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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의 왕 - 바람직한 친구 관계 만들기 ㅣ I LOVE 그림책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지음, 놀라 랭그너 멀론 그림,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9월
평점 :
자전거를 두 아들내미가 타고 나간다. 내게 등 돌리며 '엄마 놀다올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믿지 못해서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나의 도움이 필요없어지고 있다는 불안감때문이라고 해야하나 그들만 놀이터에 나가놀으란적 별로 없다. 그렇게 등 돌리고 가는 아들 옆으로 더 큰 아이가 따라 붙으며 '같이 놀자' 한다. 그 아이는 자전거에 실린 공을 보고 따라가고 있었다. 자전거도 능숙하게 잘타고 체격도 큰 아이. 더 불안하다. 과연 잘 어울려 놀까. 그 아이가 공만 가지고 가는 건 아닐까. 하며 둘이 자전거를 탄다고 가는 거보다 더 불안하다. 한참을 지켜보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기다리자.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약속한 30분이 지나 조금 어둑해져서 아이들을 찾으러 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주변을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려니 두 아들내미 나란히 이어 나타난다. 공도 같이. 어떻게 놀았을까? 아니면 말 없는 큰 아이가 조용히 그 아이들 멀리했을까?
말을 더듬는 탓에 다른 아이들이 다가오면 고개 숙이고 뒤로 숨어버린다. 그러면서도 내 팔뒤로 허리뒤로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노는지 들여다본다. 그리곤 집에 와서 내게 똑같이 그렇게 놀자고 한다. 수줍음도 많고 유통성도 없는 고집쟁이인 아들이 나를 열심히 살게 만든다.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늘 고민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말하는 책들을 들여다보면 그 순간은 그럴싸해 보인다. 이해도 잘 되는데 뒤돌아서서 며칠이 지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책을 읽었었나 싶을때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는 탓도 있다.
아빠. 더 말할 필요가 없을만큰 완벽한 표본이다.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려줄수 있을까? 기다리는 거? 너무 어렵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어려운거 말을 적게 하는 거다.
놀이터에 간 줄 알았는데? 늘상 돌아오는 아이 케빈에게 묻는다. 포기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고 묻는다. 지금 어떠니? 하고 자연스럽게 묻는다. 가끔 미리 짐작해서 지금 우리 아이가 이러이러한 상황이므로 힘들겠구나. 그럼 자연스럽게 위로를 해줘야지. 또는 마음이 아프겠구나 하면서 충분히 열심히 했어도 나쁜 결과가 있을수도 있다는 식의 섣부른 격려 하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다.
지금의 내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니. 물어보는 거.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엄마인 내게 책의 대사를 저절로 스며들게 반복적으로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 그럼, 그렇게 하렴- 발길질을 한다고 할적에도 파낸 흙을 도로 차 넣어버릴거라고 할적에도 아빠는 아들에게 어떤 의미도 실지 않고 아들의 해결책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 위험하다거나 상대와 똑같이 행동하면 너도 같은 사람이 된다는 식의 교훈 날리지 않는다. 요즘 말로 쿨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쿨]은 뜨거운 용암같은 마음을 모두 거친 다음에 자신을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려서 나오는 쿨함이다. 어떤 일에 냉정하게 거리두고 지켜보는 거와 다르다. 내아이가 어울리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집에 돌아오는데 냉정할수 있을까.
자꾸 곱씹으며 대사를 외운다. 눈으로 보는거와 입으로 뱉어내는 거와 다르기 때문에. 자꾸 자꾸 되뇌다 보면 입에서 저절로 말할거라 믿으며 외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는게 아니다. 표지를 보면 동그란 딱지에 '바람직한 친구 관계만들기' 같은 거 보면 왠지 재미없기만 한 교육책 같은데 아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허무맹랑한 협박을 말하고 있다 ' 요술 알약을 먹고 작아지면 돼. 쇠창살 사이로 쏙 나와서 ...' '군인 아저씨들한테 가서 탱크를 빌려 올 거야' 등등 아이들의 엉뚱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 큰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다. 알약을 먹고 작아진 케빈의 모습에서 웃어라 하고 탱크를 타고 쫓아가는 새미의 모습에서 웃어라 하며 좋아한다. 자신이 그렇게 대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른들이 아이들 교육시키기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재미난 그림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점. 새미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심술부리고 대장노릇하는 새미를 들여다볼수 있는 시간을 준다. 케빈이 모래놀이에 들어와 주고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이상 자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알게 되는 동안. 모래 놀이통에서 굴을 파는 시간. 머리를 부딪히는 시간. 다시 가볍게 심술 부리면서 말을 이어나가는 부분. 새미가 케빈과 어떻게 모래성을 같이 쌓게 되는지의 부분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보통은 케빈이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했는지에 대해서까지 책들이 쓰고 있는데 이 책은 거기를 넘어서고 있다. 같이 성을 쌓자는 의견에 "싫어" 라고 답하지만 - 하지만 새미는 케빈과 함께 성을 만들었어요- 라고 끝을 맺는다. 대장노릇하면서 혼자 놀아야했던 새미의 외로움에도 눈을 돌리고 있어 따뜻하다.
저녁마다 책을 가져오는 아이의 눈빛과 그것을 읽어주는 내 마음이 즐겁다. 놀이터의 왕에는 달달 볶아서 혀끝에 매달아놓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