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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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얀색 바탕에 물방울 무늬, 파란색 글씨체의 제목, 그리고 잠수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인상적인 이시모치 아사미의 <물의 미궁(씨네21/2010년 8월)>은 수족관이라는 이색적 공간 - 수족관이라고는 그저 TV나 영화 화면으로만 접해봤을 뿐 아직까지 실제로 가본 적이 없다- 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으로 아쉽게도 한 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줄 서늘한 이야기라는 출판사 홍보 글처럼 여름에 만나지 못하고 가을이 완연한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느낌은 추리소설 특유의 플롯과 반전은 다소 부족하지만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 전개만큼은 색다른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할 정도로 꿈과 열정이 가득한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 사육계장 가타야마 마사미치는 어느 날 수족관의 수온 이상 현상을 점검하던 중 과로로 인해 돌연사하고 만다. 그로부터 3년 후 가타야마의 후배인 전기회사 직원 후카자와는 가타야마의 기일(忌日)에 맞춰 수족관을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수족관 관장 앞으로 의문의 휴대전화가 배달되어 오고, 휴대전화 메일로 수족관을 공격하겠다는 발신자 제한 표시 메시지가 도착한다. 직원들의 조사가 진행되고 실제로 개방형 수족관에 알코올이 투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수족관은 긴급 폐쇄된다. 연이어 발생하는 수족관의 이상 사건과 때맞춰 도착하는 범인의 메세지에 직원들은 수족관들을 계속 순찰하고 점검하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자 더욱더 긴장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가타야마의 뒤를 이어 사육계장이 된 오사마 가즈오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인은 3년 전 가타야마와 같은 갑작스런 돌연사. 그런데 직원들과 함께 협박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후카자와는 오사마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가 아닌 의도적인 살인임을 알게 되고, 3년 전 가타야마의 죽음 또한 살인사건이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제 사건은 수족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범인의 단순한 협박 사건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커져버리게 되고, 카타야마가 후카자와에게 말했던 “나와 함께 지구를 만들어보지 않겠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수족관이라는 이색적인 공간, 예고 메시지와 함께 연이어 발생하는 의문스러운 사건들, 그저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던 3년 전 죽음에 얽힌 비밀 등 색다른 소재와 이야기 전개가 인상적인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은 출판사 홍보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하지 않고 평범한 수족관 직원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독특한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이번 작품 뿐만 아니라 기존 작품에서도 시도된 작가 특유의 구성이라고 하는데, 이색적인 맛은 있지만 저마다 전문 탐정 못지않게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추리해내는 모습들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메인은 후카자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연이어 계속되는 협박과 살인사건에도 지나치게 침착하게 대응하는 관장의 모습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지만, 결국 특별한 비밀은 없는, 수족관 책임자로서의 행동이었다는 점은 다소 맥이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밋밋한 사건 전개와 해결에 정통 미스터리 매니아들이라면 실망스러워 할 수 도 있겠지만, 결국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 즉 작품의 주제가 수족관에 대한 가타야마의 꿈과 열정, 그의 유지를 받들어 멋진 수족관을 만들어내는 동료들의 진한 우정이라고 요약해 본다면 추리소설은 형식으로만 빌려왔을 뿐 감동을 주기 위한 일종의 휴먼 소설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부담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고, 마지막에는 흐뭇하고 잔잔한 감동까지 느껴볼 수 있는 이 책은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 때문에 추리소설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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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종료] 7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7기 인문/사회 평가단 B조로 활동하면서 받은 책들(총 12권)>  

 

  

 

이번 7기에서도 총 12권의 책을 받았네요. 지난 6기에서는 전권 서평을 

올렸었는데 이번 기수에서는 그만 두 권(자연스러운 건축, 호모라피엔스) 

를 서평을 완료하지 못했네요. 그만큼 성실하지 못한 점 반성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1.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12권의 책중에서(아직 우리가 싫어하는 ~ 은 받지 못해서 제외^^)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박원순의 "마을이 학교다"를 꼽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국교육의 현실을 비판하기만 했지 

대안들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한국 교육이 암울하지만은 않은, 

희망이 싹뜨고 있음을 여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2.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 "마을이 학교다" 

-  "게임하는 인간 호모 루두스" 

-  "이야기 그림 이야기" 

-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3.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박원순의 "마을이 학교다" 중에서

"진짜로 희망이 없다고요? 교육에 희망이 없다고요? 아뇨! 희망이 철철 넘쳐흐른답니다. " 

4. 끝으로 

신간평가단 6,7기 활동하면서 참 좋은 책들과 많이 만났던 그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8기에는 선정이 되지 않아 다시 만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겠지만  - 물론 그때 당첨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지난번 6기 마지막 페이퍼에서도 사용했었는데 괜히 짠 했던 글 귀로 마지막 인사 남기겠습니다. 

그간 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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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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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소설은 꺼려하면서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잡은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르이다. 마치 어릴 적 무서워하면서도 할머니 등에 숨어 몰래 보는 "전설의 고향"처럼 아예 처음부터 집어 들지 않는다면 모를까 괜한 호기심에 표지를 넘기게 되면 도대체 그 끝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소설인 셈이다. 공포소설도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텐 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13일의 금요일"처럼 연쇄살인마가 날뛰고, 선혈이 낭자한 잔인하기만 한 고어(Gore)물이 아니라, 그 장면이 선연히 떠올라 밤잠을 설치게 하여 늘 읽고 나면 후회하면서도 마약처럼 다시 찾게 되는 공포소설의 대명사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우혁의 <퇴마록> 같은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구전되어 오는 신화·전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들은 그 무서움을 떠나서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그런 소설들이어서 늘 관심을 가지고 신간서적 목록을 찾아보곤 한다. 하지만 아직은 공포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그런 장르여서 앞에서도 언급한 "스티븐 킹"류 같은 외국소설 번역본들만 주로 출간되어 있고, 국내소설들은 이제는 벌써 고전이 되어버린 몇몇 책 들 외에는 읽어볼만한 책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장르문학 현실이 늘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 잘 씌여진(Well-made) 공포소설을 만났다.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공포 창작 모임인 "매드클럽"에서 가장 주목받던 신인 작가로 손 꼽히는 신진오의 <무녀굴(巫女窟/황금가지/2010년 8월)>이 바로 그 책인데 제주도 김녕사굴(金寧蛇窟)의 전설 -제주도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잠깐 다녀온 곳이라 그런지 뱀과 관련한 유명한 설화라는 김녕사굴 설화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 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모골이 송연해지는 무서움에 오랜만에 다 읽고 나서 밤잠을 설치게 만든 그런 책이었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 중인 MTB 동호회 "매드맥스"회원 9명이 김녕사굴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들이 실종된 장소인 김녕사굴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도 그 종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자 사건은 결국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전도유망한 의사였지만 빙의(憑依)로 자살한 여자 친구 때문에 퇴마사의 길로 들어선 법사 신진명은 절친한 선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부음(訃音)을 듣고 조문을 가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묘한 느낌을 받은 진명은 선배가 안치되어 있는 영안실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죽은 선배의 영혼을 만나 사고당시의 기억을 조사하던 중 선배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백발의 무녀(巫女)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배의 부인인 금주도 그 귀신에 의해 쫓기는 흉몽을 꾸게 되고, 금주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직장 선배도 그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실종되었던 매드맥스 동호회 회원 중 한명이 살아오게 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환자를 조사하던 정신과 의사이자 진명의 은사는 이 환자가 빙의상태에 있음을 알고 진명을 부르게 되고, 진명을 심령대상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그를 괴롭히던 케이블 TV PD 박혜인은 병실에 방송장치를 설치하여 유명 목사와 일종의 퇴마대결을 벌이게 하고, 진명은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대상으로 퇴마의식을 벌이게 된다. 퇴마의식 중에 강력한 원혼이 깨어나서 수사담당자인 형사와 검사를 죽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진명은 이를 막으려다가 그만 크게 부상을 당하고 환자의 몸에 빙의한 원혼이 선배와 금주를 괴롭히는 그 원혼임을 알게 된다. 진명은 본격적으로 금주를 보호하러 나서면서 그 원혼이 금주의 가족사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진명과 금주 일행은 저주를 깨뜨리기 위해 매드맥스 회원들이 실종된 곳이자 모든 사건의 발생지인 김녕사굴로 항하지만 원혼에 의해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오래전 김녕사굴 전설의 현대적 재현임을 알게 되면서 원혼의 진정한 의도를 뒤늦게 파악한 진명은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퇴마의식을 치루게 된다.  

 

 늦은 밤 조금만 읽고 날 밝으면 다시 읽자 하고 시작한 책 읽기가 장수가 거듭할수록 도대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재미로 결국은 새벽녘까지 다 읽게 만들더니 결국은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꿈자리가 사나워지는 경험을 했다. 물론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은데, 금주의 남편이나 직장선배가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전체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즉 그 둘이 단지 금주의 남편이고 호감을 품은 선배이기에 죽음을 당했다는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마사인 진명의 퇴마술법과 도구들인 진언(眞言)과 부적(符籍), 금강저(金剛杵), 그리고 퇴마 의식 등은 비록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순수 창작의 결과라 하더라도 <공작왕>과 <퇴마록>의 정형화된 퇴마사의 모습이 저절로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만큼은 여느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하고 싶은데, 금주가 아파트 층계에서 백발 무녀 귀신에게 쫓기는 장면, 금주의 직장선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 병실에서 목사와 퇴마사인 진명이 퇴마의식을 치루는 장면, 그리고 금주의 딸이 할머니에게 빙의된 귀신에게 쫓겨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절로 머릿 속에서 그 장면들이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여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한밤 중 아파트 집 문 밖을 나서기가 꺼려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엘리베이터가 절로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무서웠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결국 김녕사굴의 오래전 전설이 바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추리소설 못지 않은 마지막 반전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퇴마사 신진명과 영력(靈力)을 지닌 금주, 그리고 막무 가내식이긴 했지만 나름 묘한 매력이 있는 박혜인으로 구성된 콤비가 부디 이번 한 작품으로 끝나지 말고 다음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은 바램이 이뤄지길 소망해본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공포 소설 본연의 재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책은 최근 들어 본 공포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외국의 유명 신화나 전설이 아닌 우리 이야기를 소재로 해도 이처럼 멋진 공포와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그런 작품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으로, 아직도 척박하기 이를 때 없는 우리 장르소설 현실에서 이처럼 잘 씌여진 장르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니 횡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책으로 - 매드클럽의 또다른 작가인 이종호와 김종일의 작품들도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계속 이어질 매드클럽 "표" 작품들은 꼭 챙겨봐야 할 것 같다 -,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공포 소설이나 영화는 절대 밤에 보지 말 것이라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그런 책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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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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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릴 적에는 소년잡지에 단골로 등장했던, 세계적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에 예언한 대로 진짜로 종말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본작가 “고도우 벤”의 <지구 최후의 날(고려원/1981년)>은 그 당시 아이들에게는 지구 종말의 비밀을 알려주는 일종의 복음서(福音書)처럼 돌려 읽었었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과 친구들처럼 “지구 방위대”를 조직해서 종말을 막아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휴거(携擧) 열풍을 몰고 온 어네스트 W 앵글리의 <휴거; 지상최대의 사건(청목/1981)>을 읽고서는 드디어 지구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즉 구원의 길을 발견한 우리 일당들은 모두가 자발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불순한 동기로 다닌 교회를 하나 둘 씩 떠나게 되었고, 1992년 모 종교 단체의 휴거 이벤트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도 아무 탈 없이 - 심지어 좀 더 현실적인 대환란이었던 “Y2K"도 별 일 없이 넘어가버렸다 - 지나가면서 종말론을 더 이상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한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나에게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밌는 꺼리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영국 최고의 판타지 작가라는 테리 프래쳇과 그래픽 노블 <샌드맨>의 저자 닐 게이먼이 함께 쓴 <멋진 징조들(원제 Good Omens/시공사/2003년 9월)>은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고, 인터넷서점에서 할인 행사를 하길래 바로 구입했었던 그런 책이었다.  최근 독서에 여유가 생겨 오랫동안 책장에서 잠들었던 이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미리부터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기대처럼 재미도 있었지만 그만큼 실망감도 큰 그런 책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에덴동산의 수문장 천사이자 불쌍한 아담에게 화염검을 줘 버린 "아지라파엘"과 이브를 꾀었던 뱀이자 악마 "크롤리"는 담소를 나눈다. 천사와 악마라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이 조합은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묘한 관계로 수 천 년이 지난 현재에까지 그 우정을 나누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세상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적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영화 "오멘"에서처럼 미국 외교관 아들과 뒤바뀌게 된다. 그러나 음악도 못 듣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없는, 도대체 재미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이 싫은, 이미 인간세상의 재미에 푹 빠져버린 요상한 크롤리와 아지라파엘은 따분하기만 할 것 같은 종말을 막기 위해 적그리스도를 각자 방식대로 교육시키기로 합의하고는 계속 그 아이 주변에 머물면서 그를 교육시키고 관찰한다. 그로부터 11년 후 예언의 그때가 돌아오는데, 웬걸 그들이 교육시킨 아이는 적그리스도로서 각성을 하지 못하고야 만다. 당황한 둘은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는데, 출산 당시 멍청한 사탄의 종 수녀의 실수로 미국 외교관의 집이 아닌 영국 시골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종말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두 천사와 악마와 어설픈 마녀사냥꾼, 계시록의 네기사, 대천사장 메타트론과 바알세불, 그리고 적그리스도 소년 "아담"과 그의 친구들인 "그놈들", 그리고 아담의 상상에 의해 등장하는 아틀란티스 대륙과 UFO 등등 온갖 괴이하고 엉뚱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마침내 이미 태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인류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의 해가 밝아온다. 과연 엉뚱한 곳에서 교육받은 적그리스도 “아담”의 최종 선택은 무엇인지,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견한 희대의 예언서 “아그네스 너티의 근사하고 정확한 예언집”의 예언은 어김없이 맞을는지, 인류의 종말은 과연 오긴 오는걸까?  

  '천국 가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묵시록' 이라는 카피가 제격인 이 책은 묵시록으로 대변되는 기독교 종말론과 한때 1999년이었다고 알려졌다가 그 해가 지나고 나니 다시 2012년이라고 정정해서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그리고 역시 기독교 종말을 다룬 흥행영화 오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말론을 이리저리 뒤섞어 만든 일종의 풍자소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에리히 폰 데니켄의 "신들의 전차"라는 책에서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즉 아직도 에덴동산에 머물고 있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까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는 딱 그런 이유로 인류종말을 막기 위해 나선다. 그러면서부터 시작되는 좌충우돌의 상황들과 마치 3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코메디같은 장면들이 읽는 내내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마지막까지 과연 인류 종말이 일어나긴 하나 하는 궁금증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해 열광하고 찬사를 보내는 이유가 종말론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영국식 유머로 잘 버무려냈기 때문일텐데,  SF소설계의 괴작(怪作)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 유머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미리 밝혔던 소감처럼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도 있었지만 실망도 컸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아예 대놓고 풍자하고 패러디하고 조롱하는 책이니 진지함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니 책의 경중은 차치하고,  바로 이 책의 코드인 "유머"가 실컫 웃어주자 작정을 하고 읽었건만 당최 가슴에 와닿지가 않는다. 가끔 영국의 TV 코메디 프로그램을 볼 때도 그렇고 - 단 로완 앳킨슨의 "미스터 빈"만큼은 예외다. 볼때마다 배꼽을 잡고 웃는다 -, 위에서 언급한 <은하수를 ~>도 그렇고 영국식 특유의 유머,  마치 한 때 인기 끌었던 "허무개그"를 능가하는 그 유머에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하는지 그 웃음코드를 잡아내기가 영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정서와는 맞지 않는 웃음코드에 읽는 내내 허무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개그 -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이다. 이런 유머에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그 여느 책보다도 즐겁고 재밌을 책이다 - 에 그냥 헛웃음만 짓게 되다 보니 그만큼 실망감이 같이 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불경스럽기까지 한 이런 책에 많은 독자들이, 특히 기독교적 문화관이 주류를 이루는 서양에서도 찬사와 경탄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나의 이해부족을 탓하는 게 맞을 듯 싶기도 하다.^^ 책 말미 작가의 말처럼 그저 '장난삼아' 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 책은 심각하지 않게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할 수 있겠다.  

  오늘도 일촉즉발로 다가오는 종말의 상황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 물론 단지 천국이 심심하고 지루해서인 이유가 더 크지만 - 어디에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아지라파엘과 크롤리를 상상을 해본다면 두려운 삶이 느긋해지고 재밌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들의 노력이 앞으로도 결코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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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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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하라 이치의 <실종자(원제 失踪者 / 폴라북스 / 2010년 9월)>을 처음 받아들고서 표지의 "서술트릭의 거장"이라는 글귀를 보고는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본격추리, 밀실트릭 등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서술트릭"이라니 전혀 생소한 단어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그래서 읽기 전에 인터넷부터 검색을 해보니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의 암묵적인 전제나 편견을 이용한 트릭'으로 주로 등장인물의 말투, 이름이로 성별이나 연령을 오인시키거나, 작품 내에 또 다른 작품을 교차 배치하거나 챕터 전체(때로는 단락 전체)의 시간 순서를 바꾸거나 해서 오인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간단한 예로 부부인 철수와 영희 중에 남편이 죽었다고 하면 통념상 남자 이름인 철수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설에서는 영희를 남편으로 설정하여 오인시키는 그런 형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런 류의 소설을 읽어본 듯 한데, 아직도 추리소설의 규칙에 맞느냐 아니면 위반되느냐로 논란이 되고 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어떻게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를 속인 셈이니 넓게 보면 서술 트릭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서술 트릭에 대해 사전 정보를 알아보고 나니 과연 서술 트릭의 일인자라고 불리운다는 오리하라 이치가 구사하는 트릭은 어떨는지 무척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두뇌 게임에서 독자가 백전백패(百戰百敗)하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아예 작정하고 속이는 작가의 트릭이라면 처음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한 글자 한 글자 주의 깊게 읽는다면 못 알아챌 것도 없을 거라는 괜한 오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결의에 찬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결론은 역시나 나의 처참한, 그래도 기분 좋은 패배로 끝이 나버렸다.  


  도쿄 근교 사이타마 현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7만 남짓한 작은 도시 구키 시에서 마을 주민들을 벌벌 떨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구키 시 서부에 있는 문화회관 뒤편 창고에서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과 "유다의 아들"이라고 자를 대고 쓴 듯한 메모가 발견된다. 시신의 신원을 조사해본 결과 한달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인 28세의 회사원으로 밝혀지고, 범인이 남긴 유류품 찾기 위해 창고와 그 주변을 조사하던 중에 토막 난 백골 한 구와 함께 잇새에 정확히 물려있는 "유다"라고 적힌 쪽지를 발견하게 되고, 수사 결과 15년 전 행방 불명되었던 중학생 소녀로 판명된다. 계속되는 조사 끝에 역시 15년 전에 실종되었던 두 여성의 백골이 잇달아 추가로 발견하게 되면서 15년 전 미궁에 빠졌던, '월요일마다 여자가 사라진다'라는 사건의 재현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논픽션 작가 '다카미네 류이치로'와 그의 조수 '간자키 유미코' 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구키 시를 방문하여 먼저 15년 전 사건의 용의자들을 차례로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다. 조사를 하던 중 당사 15세였던 소년 A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알게 되지만 그의 정체와 발자취는 두꺼운 베일 속에 싸여 좀처럼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러던 중 새로운 실종 사건이 터지고 15년 전에도 용의자로 거론되었던 '다마무라'가 다시 한번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그는 범행을 전면 부인한다. 한편 실종된 한 여성의 친구가 실종된 친구의 핸드폰에 계속적으로 전화와 문자를 보내던 중 공원에서 만나자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게 되어 공원에 나갔다가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과거처럼 15세 소년으로 밝혀지면서 역시 '소년 A' 로 불리우게 된다. 소년 A는 일련의 실종 및 살인사건이 자기가 저질렀다고 순순히 자백을 하고, 다카미네 류이치로가 이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논픽션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런데 소년 A는 면회 온 아버지에게 자신이 경찰 심문에서 했던 진술이 반항심으로 인한 거짓 자백이며 자신은 납치 사건 이외에는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사라져 버린 다다무라가 시체로 발견되고, 또한 실종되어 죽은 줄 알았던 한 여성이 살아서 돌아오면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간자키 유미코는 다른 사건으로 바쁜 다카미네 류이치로를 대신해 계속 조사를 하게 된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줄거리 소개는 마친다^^ 

   책에서 작가는 사건에 대하여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다카미네와 간자키의 시점에서 사건에 대한 조사 과정을 주축으로 하되 여기에 살인범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시리즈를 책 중간 중간에 제시하고 살인범인 유다(또는 A)의 답장 또한 보여주는 가 하면, 전지적인 작가 시점에서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점(視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여러 시점의 이야기가  작가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한 주요 장치, 즉 서술 트릭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맨 첫 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살인범 아버지의 편지에서 등장하는 한 문장은 독자가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바로 이 책 서술 트릭의 백미이자 다 읽고 나서 멍한 느낌이 들 게 만드는 결정적인 반전을 만들어낸다 - 역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문장은 생략한다. 끝까지 다 읽게 되면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 -. 이러한 장치들은 독자가 찾아내기 위하여 아무리 눈에 불을 켠다 한들 작가가 작정을 한다면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서술 트릭의 묘미이자 장점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과연 이러한 트릭이 공정한가 아니면 반칙인가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 읽고 나서 속아서 기분 나쁘다는 마음보다는 기가 막힌 트릭과 구성에 절로 경탄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히 공감되는 그런 서술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리하라 월드"라 불리울 정도로 독특하고 차별화된 소설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오리하라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데 다 읽고 나니 그의 서술 트릭이 만개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자(者)" 시리즈의 대표작이자 다른 책 읽는다는 핑계로 책장에 고이 모셔놓은 <원죄자(폴라북스, 2010년 8월)>에 바로 손이 가게 되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꽤나 인상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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