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지인들 중 요시모토 바나나를
‘여자 하루키‘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두 작가의 작품을 꽤 많이 읽은 나로선 선뜻 그 의견에 동의가 되지않아 고개만 갸웃 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 친구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
이 소설은 하루키 작품의 비현실적 세계와 달리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일상들의 평범한 세계에서 펼쳐지지만,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 중 평범한 사람은 별로 없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가 오컬트와 신비주의에 빠져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작정하고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속 인물들은 다들 조금(혹은 많이) 별나다.
(죽은 사람의 혼을 느끼는 능력 정도는 아주 평범해서
특별하게 여겨지지도 않을 정도^^)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한 후 이전의 자신과 지금 자신은 뭔가 분리 됐다고 생각하며 혼란을 겪는 주인공 사쿠미.
자신 만큼이나 독특한 능력과 가치관을 가진 범상치 않은 지인들과 평범한듯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함께 보내는 동안 조금씩 아픔을 치유하고 혼란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녀의 어느 한 시절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자신이 분리 되었다고 믿는 사쿠미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의식의 순간 이동을 하고, 죽은 이들을 느끼고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자극적인 에피소드나 사건 없이 평범하고
잔잔하고 심지어 가끔 무료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40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않은 분량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가독성에 감탄 할만큼 빠른 속도로 읽힌다. (당연히 재미도 있다)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이 평범하고 별볼 일 없는 인물들이 겪는 판타지적이고 몽환적인 유니크한 세상(하루키 월드)으로 독자들을 유혹 한다면, 이 작품은 그와 반대로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자기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소설적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제목인 암리타는 인도 신화에서 신이 마시는 불사의 물이라고 한다.
‘살아간다는 건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물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지만
그 소중함을 모른채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다가
잃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물처럼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 삶의 가치를 잊어버리지 말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는 게 아닐까..
라고 마음대로 생각 해본다.
그나저나 신이 마시는 불사의 감로수라는 암리타의 맛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지는 이 뜬금 없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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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9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빈곤한 제 상상력은..담담한 단맛의 토레타 정도를 떠올리게 되네요. 비슷한 이름 탓?!

바다그리기 2020-07-19 11:22   좋아요 1 | URL
우와, 빠른 답글도 감사한데 놀러까지 와주시고 댓글까지..^^ 토레타 안 마셔봤는데 함 마셔봐야겠네요. 댓글 감사해요~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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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어적인 의미일 거라는 기대를 안고 독특한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
그런데 제목 그대로 설레는 일이라곤 1도 없이 녹록치 않은 현실의 막막함과 무기력함에 짓눌려 하루 하루를 그저 버티듯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 두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반전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이런 패착을.. ㅜㅜ)
이름과 나이, 1월 4일생이라는 생일까지 같다는 사실을 알게된 거래처 직원인 남자와 여자.
불과 20분 정도의 업무 미팅후 각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간 맛집에서 다시 마주친 그들은 옆좌석에서 어색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각자 혼밥을 하고 헤어진다.
그후 각자 바쁜 업무와 일상 속에서 무료한 삶을 버티어 나가는 두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 받는 과정에서 불현듯 자신과 이름이 같은 상대방을 습관처럼 떠올린다.
그러다 결국 어느날 우연히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서로를 통해 이제껏 무생물처럼 살아온 자신의 일상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임을 본능적으로 짐작하게 된다.

다른 한편은 유급휴가조차 회사의 눈치를 보며 맘대로 쓰지 못한 채 기업의 부속품같은 생활을 이어가던 직장인인 주인공이 어느날 회사 내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존경심을 갖고있던 상사가 유급 휴가를 많이 썼다는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평소 후배들에게 진정 필요한 조언과 관심을 주던 유일하게 어른같은 선배의 위기를 보며 분노한 주인공과 동료들은 회사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든 그를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간절함과 노력에도 결국 그 선배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를 위해 분노하고 고민하던 시간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더이상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부당함을 참고만 있지 않고, 꽤 긴 유급 휴가도 당당히 쓸 수 있게 된다.

일본 작가의 작품인만큼 소설 속 인물들도 모두 일본인이고 일본 사회의 젊은 세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름과 지명을 한국인으로 바꾸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만큼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이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들이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며 자신의 욕구는 뒷전으로 미룬채 기계처럼 하루 하루를 버티어가는
직장인들.
나의 의지와 개성을 집단에 맞춰가며 나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는 그들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너무나 익숙하고 공감 되면서도 그래서 더 안쓰럽다.
펭수의 지적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나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꼰대나때들이나 공감하는 헛소리일 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번뿐인 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야 할 젊은 청춘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자신의 소망을 쫒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무엇보다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최우선 조건으로 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스토리도 구성도 문장도 내용도 모든 면에서 아쉬운 점 투성이인 소설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후배들의 자유와 일탈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한번 더 갖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아프지 말고 부당하게 참지도 말고, 나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데 망설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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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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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김지혜라고 부를 수 있을법한 소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을 대표하듯
88년에 태어나 흔한 이름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서른을 맞은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대기업 입사를 꿈꾸며 수없이 도전 했으나 무수히 많은 낙방 끝에 대기업 DM사의 문화사업 자회사라고 할 수 있는 디아망 아카데미에 인턴사원으로 입사 한
88년생 김지혜.
그녀는 강사들의 강연을 위한 자료 복사와 허드렛일을 하며 혹시나 정직원이 되어 본사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 의지해 무료한 삶을 버티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카데미의 유명 강사인 박교수에게 그가 두고 간 핸드폰을 전해주러 간 지혜는 그곳에서 박교수에게 미성년자 성추행 전과에도 여전히 성적 자료 짜집기 강의로 명성을 누리며 제자의 작업 성과를 가로채고 보수도 지불하지 않는 박교수의 후안무치를 큰소리로 비난하고 사라지는 한 남자를 보게 되는데..
며칠후, 그 남자 규옥이 새로운 인턴사원으로 아카데미에 출근하게 된다.
지혜는 인턴사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강의 중 하나인 우쿨렐레 강습을 얼결에 규옥과 함께 듣게되고,
수강생인 기러기 아빠 남은과 시나리오 작가 무인과의 술자리에 합류하게 되면서 사회의 주류에서 조금씩 어긋난 채 외롭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친해지게 된다.
일년이나 노력해 만든 양념장의 비법을 유명인에게 빼앗기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살던 중년의 남은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 당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무인의 고백을 들은 날, 조용하던 규옥이 더이상 이렇게 스스로 체념한 채 순응하지 말고 잘못된 사회에 우리만의 메세지를 던지면서 놀자는 제안을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 비슷한 분노를 담고 있던 그들은 공터의 빈 벽에 유명 작가가 그려놓은 교만한 낙서 벽화(그래피티) 위에 자신들의 낙서를 덮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 남은의 레시피를 댓가도 없이 가로채 요식업자로 성공한 후 국회의원이 된 의원에게 엿과 함께 달걀을 투척하고 도망치는 등 자신들만의 놀이를 펼치며 잘못된 세상을 조롱한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친구가 되어 삶의 힘겨움을 위로 받으며 친해지는 동안,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규옥을 마음에 품게 되지만..
한편으론 그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틈만 나면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며 더 나은 삶을 향한 비상의 꿈도 놓지 못한다.
그러다 규옥이 벌인 상사 김부장에 대한 항의의
나비효과로 정직원이 된 지혜는 첫 임무로 공윤이라는 유명인을 다음 학기 강사로 초빙하는 일을 맡게 되고, 노력 끝에 간신히 섭외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공윤이 고교시절 자신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던 동명이인의 옛동창 김지혜A임을 알게되고 경악한다.
세련된 언변과 화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는 공윤은 예전처럼 지혜를 함부로 부리며 친근함을 가장한 조롱으로 지혜의 일상을 다시 지옥으로 만들기 시작하고..
상사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피하기 위해 정진이라는 유령 친구까지 만들만큼 힘겹게 일상을
버텨왔던 지혜는 옛친구로 인해 다시 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야기는 쉽게 읽히고,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고 싶어 몸부림 치면서도 자신만의 자아는 지키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인공 지혜의 심리도 충분히 공감된다.
부와 권력으로 인한 부당한 힘에 분노 하면서도 그
주류의 세계에 입성하기 위해 젊음을 온통 바치고 있는 지혜와 같은 젊은이들이 이 사회엔 얼마나 많은가.
규옥의 지적처럼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그 부당한 힘에 스스로 굴복하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럽지만,
결국 무인처럼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나약함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렇기에, 규옥처럼 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이슈가 되지않는 정도로만,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부당한 힘에 잔펀치라도 날리겠다는 그 소심한 용기가 더 대단해보였다.
두렵지만 잠자코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소심한 반항,
작은 외침들이 조금씩 커지면 언젠가 큰 파도가 되어
잘못된 것들을 바꿀 큰 힘을 갖게 된다는 걸 격동의 광장 역사를 통해 우린 충분히 배웠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응원하며 읽었기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또다른 주류의 세계에 안착한듯 보이는 지혜의 모습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변화하며 또다른 선택의 순간들을 거듭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이겠지.
그래도 결국 규옥과 지혜가 다시 만나 뭔가 희망적인 로맨스의 여지를 다시 남기게 된 결말만큼은 로맨스
지향자로서 아주 다행스러웠다.^^
비록 한때일 뿐이라 해도 이 외로운 삶에서 사랑만큼
우리를 위로 해주는 건 없으니까.
땀 흘린 레시피를 빼앗겼던 아픔을 딛고 우동가게를 차렸다는 남은 아저씨도,
스스로 저작 권리를 포기한 댓가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게 된 무인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가까워질 기회를 갖게된 규옥과 지혜도,
모두가 이젠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기를..
그럼에도 부당함에 스스로 굴복하지 않기 위해 함께 즐겼던 그 놀이와 마음은 잊지않고 살아가기를.
‘단지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마음에 항상 새기고 진짜 잘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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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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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이면 실내는 봄일까, 가을일까, 겨울일까?
어쩌면 가을과 겨울과 봄 그 어딘가, 여름이 아닌 그 시간일까?
모든 생명력이 최고치로 부풀어 올라 찬란한 햇살 아래 온통 초록으로 싱그럽게 빛나는 여름.
그 계절을 문밖에 둔 채로 가을과 겨울과 봄을 견디며
지나가고 있는 쓸쓸한 이들의 얘기가 소설 속에 가득하다.
소중한 이와의 준비되지 않은 이별,
한때 너무나 소중했으나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이 되어버린 존재를 놓아야만 하는 고통,
갑자기 닥쳐온 상실의 허무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하는 그 무용의 시간들...
모두의 아픔이 담담하게 서술 되어 있어서 더 아프고
안쓰럽다.

얼마전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거침 없이 흘러가는 물줄기처럼 현란하게 나아가는 문장을 보며 진짜 작가구나, 라는 뜬금 없는 자각을 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며 그것과는 조금 다른 김애란 특유의 소설적 문장들에 반했다.
(두근두근 내인생은 솔직히 별로였는데, 이 책에는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읽는 내내 감탄 연속.
아무래도 난 단편을 훨씬 좋아하는 성향인 건가?)
아이들의 노래를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맑은 혀로 부른다고 표현하고,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이란 문장으로 상대의 영민한 이해심을 향한 감탄과 반발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고,
‘청결에는 청결의 관성이, 얼룩에는 얼룩의 관성이 있음을 실감했다‘는 문장으로 아이의 마음에 난 상처의 얼룩을 발견한 엄마의 자각을 표현하는
예리한 감각의 필력이 놀라웠다.
‘콩의 고소함이나 깨의 풍미와는 비교가 안되는 포식자의 고소함, 남의 살을 먹고 사는 생물의 깊은 고소함이, 은빛 몸통 주위로 황금빛 공기 방울이 풍요롭게 자글거린다‘ - 갈치가 구워지는 모습을 이런 빛나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가에게 어떻게 감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처럼 박제 해두고 빈약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을때 꺼내 읽고싶은 문장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래, 이런 게 소설이지..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

마지막 편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녀의
편지를 읽다가 결국 터진 눈물로 엄마를 생각하며 울고야 말았다.
마음이든 실체든 내 곁에 있을 것임을 믿었던 사람과의 이별은 우리의 모든것을 바꾸어 놓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은 그래서 더없이 잔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막막함으로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내는 것밖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런게 삶이라는 걸 상실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걸 뼈저리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날것의 고통스런 감정은 한번 걸러내어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 아픈 마음들이 오래 오래 기억 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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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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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듯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드는 책.
최근 들어 당연한 분야로 여겨지고 있는 사회과학
서적인 이 책의 제목 ‘사회적 원자‘는 우리들, 인간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
마찬가지로 사회를 이루는데 최소단위이자 기본 요소이기도 한 인간 역시 원자라는 전제 하에, 사회에서 자주 혹은 가끔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사회적 원자인 인간들의 행동 방식을 물리학적 해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 해왔고, 동물에겐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높은 지능으로 인해 최상위 생명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기본 개념 위에서 발전해온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인간의 높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모든 이해의 전제로 삼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들, 심지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패턴들에 대해서조차 인간의 합리성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해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이전 사회학의 전제 자체부터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똑같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일 뿐이며, 모든 물질이 그렇듯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세계의 여러 사회에서 나타나는 경제, 사회, 문화적 모든 현상의 답은 물리학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일으키는 사회현상의 이해를 물리학의 법칙에서 찾아야 한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어이 없는 비약같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이 논리는 이미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 모두에게서 인정받은 것이며, 물리학의
법칙으로 인간 사회 현상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책은 9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인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부터 이전의 사회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들을 소개하고, 그 패턴을 일으킨 인간이라는 원자들의 특성을 물리 법칙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준다.
매 챕터마다 각 주제에 맞는 명언으로 시작하고, 사회학적으로 인상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인종 전쟁, 주가폭락, 빈민가 재건 등)에 대한 인간들의 행동 패턴과 심리변화, 경향 등을 물리 법칙의 관점에서 알려주고 있다.
이 모든 이해의 출발은 인간이 우리 생각보다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존재가 아니며, 원자들처럼 단순하고 쉬운 패턴으로 행동 한다는 것.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소개한 사회과학자들의 여러 실험 결과들은 정말 놀랍고 흥민진진하다.
특히,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지만(몇년전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친절하고 선한 쪽으로 자기 조직화 하고 서로를 모방하며, 개체수가 많아져 집단으로 갈수록 더 선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결과는 성선설을 믿는 내게 큰 위로와 안도감을 주었다.
그외에도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지를 보여주는 1.1달러 계산법과 숫자게임,
부의 불펑등을 정확히 설명 해주는 수학 수치,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모방능력을 드러내는 설명키 힘든 폭동과 전쟁,
집단 안전성 때문에 어제까지 이웃이자 친구였던
이들을 살해하고도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과
그런 인간의 마음을 색깔의 분리만으로도 자극해
폭동과 전쟁을 부추기는 악한 정치가들에 대한
사례들은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약하고 불안하며 단순한 존재인지를 이론의 여지 없지 인정하게 만든다.
또, 인간이 물리학적 법칙에 충실히 따르는 원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 해주는 여러 실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흥미를
배가 시킨다.
정재승 박사의 ‘열두 발자국‘을 읽을때도 그랬지만 인간의 심리 테스트 실험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있는듯.^^
(특히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속임수나 악행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니. 역시 인간은 정의로운 존재인 거다. 성선설 만세!)
가장 인상적이었고 통쾌했던 건 수학적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제학자들의 편견과 무능함을 지적하고,
돈의 분배 실험을 통해 경제학 전공자들이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했음을 꼬집으며 국가정책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조언하는 현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그와 반대로, 세상의 부가 소수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물리 법칙과 그것을 증명하는 수학공식이 있다는 부분에선 빈익빈 부익부가 사실이었음을 다시 확인 했기에 어쩔수 없이 서글퍼졌고..

결국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과 사회적 패턴들은 인간의 고귀하고 높은 이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원자로 구성된 물질인 인간의 자기 조직화와 모방욕구, 선을 추구하는 DNA 등의 단순한 몇가지 조건들이 물리 법칙에 의해 서로 작용 함으로써 일어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과학 논리다.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너무나 불안정하고(자유의지라는 말로 포장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비합리적인 존재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먼지나 티끌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인 우리가 높은 이성으로 지구를 정복한 최상위 포식자라는 착각에 빠져 함께 사는 환경을 파괴하고, 동식물을 멸종하게 만들며 심지어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짓인지..
물리학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 책을
읽고 그들 중 하나인 나는 인간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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