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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 5월 9일 토요일 동아일보를 펼치다가 작가 ‘신경숙’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책을 앞에 두고 있어서였는지, 정말 오랜만에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어서였는지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참 반가웠다. 신경숙 씨의 소설은 <깊은 슬픔>을 시작으로 해서 <외딴방> <바이올렛> <기차는 7시에 떠나네> <풍금이 있던 자리> <아름다운 그늘> 등의 작품을 읽어보았다. 작품 중 맨처음 접했던 <깊은 슬픔>을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여겨 왔다. 다시 신문 기사 이야기로 돌아가, 인터뷰의 내용은 책이 6개월 만에 70만부 이상 팔렸고, 인터넷 독자 리뷰 코너에는 이 소설을 읽고 쓴 참회의 글이 넘쳐 난다고 적혀 있었다. 책을 읽기도 전부터 과연 어떤 내용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고, 사람들을 참회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좋은 소설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참회를 할까? 무엇에 대해? 무슨 이유로? ‘참회’라고 검색창에 검색을 해보니 ‘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침 ’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거라고 해석해 본다.
1장은 엄마의 큰 딸을 바라보는 제 삼자의 시선으로, 2장은 큰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3장은 남편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 4장은 길 잃은 어머니, 자신의 시선, 에필로그에서는 다시 큰 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시선은 참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 ‘너’ 라는 말과 ‘~~했다’ 라는 단정적인 문장들이 정말로 내가 이해심없고, 냉정하며, 세상일 혼자 다하는 듯 바쁜 척만 일삼는 불효자식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으니까. 책 속의 자식들처럼 나 역시 ‘엄마’를 잘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생기게 했다.
책 속의 엄마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쓸 줄도 모른다. 언제나 큰딸에게 아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게 하고 답장을 대필하게 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여 딸들이 깜깜한 어둠에 있는 것같은 자신처럼 될까봐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을 공부시킨다. 그 손길이 스칠 때마다 그 곳은 비옥해지고, 무엇이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 그런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161페이지).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따라 집을 나갔을 때 자신을 지켰던 첫째 아들에게는 끔찍하리만큼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다 큰 자식들 앞에서 혹 폐라도 될까 언제나 전전긍긍하면서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연신 ‘ 미안하다’ 고 사과를 한다.
이쯤에서 ‘나의 엄마’가 떠오른다. 좋은 것만 골라 자식들을 먹이고, 그저 뒷바라지만 죽어라 하다가, 자식이 성장하면 그저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전전긍긍하시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에게 언제나 무뚝뚝하고, 바쁜 척만 하고, ‘나중에’만 말하는 책속 자식들의 모습에서 나와 나의 형제의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가 없어지고 나서야 엄마를 알아가는, 엄마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부재’를 대리 경험하는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렸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느껴지던 막연한 불안감, 상실감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모든 게 다 내 이야기 같았다.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같았다. 보여지는 그들의 인생은 나와 비슷했고, 엄마의 모습은 너무도 흡사해서 달랐던 서로의 인생은 그렇게 닮아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엄마는 곳곳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엄마의 사랑은 마치 내게도 위로로 다가왔다.
‘ 자랑스러워서 난 지금도 가끔 니가 진짜 내 속에서 나왔나 신기하다니까......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 ’ (94페이지)
‘ 얘야, 너는 이 에미에게 항상 기쁨이었다는 것만 기억해. ’ (215페이지)
책 속의 엄마도, 나의 엄마도 언제나 먼저 나에게 위로를 해준다. 손을 내밀어 준다. 그 사랑에 이제는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