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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 한국편 - 김유신과 김춘추에서 김대중과 김영삼까지 ㅣ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시리즈 1
함규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종종 드라마를 보면 어릴 적 친구였던 두 남녀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어 언제 만났냐고 물으면 소꿉놀이 시절 서로 맞잡은 손에서 전기가 통하면서 결혼을 예감했다고 넉살을 떠는가 하면, 젊은 시절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남녀 주인공들이 숱한 세월을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체념하고 서로 다른 사랑과 결실을 맺은 후 - 종종 몇 년 후로 자막처리한다 - 지하철 역에서 마주치게 되지만 서로를 못 알아보고 스쳐 지나쳐 가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게 되면, 물론 그때 만난다고 해서 이제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둘에게는 더 난처하고 가슴 아프겠지만 전지(全知)적 시점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가슴앓이를 보상할 만한 그런 만남이 이뤄지지 않아 못내 아쉽기만 하다. 또는 먼 훗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될 두 사람이 아직 어린 시절 서로 만나서 서로를 의식하고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는 장면을 보면 너무 작위적인 설정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 드라마에서는 꼭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서 어린 시절의 눈빛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 절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또는 안타깝고, 한편 서로에게 증오로 가득한 만남들을 허구의 드라마가 아닌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만남에서는 어떠했을까? 함규진의 <역사를 바꾼 운명적인 만남(미래인, 2010년 9월)>은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드라마틱(dramatic)하고 기가 막히는 역사 속 만남 30장면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모두 만남의 결과물이듯이 역사도 만남의 연속이며, 그러한 만남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역사라는 큰 틀을 짜내기에 그런 '만남'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줄기를 훑어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630년 전후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에서부터 2000년 김대중과 김정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 있어서 인상적인 만남 30장면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그 분류에 따른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이 참 기가 막히고 재미있다. 먼저 삼국지에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을 묘사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에서 따온 “수어지회(水魚之會, 물과 고기의 만남)” 편에서는 단어 뜻 그대로인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 즉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과 김춘추, 조선 건국을 이룬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등을 소개하고, 두 번째 악연(惡緣)이라 할 수 있는 “화빙지회(火氷之會, 불과 얼음의 만남)”편에서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죽이고 그 한사람은 나머지 한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추리소설에서나 볼 법한 만남인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전두환”의 만남이 가장 기막히고 인상적인 만남으로 느껴진다. 세 번째 언뜻 보면 좋은 만남일 것 같지만 그 만남의 열정이 지나쳐서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었던 만남인 “화목지회(火木之會, 불과 나무의 만남)” 편에서는 조선 중기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로 유명했던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최경창과 먼 변방인 함경북도 경성 관기였던 홍랑의 애절한 사랑을 소개하고 있고, 쉽게 만나기는 어렵지만 서로 만나서 서로에게 존경심과 경의를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남기고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만남인 “산해지회(山海之會, 산과 바다의 만남)” 편에서는 2000년 6월 13일에서 15일까지 분단 후 55년 만인,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통일의 희망을 갖게 했던 만남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서 큰 비와 뇌성벽력(雷聲霹靂)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국은 아무 성과 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만남인 “구름과 구름의 만난(雲雲之會, 구름과 구름의 만남)”에서는 현대 정치사에 있어 양대 거목인 김대중과 김영삼이 1987년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 만났지만 서로 은단(銀丹)만 주고 받은, 참으로 허망한 만남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은단보다 참으로 비워진 마음을, 진정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내밀었다면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그저 역사서나 뉴스를 바탕으로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적인 서술’로 그 당시 인물들 간의 대화나 내밀한 속 감정들을 재밌게 엮어내는데, 그 만남의 성격과 의미를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게끔 쓴 방법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드라마틱한 전개가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해주며, 그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 또한 적절히 다루고 있어 그들의 만남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 또한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책에서 소개하는 만남들은 역사책이나 소설 등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저 역사 속 에피소드로만 알고 있던 만남들을 이렇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의미를 부여하고 그 만남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파악해 볼 수 있어 참 재밌고 유익한 책읽기였다. 책장을 덮고 나니 몇몇 만남에서는 역사책에서처럼 이뤄지지 않고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개소문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김춘추를 죽이고 삼국통일을 이루어냈다면, 우리 역사에 ‘당쟁’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인 심의겸과 김효원의 윤형원 집에서의 만남이 서로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산과 바다의 만남’이었다면, 작가도 아쉬워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만남에서 단일화를 이뤄냈다면 과연 우리 역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정말로 그렇게 했다면 역사가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 만남의 결과 그자체가 역사라는, 역사의 큰 물줄기는 나의 상상대로 바뀌지 않고 조금 더디고 늦어질지언정 지금 모습 그대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부제에 “한국편”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니 2편은 "세계편"으로 이어질 것 같다. 제목만으로도 세계사에서 유명한 몇몇 만남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한국 편 못지않게 재밌고 흥미진진한 만남들이 소개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