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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평점 :
공포소설은 꺼려하면서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잡은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르이다. 마치 어릴 적 무서워하면서도 할머니 등에 숨어 몰래 보는 "전설의 고향"처럼 아예 처음부터 집어 들지 않는다면 모를까 괜한 호기심에 표지를 넘기게 되면 도대체 그 끝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소설인 셈이다. 공포소설도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텐 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13일의 금요일"처럼 연쇄살인마가 날뛰고, 선혈이 낭자한 잔인하기만 한 고어(Gore)물이 아니라, 그 장면이 선연히 떠올라 밤잠을 설치게 하여 늘 읽고 나면 후회하면서도 마약처럼 다시 찾게 되는 공포소설의 대명사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우혁의 <퇴마록> 같은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구전되어 오는 신화·전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들은 그 무서움을 떠나서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그런 소설들이어서 늘 관심을 가지고 신간서적 목록을 찾아보곤 한다. 하지만 아직은 공포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그런 장르여서 앞에서도 언급한 "스티븐 킹"류 같은 외국소설 번역본들만 주로 출간되어 있고, 국내소설들은 이제는 벌써 고전이 되어버린 몇몇 책 들 외에는 읽어볼만한 책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장르문학 현실이 늘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찮게 잘 씌여진(Well-made) 공포소설을 만났다.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공포 창작 모임인 "매드클럽"에서 가장 주목받던 신인 작가로 손 꼽히는 신진오의 <무녀굴(巫女窟/황금가지/2010년 8월)>이 바로 그 책인데 제주도 김녕사굴(金寧蛇窟)의 전설 -제주도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잠깐 다녀온 곳이라 그런지 뱀과 관련한 유명한 설화라는 김녕사굴 설화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 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모골이 송연해지는 무서움에 오랜만에 다 읽고 나서 밤잠을 설치게 만든 그런 책이었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 중인 MTB 동호회 "매드맥스"회원 9명이 김녕사굴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들이 실종된 장소인 김녕사굴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도 그 종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자 사건은 결국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전도유망한 의사였지만 빙의(憑依)로 자살한 여자 친구 때문에 퇴마사의 길로 들어선 법사 신진명은 절친한 선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부음(訃音)을 듣고 조문을 가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묘한 느낌을 받은 진명은 선배가 안치되어 있는 영안실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죽은 선배의 영혼을 만나 사고당시의 기억을 조사하던 중 선배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백발의 무녀(巫女)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배의 부인인 금주도 그 귀신에 의해 쫓기는 흉몽을 꾸게 되고, 금주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직장 선배도 그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실종되었던 매드맥스 동호회 회원 중 한명이 살아오게 되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환자를 조사하던 정신과 의사이자 진명의 은사는 이 환자가 빙의상태에 있음을 알고 진명을 부르게 되고, 진명을 심령대상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그를 괴롭히던 케이블 TV PD 박혜인은 병실에 방송장치를 설치하여 유명 목사와 일종의 퇴마대결을 벌이게 하고, 진명은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대상으로 퇴마의식을 벌이게 된다. 퇴마의식 중에 강력한 원혼이 깨어나서 수사담당자인 형사와 검사를 죽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진명은 이를 막으려다가 그만 크게 부상을 당하고 환자의 몸에 빙의한 원혼이 선배와 금주를 괴롭히는 그 원혼임을 알게 된다. 진명은 본격적으로 금주를 보호하러 나서면서 그 원혼이 금주의 가족사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진명과 금주 일행은 저주를 깨뜨리기 위해 매드맥스 회원들이 실종된 곳이자 모든 사건의 발생지인 김녕사굴로 항하지만 원혼에 의해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오래전 김녕사굴 전설의 현대적 재현임을 알게 되면서 원혼의 진정한 의도를 뒤늦게 파악한 진명은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퇴마의식을 치루게 된다.
늦은 밤 조금만 읽고 날 밝으면 다시 읽자 하고 시작한 책 읽기가 장수가 거듭할수록 도대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재미로 결국은 새벽녘까지 다 읽게 만들더니 결국은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꿈자리가 사나워지는 경험을 했다. 물론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은데, 금주의 남편이나 직장선배가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전체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즉 그 둘이 단지 금주의 남편이고 호감을 품은 선배이기에 죽음을 당했다는 좀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퇴마사인 진명의 퇴마술법과 도구들인 진언(眞言)과 부적(符籍), 금강저(金剛杵), 그리고 퇴마 의식 등은 비록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순수 창작의 결과라 하더라도 <공작왕>과 <퇴마록>의 정형화된 퇴마사의 모습이 저절로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만큼은 여느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하고 싶은데, 금주가 아파트 층계에서 백발 무녀 귀신에게 쫓기는 장면, 금주의 직장선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 병실에서 목사와 퇴마사인 진명이 퇴마의식을 치루는 장면, 그리고 금주의 딸이 할머니에게 빙의된 귀신에게 쫓겨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절로 머릿 속에서 그 장면들이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여 이 책을 읽고 나서는 한밤 중 아파트 집 문 밖을 나서기가 꺼려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엘리베이터가 절로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무서웠던 장면들이었다. 또한 결국 김녕사굴의 오래전 전설이 바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추리소설 못지 않은 마지막 반전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퇴마사 신진명과 영력(靈力)을 지닌 금주, 그리고 막무 가내식이긴 했지만 나름 묘한 매력이 있는 박혜인으로 구성된 콤비가 부디 이번 한 작품으로 끝나지 말고 다음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은 바램이 이뤄지길 소망해본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공포 소설 본연의 재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책은 최근 들어 본 공포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외국의 유명 신화나 전설이 아닌 우리 이야기를 소재로 해도 이처럼 멋진 공포와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그런 작품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으로, 아직도 척박하기 이를 때 없는 우리 장르소설 현실에서 이처럼 잘 씌여진 장르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니 횡재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책으로 - 매드클럽의 또다른 작가인 이종호와 김종일의 작품들도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계속 이어질 매드클럽 "표" 작품들은 꼭 챙겨봐야 할 것 같다 -,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공포 소설이나 영화는 절대 밤에 보지 말 것이라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그런 책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