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비밀의 방 - 월화수목금토일 서울 카페 다이어리
이영지 지음 / 나무수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서울 생활을 15년을 넘게 했는데도 변변한 카페 하나 제대로 아는 곳이 없다. 그래도 굳이 꼽아보자면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학교 주변의 몇몇 카페들과 단골 약속장소였던 대학로의 “장미빛 인생” 정도이다. 카페보다는 술집에 더 익숙한 우리 시절 남성들처럼 나에게는 카페는 남녀들의 데이트를 위한 장소로 남자들끼리 가기에는, 특히 혼자 가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책 하나 펼쳐놓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한 눈치가 보여 어색하고 불편한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카페가 그저 커피나 마시고 수다 떠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쉼과 여유의 공간이자 책, 음악, 영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길거리를 거닐다가 우연찮게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이쁜 카페를 만나게 되면 마치 보석을 줍는 것 같은 그런 기쁨을 느낀다는 글들을 보면 카페가 도시인에게는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푸른 숲과 공원을 대신하는 쉼터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 서울 골목 골목에는 어떤 카페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을까? 이영지의 “서울 비밀의 방; 월화수목금토일 서울 카페 다이어리”(나무수, 2010년 7월)는 서울 골목 골목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카페들의 비밀을 우리에게 소곤소곤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 격인 에필로그에서 서울에 숨겨진 비밀의 방에 앉아서, 날씨가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것을 여러번 지켜보면서 지구에 사계절이 있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시간동안 노크했던 비밀의 방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렇게 300 페이지의 분량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자신의 비밀이 이 책을 읽은 우리에게도 에게도 비밀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는 작가의 이러한 비밀의 방인 카페를 누구와가 아닌 혼자서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을 위한 “소규모 카페(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보면 좋을 “북 카페(화)”, 연인과의 와인을 나누며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와인 카페(수)”,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간식이 일품인 “디저트 카페(목)”와 “딜리셔스 카페(금)”,동경 뒷골목을 온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의 “일본카페(토)”, 그리고 아침, 점심 보다는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브런치 카페(일)” 등 요일별로 테마를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카페마다 이쁜 일러스트와 색감이 선명한 화보를 실어 카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카페 메뉴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어 나처럼 낯선 카페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사람에게도 마치 그 카페를 다녀온 듯한 익숙함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7개의 테마 중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화요일 북 카페가 가장 눈길이 갔다. 작가는 북 카페 소개글에서 대부분의 카페는 사람을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와플을 먹기 위한 공간이지만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소설과 만화책, 사진집과 요리 책이 잔뜩 있는 도서관 같은 카페가 필요하며, 북 카페에 대해 생각하면 과자 선물 세트를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어릴적 과자 선물을 받고나서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서 종일 어떤 과자를 먼저 먹을까 고민에 빠졌던 것처럼 북 카페에서도 선물상자를 연 것처럼 언제나 우왕좌왕하며, 소설을 고르면 만화책이 눈에 들어오고 요리책을 고르면 화보집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즐겁기만 한 곳이 바로 북 카페라고 소개하고 있다. 비록 푸르름이 가득한 공원 나무 그늘에서의 쉼은 아니지만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 여유로움, 바로 도심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런 낭만이 아닐까 생각되어 진다.  

카페 위치를 표기한 약도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카페를 찾아가려면 가뜩이나 길 눈 어두운 나에게는 아무래도 꽤나 애를 먹을 것 같다. 카페 위치를 지도에 하나하나 찾아서 작가가 소개해 준 대로 요일별로 테마별로 카페 투어를 해보는 것도 즐겁겠지만 어느 한가로운 주말 오후 길을 거닐다가 골목 한 켠에서 아름다운 카페를 만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카페에 불쑥 들어섰을 때, 처음 온 곳인데도 왠지 익숙한 기분이 들어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보니 목요일 테마로 소개되었던 달콤한 디저트가 일품이었던 그 카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는 입가에 미소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회색 건물 사이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비밀이 있어 서울이 조금은 덜 삭막하고 조금은 더 행복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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