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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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한 점 스며들 곳 없는 완벽한 밀실(密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실낱같은 단서로 불가능할 것 같은 밀실 트릭을 깨뜨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명탐정의 추리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한번 씩은 접해봤을 이 밀실 트릭은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이라는 에드거 엘런 포우(Edgar Allen Poe)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에서 처음 등장하였다니 추리소설 탄생과 함께 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유명한 트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읽었거나 또는 추리소설 관련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 접해본 밀실 트릭도 여러 작품이 있는데, 그 중 앞에서 언급한 포우의 작품과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의 <얼룩끈의 비밀(1892)>, 본격 밀실트릭의 시초라는 가스롱 르루의 <노란방의 비밀(1907)>, 이스라엘 장월의 <빅보우 미스터리(1895)> 등을 들 수 가 있겠다 -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 <쥐덫(1955)>, <오리엔트 특급살인(1934)> 등도 밀실 트릭으로 소개하고 있는 자료도 있던데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지 밀실트릭은 아니다 - . 그런데 밀실 트릭을 종종 읽다보면 처음 상황 설정에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기막힌 트릭으로 생각되지만, 막상 탐정에 의해 전모가 드러난 밀실구성의 방법을 보면 마치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단순한 장치나 속임수를 이용하거나,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한 트릭들도 있어 여러 작품을 읽다보면 다들 비슷 비슷한 것 같아서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는 그런 트릭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밀실트릭이 등장하는 소설도 앞에서 언급한 고전 추리소설들 위주로 읽어봤을 뿐 요즘 출간되는 현대 작품들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 물론 최근 작품들 중에서 기가 막힌 밀실 트릭을 구사한 작품들도 많이 있다고 하는 데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 . 그런데 요즈음 현대적 감각의 밀실트릭소설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공포소설 <검은 집>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기시 유스케의 <도깨비 불의 집(시작/2010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밀실 트릭을 주제로 한 "도깨비불의 집", "검은 이빨", "장기판의 미궁","개는 알고 있다", 이렇게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모든 사건은 전작(前作)인 <유리 망치>에서 멋지게 밀실 트릭을 해결했던 콤비이자 이 책 덕분에 밀실 전문(?) 탐정이 되어버린 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도둑 출신의 보안회사 사장 에노모토 케이가 등장하여 해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사실이나 살인방법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밀실을 구성하여 탐정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혀 의도하지 않았거나 또는 우연적으로 구성된 밀실, 즉 소극적인 방식의 밀실트릭들이 등장한다. 표제작인 "도깨비불의 집"에서는 범인은 오히려 밀실이 아닌 것처럼 꾸몄지만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그리고 사건현장에 남아있던 증거물을 욕심낸 다른 등장인물 때문에 밀실이 되어버린 두 건의 밀실이 등장하고, "검은 이빨"에서는 비록 밀실에서 일어났지만 단순한 사고사로 처리된 사건이 사실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살인이었음이 밝혀지는, 어찌 보면 밀실은 그저 공간적 배경으로만 등장될 뿐 사건 플롯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고, "장기판의 미궁"에서도 살인 발생 이후 범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밀실이 구성되며, 마지막 편 "개는 알고 있다"는 밀실트릭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코메디와 같은 트릭이 등장한다. 또한 단편이라는 분량 상의 한계 때문이지 역시 트릭을 해결하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사건 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갈등 관계나 심리 묘사, 살인 동기들은 간략하게만 언급되어 있을 뿐 대부분 사건 자체의 설명과 탐정 콤비의 해결에만 집중하고 있어 독자가 작가가 제시하는 단서를 토대로 탐정들에게 감정 이입하여 밀실트릭을 추리해보는, 즉 추리소설의 미덕인 작가와의 두뇌 게임을 벌여보는 그런 묘미를 즐겨볼 여지가 없어 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나 반전조차 부족한 것은 아니어서 네 편 모두 정교하고 기발한 플롯과 트릭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몰입도와 재미는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가장 연쇄 밀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도깨비 불의 집"이 가장 인상적이며,   또한 역자 후기에서 "블랙코메디"라고 표현한 마지막 편 "개는 알고 있다"도 절묘한 트릭은 아니지만 거한 만찬 후 가볍게 즐기는 에피타이저처럼 가볍고 유머러스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꽤나 재밌어 할 그런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팬들을 많이 확보한 유명작가라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 읽어본 작품이라 그의 작품 수준을 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비록 정통 밀실 트릭은 아니었지만 추리소설로서의 기발함과 재미를 한껏 담아낸 이 작품을 보면 역시 글솜씨가 녹록치 않은 그런 작가로 생각된다.  또한 그의 작품 목록들을 보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집>에서 보여준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모던 호러 장르 뿐만 아니라 청춘/본격 미스터리, SF에 이르기까지 매번 전혀 다른 작풍과 작품관을 선보이는, 일본 내에서는 이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전무후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니 명성에 걸맞는 작품성을 가진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 - 특히 <검은집>^^ -  또한 읽어보고 싶은, 계속 주목해볼만 한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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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컬트 X-파일
멀더 이한우 지음 / 나무발전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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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신체가 절단되고 피가 철철 넘쳐 흐르는, 칼과 도끼, 망치가 난무하는 잔혹 공포영화(정확히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라고 한단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신화·전설 속의 초자연적(Super-natural)인 존재들, 즉 귀신, 흡혈귀, 악마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들은 그래도 제법 좋아하는 장르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포 영화를 꼽아본다면 중학교 시절 책으로 먼저 읽었다가 나중에 영화의 전시리즈를 챙겨 보았던 "오멘(Omen, 1976)"인데 극중 사탄의 아들 “다미엔”으로 나온 아역 배우가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짓는 끔직한 미소는 지금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또한 지금이야 흡혈귀, 좀비, 미이라를 소재로 한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수도 없이 많지만 어린 시절에는 소년 만화 잡지 특집 기사로서야 접해볼 수 있는 읽을 거리여서 잡지를 사게 되면 만화보다도 제일 먼저 찾아 읽게 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어릴 적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할머니 등에 숨어, 또는 이불을 뒤집어 쓰면서도 꼭 챙겨보던 드라마가 바로 “전설의 고향” 이었는데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눈만 빼꼼히 내밀며 보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라치면 금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마는, 그래도 이야기가 궁금해서 소리라도 듣기 위해 두 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거부하고 싶어도 결국에는 보게 만들던 그런 묘한 매력에 어린 나이인데도 푹 빠졌던 것 같다. 이렇게 초자연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장르를 “오컬트(Occult: "occultus"(숨겨진 것, 비밀) 등에서 유래한 단어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그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말이다 - 위키백과사전 인용) 영화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학문으로까지 발전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어린이 잡지나 몇몇 미스테리를 다룬 블로그나 카페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아직까지는 소수 매니아들을 위한 그런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공포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오컬트적 상식을 엮어낸 책을 만났다. 여러 매체에서 영화담당 기자로서 공포와 영화를 접목한 기사들을 기고해온, 내가 참 좋아했던 드라마인 『X-파일』의 주인공 ‘멀더(Mulder)’라는 필명의 오컬트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한 이한우의 <영화속 오컬트 X-FILE(나무발전소, 2009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지금까지의 공포영화 분석은 극 중 캐릭터나 스토리 중심으로 설명되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어떻게 해서 그런 괴현상이나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현실을 극복해보고자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외의 희귀 자료 및 서적,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직접 만나면서 인터뷰해온 결과들을 모아서 국내 최초로 공포 영화에 대한 ‘오컬트적 분석집’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책에서는 총 10장으로 나누어 우리가 공포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각종 초자연적인 존재들, 즉 귀신, 흡혈귀, 좀비, 구미호, 강시, 늑대인간 등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줄거리와 함께 전문기자로서의 평가를 곁들어 소개하고 있으며, 각 장 말미에는 각종 신화나 전설 속에서의 모습들과 믿기 어려운 실제 사례들 등을 제공하고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오컬트 용어 해설을 싣고 있다.. 사실 소개하고 있는 “오컬트적 상식”들은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오기노 마코토의 만화 <공작왕>을 즐겨보았던 독자들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평범한 수준의 상식들 - 각 장 말미에 실린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퇴마록 해설집>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기타 다른 책도 오컬트를 학문적으로 다룬 전문 연구 서적이라기보다는 일반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 이지만 영화 소개 글들만큼은 공포 영화 가이드북으로 활용해도 좋을 만큼 풍성하고 다양하다. 특히 관심은 있지만 무서울까봐 꺼려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제목 정도만 언뜻 들었던 영화들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와 배경, 그리고 작가의 평을 읽으면서 챙겨 봐야할 나만의 “위시 리스트(Wish List)"을 만들어 볼 정도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읽을 거리였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재밌는 상식들도 많은데 몇몇을 소개해보자면,
최초의 흡혈귀 영화인 ”노스페라투(Nosferatu, 1922)"가 브람 스토커의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루마니어로 불사신, 흡혈귀를 뜻하는 노스페라투를 제목으로 했던 이유가 바로 브람 스토커의 미망인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며, 또한 태양 빛만 쐬면 먼지가 되어버리는 설정도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으면 영화에서 저작권 문제를 피해보려고 첫 설정하면서 아예 흡혈귀 약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구미호(九尾狐)” 전설 - 올 여름에도 두 편의 드라마가 상영되었다 - 도 사실 우리 민족이라는 동이족(東夷族)의 수호신(守護神)이자 선신(善神)이었던 구미호가 악신(惡神) 또는 요물(妖物)로 여겨진 이유가 중국이 동이족을 견제하기 위해 신화와 전설을 조작한 것 - 이 대목은 최근 들어 일고 있는 민족주의 사학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 - 이라고 한다. 한편 “월하의 공동묘지” 정도로만 기억나는, 공포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 영화계에서 강령술, 엑소시즘 등 서양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즉 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의 한국판이라 부를 만한 걸작 영화가 있었다는 데, 바로 인기 영화 감독인 이장호 감독이 만든 “너 또한 별이 되어(1975, 신성일·이영옥 주연)” - 그런데 호러영화 제목으로는 영 안어울린다^^ - 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잊혀졌으나 1990년대 이후 한국 호러 영화들이 재조명되며 소수의 마니아층이 형성되었으며 1970년대 한국영화의 암흑기에 만들어진 독특한 호러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소식도 알게 되었는데, 어릴적 그렇게 좋아했던 영환도사(靈幻道士) 시리즈라는 강시영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홍콩배우 임정영(林正英/Lam Gun Bo)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7년에 별세(別世)했다는 사실이다. 어쩐지 요즈음 제대로 된 강시 영화를 볼 수 없더니만...... 

  꼭 소개되었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누락된 드라마와 영화도 많은데, 이 책이 출간된 연도(2009) 이후에 전 세계의 소녀들을 열광시킨 흡혈귀 영화 “트와일라잇(Twillight)" 시리즈와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인기 미드 ”X-FILE"과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이 빠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앞에서도 언급한, 기독교적 묵시론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의 고전 걸작 "오멘(Omen, 1976)" 시리즈와 ”악마의 씨(Rosemary's Baby, 1968)을 다루지 않은 점이다 - 물론 X-FILE이나 오멘을 다루게 되면 그 배경이나 관련 지식들만으로 각각 책 한 권씩은 족히 되는, 한정된 지면 하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임에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   

  책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부담 없이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전문적인 오컬트 지식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래도 엄연한 인기 장르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공포영화의 계보들과 함께 오컬트 상식을 곁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와 가치가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자 이제부터는 책에서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영화들을 한번 챙겨봐야 할 것 같다. 단 무서운 장면에서는 언제든지 꺼버릴 수 있는 리모컨과 어릴적처럼 푹 눌러쓰고 눈만 빼꼼히 내다 볼 수 있는 이불은 필수로 준비해서 말이다. 그리고 가급적 밤보다는 낮 시간에, 그것도 혼자 말고 꼭 둘이상 모여서 시청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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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아오 - 소설로 읽는 3만 년 전의 인류사 에듀 픽션 시리즈 8
마르크 클라프진스키 지음, 양진성 옮김 / 살림Friends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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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오래전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나 생물 교과서에서 현생인류 바로 전단계의 인류로서 진화의 증거로서 배웠던 기억이 날뿐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다만 미스터리나 음모론 관련 글들에서 현생인류보다 뇌 용적이 크고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인류로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들과 동시대에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지금도 아프리카나 북극 오지에는 소수가 살아남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끔 가십거리로 등장하는 히말라야 설인(雪人)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시인들이 바로 네안데르탈인의 후예라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접해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마르크 클라프진스키의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아오(살림출판사, 2010년 8월)>을 읽게 되면서 인터넷에 네안데르탈인을 검색해보니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이 수십 개가 검색된다. 수많은 논란 중 두 가지를 요약해보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DNA측면에서 서로 다른, 즉 인류의 조상이 아니며, 네안데르탈인 멸종 원인이 바로 현생인류들이 그들을 먹었기(食人) 때문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두가지 다 이론(異論)들이 분분한 것을 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미흡하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상식을 깨뜨리는 놀라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과연 네안데르탈인이 공존했을 시기인 3만 년 전 유럽의 모습을 담아낸 소설이라는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호기심에 책장을 부지런히 넘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부족인 “곰부족”의 소년 아오는 인근에 있는 크로마뇽인 부족인 “새(鳥)부족”의 공격으로 부족민 모두가 죽고 혼자 살아남는다. 자신의 종족을 몰살시킨 새 부족을 몰래 감시하던 아오는 배고픔에 그만 새 부족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훔치다가 발각되어 쫓기게 된다. 새 부족 사냥꾼들의 눈을 피해 동굴에 숨어든 아오는 그곳에서 또다른 크로마뇽인 부족인 호수 부족 출신으로 새 부족 사냥꾼들에게 잡혀왔다가 아오의 난동 덕분에 탈출하면서 길에서 아이를 낳은 여인 아키 나아를 만나게 된다. 아키 나아는 현생 인류와 다른 생김새에 짐승 같은 소리를 내뱉는 아오를 경계하지만 아오는 아무런 적의를 나타내지 않고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던 중 그 둘을 쫓던 새 부족 사냥꾼들을 맞닥뜨리고 아오와 아키 나아는 힘을 합쳐 그들을 죽이고는 서로를 신뢰하게 된다. 그 동굴에서 서로를 보살피고 사냥을 함께 하면서 호수 부족으로 아키 나아를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새 부족 사냥꾼들에게 인질로 잡혀간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 온 아키 나아의 남편과 동료 사냥꾼들을 만나게 되지만 아키 나아의 남편은 기존에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숨을 거두고, 아오를 두려워하는 동료 사냥꾼은 아오의 호수 부족 동행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아키 나아는 아오를 두둔해서 결국 호수 부족까지 동행하게 된다. 우여 곡절 끝에 아오와 아키 나아 일행은 호수 부족에 도착하고, 아오를 두려워하는 부족원들에게 부족의 샤먼은 고대인(네안데르탈인)들과 호수 부족의 오랜 인연을 들려주어 부족원들을 설득하여 아오를 받아들인다. 호수 부족에 머물게 된 아오는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배우게 되고, 부족의 사냥에 참여하면서 드디어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아오의 마음에는 어딘가에 살고 있을 고대인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하였고, 결국에는 샤먼이 일러준 북쪽으로 자신과 절친한 아키 나아의 동생 키파 코오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늪과 빙하를 넘어 마침내 고대인 부족을 찾아내어 아오는 그곳에 머물지만 그곳에서도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던 아오는 사랑하는 여인 아키 나아가 있는 호수 부족을 그리워하고, 이웃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던 키파 코오와 함께 호수 부족을 향하여 다시 떠나게 된다. 다시 돌아온 호수 부족 마을에는 잔혹한 새 부족 사냥꾼들이 다시 쳐들어오고 아오는 자신의 아내와 그녀에게서 낳은 아이, 그리고 새로운 가족인 호수 부족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싸움을 벌이게 된다.  

역사적 기록이란 하나 없는, 그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몇몇 유물 뿐이었을, 전혀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3만 년 전의 시대를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렇게 생생하게 복원해냈다니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현생 인류와는 다른 생김새 -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위에 강한 특징, 즉 큰 머리, 짧은 목, 강인한 체격, 큰 코와 무성한 체모(體毛)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대로 그들의 두뇌 크기는 현생인류보다 크다고 추정되며 평균 신장은 남성이 1.65m, 여성은 1.53~ 1.57m 였다고 한다 -로 원시 크로마뇽인들에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사냥의 대상 정도로만 여겨졌던 그들이 정령이라는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현생 인류들과 이종 교배가 가능했다는 사실들을 소설적 형식으로 복원해낸 이 소설은 그 어떤 학문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아마존 원시부족을 카메라에 담아내 큰 화제가 되었던 “아마존의 눈물”을 보는 것처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공존했던 고대를 우리 눈 앞에 생생히 재현해낸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아오의 거친 숨결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아기를 지켜낸 아키 나아의 절절한 모성애를 직접 옆에서 목격한 것같은 착각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눈길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책을 읽어 내게 만든다. 구석기 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느껴보고 싶다면 여느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낡아빠지고 볼 것 없는 유물을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인지 판타지 영화인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10,000 BC(2008)> 영화보다는 이 책이 훨씬 훌륭하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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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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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행성인 “화성(Mars)" -원래는 가장 가까운 행성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금성이 제일 가깝고 화성은 두 번째란다- 은 최근까지도 외계인의 존재여부로 관심을 끌고 있는 , 여러가지로 이야기꺼리가 많은 그런 행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꾸준한 탐사선 파견으로 그동안 각종 음모론이나 UFO 관련 서적들의 단골 소재였던 화성의 인면암(Face of Mars)이나 화성의 피라미드는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종종 화성 생명체 존재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뉴스에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면(최근 기사가 2010년 9월 7일 “화성 생명체, 존재 가능성↑…유기물 발견”라고 실렸었다) 화성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화성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에 SF 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다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원제 Tne Martian Chronicles/(주)샘터사/2010년 8월)>을 읽게 되었다. SF소설 특유의 치밀한 과학적인 설정은 찾아볼 수 없지만 여느 SF소설에서 맛보기 힘든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재미와 감성을 맛볼 수 있었던 소중한 책읽기였다.  

  책에서는 1991년 1월부터 2026년 10월까지, 한 두 페이지의 아주 짧은 글에서부터 50 페이지의 단편(4차 원정대 이야기인 “2001년 6월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이 가장 긴 분량이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량의 총 2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장편소설로 집필된 것이 아니라. 1940년대 후반에 여러 잡지에 발표된 “화성” 관련 단편들을 연대기 형식으로 묶은 것이라 그런지 전편을 관통하는 등장인물 - 그나마 책 초반부에 등장했던 4차 원정대 대장인 와일더 탐험대장은 후반부에 다시 등장한다 -이나 특정 사건의 전개와 해결이라는 스토리 라인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편 한편이 독립된 이야기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연대기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지구의 화성 침략사(?)를 알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작가가 사전에 전체의 줄거리를 미리 구상한 후 한 편 한 편을, 그것도 마지막 편인 <백만 년짜리 소풍>이 맨 먼저 발표된 단편이라는 것을 보면 연대기 날짜 순서대로가 아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나 사건부터 써내려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단편 단편이 독립되었지만 시간 순서대로의 줄거리를 소개해보면, 
1999년 2월 지구의 화성 1차 탐험대는 예지몽을 꾸는 아내를 의심하는 화성인 남편 K씨에 의해 어이없이 총에 맞아 죽고, 그 후 6개월 후 2차 탐험대는 화성인 정신병원에 갖혀 죽게 되며, 2000년 4월 3차 탐험대는 화성인의 텔레파시와 최면술에 의해 자신들의 어린시절 한때로 돌아온 것으로 착각을 하다가 그만 전원이 화성인들에게 몰살당하고 만다. 드디어 2001년 6월 화성에 도착한 4차 탐험대는 무사히 착륙해서 화성의 도시들을 조사하지만 도시에는 수천구의 화성인 시체만 나뒹굴고 있을 뿐 텅 비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화성인 전멸의 원인은 이전 탐험대의 몸에서 전파된 지구의 병 수두(水痘)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고, 한 대원이 자신이 최후의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동료대원들을 살해하는 불상사를 겪긴 했지만 사건을 해결하고 지구에 무사 도착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지구인의 화성이주가 시작되고, 희박한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대규모 산림조성사업을 벌이고, 텅빈 화성인의 도시에 정착하면서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과연 화성인들은 그대로 전멸하고 만 것일까? 이렇다 할 화성인들의 대규모 등장 장면은 없지만 화성이라는 동일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일종의 평행우주 개념으로 등장하기도 하고(<한밤의 조우>), 또는 지구인의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으로 위장해서 등장하기도 하고(<화성인>), 또는 지구인 노점상에게 지구의 대전쟁의 위험을 알리고 화성의 땅을 양도하러 나타나기도 하는 것(<비수기>)을 보면 전멸하지 않고 소수가 살아남아 병마를 피해 어느 깊숙한 곳에 숨어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지구인이 화성에 정착한지 4년여가 조금 넘은 2005년 11월 지구에서는 핵전쟁이 일어나고 “돌아오라”는 지구의 신호로 화성의 지구인들은 저마다의 로켓들을 타고 지구로 떠나고, 지구인들이 정착했던 화성의 도시에는 적막에 휩싸이게 되고 지극히 소수의 인간들만 남아 있게 된다. 세월이 흘러 2026년 10월 지구의 전쟁은 인류의 멸살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마무리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이 숨겨두었던 로켓을 타고 화성으로 넘어오게 된다. 

  사실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 특유의 과학적 설정을 찾아보기 힘든, 화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이 책은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고 현재의 사회를 비판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미래를 사용한다”는 옮긴이의 말 그대로 과학적인 설정이 주가 아니라 화성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인간들의 삶이 핵심을 이룬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들 하나하나가 색다른 주제와 감성들을 느낄 수 있는데, 흑백갈등이라는 인종문제를 다룬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 풍속단속이라는 미명하에 공포, 환상, 추리 등 비현실적인 장르의 예술을 사전검열하고 통제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하는 <어셔2>, 가족애를 다룬 <화성인>과 <긴 세월>, 그리고 모두가 지구로 떠나버리고 화성에는 극소수의 인간들만 남아있게 된 시점에 그 와중에도 자신의 반려자를 찾고 있던 한 남자가 우연찮게 한 여자를 만나지만 너무나도 뚱뚱한 용모에 그만 줄행랑을 쳐버리는 상황을 유머스럽게 그린 <지켜보는 사람들>,이미 주인인 인간은 사라져버렸지만 자동화된 집 혼자서 수 십 년간 일상을 반복하지만 결국 화재로 무너져 내리는, 일종의 현대 문명의 허망함을 비꼬는 듯한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그리고 핵전쟁으로 멸망해버린 지구의 묵시론적인 암울한 풍경과 함께 화성에 정착한 최후의 인류라는 한줄기 희망을 담은 <백만 년짜리 소풍>편 등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비록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이 한 권 밖에 읽어보질 못했지만, 이처럼 한 권에 인간본성과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제와 감성을 담아낸 이 책을 읽어보니 세계 3대 SF 작가라는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의 확실한 차별점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책읽기였다. 치밀하고 개연성있는 과학적 설정을 즐기는 정통 SF 매니아들에게는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SF 초보 입문자들에게는 일종의 사회소설로서 재밌게 읽을 만한 그런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책과 더불어 문명비판서의 고전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걸작인 <화씨 451>도 기회가 된다면 꼭 챙겨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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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 한국편 - 김유신과 김춘추에서 김대중과 김영삼까지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시리즈 1
함규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종종 드라마를 보면 어릴 적 친구였던 두 남녀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어 언제 만났냐고 물으면 소꿉놀이 시절 서로 맞잡은 손에서 전기가 통하면서 결혼을 예감했다고 넉살을 떠는가 하면, 젊은 시절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남녀 주인공들이 숱한 세월을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서로 다른 사랑과 결실을 맺은 후 - 종종 몇 년 후로 자막처리한다 - 지하철 역에서 마주치게 되지만 서로를 못 알아보고 스쳐 지나쳐 가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게 되면, 물론 그때 만난다고 해서 이제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둘에게는 더 난처하고 가슴 아프겠지만 전지(全知)적 시점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가슴앓이를 보상할 만한 그런 만남이 이뤄지지 않아 못내 아쉽기만 하다. 또는 먼 훗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될 두 사람이 아직 어린 시절 서로 만나서 서로를 의식하고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는 장면을 보면 너무 작위적인 설정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 드라마에서는 꼭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서 어린 시절의 눈빛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 절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또는 안타깝고, 한편 서로에게 증오로 가득한 만남들을 허구의 드라마가 아닌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만남에서는 어떠했을까? 함규진의 <역사를 바꾼 운명적인 만남(미래인, 2010년 9월)>은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드라마틱(dramatic)하고 기가 막히는 역사 속 만남 30장면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모두 만남의 결과물이듯이 역사도 만남의 연속이며, 그러한 만남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역사라는 큰 틀을 짜내기에 그런  '만남'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줄기를 훑어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630년 전후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에서부터 2000년 김대중과 김정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 있어서 인상적인 만남 30장면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그 분류에 따른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이 참 기가 막히고 재미있다. 먼저 삼국지에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을 묘사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에서 따온 “수어지회(水魚之會, 물과 고기의 만남)” 편에서는 단어 뜻 그대로인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 즉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과 김춘추, 조선 건국을 이룬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등을 소개하고, 두 번째 악연(惡緣)이라 할 수 있는 “화빙지회(火氷之會, 불과 얼음의 만남)”편에서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죽이고 그 한사람은 나머지 한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추리소설에서나 볼 법한 만남인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전두환”의 만남이 가장 기막히고 인상적인 만남으로 느껴진다. 세 번째 언뜻 보면 좋은 만남일 것 같지만 그 만남의 열정이 지나쳐서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었던 만남인 “화목지회(火木之會, 불과 나무의 만남)” 편에서는 조선 중기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로 유명했던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최경창과 먼 변방인 함경북도 경성 관기였던 홍랑의 애절한 사랑을 소개하고 있고, 쉽게 만나기는 어렵지만 서로 만나서 서로에게 존경심과 경의를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남기고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만남인 “산해지회(山海之會, 산과 바다의 만남)” 편에서는 2000년 6월 13일에서 15일까지 분단 후 55년 만인,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통일의 희망을 갖게 했던 만남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서 큰 비와 뇌성벽력(雷聲霹靂)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국은 아무 성과 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만남인 “구름과 구름의 만난(雲雲之會, 구름과 구름의 만남)”에서는 현대 정치사에 있어 양대 거목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1987년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 만났지만 서로 은단(銀丹)만 주고 받은, 참으로 허망한 만남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은단보다 참으로 비워진 마음을, 진정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내밀었다면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그저 역사서나 뉴스를 바탕으로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적인 서술’로 그 당시 인물들 간의 대화나 내밀한 속 감정들을 재밌게 엮어내는데, 그 만남의 성격과 의미를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게끔 쓴 방법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드라마틱한 전개가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주며, 그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 또한 적절히 다루고 있어 그들의 만남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 또한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 소개하는 만남들은 역사책이나 소설 등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저 역사 속 에피소드로만 알고 있던 만남들을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의미를 부여하고 그 만남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파악해 볼 수 있어 참 재밌고 유익한 책읽기였다. 책장을 덮고 나니 몇몇 만남에서는 역사책에서처럼 이뤄지지 않고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개소문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김춘추를 죽이고 삼국통일을 이루어냈다면, 우리 역사에 ‘당쟁’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인 심의겸과 김효원의 윤형원 집에서의 만남이 서로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산과 바다의 만남’이었다면, 작가도 아쉬워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만남에서 단일화를 이뤄냈다면 과연 우리 역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정말로 그렇게 했다면 역사가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 만남의 결과 그자체가 역사라는, 역사의 큰 물줄기는 나의 상상대로 바뀌지 않고 조금 더디고 늦어질지언정 지금 모습 그대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부제에 “한국편”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니 2편은 "세계편"으로 이어질 것 같다. 제목만으로도 세계사에서 유명한 몇몇 만남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한국 편 못지않게 재밌고 흥미진진한 만남들이 소개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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