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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지 벌써 석달이 지났다.
센다이를 덮친 해일 뉴스를 보면서 나는 작가 이사카 고타로를 떠올렸다.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 그가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이 바로 센다이였기 때문이다. 응? 내가 그렇게 그 작가를 좋아했더란 말이냐?하고 나조차 놀랐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센다이=이사카 고타로라는 등식을 만들어 버렸나보다. 자신이 있는 곳, 센다이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으니 자연스레 센다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져 버렸다. 한도시를 누군가의 기억에 살게 하는데 문학 작품은 이렇게 큰 역할을 한다.
그러고보니 이 책 배경 역시 센다이였던가?? 갑자기 궁금해지지만, <바이바이 블랙버드>를 읽으며 특별히 배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센다이의 하수구 안도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이 작가인데 말이다. 이것도 의외이군.
아끼는 작가의 작품을 눈 앞에 두고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많다.
홍보 문구대로 이 책에 대해 소개하자면 다자이 오사무,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일본 문학계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그의 작품 <굿바이>의 속편격으로 제작된 책이라고 한다. <굿바이>를 읽은 적이 없어 <인간실격>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 주인공 역시 여성 편력이 화려하므로. 좀 다를려나?
주인공 호시노 가즈히코는 사귀는 여자가 다섯이다. 어떤 문제가 생겨 그녀들에게 이별통보를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돈문제인 듯 한데, 돈을 갚지 못해 ‘그 버스’ 라고 칭하는 버스를 타야하고, 어쩌면 영영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유미가 등장. 그녀는 여자로서는 드물게 키가 180cm, 몸무게가 180kg인 거구이다. 가즈히코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의 청으로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별 통보를 하고 ‘이 사람과 결혼할거야.’ 라고 할 때 ‘ 이사람’ 이 되어준다.
흠.. 지금까지 읽어왔던 작가의 책과는 뭔가 좀 다르군.
사고 좀 치고 일이 막 꼬이고 신랄한 비판이 난무하고 독특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동안 저자의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물론 비판도, 독특한 인물도, 사건도 일어나지만 ... 소금이 알맞게 들어가지 않아 밍밍해져버린 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좀 아쉽다.
대신에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을 눈여겨 보게 된다. 단편을 쓰지 않는 작가의 단편같은 이야기라고 하고, 배경보다는 인물이 부각되는 점이 흥미롭다. 세상에 이런 여자, 이런 남자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남녀 이야기, 사랑 이야기를 쓴것도 흥미롭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노래가 등장하는데, 제목으로 쓰인 노래, <바이바이 블랙버드>도 어떤 곡인지 들어보고 싶어진다.
가장 궁금한건 다자이 오사무의 전편과의 어울림이다. <굿바이>라는 작품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허무주의자처럼 보이는 두 작가가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 궁금해죽겠다.
“ 큰일이다, 무섭다. 이런 생각이 들어 물러서고 싶으면 정말 그렇게 된대. 덤벼봐, 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게 충격이 적다는 거였지. 싸움도, 병도, 뭐든 뒤로 물러서면 반드시 지게 된다고 했어. ” (p370)
이런 이사카 고타로스런 대사가 난 참 좋다.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는 모습,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내뱉는, 차가운 대사들이 좋다.
<바이바이 블랙버드>는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이사카 고타로만의 느낌 역시 담고 있는 책이다. 거장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속편이라고 하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보는 작업도 해본다면 재밌을 것 같다. 그러니 우선 나부터 <굿바이>를 찾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