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은 1985년<겨울 우화>로 등단했으나 1996년 <풍금이 있던 자리>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특유의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필치로 90년대 한국문학의 특징을 새롭게 구축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에 출생하여 어렵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내고 70년대의 경제성장과 80년대의 집단적 정치담론 시기를 거친 그녀는 비슷한 동년배 작가들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후일담 문학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작품 세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집단속에 머물러 있던 개개인이 집단 밖으로 나오면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9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대중의 요구와 잘 부합되었다고 하겠다. 어쩌면 이와 같은 우연적 일치가 그녀로 하여금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게 만들고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작가로서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배드민턴치는 여자-1992년> <감자먹는 사람들-1996년> <부석사-2000년> 등은 상처받은 연약한 개인에 대한 '랩소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배드민턴치는 여자>는 여성이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남성의 욕망에 '의해' 혹은 욕망에 '대한' 객체로 등장한다. 신경숙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특정한 이름없이 3인칭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많다. <배드민턴치는 여자> 역시 화자인 그녀에게 전해진 명함으로 '이세호'라는 이름이 등장할 뿐 구체적인 이름이나 호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와 등장인물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함이고 이와 같은 '작가-등장인물'간의 거리는 '독자와 등장인물간의 거리를 결정한다. 즉,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감정이입을 최대한도로 억제시키려는 작가의 계산된 의도라고 할 수 있겠다.
화원에서 일하는 '그녀'는 사진기자인 '그'의 갑작스러운 술자리 고백에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나, 할 말이 있어.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지난 여름에 그놈의 바이올렛 때문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당신 내 카메라 바라보느라고 눈 내리깔고 있을 때, 아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눈썹도 있구나, 내낸 생각했지. 내 마음 몰랐지요?
-신경숙, <배드민턴치는 여자- 中>
남자의 작업성 멘트와 민소매 브라우스 밑의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유부남인 그는 사랑에 쫒겨 자신을 찾아온, 회사앞의 카페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도 못 알아본다.
절망한 그녀는 베드민턴을 치고 있는 짧은 치마의 여자들을 '야릇하게' 쳐다보던 인부들이 앉아 쉬었던 공사현장으로 찾아가 포크레인 위로 기어올라간다. 그리고 스스로를 '매장'시켜 버린다. 물론, 여기에서 포크레인은 남성성과 욕망의 주체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거대하고 강한 가부장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당신은 잊었지? 그날 밤 내 소매 없는 자줏빛 실크 브라우스 밑의 팔뚝에 돋아 있던 좁쌀 만한 소름들, 그걸 쓰다듬어 주었던 일을, 당신은 잊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를 기억할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매장할 흙이 없어 손짓을 멈추고 밤 별들을 눈으로 올라다본다. 그의 얼굴이 잠시, 별들 속에 섞여 피어났을 때 그녀 눈 속의 공허함이 잠시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곧 다시 초점이 없어진다. 너무 짧은 공허한 빛남. 지금 그녀는 넋을 잃었을까? 공허한 빛남이 사라지고 난 뒤 그녀는 아무 짓도 안 하고 끄덕끄덕 졸고만 있다.
-신경숙, <배드민턴치는 여자- 中>
고흐의 작품명이기도 한, <감자먹는 사람들>은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은 전북 정읍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성장과정과 환경 및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에 대한 사유가 가장 많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는 '밥을 한 소쿠리 비벼 놓자, 어린 자식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두렵고 무서웠다'라는 부친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산업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 작가의 이력을 보아도 힘든 노동을 묵묵히 견디며 조촐한 양식으로 기꺼이 끼니를 때우는 '감자먹는 사람들'의 초상은 그리 멀리 있는 것같지 않다.
<감자먹는 사람들>의 작중 화자는 뇌수 속을 떠다니는 석회질로 인해 걸핏하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입원 중인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음반을 냈으나 인기를 얻지 못한 무명 가수인 화자는 공교롭게도 등단은 했으나 대표작도 없고 이름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예작가시절의 작가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감자먹는 사람들>의 작중 화자의 아버지는 한의원이었던 부친이 전쟁 직후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을때 종가 큰형님을 치료하러 찾았다가 병이 옮아 그만 이틀 간격으로 부친과 모친을 모두 잃고 모진 세상을 살아온 이다. 그런 이의 독백을 읽고 있자니 마음속으로 두갈래 물길이 저절로 생겨 흘렀내렸다.
이 천지간에......아베 어메를 이틀 사이로 다 잃고 나니께는 입이 닫혀버리더라. 아베 어메를 다 묻고 나서는 그만 나도 죽어버리야지 했다. 단 하루도 살어갈 자신이 없드라. 눈을 뜨면 무서운 생각만 왈칵 밀려들고 문을 열고 대문을 보면 금세 아베 어메가 들어설 것만 같고......세상 사람덜이 모두 다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고 그만 죽어버리야지 해서 철길로 안 나갔냐. 근디 죽게 되질 않더라. 기차가 오면 뛰어들어 버릴 생각으로 나갔는디 마음과는 달리 머리서 기찻소리가 들리면 논둑 뒤로 몸을 숨기곤 했어. 기찻길 너머로 멀리 선산이 보이지 않겄냐. 온종일을 그 자리에 앉어서 울었다. 그 어디께 아베 어메가 있겄지 쳐다봄서 온졸일 울었더니마는 목이 쉬어서는 그나마 닫힌 입이 더는 한마디로 안 나오더라.
(......)
너그덜이 생기고부터는 세상이 덜 무섭고 조금은 만만해 비더라. 나는 암말도 않고 너그덜 가르치는 일로만 살았어야. 누가 시비를 붙여도 속으로 그맀다. 내 자석들이 핵교 다니고 있으니께 너그덜이 나한테 그리 봐야 암 소용 없다. 한때 집을 버리고 다르케 살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근디 양친 잃고서 그토록이나 무섭든 내 맴이 나를 붙들더라. 내가 다르케 살자고 너그덜을 무섭게 할 수가 없드나. 나는 가진 것은 없으니께 어떻게든 핵교에나 보내서 배울 만큼은 배우게 혀서 지 걸음들을 걷게 해주야지......그 생각이 마음조차 다물게 허더라.입이 다물고......또 입 다물고 말았던 내 맴이 내 병이다. 그것이 내 머릿속을 그르케 만든 것이여. 너거 어메조차 나한티 어째 그르케 말을 안 허냐고 답답히서 살지를 못허겄다고 해도 나는 암말도 안 허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였다. 말이 무서웠지야. 천지간에 양친도 없는 사람이 허는 말을 누가 듣기나 허겄나 싶기도 허더라. 근디 그것이 병이 되야서 돌아왔는갑다......안 글면 어쩌서 내가 이렇다냐?
- 신경숙, <감자먹는 사람들> 中-
가진 것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아무말도 안 하는 것은 몰라서 혹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침묵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무기였음을......
행운과 불운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선과 악을 구분하지도 않은 채,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찾아든다. 철거덕 철거덕 달려오는 기차의 강철 바퀴 소리처럼.
신경숙의 <부석사>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작품 속 공간적 배경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산 아래의 오피스텔이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서 있는 양로원이며......
말하자면, 내가 여섯살때부터 30년 넘게 살아온 세검정 일대-좀 더 정확하게는 구기동-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북5도청이며 청록양로원(작품에서는 이름을 살짝 바꾼 듯, 정식명칭은 청운양로원)등등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만은 추억속의 '그곳'을 헤매이고 있었다.
암튼, 지금은 이사를 왔지만 계절마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 언덕을 지나 세검정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내가 졸업한 세검정초등학교를 지나는 그 순간만큼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회에 빠져들곤 한다.
<부석사>라는 작품을 잘 살펴보면, 작가가 작중 화자가 사는 '그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개연성이 있다. <감자먹는 사람들>속에서 주인공의 큰 오빠가 처음으로 집을 샀던 동네가 '역촌동'으로 나오는데 역촌동은 구기동에서 터널 하나만 건너면 금방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부석사>의 여주인공이 올케 언니네를 방문하여 이것저것 밑반찬을 찬합에 담아 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혹시 그 올케 언니네 동네가 구기동에서 가까운 역촌동은 아니었을까?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가공의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실제하는 그곳과 너무나도 유사한 것이 매우 신기했다.
내 머리속으로 마치 마쓰모토 세이초가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 일기를 바탕으로 <어느 고쿠라 일기전>을 쓴 것처럼 <부석사>를 배경으로 한 글을 한편 써볼까? 하는 생각이 삐져 올라온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자, 그럼 이제부터는 작품 <부석사>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1월1일 부석사를 향해 출발한 남녀는 결국 <부석사>에 가지 못한다.
이들은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한다는 점과 종종 북한산 산책길에 남의 집 텃밭에서 야채 서리를 함께했던 '인연'으로 새해 첫날 실과 바늘이 통과할 정도로 살짝 떠 있다는 부석(浮石)을 보기 위해 가볍게(?) 부석사에 갈 약속을 한다.
여자는 자신을 배신하고 영문학계의 원로의 딸과 결혼해버린 P의 돌발적인 방문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실화가 아닌 꾸며진 것이라는 소문의 진원지인 박PD의 방문을 피하기 위해서......
아, 참! 그리고 동료(?)에게 공격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어 개를 무서워하는 개도 함께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위에서 여자친구에게 배신당한 남자와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과연 새로운 인연이 될 수 있을까.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에 두 사람이 탄 차는 눈길에 길을 잘못 찾아들어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러나 작품은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그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희망도 실망도 아직은 이르다. 아니 어쩌면 살짝 떨어진 상태로 언젠가는 맞닿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천만년을 함께 해온 부석처럼 인간 관계 역시 희망과 실망이 살짝 살짝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네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결에 머무는데도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박PD는 돌아갔을까. 그들이 찾지 못한 부석사가 바로 근처에 있는 겐가. 희미한 범종 소리가 눈을 뜨지 못하는 그의 구에 머문다. 그녀도 범종 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뻗어 첼로 소리를 줄인다. 종소리가 눈발 속의 골짜기를 거쳐 그들을 에워싼다. 여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마음뿐이었다. 어깨가 내려앉는 듯한 피로에 점령되어 그는 점점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녀는 보온통을 기울여 종이 컵에 커피를 다른다. 수석사의 포캐져 있는 두 개의 돌을 닿지 않고 떠있는 것일까. 커피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쓸어 내리고 있다. 그녀는 문득 잠든 그와 자신이 부석처럼 느껴진다. 지도에도 없는 산길 낭떠러지 앞의 흰 자동차 앞유리에 희끗희끗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뒷자리에 개켜져 있는 담요를 끌어와 그의 무릎을 덮어준다. 그녀의 기척에 가느스름하게 눈을 뜬 그는 이 순간만은 반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혹시, 저 여자와 함게 나무뿌리가 점령해버린 옛집에 가볼 수 있을는지. 이제 차창은 눈에 덮여 바같이 내다보이지도 않는다.
-신경숙,<부석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