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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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 것처럼 그런 적 있을 것이다.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진정한 나, 변하지 않는 본질로서의 나, 누가 뭐래도 단단하게 정해진 나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책은 진정한 자아를 찾다가 포기해버린, 그렇지만 아예 시원하게 포기해버리지는 못하고 찝찝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에 남겨둔 나 같은 어정쩡한 사람들을 달래준다. 저자가 말하는 ‘분인주의‘라는 것은 ˝애초에 그런 건 없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상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와 만나고 친해지고 싸우고 헤어진다. 그러면서 인연을 맺은 상대에 맞춰진 나름대로의 인격을 저마다 만드는데, 그게 저자가 말하는 ˝분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의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정해진 알맹이가 아니라 여러 가지 분인을 얼굴 뒤에 품은,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다채로운 내면을 가진 하나의 우주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과 만나 분인을 만들고 스스로를 쌓아 올린다. 반대로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내면에 나에게 맞춰진 분인을 만든다.

그렇게 사람은 상대에 맞게 ‘맞춤 인격‘을 만든다. 다중 인격 아니냐고? 그런 거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가까워지면서 그에 맞춰서 내면이 그의 향기에 진하게 배여가는 모습에 가깝다. 상대에 잘 맞춰진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와 소중한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반대로 그런 분인 하나쯤 가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는 사람은 모든 관계를 얄팍하게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혼자서 살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 안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단일하고 본질적인 진정한 자아 같은 건 허상일 뿐이다. 그런 거 안 찾아도 된다. 있지도 않은 것이니까.

내 안에서 자아와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이 책을 읽고 뭔가 상당히 많이 바뀐 것 같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으니 좋은 책이다.

소설가가 쓴 가벼운 수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는데, 그보다는 뭔가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책이다. 무거운 수필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철학 책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람이 분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상대와 가까워지는 과정과 연결 지어 착착 ‘빌드 업‘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랑을 분인으로 설명한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애(사랑)는 ‘그 사람과 있을 때의 내 분인이 좋은‘ 상태를 뜻한다.˝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상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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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해줘도 당신 곁에 남지 않는다 - 가짜 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행복한 진짜 관계를 맺는 법
전미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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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하지 않고 본 책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은 안 그래도 넘쳐나기에 이 책 또한 엇비슷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신과 의사가 썼다니까 뭔가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고민 끝에 골라 읽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인 것 같다.


이 책이 말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정도가 되겠다. 세상에는 진짜 관계와 가짜 관계가 있는데, 내가 굳이 수고롭게 마음으로 애써야 하는 관계는 가짜 관계다. 진짜 관계는 나를 살찌우지만 가짜 관계는 갈수록 나를 병들게 한다. 그러니까 가짜 관계는 멀리하고 진짜 관계로 삶을 채우라는 이야기.


이렇게만 쓰면 책에 나오는 말들이 죄다 너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가 의사로서 일하면서 얻은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구체적 사례를 짚어주는 문장들을 읽다가보면 어느 순간 가슴을 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이토록 쓸데없이 애쓰면서 살아왔구나.˝


나 역시 인간관계가 어렵기에 이런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다짐했다.
‘어려우면 관두자. 어려우면 가짜야. 진짜는 이미 내 곁에 있어. 그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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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봉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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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러니까, 단맛에 중독되어 흥청망청하던 어떤 사람이 결국 쓰디쓴 독약을 마시고 죽어버리는 이야기다.

슴슴하고 담백한 걸 멀리하고 자극적인 것만 찾아다니다가는 결국에는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되리니. 인생에 공짜는 없다.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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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사랑은 이렇게 힘들까 - 애착의 네 가지 유형과 치유에 대하여
다이앤 풀 헬러 지음, 유혜인 옮김 / 멀리깊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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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 책은 제목이 무척 강렬해서 읽어봤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책 제목이 무척 적당하고 적절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애착 유형-안정형, 회피형, 양가형, 혼란형-을 다룬 책이다. 애착 유형이라는 게 어린 시절 부모와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라, 자기 애착 유형을 추적한다는 건 곧 어린 시절 내 부모가 남겨준 추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성장 과정도 실제로 존재하기 어렵기에, 가장 바람직하고 좋은 애착 유형인 안정형에 해당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으로 어두운 구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몰랐던 가장 깊은 기억을 꺼내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을 생각해 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그러한 자기의 과거를 직면하게끔 유도하고, 외면해왔던 자기 그림자와 화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일 테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부모님의 젊은 시절과 다시 만났고, 나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심연도 마주 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 시절 그들을 조금은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깊숙이 구겨서 묻어두었던 나의 어둠과 작게나마 화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소득은, 내가 때때로 어려움에 빠지고 실망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한 사연과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책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재독, 삼독을 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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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3 세트 - 전3권
류츠신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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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때문에 찾아서 읽어 봤다.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참고로 드라마 시즌 1은 책 1, 2, 3권에서 초반부 내용을 골라 재구성하여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드라마와 소설 등장인물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곧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드라마에서 다룬 소설 전반부는 인간과 삼체 세계의 대립과 전쟁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지만, 후반부로 가면 우주의 실체와 차원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면서 점점 어려운 내용이 펼쳐진다. 과학 지식이 깊지 않아서 갈수록 읽기 힘들어졌지만, 배경지식이 없이 띄엄띄엄 읽더라도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어서 괜찮았다. 나는 전반부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후반부는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외계 문명이 태양계를 어떻게 멸망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해 전래동화라는 은유를 통해 떡밥을 던지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제목은 ˝삼체˝이지만, 결론적으로 인류와 삼체 세계의 전쟁은 전체 이야기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SF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고 얻어 가야 하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게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짚어보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차원과 낮은 차원을 오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3차원 세계가 2차원으로 압축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볼 수 있었고, 세상을 영원에 가깝게 살 수 있어서 까마득히 긴 시간을 뛰어넘으면 그 끝에 어떤 것이 남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긴 소설이었지만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내내 즐거웠다. 드라마도 시즌 2가 나온다면 꼭 보고 싶다. 시즌 1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게 될 텐데, 그것을 어떻게 영상화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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