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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도시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마당깊은 집>은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대구를 배경으로 마당깊은 집이라고 불린 한옥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문학작품은 시대상을 만영한다는 전제에 가장 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싶을만큼 전쟁 직후의 사회상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금도 대구에는 그때의 시간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대구를 홍보하는 책자에도 ‘근대’라는 단어가 곳곳에 있다. 근대 건축, 근대의 거리... 대구에 가면 <마당깊은 집> 속의 시간으로 타임 슬립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절로 든다. 책을 읽으며 대구라는 도시에 관한 관심은 그렇게 깊어졌다.
<마당깊은 집>은, 그러니까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이다. 1954년이라면 부모님들이 태어나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을 보냈을 법한 시간이다. 그것은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이며 부족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데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봄으로 그 시절을 경험하고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 길남이의 모습은 바로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다. 마당깊은 집에 살고 있는 모든 등장 인물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다.
어려운 시절, 집 안의 장남인 길남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길남 어머니는 더욱 매몰차고 혹독하게 그를 양육한다. 장작을 패는 사람이 와서 방법을 배우는데, 힘겨워하는 길남을 보고 정태씨가 도우려 하자 어머니는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 총각 보래이. 커가는 아아들한테는 그래 의지하는 힘을 길라주모 안된다. 지가 맡은 일은 어짜든동 지 심으로 끝장을 바야지러. 누가 대신해주는 기 버릇이 되모 앞으로 다른 일도 누가 도와주겠거니 하며 늘 기대는 버릇만 생겨. ” (p151)
결국 길남은 힘들기만 한 생활과 어머니의 단호함 때문에 집을 나가게 되지만, 찾아온 어머니를 따라 집에 돌아오게 되었고, 이 일은 어머니의 아들임을 마음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된다.
책을 읽다보면 1954년의 대구에 내가 있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고 있다. 얼기설기 복잡한 시장통을 내달리는 길남이 뒤를 쫓아 대구의 골목을 누비는 기분도, 복작 복작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마당깊은 집 속에 있는 기분도 든다. 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서울 역시 아니 한국의 어떤 곳도 비슷했으리라 싶어진다. 가끔씩 엄마가 들려주던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소설 속 곳곳에 투영되어 있었다. “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어.” 한숨을 내쉬듯 마무리되던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있었다.
그만큼 소설은 시대를 잘 포착하여 가감없이 딱 그만큼 보여주고 있었다. 좀 더 잘살기 위해, 좀 더 잘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살아온 생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다보니 그것은 그냥 습관처럼 몸에 익고 일상이 되어버렸다.
소설은 마당깊은 집이 공사를 하느라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아마도 삶은 계속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더 열심히, 더 진지하게 말이다.
이렇게 한 시대를 오롯이 담고 있는 소설들이 꾸준히 읽히고 아껴지기를 바란다. 나의 부모님들은 대체 어떤 시절을 살았던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고 (대구를 직접 다녀온다면 더 좋을 것이고) 부모님의 바라본다면 분명, 내 마음에 뭔가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생겨 있음을 알게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