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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라디오 존 치버 단편선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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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장편 소설이 솔직히 읽기 더 편하지만 단편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긴장감 (인물 vs 인물 또는 인물 vs 사회) 과 압축적 완결성을 즐긴다. '존 치버' 라는 이름은 미국 단편 문학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위대한 작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한번 읽어 보겠다고 예전부터 단단이 마음 먹고 있었지만 정작 첫 만남은 이렇게 늦고 말았다.

 

너무 늦게 만난게 독이 되었을까? [기괴한 라디오]에 수록 된 단편들은 그의 명성만큼 인상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존 치버' 라는 대가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 아쉽고 이른 감이 있다. 그의 전집이 나와 있으니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존 치버'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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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 위대한 생각 시리즈 2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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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진실' 과 '정의' 를 문학적 수단으로 실천한 위대한 작가이면서 동시에 사회 참여적 지식인 이었다. 에밀 졸라는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억압에 저항하는 민중의 힘과 한계를 객관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써 내려 간 [제르미날]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소설가이면서, [전진하는 진실] 처럼 '뒤레프스 사건' 의 사회적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소송, 투옥, 망명도 서슴치 않았던 현실 참여적 지식인 이었다.

 

[전진하는 진실]을 읽으면서 에밀 졸라 처럼 문학과 현실적 삶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되고 일치하는 문학인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의 반유대주의, 군국주의, 교권주의, 국익우선주의, 저열한 언론, 몽매한 군중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낸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증거가 조작되고 은폐되었다는 정황적 증거와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언들이 하나 둘 씩 나오고 있었음에도 일반 국민은 물론 대다수의 지식인 조차 드레퓌스의 유죄에 대한 믿음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리고 혹 드레퓌스의 무죄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 조차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반유대주의의 위협과 위세에 눌려 감히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 이었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팸플릿이나 신문의 지면을 통해 자신의 창작물이나 전문적 활동이 부여하는 권위로써 끝까지 공공의 대의를 위해 투쟁한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 위대한 지성이었다. 

 

[전진하는 진질]에 실린 에밀 졸라의 글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논의가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글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비약이 심한 경향이 있고, 반대로 논리적인 글은 무미건조 하고 지루하기 마련인데 에밀 졸라의 글은 내용과 형식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 내용은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며 형식(문장)은 감동적이며 선동적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이 문장 하나 만으로도 감동과 흥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에밀 졸라의 시대적 정신이 작금의 우리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바로 잡는 자극이 되는 것 같아 [전진하는 진실]이 반갑고 고마웠다.

 

[전진하는 진실]의 유일한 단점 이라면 한 주제에 대한 글이 반복되다 보니, 뒤에 가면서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에밀 졸라의 위대한 글들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흥분에 방해가 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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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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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팬으로서 그의 자서전 [온더무브]을 그냥 지차칠 수는 없었다.

올리버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을 처음 읽었을 때의 재미와 흥분은 내가 책을 아직도 읽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물론 대부분 실패하고 말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은 작품을 만날 날을 기다리는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온더무브]는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별로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감동이 없다. 올리버 색스의 장점은 이론에만 천착해 있는 제도권 신경학자(의사)들과는 차별되는 다양한 임상 사례와 과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자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듯한 올리버의 예리한 관찰력과 감수성,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사랑과 재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독보적인 저술가로 만든 것은 무엇보다 올리버 색스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다.이런 점에서 [온더무브]는 일단 임상 사례가 빈약하다. 올리버 인생의 중요 인물들이 여럿 등장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는 밋밋하고 스토리는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학문적인 사례가 많다 보니 좀 지루한 면도 있고 동성애자로서의 사랑과 아픔에 대한 부분은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올리버 색스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온더무브]는 그가 나에게 준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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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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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시하다. 하지만 너무 짧아서 아쉽다. 만들다 만 느낌이다. 작가의 [Gone Girl] 을 원서로 읽고 있는데 어느세월에 다 읽을 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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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와 주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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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금 막 다 읽은 J.D.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에 대해 글을 남겨 본다.

물론 그 앞에 읽은 책들이 몇 권 있지만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차일 피일 미루다가 내용을 다 잊어 버려서

언제 내용이라도 요약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요원하다.

 

[프래니와 주이] 정말로 지루하고,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그래도 '프래니' 부분은 뭔가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떡밥'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주이' 부분은 재수없는 천재의 넉두리인지 히스테리인지 하여튼 의미없는 반복적인 궤변으로 소설의 흐름을 완전히 망까 뜨리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의 이름에 낚인 꼴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백페이지에 불과한 [프래니와 주이]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걸로 뿌뜻해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짜증이 난다. 이 책은 읽지 말았어야 했다. 난 그렇게 시간이 많은 놈이 아니다.

 

내가 작가였으면 짧은 에세이의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난 플롯이나 스토리도 없이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이념을 무작정 여과없이 쏟아 내는 작가들의 소설을 싫어한다. 그건 소설이 아니다. 이런 작가들은 차라리 등장인물 뒤에 숨지 말고 에세이나 사회과학 형식을 빌려 글을 쓰는 게 맞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장 소설의 고전으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프래니와 주이]는 소설이 아니다. 그냥 소설의 형식을 빌려온 에세이 같다. 그것도 형편 없는 에세이....       

 

7백페이지가 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을 읽었을 때보다 배 이상 피곤하고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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