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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삼국지를 말하다 - 삼국지 인간형으로 보는 성격의 심리학
김태형 지음, 신대성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서양의 “일리어드 오디세이”나 “플루타루크 영웅전”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오히려 그 작품들보다 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양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가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이 엮어가는 각각의 개성들과 이야기들이 읽을 때마다 때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이해되어지는 입체성의 묘미일 것이다. 몰락해가는 한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유교적 인의(仁義)와 덕(德)의 상징이었던 유비의 모습이 사실은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 술수로도 해석되기도 하고, 관우의 죽음은 정치적 라이벌인 제갈량의 계책에서 비롯된 것일 수 도 있으며, 간웅이자 삼국지 악의 축의 대명사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강력한 카리스마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현대적인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는 조조의 모습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나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되면서 삼국지의 재미와 교훈은 우리들에게 날로 더 커져만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삼국지의 영웅들을 현대적 심리학 기법으로 해석해보면 과연 어떨까? 심리학자로서, 심리학 관련 유명 저술가로서 널리 알려진 김태형의 “심리학, 삼국지를 말하다”(추수밭, 2010년 7월)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브릭스와 마이어스 모녀에 의해 개발된 성격분류방법이자 기업체에서 인력과 조직 분석 방법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기법"을 이용하여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의 성격 분석을 통해서 그들이 행했던 행동이나 사건의 이유를 조명해보는 재밌는 책이다.
들어가는 말에서 삼국지가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가 “살아있는 사람”,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단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 점을 꼽는다. 즉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이 우리 눈앞에 튀어나와 살아 움직일 것처럼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고, 특히 인물묘사의 핵인 심리묘사에서 수천년 전의 문학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발군이며 이것이 삼국지의 가장 중요한 장수비결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삼국지가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면, 그들의 심리와 인생을 심리학으로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그래야만 했던 심리적 원인을 밝혀보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으며, 이러한 심리학적 해석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허구를 포함하고 있는 소설 삼국지에 대한 해석이지만 각각의 인물을 상당히 일관성 있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어 충분히 심리 분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유용한 현재적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서 오늘을 사는 모든 이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개선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또한 도덕성, 전략전술과 승패, 인생살이에 대한 문제에 우리가 올바른 답을 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자신의 바람이자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심리분석도구로 사용한 “MBTI기법”은 사람의 심리를 네가지 심리적 유형 쌍인 내향-외향, 감각-직관, 감정-사고, 실천-인식으로 나누고, 네가지 유형은 각각 다른 유형과 결합하면서 독특한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내고, 네가지 유형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인 총 16가지의 성격의 유형을 만들어낸다는 분석방법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소개한 유비는 내향(I)-직관(N)-감정(F)-인식(P)의 심리적 유형을 가지고 있고, 이 유형들은 직관감정(NF)-내향감정(IF)-내향인식(IP)으로 결합되고 그의 성격은 INFP(몽상가)로 분류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렇게 딱딱한 심리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 소설 속 각종 사건과 이야기들을 들어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유비를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대인관계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착하디 착한 얼굴로 무거운 짐이 되어 타인의 등에 업혀 다니는 이가 적지 않는 일종의 “애정결핌환자”로 분석하고 있다. 유비가 보여준 과도한 겸손과 겸양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환영받고 싶다는, 역으로 말해 누구에게도 욕먹기 싫고 누구의 사랑도 잃기 싫다는 심리의 표현이며, 또한 커다란 야심에 비해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나 의지가 턱없이 부족해서 틈난 나면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며 신세를 한탄했지만 적극적으로 능력을 계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가 적극적으로 인재를 발굴하거나 끌어들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사랑을 받기에 급급했던’ 그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무의식 속에는 대업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측근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기를 더 원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어쩌면 유비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과 오순도순 사는 것, 어떠한 부귀영화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애정결핍환자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애정결핍환자로 유비의 의제(義弟)인 장비를 꼽고 있다. 단순 솔직의 대명사인 장비는 소설 속에서 형제인 유비나 관우까지 의심하는 심각한 대인불신감을 보여주는 데 그 이유가 명문의 후예였지만 어렸을 적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늙은 가복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해 탁현의 저잣거리에서 숨어 살았던 그의 어린시절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랑을 받기는 커녕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숨어 살았기에 어쩌면 의심과 불신이야말로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애정결핍은 시기심과 경쟁심, 공명심으로 나타나고 또한 자신의 분노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과에 이르렀고, 그의 엄청난 괴력과 무예가 그의 경솔한 행동과 독선적인 경향을 한층 강화했고, 또한 그런 능력이 지적 능력이나 자기 통제력을 계발하는 데는 커다란 장애요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조조가 관우에게 보냈던 무한한 사랑(?)은 탐욕도 의존도 집착도 아닌 건강한 사랑이었으며, 잠깐 동안 타다 꺼지는 순간의 불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뜨겁게 타오른 열렬한 사랑이었으며, 살아 생전에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었다고, 어찌 보면 동성애로 오해할 만한 그런 색다르고 재밌는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관우의 죽음이 제갈량의 계책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에 관해서도 관우의 위험을 모른 체 한 맹달과 제갈량의 관계 분석을 통해 설명하는 데 제갈량이 관우가 죽은 후에 맹달에 대한 처벌을 암암리에 계속 방해하여 그를 살려주었으며, 맹달이 위나라에 투항한 후에도 맹달을 잡아오는 데 도움이 된다며 연이어 내놓은 계략이 맹달의 살 길만 열어주는 결과를 가져온 점, 유비가 죽고 한 참 후 맹달이 촉에 다시 투항의사를 밝혔을 때 그 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점 들을 들어 맹달이 관우의 죽음을 나 몰라라 했던 것은 제갈량의 사전지시에 따른 일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제갈량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저지른 일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으며, 이처럼 맹달에 대한 제갈량의 태도를 통해 제갈량이 관우에게 애정이 조금도 없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꼽는 삼국지 최고의 리더는 누구일까? 작가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리더인 조조, 유비, 손권에 대하여 “애민”,“목표제시”,“인재활용”, “심리적 건강성” 4가지 항목으로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분석하고 있다. 표면적이었든 실제 마음에서든 세 명 모두 다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을 평안하게 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 “애민”면에서는 그다지 차별성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리더로서 객관적인 정세와 자신과 상대의 역량 관계에 기초해 올바른 목표한 정책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목표제시”면과 참모들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고 본인 스스로가 강력한 지도력과 일사불란한 지휘 통제 능력을 보여주는 “인재활용”에서 조조가 단연 우위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다 인정할 수 만 한데, 잔인한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조조가 무의식적인 건강한 소망과 확고한 대인신뢰감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애정결핍증을 극복 여부의 지표인 “심리적 건강성”에서도 다른 두 사람을 앞서는 점은 다소 의외이기도 하다. 그러나 셋 다 모두 심리적으로 건강한 축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유비는 중년기 이전까지 방황, 중년기 우후 제갈량에 대한 의존, 관우가 죽은 뒤부터는 심리적 폭주까지 이르렀고, 손권은 중장년기를 넘어서면서부터 그동안 애써 억압해왔던 심리적 문제들이 터져 나와 오나라 멸망의 첫단추를 끼웠던 것에 반해 조조는 죽는 순간까지 기복이 심하지 않은 건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리더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작가의 해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는 이런 조조, 유비, 손권의 리더십 분석과 평가를 통해 현대의 정치인들에게도
한국의 어떤 정치인은 ‘머리는 남에게 빌릴 수 있지만 몸은 빌릴 수 없다“면서 열심히 체력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리더는 단지 몸만 단련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반드시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 왜냐하면 좀 극단적으로 말해 남에게 머리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빌릴 수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건강한 마음만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볼때, 승리한 리더 혹은 성공한 리더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라고 규정할 수 있다.
라고 마음과 몸이 건강한 데다 탁월한 정치적 안목에 뛰어난 지적 능력까지 겸비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이 크게 환영해야 할 진정한 리더라고 충고한다.
“삼국지”라면 소설 뿐만 아니라 해설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삼국지라는 이름만 붙어 있으면 눈과 손이 저절로 가게 되는 삼국지 매니아라 자부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책이었다. 관우와 조조를 좋게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유비, 장비, 제갈량을 나쁘게 평가한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이 책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자처럼 읽으면서 작가의 독특하고 신선한 해석에 재미와 묘한 공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아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일화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어려운 책일 수 도 있겠지만, 삼국지를 많이 읽어서 이제는 색다른 읽기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일 이 책은 나의 삼국지 독서 이력(履歷)에서도 손 꼽을 만한 책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