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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컬트 X-파일
멀더 이한우 지음 / 나무발전소 / 2009년 7월
평점 :
개인적으로 신체가 절단되고 피가 철철 넘쳐 흐르는, 칼과 도끼, 망치가 난무하는 잔혹 공포영화(정확히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라고 한단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신화·전설 속의 초자연적(Super-natural)인 존재들, 즉 귀신, 흡혈귀, 악마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들은 그래도 제법 좋아하는 장르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포 영화를 꼽아본다면 중학교 시절 책으로 먼저 읽었다가 나중에 영화의 전시리즈를 챙겨 보았던 "오멘(Omen, 1976)"인데 극중 사탄의 아들 “다미엔”으로 나온 아역 배우가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짓는 끔직한 미소는 지금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또한 지금이야 흡혈귀, 좀비, 미이라를 소재로 한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수도 없이 많지만 어린 시절에는 소년 만화 잡지 특집 기사로서야 접해볼 수 있는 읽을 거리여서 잡지를 사게 되면 만화보다도 제일 먼저 찾아 읽게 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어릴 적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할머니 등에 숨어, 또는 이불을 뒤집어 쓰면서도 꼭 챙겨보던 드라마가 바로 “전설의 고향” 이었는데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눈만 빼꼼히 내밀며 보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라치면 금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마는, 그래도 이야기가 궁금해서 소리라도 듣기 위해 두 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거부하고 싶어도 결국에는 보게 만들던 그런 묘한 매력에 어린 나이인데도 푹 빠졌던 것 같다. 이렇게 초자연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장르를 “오컬트(Occult: "occultus"(숨겨진 것, 비밀) 등에서 유래한 단어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그에 대한 지식을 뜻하는 말이다 - 위키백과사전 인용) 영화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학문으로까지 발전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어린이 잡지나 몇몇 미스테리를 다룬 블로그나 카페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아직까지는 소수 매니아들을 위한 그런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공포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오컬트적 상식을 엮어낸 책을 만났다. 여러 매체에서 영화담당 기자로서 공포와 영화를 접목한 기사들을 기고해온, 내가 참 좋아했던 드라마인 『X-파일』의 주인공 ‘멀더(Mulder)’라는 필명의 오컬트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한 이한우의 <영화속 오컬트 X-FILE(나무발전소, 2009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지금까지의 공포영화 분석은 극 중 캐릭터나 스토리 중심으로 설명되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어떻게 해서 그런 괴현상이나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현실을 극복해보고자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외의 희귀 자료 및 서적,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직접 만나면서 인터뷰해온 결과들을 모아서 국내 최초로 공포 영화에 대한 ‘오컬트적 분석집’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책에서는 총 10장으로 나누어 우리가 공포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각종 초자연적인 존재들, 즉 귀신, 흡혈귀, 좀비, 구미호, 강시, 늑대인간 등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줄거리와 함께 전문기자로서의 평가를 곁들어 소개하고 있으며, 각 장 말미에는 각종 신화나 전설 속에서의 모습들과 믿기 어려운 실제 사례들 등을 제공하고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오컬트 용어 해설을 싣고 있다.. 사실 소개하고 있는 “오컬트적 상식”들은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오기노 마코토의 만화 <공작왕>을 즐겨보았던 독자들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평범한 수준의 상식들 - 각 장 말미에 실린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퇴마록 해설집>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기타 다른 책도 오컬트를 학문적으로 다룬 전문 연구 서적이라기보다는 일반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 이지만 영화 소개 글들만큼은 공포 영화 가이드북으로 활용해도 좋을 만큼 풍성하고 다양하다. 특히 관심은 있지만 무서울까봐 꺼려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제목 정도만 언뜻 들었던 영화들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와 배경, 그리고 작가의 평을 읽으면서 챙겨 봐야할 나만의 “위시 리스트(Wish List)"을 만들어 볼 정도로 유익하고 재미있는 읽을 거리였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재밌는 상식들도 많은데 몇몇을 소개해보자면,
최초의 흡혈귀 영화인 ”노스페라투(Nosferatu, 1922)"가 브람 스토커의 흡혈귀 소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루마니어로 불사신, 흡혈귀를 뜻하는 노스페라투를 제목으로 했던 이유가 바로 브람 스토커의 미망인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며, 또한 태양 빛만 쐬면 먼지가 되어버리는 설정도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으면 영화에서 저작권 문제를 피해보려고 첫 설정하면서 아예 흡혈귀 약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구미호(九尾狐)” 전설 - 올 여름에도 두 편의 드라마가 상영되었다 - 도 사실 우리 민족이라는 동이족(東夷族)의 수호신(守護神)이자 선신(善神)이었던 구미호가 악신(惡神) 또는 요물(妖物)로 여겨진 이유가 중국이 동이족을 견제하기 위해 신화와 전설을 조작한 것 - 이 대목은 최근 들어 일고 있는 민족주의 사학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 - 이라고 한다. 한편 “월하의 공동묘지” 정도로만 기억나는, 공포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 영화계에서 강령술, 엑소시즘 등 서양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즉 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의 한국판이라 부를 만한 걸작 영화가 있었다는 데, 바로 인기 영화 감독인 이장호 감독이 만든 “너 또한 별이 되어(1975, 신성일·이영옥 주연)” - 그런데 호러영화 제목으로는 영 안어울린다^^ - 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잊혀졌으나 1990년대 이후 한국 호러 영화들이 재조명되며 소수의 마니아층이 형성되었으며 1970년대 한국영화의 암흑기에 만들어진 독특한 호러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소식도 알게 되었는데, 어릴적 그렇게 좋아했던 영환도사(靈幻道士) 시리즈라는 강시영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홍콩배우 임정영(林正英/Lam Gun Bo)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7년에 별세(別世)했다는 사실이다. 어쩐지 요즈음 제대로 된 강시 영화를 볼 수 없더니만......
꼭 소개되었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누락된 드라마와 영화도 많은데, 이 책이 출간된 연도(2009) 이후에 전 세계의 소녀들을 열광시킨 흡혈귀 영화 “트와일라잇(Twillight)" 시리즈와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인기 미드 ”X-FILE"과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이 빠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앞에서도 언급한, 기독교적 묵시론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의 고전 걸작 "오멘(Omen, 1976)" 시리즈와 ”악마의 씨(Rosemary's Baby, 1968)을 다루지 않은 점이다 - 물론 X-FILE이나 오멘을 다루게 되면 그 배경이나 관련 지식들만으로 각각 책 한 권씩은 족히 되는, 한정된 지면 하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임에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
책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부담 없이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전문적인 오컬트 지식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래도 엄연한 인기 장르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공포영화의 계보들과 함께 오컬트 상식을 곁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와 가치가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자 이제부터는 책에서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영화들을 한번 챙겨봐야 할 것 같다. 단 무서운 장면에서는 언제든지 꺼버릴 수 있는 리모컨과 어릴적처럼 푹 눌러쓰고 눈만 빼꼼히 내다 볼 수 있는 이불은 필수로 준비해서 말이다. 그리고 가급적 밤보다는 낮 시간에, 그것도 혼자 말고 꼭 둘이상 모여서 시청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