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린 것처럼 그런 적 있을 것이다.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진정한 나, 변하지 않는 본질로서의 나, 누가 뭐래도 단단하게 정해진 나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이 책은 진정한 자아를 찾다가 포기해버린, 그렇지만 아예 시원하게 포기해버리지는 못하고 찝찝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에 남겨둔 나 같은 어정쩡한 사람들을 달래준다. 저자가 말하는 ‘분인주의‘라는 것은 ˝애초에 그런 건 없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상이다.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와 만나고 친해지고 싸우고 헤어진다. 그러면서 인연을 맺은 상대에 맞춰진 나름대로의 인격을 저마다 만드는데, 그게 저자가 말하는 ˝분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의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정해진 알맹이가 아니라 여러 가지 분인을 얼굴 뒤에 품은,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다채로운 내면을 가진 하나의 우주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과 만나 분인을 만들고 스스로를 쌓아 올린다. 반대로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내면에 나에게 맞춰진 분인을 만든다. 그렇게 사람은 상대에 맞게 ‘맞춤 인격‘을 만든다. 다중 인격 아니냐고? 그런 거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가까워지면서 그에 맞춰서 내면이 그의 향기에 진하게 배여가는 모습에 가깝다. 상대에 잘 맞춰진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와 소중한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반대로 그런 분인 하나쯤 가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는 사람은 모든 관계를 얄팍하게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혼자서 살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 안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단일하고 본질적인 진정한 자아 같은 건 허상일 뿐이다. 그런 거 안 찾아도 된다. 있지도 않은 것이니까.내 안에서 자아와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이 책을 읽고 뭔가 상당히 많이 바뀐 것 같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으니 좋은 책이다.소설가가 쓴 가벼운 수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는데, 그보다는 뭔가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책이다. 무거운 수필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철학 책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람이 분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상대와 가까워지는 과정과 연결 지어 착착 ‘빌드 업‘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책을 손에서 뗄 수 없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랑을 분인으로 설명한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애(사랑)는 ‘그 사람과 있을 때의 내 분인이 좋은‘ 상태를 뜻한다.˝˝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상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