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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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감정 변화와 서로의 상실에 대해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린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최근에 아이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긴 이혼녀로 다시 찾아온 언어의 상실로 인해 침묵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시력 상실이라는 운명을 아직 받아 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에 침잠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청소년기에 말을 잃었다가 아무 이유 없이 불어 시간에 말문이 열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20년 만에 찾아 온 두 번째 침묵에도 외국어라는 이유만으로 희랍어 강의를 듣는 것일 뿐 말을 잃은 분명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여자가 모든 걸 이해하는 척 하는 심리치료사에게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마지막 상담 후에 필담한 표현대로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남자는 의사가 진단한 40세가 다 되었음에도 아직 볼 수는 있으나 그가 인식하는 형상과 동작들은 덩어리로 뭉개져 있고, 디테일은 오직 상상의 힘으로만 선명할 뿐이다. (P38)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15살 때 독일로 이주 했을 때 병원에서 만나 첫 사랑의 감정을 느낀 청력 장애를 가진 병원집 딸, 독일에서 음악을 하는 동생, 그리고 죽은 요하임 그룬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알 만큼 굳이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그이지만 한국에서의 일상과 함께 독일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글로 남기는 것은 시력을 더 상실하기 전에 그의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P49)

 

남자는 어둠의 층계로 내려 가기 전에 소박하지만 찬란 했던 빛의 세계에서의 시각적 기억을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기록하고자 한다. 아직 그에게 희랍어 시간은 밥벌이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여자에게도 역시 희랍어 시간은 말을 찾고자 하는 막연한 바램 에서의 외국어일 뿐 더 낯선 문자를 쓰는 버마어나 산스크리트 강좌가 개설되었다면 주저 없이 그것들을 들었을 것이다”. (P19)

 

하지만 이 둘은 조그만 아기 새로부터 발단이 된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우연이지만 극적인 만남으로 그 남자의 집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된다. 이 하룻밤이 단순한 섹스로 끝났다면 솔직히 섹스는 말이 필요 없는 서사의 클리세가 아닌가 - 작가의 평범하고 안이한 결론에 적지 않게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하룻밤은 두 사람의 쉴 새 없는 대화로 이어진다. 일반인들의 대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으로, 때로는 질문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고 여자는 자신의 회상과 상상으로 침묵을 꽉 채워 나가는 것이다. 이런 진실됨이 소통 되었기에 남자는 전 날 밤의 손가락의 촉감으로 그녀의 필담을 기억했으리라.

 

정말 오랜만에 좋은 느낌과 좋은 호흡으로 읽은 한국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외모만큼이나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 소설은 무지함, 답답함, 좌절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려움과 난해함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작가의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을 때 나만의 아픔과 희열의 찰나의 순간이 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꿈을 꿀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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