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나목>은 이제는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의 데뷰작이자 생전에 작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바 있다. 썸네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6.25전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목> 역시 전쟁 기간 미군 PX에서 육체적 생존을 위해 정신적 생존을 저당 잡힌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을 <오발탄>이나 <수난시대>등과 같이 전쟁을 정면에서 다룬 전후 후일담 소설의 일환으로 볼 수는 없다. <나목> 역시 전쟁통에 두 오빠를 잃고 하루 아침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젊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1인칭주인공 시점의 애정소설이자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타의 반전소설과는 달리 전쟁이라는 흔치 않은 체험이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상처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작품 속 주인공인 이경은 물론 당연히 작가 자신의 투영이며 새파랗게 젊디 젊은 시절 그녀가 사랑했던 중년 남자는 박수근을 모델로 하고 있다. 다른 환쟁이들과는 달리 깊은 슬픔을 담고 있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슬픔을 보게 되고 또 바로 그러한 연유로 그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목>은 희생적인 이타적 사랑이라기 보다는 나르시시즘적인 이기적 사랑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눈먼 자기애로 끝나는 것이 아닌, 성숙한 자기 성찰로 마무리된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의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에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썸네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 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여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음을 깨닫는다. -박완서 <裸木> 중-


1931년에 출생한 작가는 마흔살이 되된 해인 1970년 11월 동아일보 장편소설 부문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40여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읽는 내내 유행 지난 유행가를 듣는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한계인 설명하기식 전개 역시 작품을 읽는 밀도감과 긴장잠을 떨어뜨린다.

 

그렇지만 위대한 작가의 초기작들이 종종 갖고 있는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박완서의 <나목>은 사랑스럽다. 왜냐하면 '치유의 글쓰기'로 대표되는 박완서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11월...

내가 한창 자랄 때처럼 집집마다 수십포기씩 김장을 하던 시절은 더 이상 아니지만, 마지막 입새를 떨군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겨울을 맞이하는 나목(裸木)들 만큼은 변함이 없다.

한올 하나 안 남기고 전부를 내놓을 수 있는 건, 아직은 저 멀리 있지만 분명 봄의 생명이 다가올 것임을 그래서 버린 것만큼 아니 버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푸르름을 전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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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 없이 조바심치던 그 연유를 이제서야 할 것 같다.

박완서는 스무살 즈음에 겪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나목>이란 작품으로 등단했다.

내가 태어나기 바로 전 해인 1970년 마흔살의 나이에 말이다.

박완서란 작가가 등단한 바로 이듬해에 태어난 나는 올해로 마흔 한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마흔살에 쓴 작품 <나목> 역시 이제 막 마흔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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