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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지식 클럽 - 지식 비평가 이재현의 인문학 사용법
이재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지식비평가 이재현의 인문학 사용법"이란 부제가 붙은 <두더지 지식클럽(이재현 저/씨네21(주)/2010년 9월)>을 받아들고서 "지식비평가"라는 단어에 생소함을 느껴 책 표지 지은이 소개 글부터 펼쳐보았다. 문화, 만화, 문학평론가로 진보 시사 잡지의 편집위원과 편집국장을 지냈고, 이미 몇 권의 문화평론집을 펴낸 중견 작가로 좌파가 외면해온 보편적 가치들, 곧 "사랑, 성, 쾌락, 이별, 죽음처럼 우파적인 것들과 결합된 문제들과 맞서 싸우고 포섭하는 일"이 "지식비평가"로서 자신이 할 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말이라 할 수 있는 "프롤로그"에서는 자신이 좌파이념을 믿어온 "좌빠”- 세계의 칼에 베여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좌파보다 좋은 점이라고 한다- 이고 신자유주의자와 싸우는 걸 중요한 임무로 삼는"자빠"이기도 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세계가 자신을 변질시키기 전에 자신이 먼저 세상의 변화를 읽고 쓰는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 있으며 나이 먹은 좌빠로서 새로 공부하는 것은 어려움도 크지만 뇌에서 마약이 마구 분비되는 것 같은 즐거움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육칠십대와 일이십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사회적, 언어적 계곡 사이에서 두 세대를 이어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지식인임을 자처하고 있다. 여전히 작가가 말하는 지식비평가의 정체가 알듯 모를 듯 손에 잘 잡히지 않음을 느끼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은 출판사 소개글이나 책 말미 고종석 작가의 소개글처럼 일종의 인터뷰 글이라 할 수 있다. "연결하기", "확장하기", "비교하기","돌아보기", "상상하기"라는 다섯 개 대 주제로 구분하여 총 39가지 소주제의 인터뷰와 단상(斷想) - 몇 몇 글은 인터뷰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담은 일종의 에세이 글들이 실려 있다 - 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먼저 인터뷰 대상 인물(사물)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하고 작가와의 가상인터뷰를 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 대상들이 참 독특하고 다양한데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들 - 래리킹, 영화감독 이안 -도 있고, 고인이 된 유명 인사들과 역사적 위인들 - 클라우 제비츠, 박현채, 토마스 제퍼슨, 애덤 스미스 - , 신화, 전설, 문학, 예술, 만화 속의 비현실적인 인물들 - 마리안, 시마 과장, 선재동자, 수보리, 리어왕 등 - , 심지어 의인화된 사물이나 관념 - 축구공, 여론조사 등 - 등 다양한 방면의 인터뷰 대상들이 등장하여 작가와 현 시대의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창립자 “밴 플리트”에게 1952년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인정했던 경위와 2006년 모 재벌기업 총수가 밴 플리트 상을 받으면서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를 피하게 된 일을 물어보지만 노 코멘트를 일관하는 그에게 “진실 앞에 입을 다무는 당신한테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미국의 전설적인 갱이자 라스베가스를 설립하였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조폭하고 싶다는 “벅시”와는 한국의 도박 산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여론조사(Opinion Poll)"와는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말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를 제대로 해서 발표했다면 과연 서울시장에 한명숙씨가 당선됐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와는 민감할 수 있는 환각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현대판 검투사인 "효도르"와 "크로캅"의 경기를 소개하면서 피가 낭자한 어떠한 이종격투기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고 이라크에서 벌였던 전쟁, 그리고 뉴올리언스에서 있었던 인재(人災)보다는 훨씬 덜 잔인하고 훨씬 더 인간적이고 말한다. 일본 테러단체인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부대원이었던 "에키다 유키코"와는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한 단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했다면서 도시빈민, 노도자, 농민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이 수구 정당으로 투신한 모 의원을 힐난하고,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에게서는 대통령이란 상품은 환불, 반품, 교환이 안되는 거니까 처음에 정치 시장에서 고를때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당부를 듣기도 한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짓밟히고 있는 상황을 꼬집기도 하고, 이 책의 제목에 쓰이기도 하며 근대적인 동시에 탈근대적인 저항과 전복의 존재로 할 수 있는 벤사이드의 두더지와의 인터뷰에서는 한미 FTA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용산참사, 4대강 개발, 비정규 문제 등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시사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시사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국제, 예술,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가상 인터뷰 대상을 빌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세대 간의 사회적, 언어적 계곡 사이에서 두 세대를 이어준다는 자부심를 가지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쉽고 평이하게 씌여 있어서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인문 교양서라 할 수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주제를 담으려다 보니 한 주제 당 10 페이지 남짓의 한정된 지면만을 할애할 수 밖에 없어서 인지 전반적으로 깊이 있는 접근보다는 맛보기 형식의 백과사전식 주제 나열에 그친 것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을 "좌파"가 아닌 "좌빠"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 자신을 이데올로기에 한정된 지식인으로서가 아니라 비록 사상적 경향은 좌에 쏠려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파도 기웃 기웃거리면서 그네들과 격의없이 이야기 나누고 - 물론 그렇다고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은 아니다 -, 성적 소수자, 된장녀, 환각제 등 양쪽에게서 배척받는 소수자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고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나타내기 위한 말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의 행보가 실제 좌우파 진영에서는 어떻게 평가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세상의 변화에 스스로 먼저 읽고 쓰고 새로운 길을 찾는 그의 열정만큼은 관심 있게 지켜볼만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어디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의외성과 돌발성의 두더지 같은 지식 탐구욕이 거꾸로 퇴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가 말한 "지식비평가"란 말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지식비평가"란 자신이 속한 이데올로기나 가치에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가치로의 외연을 넓힐줄 알며 세대간의 간격 또한 아우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네멋대로 정의를 내리고 이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