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장편 소설

 

우선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민생단 사건을 [民生團事件조회한 결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30년대 간도 지역에서 수많은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이 민생단과 관련된 일본 첩자라는 혐의를 쓰고 체포, 살해된 사건이다.”

 

민생단은 간도 지역에서 조선인 차치를 주장하면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옹호하던 친일 조직이다. 하지만 네이버 백과서전의 민생단 사건의 요약을 보더라도 이 사건의 핵심은 민생단이 아니라 이 단체를 빌미로 간도 지역의 수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희생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로 친일 행위로 숙청되거나 살해된 조선인들이 있었겠지만 그게 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김연수의 장편 소설 [밤은 노래한다]의 출발점이다.

 

첫째, 간도 (=연변, 이번에 처음 알았다. ~~~~~~ 창피한 일이다) 는 만주 사변 이후 중국 공산당 위주로 항일 투쟁이 활발했던 지역이나 인구의 80~90%가 조선인들이었다고 하니 이 소설처럼 간도 지역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영토였으나 조선인이 개척한 땅이었다.” 그러므로 민생단이 주장하던 간도의 조선인 자치는 당연히 중국 국민들에게 조선이 일본의 앞잡이라는 의심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의 영토 분쟁이라는 민감한 문제까지 확대 해석 되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민족국가사상이나 이념보다 강력한 개념임에 틀림 없다. 왜냐하면 민족과 국가는 이성, 학습의 문제가 아닌 본능적인 핏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주장했던 2인터내셔널에서 러시아 볼셰비키당을 제외하고는 각 정당들이 실제적으로 자국의 1차 세계 대전에 협력 하였다는 점은 민중보다는 국민의 힘이 우세함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식한 비교이지만 당신이 노동자 계급으로 교전국의 노동자와 자국의 자본가 중에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이 온다면 누구에게 총구를 겨눌 것인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나라면 글세, 자신 없다.

 

둘째, 그 당시 조선공산당은 조직이 와해되어 분파들의 노선 경쟁이 치열 했다고 한다. 거기에 일국일당 (一國一黨)의 원칙으로 중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중국공산당 가입이 필수적 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민족주의자나 일본의 스파이로 음해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은 키우고 반대 세력은 축출하려는 권력 암투는 치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산주의에서 분파들의 권력 다툼은 피로 물든 역사이다. 이 소설에서 푸른 빛의 희망은 붉은 빛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었다는 문장과 민족주의자인 박길룡과 정통 공산주의자인 박도만의 대립과 갈등은 권력 투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예증이다.

 

그러나 작가 김연수가 이 사건을 소설로 쓰게 된 이유가 민족이나 이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어디 까지나 이야기의 소재이자 음식으로 치면 밑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가 정작 쓰고자, 아니 말하고 싶었던 대상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순수한 톨스토이형 박애주의자 김해연은 작가 김연수가 그리는 인간의 보편적이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이상적인 인물이 아닐까? 이념을 위해서 성적 유혹도 서슴지 않던 이정희가 김해연한테 받은 사랑은 잊고 있었던 일상으로의 찰나적인 일탈이었고, 박도만에게 사상이 아닌 사랑의 복수를 위해 공산주의에 투신하는 김해연은 비판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되돌아 보게 해준 동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마지막에 결말을 고쳤다고 하는 김해연이 세월이 흐른 후 유일한 생존자인 변절자 최도식을 처단하려 순간, 그의 아이들을 보고 용서하는 모습은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나도 김연수를 믿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만 커지니 낭패다. 시간이 문제라고 자위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제이와 동규이다. 이 둘은 욕망의 자웅동체이며 거울의 안과 밖의 존재이다. 출생부터 범상치 않았던 제이는 보육원 독방에서 시작된 정신적 변화로 자신이 사물이나 생물에 자신의 영혼을 빙의 시킬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반면 동규는 어린 시절 선택적 함구증으로 언어를 상실 했을 당시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고 자기 대신 행동했던 제이에 대한 경외감과 미안함으로 평생 그의 인생을 제이에게 저당 잡힐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이다. 왜냐하면 말을 할 수 없었던 당시 제이는 동규의 욕망의 통역사였고 동규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제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반면 제이 역시 동규가 없었다면 타자(사물 포함)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그의 표현으로는 고통의 센서’) 기능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을 평생 알지 못한 채 비루한 삶의 낙오자로 끝나 버리는 대중소설의 그렇고 그런 결손 가정의 비행 청소년에 불과 했을 것이다.

 

각 장은 각각 제이의 관점과 동규의 관점으로 물론 4장의 할리 데이비슨 타는 짭새박승태와 에필로그의 작가 (물론 이 부분이 작가의 실제 에필로그 인지, 아니면 극적 효과를 위한 또 다른 픽션인지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난 물론 후자의 편이다)의 관점도 있지만 소설을 풀어 나간다. 1장은 동규의 관점에서 제이와 동규의 어린 시절 경험에 대해, 2장은 제이의 관점 에서 제이의 보육원 탈출 후 가출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3장은 다시 동규의 관점에서 제이와의 재회와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갈등은 제이가 추종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 가면서 권력의

단맛에 오만해지면서 동규가 제이의 타락에 위태롬과 실망감을 느꼈기 떄문에 곪아가고 이 둘은 결국에 완전한

타인이 되어 간다. 하지만 경찰 박승태를 통해 국가, 또는 제도권의 타자에 대한 잔인한 폭력성과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는 4장과 Y와 제이의 인연, 동규의 자살등을 담고 있는 에필로그가 이 소설에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머리 속을 맴돈다.

 

소설가 김영하는 타고난 이야기 꾼으로 문장은 단순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천박하지 않다. 물론 이 소설의

이야기 소재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가출 청소년, 폭주족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라는 사람들,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혀를 찰 정도의 심드렁한 나 같은 부류들까지 포함하여 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이

탄탄한 서사 구조로 인한 개연성의 확보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수작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점은 김영하의 문장은 어렵지 않지만 힘이 있고 속도감이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예술이라는 미명하게 자행되는(?) 실험적인 난해함, 작가들의 현학적인 자기 과시 같은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나는 무식하고 시간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영하는 나에게 소중한 작가이며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 과의 만남은 고통스러웠지만 -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 아름다운 기억 이었다.

 

이제는 김영하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와의 즐거운 여행의 시작이다. 이 작가는 [검은꽃]이후 두 번째 만남인데

[검은꽃]은 멕시코 -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에로티시즘이 원초적 인간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 작가는 소위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이므로 최소한의 기본은 보장되는 안정감을

주지만 이는 자칫 지루함을 줄 수도 있으니, 뭔가 신선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고지식한 뚝심을 기대해 본다.

 

P.S. 총선이 끝났다. 누군가는 승리를 축하 받을 것이며 누군가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을 것이다.

      참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유명인들 - 지식인이든 연예인이든 - SNS에서 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투표율을 높이고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 지

      잘 모르겠다. 투표를 축제같이 즐기자고들 하지만 투표가 놀이는 아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는 일은 완전히 차원이 틀린 문제다. 

       이 점에서 이 번 선거는 당장은 배출의 쾌락을 주지만 깊이 없는 폭로 정치의 한계를 드런 낸 소중한 총선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감정 변화와 서로의 상실에 대해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린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최근에 아이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긴 이혼녀로 다시 찾아온 언어의 상실로 인해 침묵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시력 상실이라는 운명을 아직 받아 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에 침잠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청소년기에 말을 잃었다가 아무 이유 없이 불어 시간에 말문이 열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20년 만에 찾아 온 두 번째 침묵에도 외국어라는 이유만으로 희랍어 강의를 듣는 것일 뿐 말을 잃은 분명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여자가 모든 걸 이해하는 척 하는 심리치료사에게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마지막 상담 후에 필담한 표현대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남자는 의사가 진단한 40세가 다 되었음에도 아직 볼 수는 있으나 그가 인식하는 형상과 동작들은 덩어리로 뭉개져 있고, 디테일은 오직 상상의 힘으로만 선명할 뿐이다. (P38)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15살 때 독일로 이주 했을 때 병원에서 만나 첫 사랑의 감정을 느낀 청력 장애를 가진 병원집 딸, 독일에서 음악을 하는 동생, 그리고 죽은 요하임 그룬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알 만큼 굳이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그이지만 한국에서의 일상과 함께 독일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글로 남기는 것은 시력을 더 상실하기 전에 그의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P49)

 

남자는 어둠의 층계로 내려 가기 전에 소박하지만 찬란 했던 빛의 세계에서의 시각적 기억을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기록하고자 한다. 아직 그에게 희랍어 시간은 밥벌이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자에게도 역시 희랍어 시간은 말을 찾고자 하는 막연한 바램 에서의 외국어일 뿐 더 낯선 문자를 쓰는 버마어나 산스크리트 강좌가 개설되었다면 주저 없이 그것들을 들었을 것이다”. (P19)

 

하지만 이 둘은 조그만 아기 새로부터 발단이 된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우연이지만 극적인 만남으로 그 남자의 집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된다. 이 하룻밤이 단순한 섹스로 끝났다면 솔직히 섹스는 말이 필요 없는 서사의 클리세가 아닌가 - 작가의 평범하고 안이한 결론에 적지 않게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하룻밤은 두 사람의 쉴 새 없는 대화로 이어진다. 일반인들의 대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으로, 때로는 질문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고 여자는 자신의 회상과 상상으로 침묵을 꽉 채워 나가는 것이다. 이런 진실됨이 소통 되었기에 남자는 전 날 밤의 손가락의 촉감으로 그녀의 필담을 기억했으리라.

 

정말 오랜만에 좋은 느낌과 좋은 호흡으로 읽은 한국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외모만큼이나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무지함, 답답함, 좌절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려움과 난해함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작가의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을 때 나만의 아픔과 희열의 찰나의 순간이 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꿈을 꿀 수 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외국 소설 위주로만 책을 읽었더니 날것으로의 우리말에 갈증이 나서 한국 작가의 책을 몇 권 구매했는데 황정은 작가의 단편 소설집 [파씨의 입문]을 처음 뽑아 들었다. 요즘 독자들과 평단에서 호평을 받고 있어서 어는 정도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특정 어구의 반복, 큰 따옴표 없는 대화체, 생략하거나 이국적인 등장인물의 호칭 (~, 디디, 도도 등등) 의 설정이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장치임에는 틀림 없겠지만 어떤 효과를 기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9개의 단편 중 개인적으로는 디디의 우산 이 가장 좋았다. 가난으로 고단한 인생임에도 어린 시절 도도의 우산을 빌렸다가 잃어버린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 디디의 세상에 대한 부채감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애잔했다. 물론 디디의 부채감은 세상에 대한 용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 특히 주위의 연인과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며 사랑에 다름 아니다. 특히 동기들이 모두 술에 취해 디디/도도의 집에서 자고 있을 때 디디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본능적으로 신발장의 우산을 세어보는 마지막 부분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작가는 개수구멍 없는 개수대 같은 희망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해 정확한 비판적 진단을 내리는 차가운 지성을 가지고 있으나 작품 곳곳에 묻어 나오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숨기기에는 작가의 감성은 너무 따뜻하다.   

 

하지만 황정은 작가와의 첫 만남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소설이 나한테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공감을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작가와의 소통에 실패했다.    

 

P.S. 다음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 이다. 좀 두렵지만 다시 한 번 기대를 가져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