한 영혼이거나...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하는 나의 방법 첫번째는 타인의 판단이나 생각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훨씬 나은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믿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필독도서목록이요 소위 세계문학전집이리라. 특별한(?)단체나 기관에서 선정한 필독도서목록, 예를 들면 서울대교수들이 추천하는 필독도서 등등도 참고할만하겠지만, 나는 주로 국내외 문학상 수상작품들과 명망있는 출판사들이 회사의 명예를 걸고 출판하는 문학전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민음사와 문학동네 그리고 열린책들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 세곳의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문학전집 목록에 겹치는 작품들이야말로 '1순위'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주로 너무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이미 읽었거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이때야말로 '다시 읽는 나만의 명작' 목록을 만들 때이다. 나는 십대 시절에 읽었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도 다시 읽고 싶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물론, 뒤마의 <몽테크리스토프백작>과 톨스토이의 <부활>도 '죽기 전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들' 이다.

 

특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지난 연말 눈내리는 날, 내가 좋아하는 극장(이곳은 내가 젊은 날부터 너무너무 사랑하는 곳인지라 주로 혼자만 간다. 물론 영화 좀 좋아하시는 분들이야 어디를 말하는지 금방 눈치채겠지만...^^;)에서 본 영화 <올 이즈 로스트>을 보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작품이었다. 영화작품 속 주인공인 로버트 레드포드(작품 속에서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가 곧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였고 또한 헤밍웨이였으며, 헤밍웨이가 곧 산티아고이자 영화 속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헤밍웨이와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을 위한 '오마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새긴 하지만,  <스팅>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으로 유명한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영화배우가 세계 최대규모이자 유일한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를 후원하고 있다는 걸 아는가? 그리고 <올 이즈 로스트>의 영화감독인 J.C 챈더 역시 자신의 첫작품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함으로써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첫 장편 대작이자 다른 등장인물들은 전혀 나오지 않는 1인 재난극 <올 이즈 로스트>에 로버트 레드포드를 캐스팅했다. 자신을 감독으로 만들어준 선댄스영화제와 그 영화제를 후원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댄스 영화제는 미국 솔크레이크시티의 작은 지역 영화제에서 출발했으나 운영난으로 폐지 위기에 몰리자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 소식을 듣고는 후원에 나서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제 이름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이름인 '선댄스'로 바뀌었단다. (외모가 멋있다고 연기를 잘한다고 좋은 영화배우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송강호를 봐라! 송강호 외모만 따지면 평균 이하일게다. 그렇다고 연기만 잘 하는 배우도 아니더라.그는 영화 <변호인>을 찍은 배우다. 설마했는데 진짜 섭외가 확~ 줄어들었단다. 그래도 걱정은 안 한단다. 어느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다.)

참! 

그리고 이 老배우 바다를 참 좋아하나 보다. 특히, 제주도의 푸른 앞바다...

(이 사람, 미국 환경잡지에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올린 바 있단다. 나도,,, 너도,,, 하지 못한 걸 그가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내정간섭이라고 하더라마는...)


너무 옆길로 많이 샜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 그 다음 2순위는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 맨부커상, 공쿠르상) 수상작이나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다. 이 과정을 거쳐 읽게 된 책들이 주제 사라마구 작품들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애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락> 등이다. 참고로, 이렇게 선택된 작품들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준비단계'라는 걸 거쳐야 한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작품의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난, 이런 책도 봤다!'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는 독후감이란 걸 쓰면 좋겠지만(사실 이런 책들을 읽고 독후감을 쓸 수 있다면 이미 '굿리더'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하지만) 그러나 뭐 굳이 독후감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검색등을 통해 괜찮은 서평 등을 몇 편 찾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놓쳤던'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토론회 활동 등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나 역시 이런 건 대학 졸업 후 해본 적 없으니 언외로 하기로 하자.)

 

세번째 선정(?) 기준은 내가 즐겨 찾는 관련 사이트나 신뢰하는 블로거들의 서평들을 참고하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려우면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참고로, 이런 사이트나 블로거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문제는 두번째 선정 기준에서 언급했듯 문학상 작품들을 읽은 후 서평등을 검색하다보면 좋은 서평과 그렇지 않은 서평들을 가려낼 수 있는 소위 '안목'이라는 게 생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는 일단 글 참 잘 쓴다. 장소와 작품 혹은 영화와 작품 등을 연결지어 소개하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이 사람, 아무래도 문학비평이나 미학 계통을 전공했거나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나처럼 비전문가의 흔해빠진 서평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수준있는 문학비평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너무 어려워 일반인의 접근조차 차단하는 논문급 단계에서 멈출 줄 안다. 그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의 '딱' 거기가 어딘지 잘 안다는 것이고, 그의 단점은 업데이트를 너무 늦게 한다는 점이다.  (나와는 비할바가 안될만큼 훨씬 훨씬 늦게 한다. 그래도 나를 비롯해서 그의 팬들은 보채지도 않은 채 느긋이 기다린다. 원래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뜸을 들여 음미해야한다는 걸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이렇게 읽게 된 책들은 주로 신간이 많다.  

여기서의 '신간'이라 함은 진작 출간되었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명작에서부터 비교적 최근(2000년대 이후)에 출간되었으나 대대적인 홍보가 아닌 입소문에 의해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이 '입소문'에는 영화로의 제작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1~2년 정도로는 '제대로' 된 입소문을 확인할 수 없고, 최소한 3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슐링크의 <책 읽어 주는 남자>와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그리고 최근에 읽은 다이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등을 꼽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역자를 보는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흔히 '볼' 만한 영화를 고를 때 감독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의 성향과 전작(필모그래피)를 확인하듯, 책 역시 역자를 보고 고르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적중률이 상당히 높은데 생각보다 많이 알려진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대학교 문학 전공 교수들이나 교수가 되어야 마땅하나 운이 안닿아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는 이들이 적극 나서서 번역한 작품들이다. 주로 영미권 번역서들을 고를때 써먹으면 좋다. 이렇게 알게 되고 읽게 된 작가나 작품으로는 하진과 <핑거스미스> 및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번역한 최용준의 역서 등이다. 


참!

그리고 역자의 이름 못지 않게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책의 맨 끝에 실려있는 '옮긴이의 말'이다. 이 글을 잘 살펴 보면, 역자의 문장력을 가늠할 수 있고 해당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과 역자의 이해 정도를 엿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번역할 때 역자가 얼마나 몰입하며 즐기면서 번역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도착어 언어권에서 첫번째 독자라 할 수 있는 역자의 소감 혹은 느낌이야말로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후 느끼게 될 감정의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괜찮은 배우가 좋은 작품을 선정하듯 괜찮은 번역가 역시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역자의 말'이 실려 있지 않은 번역서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로 읽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 중에는 전문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좋은 번역가는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아니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부디, 여러분들이 좋은 독자에서 출발하여 좋은 번역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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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온 2014-02-1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을 이리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시다니요. 저도 그 동안 읽고 싶은 책만 읽어왔는데, 읽어야 하는 책도 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 ^^

빨강감자 2014-02-2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늦었네요. ^^;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을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이곳 알라딘 서재에도 올렸는데... 뜻밖에 공감도 많이 해주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마니 마니 감사합니다. ^^
 
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호빗>은 1937년에 출간된 톨킨의 첫작품으로 세계 3대 환상문학 중 하나인 <반지의 제왕>의 원조격인 작품이다. 나오자마자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00년대 초반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폭풍으로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반지의 제왕>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 역시 2002년 봄 절친으로부터 <반지의 제왕>을 빌려 읽기 시작했으나 1권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북유럽 신화와 이를 바탕으로 하여 톨킨이 새롭게 창조한 소위 '중간계'에 대한 낯섦과 몰이해가 주된 원인이었다. 최근 도서관에서 빌린 <반지의 제왕> 시리지도 1권은 손때도 많이 묻고 너덜거리는 반면, 2권 상태는 한결 낫고 3권부터는 아주 양호하다는 점만 봐도 읽기를 도중에 포기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 막 환상문학에 첫발을 내딪었을 뿐이지만, 내가 보기에 20세기 초중반에 쓰여진 환상문학이 21세기에 접어들어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과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의 스토리와 캐릭터 대부분이 서양의 오래된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화 기술의 발달로 예전엔 감히(?) 영상화할 수 없었던 장면들을 시각화할 수 있게 되면서 헐리우드발 블록버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4살때 영국으로 이주한 톨킨은 고대 영문학(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그는 옥스포드대학의 비공식 문학 동아리라 할 수 있는 '잉클링스'의 멤버로 50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옥스포드의 "이글 엔 차일드(The Eagle and The Child)" 라는 술집 안의 쪽방인 일명 '토끼굴'에서 C.S 캐롤('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등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서 <나니아 연대기>등 걸작들이 젊은 청춘들의 쓸데없는(?) 잡담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호빗>은 호빗 종족인 골목쟁이네 빌보의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호빗'은  homo(인간)과 rabbit(토끼)를 결합하여 톨킨이 만들어낸 종족으로 인간보다 작으며 주로 굴속에서 산다. 먹는 걸 좋아하고 낙천적이며 변화를 싫어한다.

 

골목쟁이네 빌보가 5월의 어느날 자신의 둥근 초록대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마법사 간달프를 만나는 첫장면은 마치 어린시절 즐겨 봤던  TV만화영화 '숲속의 요정'에 나오는 스머프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을 격려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간달프 역시 스머프 마을의 최고 지도자 파파스머프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역자의 표현처럼 <호빗>은 어른들을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호빗>은 톨킨의 신화적 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따뜻한 일상의 세계다. 여기에는 숲속요정들의 노래와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녁밥을 짓는 장작불이 타오르며, 화롯불 위에서는 찻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이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어른들에게도 아련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처럼 감동을 주고,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호빗> 역자 후기 중-

 

산아래의 왕 스라인의 아들인 참나무방패 소린은 난쟁이족이다. 소린은 다른 12명의 난쟁이들과 함께 일찍이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종족의 보물(특히' 아르켄스톤')을 찾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법사 간달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호빗인 골목쟁이네 빌보를 영입하게 된다. 사실, 빌보는 영웅심도 모험심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다. 무릇, 인류의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영웅의 출현과 등장은 이처럼 미비하고 보잘것 없는 법이다.

 

영웅론은 '평범한 인물이 모험을 통해 위대해진다'는 것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영웅'이란 나쁜 종족이나 대상을 죽인 후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모험의 성공으로 얻게 된 결과(주로 '보물')에 대해선 일말의 사심을 갖어서도 안된다. 빌보 역시 얼떨결에 따라나선 모험을 통해 난쟁이들을 두번이나 구해주고 스마우그를 처치하는데 일조를 하지만 처음에 약속했던 1/14인 자신의 몫조차도 용을 직접 쏘아 죽인 호수마을 인간 바르드에게 양보한다. 한편, 마지막까지 보물에 대한 집착을 보였던 소린은 소원대로 용을 죽이고 과거 용에게 빼앗겼던 종족의 보물을 되찾지만 결국 죽고 만다. 맨 처음 모험을 계획하고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일명 '다섯군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로 이끈 난쟁이 종족의 리더 소린에 대한 톨킨의 관점은 분명하다.  

 

난쟁이들에 대해 최대한 너그럽게 평가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빌보의 공헌에 대해 정말 후하게 대가를 지불할 의도가 있었고, 자기들 대신 위험한 일을 하게 하려고 그를 데려 온 것이며, 그 불쌍한 조그만 친구가 스스로 원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한다면 그들이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빌보가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면 그들은 그를 구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모험을 시작할 무렵 그들이 빌보에게 고마워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을 때, 트롤에게 잡힌 그를 구해주었듯이 말이다. 바로 이거다. 난쟁이들은 영웅이 아니었으며, 금전의 가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에 밝은 족속이다. 어떤 난쟁이들은 교활하고 배신을 잘 하는 상당히 나쁜 녀석들이었지만, 어떤 난쟁이들은 소린과 그의 동료들처럼 점잖은 축에 속했다. 그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J. R.R. 톨킨, <호빗> p 236~237 중-

 

바로, 여기에서 톨킨의 세계관 더 나아가 인류의 집단 상상력이라 할 수 있는 신화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옛날 옛적부터 인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해결해줄 지도자를 필요로 했으며, 이런 지도자가 될 자격으로 용맹과 지혜로움 뿐만 아니라 물질적 욕망을 뿌리칠 수 있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자신들과 똑같은 무리 속에서 탄생된다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빌보와 골룸과의 만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기 깊은 땅 속 검은 물가에 작고 끈적거리는 동물, 늙은 골룸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마른 얼굴에 희미하게 빛나는 두 눈을 빼면 칠흑처럼 새까만 그가 바로 골룸이다. 그에게는 작은 보트가 있었는데 그 보트를 타고 아주 조용히 호수 위를 저어 다녔다. 호수는 더럽고 깊고 몸소리쳐지게 차가웠다. (......)그는 골룸이라고 말하면서 목구멍에서 끔찍한 꼴록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로 그 소리 때문에 그는 골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 자신은 항상 자신을 '내 귀염둥이'라고 불렀지만...(...)

"저게 우리한테 하나 물어볼 거야, 내 귀염둥이야, 그래, 그래. 딱 한문제만 더 맞히자, 그래, 그래,"

골룸이 말했다.

하지만 빌보는 그 역겹고 축축하고 차가운 것이 옆에 앉아서 손발로 건드리고 찔러댔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몸을 할퀴고, 꼬집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우리한테 물어봐! 우리한테 물어봐!"

골룸이 말했다.

(...)

멀지 않은 곳에 빌보가 모르는 골룸의 섬이 있었다. 골룸은 그 은신처에 몇몇 잡동사니들을 쌓아 두었는데 그 중 아주 아름다운 물건, 너무 아름답고 멋진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반지, 그것도 아주 소중한 황금반지였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나날에 가끔 그랬듯, 자신에게 속삭였다.

"내 생일 선물! 그게 우리가 지금 원하는 거야. 그래, 그게 필요해!"

반지를 원한 것은 그것이 마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밝은 햇빛이 비칠 때에만 보이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일 뿐이었다.

"내 생일 선물! 그건 내 생일에 나한테 왔어, 귀염둥이야."

그는 항상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반지들이 아직 이 세상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까마득한 시절에, 그런 선물이 어떻게 골룸의 손에 가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 그 반지들을 지배한 군주조차 알 수 없으리라. 골룸은 처음에는 그것을 끼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너무 피로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쌈지에 넣어서 달고 다녔지만 살에 스쳐서 피부가 벗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 바위굴에 감춰 두고 언제나 돌아가서 보곤했다.

(...)

그걸 잃어 버렸어. 귀염둥이야, 없어졌어. 잃어버렸다고! 빌어먹을! 제기랄! 내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

 

-J. R.R. 톨킨, <호빗> p87~100 중-

 

너무 오랫동안 홀로 지내왔던 골룸은 혼잣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한다.

외로움을 달래줄 유일한 건, 바로 반지였다.

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마법의 반지!

그런데 그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골룸의 '공포와 상실의 날카로운 아픔'이 슬픈 메아리가 되어 빌보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독자인 나에게도 전해졌다. 왠지 모르게 골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골룸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상실감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일까...

골룸이란 존재는 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과 악마적인 모습의 발현이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생겨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고블린 동굴에 빠져 헤매던 주인공 빌보는 우연히 땅에 떨어져 있던 반지를 주워 주머니에 넣게 되는데, 그 반지가 바로 호숫가 동굴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골룸의 것이었다. 골룸과 맞닥뜨린 빌보는 수수께끼 내기에서 이김으로써(사실, 반칙이지만...) 끼면 투명인간이 되는 마법의 반지를 차지하게 된다.

 

영웅의 조건 중 한가지인 '지혜'를 테스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하고 소심한 빌보가 절대절명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이처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빌보는 평소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물질적 욕심없이 여유롭고 낙천적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혜를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지혜로움이 빌보로 하여금 수수께끼 내기에서 골룸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당당함과 어두운 굴속에 혼자 떨어졌을 때 두려움 대신 차분한 용기를 갖게 만들었던 것이리라.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는 재미있으면서도 용기와 지혜를 깨닫게 해주며, 성인에게는 이젠 잃어버린 그러나 분명 갖고 있었던 '호연지기'를 다시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

.

.

이제부터 시작이다.

<호빗>을 성공적으로 읽었으니 <반지의 제왕>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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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읽는 여인
브루노니아 배리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 아니 책읽기였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주제의식이 빛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구성이 책읽기를 심각하게 방해했다.

이야기는 타우너 휘트니라는 본명을 갖고 있던 소피아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녀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과거의 일부 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을 앓고 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증상들은 사실 외상성증후군이라 할 수 있겠고 작품의 기본 줄거리가 바로 그녀에게 외상을 입힌 '과거'라 하겠다. 

 

그녀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 복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되어서는 안되는, 한마디로 인간이 아닌 인간을 아빠로 두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명한 할머니와 이모를 두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는 퍽 일반적이고 단순하여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즉,  어린 나이에 친족에게 성적 학대를 받은 여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고통을 받다가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자긍심을 되찾고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영화 디렉터로 일한 바 있다는 작가는 작품속에서 영화처럼 영상적 효과를 도모하고 레이스라는 소품을 통해 신비로움과 상상력를 불어넣어 진부한 이야기를 멋스럽게 바뀌어 놓았다. 마치 흔해빠진 음식 재료를 이용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새로운 요리로 탈바꿈 시키는 것처럼... 하지만 정체 불명의 '퓨전 요리'를 누구나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듯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심지어는 '기만'당했다는 느낌마저 갖게 만든다.

독자를 굳이 '혼란한 상태로 몰아넣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작가가 영화 속 장면이나 허리우드식 반전을 지나치게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라면 특수효과 등으로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장면을 훨씬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첫단추가 잘못 채워진 듯 싶다.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애매모호하고 잘못 전달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구성 자체의 특징으로 혼란스러운 독자의 머리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와 가계도를 그리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한다.

 

나는 첫 도입부분에서 주인공 타우너 휘트니가 '휘트니 집안 여자들은 괴짜다.' 등의 내용을 설명하는 단락에서 당연히 부계(父系)쪽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미국 사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아버지 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바 할머니를 타우너 휘트니가 자신의 고모할머니라고 했기 때문에 더더욱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책장을 넘기자, '에바는 내 할아버지 지지 휘트니의 두 번째 부인이다.' 라는 대목이 나오는가 싶더니, "우리 엄마 메이의 집과 이모 엠마 보인튼의 집 두 채 뿐이다. 엠마 이모는 에바 고모할머니의 딸이고, 우리 엄마 메이와는 이복자매이며, 내 쌍둥이 자매 린들리의 호적상의 어머니이다. (.....) 엠마가 '사고'를 당하기 전, 그러니까 이모와 이모부가 부부로 살았을 때, 엠마와 엠마의 수양딸 린들리는 휴가철에만 섬에서 살았다. 물론 이모부도 포함해서. 이모부인 캘빈 보인튼도 사람으로 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p61)" 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성이 같으므로 당연히 지지 휘트니를 친할아버지로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외할아버지였다. 그리고 고모할머니라는 에바가 지지 휘트니의 두번째 부인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할아버지가 자신의 여동생과 재혼을 했단 말인가? 워낙 막되먹은 괴짜 집안이라고 소개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도 고모할머니라는 호칭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고모할머니란 아빠나 엄마의 고모로인 대고모를 고모할머니로 부르기 때문이다. 주인공 타우너 휘트니의 아빠는 등장(?)하지 않고 엄마 메이만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그녀는 부계(父系)가 아닌 모계(母系) 성을 따르고 있으며, 에바는 그녀의 고모할머니가 아니라 외할머니여야 맞다.  

 

참!

그리고 타우너 휘트니의 십대 시절 남자친구인 잭은 린들리의 자살 장면을 타우너와 함께 목격한 것인가 아닌가? 잭과 함께 목격했다고 타우너가 상상한 것이라면 린들리가 죽기 전의 잭의 여자친구는 린들리가 아니라 타우너란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친딸을 성적으로 학대한 인간 아닌 인간으로 나오는 캘빈 보인튼은 클럽의 요트 선수였는데 어떻게 캘빈교의 교주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와 안젤라는 어떻게 만났으며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세일럼이란 도시에선 마녀 사냥이 가능한 걸까?

 

이 밖에도 앤과 레퍼티의 등장과 역할은 무엇일까?

 

아, 정말 모르겠다.

상당히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만약, 다시 읽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인건만은 확실해보이는데... 제대로 즐기고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환타지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 읽을 책이 환타지 소설의 선두주자라 할만한 톨킨의 <호빗>인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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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사랑에 빠지면 사과를 닮게 된다고...


처음엔 푸른 하늘 위를 날듯 파랗게 물들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붉고 빨갛게 변해버린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창처럼 푸르디 푸른 순수함은,

어느새 이기적인 소유욕과 욕망으로 불타오른다.


누군가 말했다.

사랑에 빠지면 사과를 닮게 된다고...


잘 익은 사과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멍이 들듯 사랑도 쉽게 '멍'이 든다.

멍든 사과는 도려내면 그뿐이지만 사랑에 멍든 가슴은 어찌할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사랑에 빠지면 사과를 닮게 된다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사랑에 빠지면 사과를 닮아가지만, 사과처럼 되는 건 아니라고...

한번 멍든 사과는 도려내지않으면 결국 썩어버리지만,

한번 사랑에 멍든 가슴은 도려내지않아도 썩지 않으며, 오히려 더한층 깊고 그윽해진다고...

.

.

.

이 세상에 실패한 사랑이란 없습니다.

비록,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든 사랑일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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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지음, 김정희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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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李) 마사코(方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본명이다.

잘 알다시피,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垠) 영왕의 부인이다.  운좋게(?) 세자의 자리에 오른 영왕이 일본 황실의 자손과 결혼을 한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사람은 부부로서 천생연분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몰락한 왕가의 세손도 일본 황실의 여식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필부필녀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더라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그들이 부부가 되었던 것 역시 세손이요 황녀였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으니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운명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듯 싶다.

 

이 책은 1984년 5월14일부터 10월24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이방자 여사의 자전적 기록인 <세월이여 왕조여>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엮어졌다.

그동안 이방자 여사에 대해 아니 조선의 마지막 왕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몰락해가는 왕조의 뒷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500년 조선왕조가 수십년에 걸쳐 서서히 저물어가는  와중에 일반 백성은 물론이요 왕실의 자손들 역시 말못할 고통과 슬픔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런 사실들은 정식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널리 다루지도 않기에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지막 황태자비의 비망록인만큼 훨씬 더 진솔하게 읽혔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고종의 셋째아들이었던 이은(垠)이 세자로 책봉된다. 둘째아들인 이강(剛)이 나이로는 앞서지만 모친(덕수 장씨)이 비(妃)로 책봉되지 않아 세자가 되지 못했단다. 한편, 이은 왕세손의 모친인 영월 엄씨는 명성황후 서거 후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가까이 모시면서 승은을 입어 순헌황귀비로 책봉되었기에 그의 소생인 이은이 세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11살 어린 나이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실 자녀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20세 되던 해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이방자 여사의 일본명)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한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는 이치조오카 도키코공주와 쿠니노미야 나가코공주등과 함께 당시 일본의 황태자였던 히로히토의 비로 물망에 올랐으나 권력투쟁에서 밀려 나면서 '선일융화(鮮日融和)라는 명목으로 조선 황태자비가 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미루어 볼때, 마사코라는 여인은 일본 천황비가 될 수도 있었던 자신이 망한 나라의 허울뿐인 천대받는 세자비가 되었다는 것에 한탄할 법도 하리라. 그러나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편인 영왕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사랑했으며 마침내 한국인으로서 한국땅에 묻혔다. 

 

사람들은 나를 비운의 왕비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낙선재 뜰에 서서 회고해 보는 나의 지난날들은 마냥 비운만은 아니었다. 긴 폭풍우 속에서도 가끔 한 조각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보이듯이 여인으로서의 사랑과 행복이 있었다. 무지개 같은 꿈과 희망도 있었다. 비록 고달프고 외로웠던 기억이라 하더라도 이제 회한과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마냥 끌어안고 싶은 것들, 내가 사랑해야 할 소중한 나의 것들로 받아들이고 싶다.

은(垠)전하와 나는 피차 불행한 조국의 왕족이었기에 서로 눈물겨운 역정을 나누는 부부가 되었다. 거목이 휘어질 때 그 기우는 아픔이 크듯 망해 가는 나라의 왕세자였기에 당하는 전하의 아픔은 옆에서도 감히 추축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인간으로서 은 전하는 훌륭한 분이었다. 따뜻하고 깊은 마음과 중후한 인품, 뛰어난 영어 프랑스어 실력과 조선 유학생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장학회 사업 등 망국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그분을 보며 나는 한일 융화보다 외로운 그분의 따뜻한 벗이 되고자 했었다. 부부로서 우리 두 사람은 오히려 행복했다. 험하고 암담한 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결합과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 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p4~6 中-

 

 

아버지(대원군)와 아내(명성황후)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임금으로만 알려졌던 고종은 실제로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특히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하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었고 상왕의 자리에서도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시도를 그치지 않자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왕이었다. 고종의 서거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지만 앓는 지병도 없이 식혜를 마시고 바로 사경을 헤매다가 죽었으므로 그 당시에도 독살설이 파다했고, 결국 여기에 분노하여 조선 백성들이 일으킨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3.1운동이다. 

 

영왕 역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지만 모든 면에서 일본의 황실 자손들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조선인 유학생들이나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의 감시와 지배가 더한층 심해질 것을 감안하여 항상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해방되자마자, 조국에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이승만대통령(1875년 생으로 같은 전주이씨였던 이승만은 1897년생으로 자신보다 22살이나 어린 영왕을 무시하고 아랫사람 취급했으며, 혹시나 영왕이 돌아오면 왕정복고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의 냉대와 무관심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일본에 남아 일본 정부의 도움도 한국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한다. 이방자 여사의 수기에 이 부분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에서야 영왕과 이방자 여사는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많던 왕실 재산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고 왕실 후손들은 빈궁하게 살고 있었다. 

 

1970년 귀국 6년6개월만에 영왕이 서거한 후,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 남아 1989년 눈을 감을 때까지 장애아동 등을 돕는 일에 매진했다.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다고 할 순 없다.

첫아이를 7개월만에 어이없이 떠나 보냈으며 잦은 유산과 암 등 병치레 또한 잦았다. 그리고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힘겨운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로서 영광보다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식민통치국의 여자라는 손가락질 또한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인류애)과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황태자비이기에 앞서 모든 이들에게 삶의 모범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그녀가 이런 그녀의 삶이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의 25세 연하 부인이었던 프란체스코 여사보다도 덜 알려져있거나 사실이 왜곡되어 알려진 것이 못내 아쉽다. 아마도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영왕과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손인 이구 역시 안타까운 일생을 살다갔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혼자 힘으로 미국유학길에 올라 명문 MIT까지 졸업하고 미국인 아내를 맞이했건만, 한국에 돌어온 이후 이런저런 세력들과 이씨 문중의 참견에 견디다 못해 1979년 일본으로 건너가버렸다. 그후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귀국 종용에도 불구하고 2005년 그곳에서 곡절 많은 삶을 마감했다고 하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세손이라는 의무와 책임만을 강요하고 걸핏하면 일본인 피가 섞였다는 질시와 비난을 견뎌내기엔 그에게 조국은 너무 낯선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올바른 역사를 남기려면 무엇보다도 흔적이 남아 있는 근현대사부터 정확히 기록하고 확인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 입니다>의 단행본 출판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되도록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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