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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관하여 ㅣ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2
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1957년 쑤저우에서 태어나 난징대에서 수학한 작가는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집안 출신이다. 그의 조부인 예성타오(葉聖陶)는 중국 최초의 창작 동화집인 <허수아비(稻草人)>의 저자이며, 부친 예쯔청(葉至誠) 역시 책을 좋아한 장서가였다고 한다. 그와 동년배의 작가들이 문화대혁명으로 암울한 십대를 보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자오옌은 일찍부터 동서양 고전과 현대 문학을 두루 접하면서 작가적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식 블랙코메디라 할 수 있는 <화장실에 관하여(關于厠間)>는 동양 고전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화장실을 소재로 한 이 중편 작품은 역자인 조성웅씨의 표현대로 배설 욕구와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권력욕, 성욕, 치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좀 더 깊게 파고 들면 이런 욕망의 표출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화자인 '나'를 통해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이었던 부모가 동네 공동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해야 했던 일과 지식인의 자녀인 화자 또한 피난처로 삼은 시골 학교에서 마찬가지로 화장실 청소를 맡으라는 담임선생님의 명령에 '무단결석'으로 저항한 일들을 거론하며 인간 욕구의 뒤틀린 단면을 보여준다.
깨끗이 청소를 해도 어느새 금방 더러워져버리는 동네의 공동 화장실은 '혁명'을 거친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의 부패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버리는 현상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가장 사적인 개인의 '배설' 행위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가장 집단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담장 밖으로 던져진 문제는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내 일'에서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너의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건, 만리장성도 아니요 자금성도 아닌 중국의 그 독특한(?) 화장실이었다. 누구라도 안 가고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혁명하느라 바빴던 대다수 중국인들에 의해 관심 밖으로 훌쩍 던져 버려진 화장실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포기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쉰 양하이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지의 그 부분이 돌연 짙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느릿느릿 그러나 활짝 피는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처음엔살짝 젖었던 부위가 점점 커졌고 수정 같은 물방울이 한 점씨 배어나더니 급기야는 땅에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인 오줌은 이내 낮은 곳을 향해 천천히 흘러갔다.
-예자오옌, <화장실에 관하여> 中,1991년12월 作-
마치, 80대년 홍콩 르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회사의 꽃으로 뭇남성들의 로망이었던 양하이링이 대도시 상하이에서 시내 관광을 하다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결국 화장실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실례를 하는 이 장면 말이다.
천천히 날아오른 총알에 핏줄이가 솟구치고 인물의 표정이 극대화되면서 장엄한 배경음악이 흐른다......
배설과 죽음이라는 상황만 다를 뿐 분위기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시각적 효과가 강렬한 이 장면을 매우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리라. 매우 리얼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장면을 말이다.
우수중편문학상과 장쑤문학예술상을 수상한 <추월루> 역시 예자오옌의 대표작으로써 손색이 없다. 청말과 민국을 거쳐며 격동의 현대사를 살다 간 중국의 마지막 지주 딩(丁) 선생의 생애가 작가의 담담한 필치에 담겨 한편의 역사드라마가 펼쳐진다.
청 조정에서 한림원 관리로 일했던 딩 선생은 자신의 칠순을 기념하여 뒤뜰에 '추월루'를 앉힌다. 수 천년 동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축첩제도와 남존여비사상 그리고 철저한 신분제 사회의 마지막 황혼빛이 이곳 추월루에 비쳐든다.
딩 선생은 평생 자신이 과거 시험 출신이란느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향시, 회시, 전시를 잇따라 장원으로 급제하지는 못했으나 시험을 치를 때마다 합격을 했던 것이다. 늠생은 말할 것도 없고 향시에 합격한 거인이나 회시에 합격한 진사도 말 한마디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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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이 득세했을 때는 고관이 될 수 있었는데 재수없게 목이 잘렸다. 그리하여 딩 선생은 회를 피해서 상하이로 일본으로 정신없이 도피하였다.
청나라 말기, 일본은 중국 혁명의 근거지였다. 딩 선생이 일본에 있을 때는 혁명이 자신을 찾아왔다. 여러 사람이 그가 진사 출신이란 점을 맘에 들어했다. 그는 어영부영 동맹회에 가입을 하고 맹세를 했다. 수류탄을 던지고 봉기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한 일이라고는 유학생 집회에 두 번쯤 가서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고어체의 격문을 썼을 뿐, 그 외에는 예전처럼 공부만 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춘추삼전정의>의 초고도 사실 그때 완성한 것이었다.
민국 이후, 딩 선생이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자기 뜻대로 누각을 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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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루가 완공되고 일 년이 채 못 되어 일본인이 왔다. 딩 선생은 추월루에 칩거하면서 수천 년에 걸친 중국 문명과 역사를 뒤적이면서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천신만고를 다 겪는 듯한 감회에 빠졌다.
-예자오옌, <추월루> 中-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대학살을 일삼자, 딩 선생의 큰 사위 밍쉬안과 장손 보치 그리고 둘째 손자인 중샹 등이 모두 피난을 떠가고 딩 선생과 그의 어린 첩 샤오원만이 홀로 남는다. 두달이 지나 가족들이 돌아오고 어르신을 모신 샤오원의 위상은 높아진다. 칠순을 넘긴 딩 선생에겐 이미 열 명의 딸이 있건만 샤오원과의 사이에서 이제 막 아장 아장 걸음마를 하는 막내딸 샤오마오를 두었다.
칠십 평생 딩 선생의 삶은 제국의 몰락과 열강의 침략 그리고 비적과 혁명군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중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혜가 깊다 한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막거나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을 미리 내다본다는 '혜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히 역사의 흐름을 잘 탄 것에 불과할 뿐, 개인의 역할이나 노력은 사실 극히 미약했으리라. 딩 선생은 이 모든 이치를 깨닫기라도 한 듯 혼란스런 세상을 뒤로 하고 스스로를 추월루 속에 감금시켜 버린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모습은 마지막 선비로서의 예를 충분히 갖춘 것이었다.
딩 선생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무슨 큰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등에 종기가 났을 뿐이었다. 민간에서 흔히 '등띠'라고 부르는 질환이었다. 심지어는 딩 선생 자신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늘 하던대로 먹고 마셨으며, 숨이 끊기던 그날에는 사우원에게 영화도 보러가게 해주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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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딩 선생이 비명을 지르며 답답증을 호소했다. 중샹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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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았거라, 할아비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중샹은 훈계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오를 다진 후 하문을 기다렸다. 딩 선생은 그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성인은 예절에 구속받지 않고, 현인은 예절을 굳게 지키며, 어리석은 자는 예절을 잃고 함부로 행동한다고 했다. 할아비는 늙고 병들었지만 이 도리를 감히 잊지 못한다. 너희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할아비가 여러 말 해도 쓸모가 없겠지."
말은 마치고 눈을 감은 그의 표정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중샹은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훈계는 맏고 싶지 않았떤 터라 일부러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딩 선생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눈물이 코끝에 달린 채 빛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중샹은 그 코끝에 맺힌 눈물이 계화향처럼 느껴졌다.
-예자오옌, <추월루> 中-
1987년 12월 作 <대추나무 이야기>는 예자오옌의 출세작이라고 하는데, 불분명한 인칭과 시점으로 인해 나에게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난징 대학살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난징의 부잣집 외동딸 쉬윈은 서둘러 얼한과 결혼한 후 그의 고향으로 간다. 그렇지만 얼한이 고향마을의 비적 두목인 바이롄에게 목숨을 잃게 되면서 청상과부가 된 쉬윈의 삶은 그때부터 얽히고 섥히기 시작한다. 결국, 남편을 죽인 바이롄의 애첩이 된 쉬윈은 얼한의 동생 얼융이 바이롄을 토벌하러 오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세상이 또 한번 바뀌어 천하가 공산당의 손아귀에 떨어지고...쉬윈 또한 어느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천천히 달려간다. 그리고 20대 젊은 나이에 병사한 그녀의 아들 융융과 생년월일이 같다는 작가인 '나'와 조우하게 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사와 주변 인물들의 행적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다.
대하역사소설 정도의 중량감을 갖춘 이 작품은 '무인칭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무명의 논픽션 작가가 등장하여 1970년대 타이핑 읍의 파출소 소장인 얼융을 인터뷰하면서 바이롄과의 악연이 서술된다. 그리고 작품의 말미에 작가 예자오옌을 대신하는 듯한 젊은 작가가 현재 시점에서 이젠 노인이 된 쉬윈을 만나 그녀의 과거사와 아들 융융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형식이다.
작가는 어째서 이처럼 다양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일관적이지 않은 시점으로 인해, 독자는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큼지막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종종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새로 시도된 형식이거나 아니면 작가 개인의 취향이나 고도로 계산된 의도가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한 이유를 모르겠다.
참고로,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소설 <이유> 역시 무인칭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사건에 연류되어 있는 인물들을 방사형으로 이어 나가면서 인터뷰하는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살인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형식을 통해 작가는 독자와 사건 그리고 독자와 등장인물들간에 일정한 거리감을 둠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탐정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혹은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의 이와 같은 작품 형식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데이코쿠 은행사건의 수수께끼-일본의 검은 안개 중에서>와 상당히 닮아 있다.
한편,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대학입시제도 부활과 함께 성년을 맞이한 중국의 젊은 지식층 부부의 결혼생활을 그린 <연가>는 풍자와 과장으로 얼룩져 있는 중국의 신사실주의 문학에서 '사실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감정변화를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연가>는 공교롭게도 1989년에 일어난 톈안먼사건 바로 전해인 1988년 9월29일에 쓰여져, 중국의 80년대를 이해할 수 있는 방향타가 되어준다.
그 당시 중국 지식층은 비전없는 '단위(직장)'에서의 시간때우기와 아르바이트를 통한 부수입 올리기 그리고 부모세대와는 달리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의 부재와 개인적인 감정과 삶의 중시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과 사회변화를 견인한 내재적 힘의 원동력이 바로 이들은 아니었을까? 이들은 과연 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사회의 빠르고 놀라운 변화에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청왕조의 멸망과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다룬 작품들은 많은 반면, 80년대 이후의 중국 그리고 중국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예자오옌의 <연가>는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