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문제로 태어날때부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소통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성장소설.감정을 느끼는 작용을 주관하는,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뇌의 편도체가 없이 태어난 주인공 윤재는 자신에게 없는 편도체와 비슷하게 생긴 아몬드를먹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고 싶어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도 할 수 없다는 윤재가 오히려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된다.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았지만 불량소년이 된 아들에게 실망해 친아들 대신 모범생인 윤재를 잃어버렸던 아들이라고 속여 죽어가는 아내와 만나게 하는 의사 아버지,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단지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있다는 이유 때문에 윤재의 눈앞에서 할머니와 엄마를 칼로 찔러버린 불행한 남자,아직 청소년인 후배에게 자신을 도우러 온 친구 윤재를 찌르라며 칼을 건네는 청년,편견에 사로잡혀 학생들을 수시로 차별하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들과 학생들..윤재에게 감정도 없는 인간이라며 손가락질 하고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긴 커녕 의식하지도 못하는 그들이 윤재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무섭다.그들과 달리 자신의 결격사유를 너무나 잘 알고 매순간 공감하길 원하고 노력하는 윤재는 불행하게 자랐다는 이유로 친부에게 외면당한 친구를 돕기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위태롭게 만들고,자신을 편견 없는 대하는 여학생과 순수한 첫사랑을나누기도 한다.서툴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윤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인간다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아직 어떤 나무로 자랄지 모르는 새싹과 같은 청소년들에게 선입견이나 편견의 시선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 하겠다는 다짐을다시 하게 해준 좋은 책.특히 소설 뒤에 평탄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소설가로서 결격사유 같아 자격지심을 가졌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떨쳐버렸다며 평온하게 성장 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는 작가의 말은 그와 똑같은 감정으로 작가적 열등감을 갖고있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좋은 성장소설에 나까지 성장 한 기분.좋은 책과 함께 한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인문학 서적들이 많아지는 요즘의 시류와는 조금 떨어진 느낌의 책.‘나비의 꿈(호접몽)‘으로 유명한 장자의 이론 중 대표로 꼽히는 망각과 자유에 대해 플라톤,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 서양 유명 철학자들의 논리와의 비교, 대조, 유사성 등을 통해 설명 해준다.하지만, 문장을 구성하는 용어도 그리 쉽지않고,철학자들의 이론도 일반적이지 않은데다 전반적인 설명도 딱딱한 편이라 읽기도 이해 하기도 솔직히쉽진않다.무엇보다 독서의 최고 덕목인 재미가 없음이 가장 아쉽지만,장자의 책 중 장자 그의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7편‘제물론‘의 요점이 결국 망각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을 이룸으로써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임은 명확하게 알 수 있게된다.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조삼모사‘에 대한 조금 다른 철학적 논리나, 유명한 나비의 꿈에 대한 장자의 주장을 다른 접근으로 보는 시각등은 이 책이 준 예상 밖의 신선한 깨달음.술술 읽히지는 않으나 장자의 이론에 대해 알고싶다면 도움은 될 수 있는 책.약간의 유머와 쉬운 표현으로 서술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오래 남는다.
개인적 취향일진 모르나 과학소설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이라기엔 많이 아쉬웠던 작품.문장력도 너무 평이하고, 중반 이후엔 최고의 반전이라 할만한 비밀이 너무나 쉽게 짐작되는데다그 반전이라는 설정 역시 낯설거나 신선하다기엔 어딘지 익숙하고 오래된 문법처럼 느껴진다.무엇보다, 얇은 책 두께만큼이나 주인공인 충담과 기파, 아니타 각 인물들 각각의 개성과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낄만한 개연성이나 충분한 묘사가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중 하나가 ‘나에게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기꺼이 편이 되고싶은가‘ 라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인물들은 내게 별다른 감흥도 공감도 주질 못했다.심지어 모든 지구인들에게 성자란 칭송을 받는, 엄청난 반전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의사 기파까지도.바로 앞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그동안 별 관심 없던 SF 소설에도 큰 흥미가 생겼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역시 나에게 이 장르는 별로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만큼 여러 면에서 아쉬움가득한 책.오히려 책 뒤의 심사경위에 이견 없이 일찌감치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이었다는 설명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졌다.그래도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이 작가의 미덕은 이 소설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기술을 통해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인간들은 과연 로봇보다 좋은 존재인가‘라는 점.결국 과학기술이든 로봇이든 미래든 우주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람다움에 관한 본질적 물음이 그가 천착하는 바라면 다음 작품에 또 실망한다 해도 기꺼이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이다.의도와 본질은 퇴색되지 말고 소설적 재미와 깊이는 점점 더 발전하기를 응원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과학도 출신 작가답게 우주와 천체, 사이보그 등 미래과학에 대해 대다수 독자들은 이해조차 어려울만한 난해한 지식을 토대로 근미래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낸다.하지만, 외계행성에서 그들과 40년을 교류하고 돌아와 뒤늦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한 과학자,유아기의 아이들 뇌 속에 이타심을 가르치는 고향같은 외계존재가 있음을 알아낸 연구자들,100년 넘는 시간동안 자신이 개발한 냉동수면을 이용해 생명을 연장 해가며 폐기된 우주 정거장에서 날마다 남편과 아이가 먼저 떠난 행성으로 출발하는 우주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과학자,엄마와 불통한 채 이해보다 오해를 선택했다가 이젠 고인이 된 엄마의 유언으로 자발적 관내분실이 된 마인드를 찾으며 뒤늦게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인류의 기대 속에 우주 터널 저편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는 일을 하게된 과학자가 그 과정 속에서 어린시절 자신의 영웅이었고 우주과학자의 꿈을 키워준 이모가 우주 저편 대신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자신만의 세계인 심해로 자발적인 이주를 선택했음을 알게되는 마지막 이야기까지.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은 편견과 오해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른 존재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진정한 소통의 이야기를 하고있다.분명 사이보그니 외계행성이니 어려운 과학용어들로 가득한 SF 소설임에도 읽는동안 마음이 따뜻해지고 때론 뭉클해지면서 저절로 이해와 소통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되는 것은 그때문일 것이다.그래서일까, 오히려 현실에 바탕을 둔 채 대놓고 소통과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보다 이 책의 글들은 더 큰 울림을 준다.아직 20대 후반의 나이.시인인 어머니와 음악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예술적 재능에 자신의 과학지식을 더해 우주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 따스한 마음을 이야기 하는 영민하고 젊은 작가의 등장.반갑고 기대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없이 부럽다.
추상적인 그림도 좋아하고,소설이라 해서 반드시 명확한 기승전결이나 선명한 스토리라인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좀 난감했고 솔직히 무엇보다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폴 오스터는 그의 소설 속 작가들을 통해서 자신을 포함한 작가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거 같긴 한데.. 세편 모두 끝이 나면 허탈한 기분과 함께 ‘그래서, 하고싶은 얘기가 뭔가요?‘라고 묻고싶어진다.진실 속에서 허구를 만들어내고, 허구의 소설에도 결국 작가 자신이 포함 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숙명,그 정체성과 본질에 대한 고민과 물음표.그런 얘기가 하고싶었던 거라해도 나처럼 무지하고 세속에 찌든 독자를 위해 조금은 쉽고 재미있게 써주었다면 좋았을텐데..책을 사고 시간을 들여 읽는 사람으로서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 갑질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지는 그런 책이었다.몇년 후에 다시 읽으면 그땐 좀 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와닿을 수 있으려나..같은 책이 주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해본 나로선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그 기대로 조금 더 유보 해둘까 싶다.그래도 오랜만에 익숙지 않은 스타일의 책을 힘겹게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고민 해본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음은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