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붓다
한승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아직 검증이 안된 신인작가 작품이기에 약간은 저어하는 마음에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작품에서 기대 이상의  감동을 맛보게 되는 그런 의외성과 놀라움도 좋지만 이미 전작을 통해서 재미와 감동을 검증받은 중견작가의 신작을 만나는 즐거움도 꽤나 쏠쏠하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필력을 다시 맛볼 수 있고, 전작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어떻게 들려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절로 가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연인은 신선함과 설레임을 주지만 오래전 연인은 다시 만난다는 반가움과 함께 저절로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고 할까? 그래서 오래전 읽은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추사>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한승원 작가의 신작인 <피플 붓다(랜덤하우스 코리아, 2010년 10월)>는 그런 반가움과 아련함과 함께 그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에 묘한 흥분마저 느끼게 되었다. 다 읽고 나니 젓갈이 잘 숙성되면 짠 맛은 덜해지고 특유의 감칠 맛이 지극한 미각의 행복을 준다고 하더니, 제대로 곰삭은 작가의 노련한 필치를 맛보는 즐거움과 이제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삶에 대한 더욱 따뜻해지고 깊어진, 그리고 한결 여유로워진 작가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감동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하는 행복한 책읽기였다. 

  전라남도 장흥 억불산(億佛山) 자락 마을에서 살고 있는 18세 소년 상호는 사연 많은 아이다. 상호의 어머니는 라이 따이한(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으로 베트남에 장사하러 온 상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한국으로 와 상호를 낳았다. 상호의 아버지는 이것저것 사업을 한다고 집안 돈을 거덜내더니만 결국 실패를 하고 달아나버렸고, 상호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가버려 상호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나게 된다. 상호는 불편한 다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할아버지가 시신을 염하는 “염장이”라는 것 때문에 급우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그러나 상호는 심지가 단단한 아이다. 수능시험과 명문대 진학이라는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예술 대학으로의 진학을 맘먹고 친구들이 수능시험 보던 날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억불바위를 직접 오른다. 또한 자신들을 괴롭혀온 친구들을 혼내주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가 하면,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동네 여자 후배와 풋풋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호를 옆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안인호는 그런 상호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한다. 전직 장학사이자 교장이었지만 정년 퇴임 후 염장이로 생계를 잇고 있는 안교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우주를 청소하는 쇠똥구리라는 마음으로 염장이 일을 계속하고 한편으로는 몰래 동네 외로운 노인들이나 불우한 이웃들을 침과 뜸으로 치료하고 먹을 거리를 도우면서 살아간다. 그는 삶의 희망을 놓으려는 한 많은 여인 송미녀를 사랑으로 치유하려 하고, 예전 같이 근무하던 동료 여교사였지만 심한 정신적 충격에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자신에게 매달리는 오 교사를 주변의 만류와 시선에도 불구하고 거두어 보살핀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안교장에게서 만인의 부처(People Buddha)인 억불바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졸업식 날 상호는 할아버지 가르침대로 “제대로”된 졸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3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급우를 불러 세운다.

  자신의 고향에 빚을 감는 심사로 이번 글을 완성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전라남도 장흥 억불산 억불바위 아래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향에 바치는 헌사(獻辭)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등단한지 42년이라는 이력이 말해주듯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경지에 이르렀을 작가의 단단한 내공으로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삶에 대한 사랑과 감성을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필치로 풀어낸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동화되어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는 그런 감동이 느껴져 다 읽고서도 금새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여운이 오래 느껴졌다. 남다른 출생배경으로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상호가 좌절하지 않고 점점 단단해지는 성장 모습과 정형화된 사각형의 삶이 아니라 오각형의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읽으면서는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그리고 미륵부처의 형상인 억불바위를 점점 닮아가는 상호의 할아버지 안교장의 삶은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젊었을 때 장흥의 뭇 권력자들과 사내들을 쥐고 흔들었던 여인 송미녀 할머니가 팔순의 나이가 되어 인생에 대한 회한에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자 그녀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식은 지 오래되었던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보듬고 안아주는 안교장의 모습은 세속의 애욕을 넘어선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읽은 "사랑은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의 대답 - 책 첫머리 작가의 말 제목도 "사랑 그리고 구원, 그 영원한 우리들의 화두"이다 - 을 바로 억불산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호와 안교장,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단지 눈에 보여지는 형상이나 또는 자신의 머릿속 아집에 집착하여 그릇된 시선으로 행복과 불행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뜻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 뜻을 실천해 옮길 때 비로소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뜻이 바로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안교장의 삶이야말로 인간 세상에 현신하여 민중을 구원한다는 구세주 억불바위 미륵불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전남 장흥에 가면 낡은 자전거에 꽹과리가 들어있는 가방을 뒤에 싣고 좁은 논길을 달리는 안교장을 ,그리고 집 툇마루에 앉아 억불바위를 바라보고 있을, 더 단단한 모습으로 바르게 성장한 상호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있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장흥 고향 마을 억불바위는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에게는 이제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넘어서는 더욱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이제 전남 장흥에 있다는 억불바위는 장흥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닮고 싶어하는, 그리고 닮아가야 하는 그런 상징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년초에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금강스님/불광출판사)를 읽고는 가고자 맘 먹은지 오래전이지만 아직도 떠나지 못한 남도 여행길에 볼거리가 하나 늘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이제 그 여행길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상호와 안교장이 살고 있는 억불산 아래 마을과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억불바위를 말이다. 갈수록 풍성해지는 남도 여행길, 꿈꿔보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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