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미국사의 진실, 개정판
제임스 W. 로웬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역사(歷史) 교과서는 과연 진실(眞實)만을 담고 있을까?

침략 전쟁을 서구 제국주의 침탈애서 벗어나 아시아 제 민족의 공동 발전, 즉 대동아공영권(大同亞共營圈)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미화(美化)하고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역사 교과서나 우리 민족이 세운 국사인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를 자신들의 일개 지방 정권으로 묘사하는 중국 역사 교과서는 차치(且置)하더라도 우리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사(國史)”도 정권에 따라 그 논조(論調)가 수시로 바뀌니 진실성을 한번쯤은 의심해볼 만도 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제주 4·3 사건”은 불순분자(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무장봉기였고, “광주 민주화 운동”- 그 당시에는 “광주 사태”로 불렸었다 - 은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의 사주에 의한 테러 또는 반역이었다고 교육을 받았었다. 90년대 이후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적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 명칭 또한 바뀌면서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 의미가 다시 축소되고, 좌편향(左便向) 국사 교과서가 위험하다며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더니 결국 법정으로까지 비화(법원 "좌편향 역사교과서 수정명령 취소하라" -노컷뉴스.2010.9.12.)되는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왜곡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닌가 보다. 중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대국이자 비판의식이 그 어느곳보다 높다고 알려진 미국의 역사 교과서들도 하나같이 자신들이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과대 포장하는 자국중심주의(自國中心主義) 기술이 대부분이라니 말이다. 왜곡 없는 진실한 미국 역사를 알리기 위한 강연, 연구, 집필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W.로웬의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원제 Lies My Teacher Told Me / 휴머니스트/ 2010년 10월)>은 실제 미국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역사 교과서 18종을 낱낱이 분석하여 역사 왜곡 사례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일종의 교과서 비평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서문인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자신의 책이 한국에서 간행되는 것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가 먼저 한국과 미국은 정치·경제·문화 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상대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미국의 공식 역사가 아니라 진짜 역사를 안다면 미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오늘날 한국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이웃한 중국, 일본과 갈등관계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들은 함께 20세기 일본에서 나온 일본 우익 교과서의 역사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고구려라는 면 과거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 때는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과거에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등 강대국에게 자주 침탈을 당했기 때문에 '한국은 순전히 희생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런 스토리 라인은 논쟁을 회피한다는 단점이 있고, 무기로서의 역사, 국익의 관점에서의 역사를 내세우면 국가의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과거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민감한 문제인 친일파 문제나 전후 제주도 탄압(앞에서 언급한 제주 4·3사건)등을 놓고도 해석이 다양한데 이는 현재에도 이 사건이 당파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며, 그런 이해관계는 어느 한쪽에서 과거에 관해 '아는 것'을 왜곡할 수 있고, 당파성을 피하기 위해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서 저자들은 밋밋한 서술을 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한국 역사가나 학자에게 유용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감히 말하자면 '한국 역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의 모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기대하며, 자기 민족의 모든 행위를 옳다고 믿고 옹호하는 국수주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질책하는 사람'인 애국자가 필요하다고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조금은 장황한 서문들 - 책에는 한국어판 서문과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을 싣고 있다 - 을 읽고 나면 본격적으로 미국 역사 교과서의 왜곡 사례들을 조목조목 열거한 본문이 나오는데, 잘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0)”와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 대통령(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왜곡 사례를 제일 먼저 예로 든다. 맹인에 농아라는 장애를 딛고 일어나 “박애주의자”가 되어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했었다고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의 성인 이후의 일대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 급진적 사회주의자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공산주의 신생국을 찬양하고,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가 하면, 사회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유세에도 동참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고 한다. 민족 자결주의 제창자로 우리 독립운동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러시모어산 대통령 얼굴 조각의 다섯 번째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는 윌슨 대통령은 사실은 연방정부의 인종차별과 외국(라틴아메리카,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단행한 반민주주의 정책을 펼쳤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왜곡이 필요했을까? 헬렌 켈러의 경우에는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는 미국 사회의 풍토 때문에 그녀의 사회주의 활동을 애써 감추거나 누락하게 되었고, 윌슨의 반민주주의 정책들은 미국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는 우려 - 우리식으로 하면 국격(國格)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까? -와 영웅만들기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계속해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화, 미국의 건국신화라 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 이야기, 인디언, 베트남 전쟁, 9.11. 테러이후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공격과 이라크 침공 등의 각종 왜곡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의 해피 엔딩 마무리에 대해서 이러한 해피엔딩은 패배의 인정이며 미래에 관해 참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고, 우리 역사의 흐름에 관해 참된 사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하는 교과서 저자들은 암묵적으로 우리 역사가 우리의 미래에 진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시인하는 셈이라고 말하며, 이런 식으로라면 학생들이 역사 공부가 자신들의 미래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학생들을 탓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역사를 이렇게 가르치는 걸까? 국가나 미국 최고 상류층에 의한 의도적 개입이라는 음모론(陰謀論)을 떠올려 볼 만도 한데 작가는 상류층이 출판사를 통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통제가 교과서의 내용에까지 이르지 않는데, 그 이유가 교과서가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면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즉 교과서의 문제점을 상류층의 통제로만 설명할 수 는 없으며, 그보다는 교과서 출판의 영역에 작용하는 특별한 압력이 미국사 교과서의 획일성과 지루함을 상당히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그 특별한 압력을 “교과서 채택위원회”, “출판사”, “저자”, “교사”, 그리고 이미 문화적 거짓말이 사회 전체에 각인되어 있어 교과서가 그런 거짓말 수록하는 이유와 교과서가 논쟁을 피하는 이유를 바로 우리가 원하는, 즉 “우리 모두”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은 우리 자신을 위축시킬 따름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서슴없이 비판하는 미국인을 보면 깊은 인상을 받는 것처럼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에서 역사가의 의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학생은 조국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과 더불어 조국을 비판할 줄 아는 소양을 개발해야 하는데, 혹 우리는 언제부턴가 민주주의를 포기한 게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또한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 결과로서 비롯된 사례로 베트남 전쟁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교육받은 미국인들이 매파(베트남 전쟁 지지)가 많다는 조사 결과를 들면서 그런 이유가 교육받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교육과 성공에 도움이 된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는 데서 기득권(충성심)을 가지게 되며, 미국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노골적으로 종용하는 “사회화” 교육으로 인해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사회화가 진척될수록 개인은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판단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낙관적 교육관을 가지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고, 이 견해가 사회에 팽배할 수 록 학생들은 자연히 교육을 좋게 여기며, 교육 받은 사람이 베크남 전쟁을 더 잘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교육을 좋게 보면 미국식 개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어 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구현했거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기회의 평등을 믿을수록 학생들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빈곤이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간주하게 된다고 잘못된 역사 교육의 폐해를 지적한다.  

  작가는 마지막 장인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역사는 현재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우리가 양성해야 할 미국인은 다양한 사회계급과 인종적 배경을 가지고 양성이 어울려 역사의 힘 - 과거의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의 행위를 고취하고 정당화하는 능력-을 통제하는 사람이어여 하며, 과거는 따분한 상투적 문구의 원천이 아니라 개인과 민족으로서의 미국인들에게 진지한 가르침을 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성공적인 미국사 교육이 배출한 인재는 미국에 관한 기본적인 사회적 사실들을 알고, 그 사실들을 형성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들은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힘과 이데올로기적 힘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변화로 이끌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다양한 역사적 주장을 점검하고 전형적인 진실을 의심하고, 과거가 현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잘 알기 때문에 역사가 현실과 무관하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하며 책을 끝을 맺는다.  

   첫 출간 당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라는 서론 제목을 달았던 이 책은 1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며, 이번 개정판 서론 제목이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인 것을 보면 그 반향이 어느 정도 미국 역사 교육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아직 이 책처럼 우리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자국중심주의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한국 현대사의 고전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나 현대사(現代史)를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공과(功過)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려는 강만길 교수와 한홍구 교수 등의 책들, 각종 민간역사연구소에서 출간하고 있는 대안 역사교과서들, 최근 우여곡절 끝에 국민 성금으로 편찬해낸 민족사 문제 연구소의 <친일파인명사전>, 영웅 중심의 제국주의적 고대사 서술에서 벗어나 상호 연관적인 동아시아사로 해석하는 박노자 교수의 역사 교양서 등이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난 이러한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分斷)이라는 특수적 상황에서는 결국 주류(主流)가 될 수 없는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기 일 수이며 심지어는 색안경을 끼고 빨갱이 서적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한국 역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의 모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기대처럼 이 책이 우리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들을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개인적으로 바래본다. 그리고 애국자란 국가의 행동을 무조건 옹호하고 지지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질책하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정의야말로 우리 국사 교육의 모토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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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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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권 들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사건들이서 뭐부터 꼽아볼지 난감한데, 그중 가장 어이없고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사건이라면 21세기판 필화(筆禍)사건이라 칭할 수 있는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두 사건 때문에 우리의 민주화 시계는 ‘잃어버린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30~40년 전인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갔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나 글 때문에 화를 입는 사건”을 필화사건 - 멀리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인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원인이 되었던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들 수 있고, 가까이는 1970년 소설가 김지하의 <오적(五賊)>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이라 부르는데, 이웃 중국에서는 <문자옥(文字獄)>이라 부른다고 하며, 그 역사가 3,000년에 이를 정도로 꽤나 유구(悠久)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왕예린의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애플북스/2010년 11월)>은 중국 역사상 유명했던 문자옥 사건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시작하면서>에서 인류 역사에 남아 있는 문자옥은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일종의 '사상죄‘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계속해서 역사 속에서 문자옥을 만든 사람도, 희생된 사람도 지식인이었으며, 지식인들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교묘한 말로 없는 죄를 덮어씌우고 사지로 밀어 넣었으며, 때로는 달콤한 말로 기득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반역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배움이 남다르면 관직에 올라 천하를 평안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던 지식인들은 붓을 칼 삼아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즉 문자옥은 권력과 글의 알력이 빚어낸 감옥이었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에서 청나라 마지막이자 가장 유명한 문자옥인 <소보사건>(광서 22년 1896년)까지 총 30건의 문자옥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의 분류와 구성은 맺음말 격인 <마치면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작가는 최초의 문자옥 사건을 서한(西韓)시대 양운 사건으로 보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B.C. 548년 제나라 태사가 (太史) 태사 최서에게 죽음을 당한 사례를 최초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제나라의 대부 최서(崔抒)가 왕인 장공을 살해하고 권력을 쥐자 당시 태사(太史, 사관)는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기록했다고 한다. 최서는 태사를 처형하고 태사의 동생을 후임으로 임명했지만, 동생 또한 최서의 죄악을 그대로 적어 화를 당하고 말았고, 다시 임명된 태사 가문의 마지막 사내 또한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기록하자, 그 강직한 모습에 놀란 최서가 겁을 먹고 태사의 목을 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사건이다. 그동안 알려진 양운보다 400여년 더 앞당겨진 셈인데 작가는 그렇다고 이 사건을 중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문자옥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최서의 사레를 든 것은 이 사건이 "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춘추시대 혹은 그보다 앞선 시대에도 문자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최초로 알려졌던 양운 사건은 어떤 내용일까? 양운은 한나라 소제 때 승상을 지낸 양창의 아들로 어미가 대문호 사마천의 딸인 명문가의 자제였다. 곽광의 모반 사건을 밀고해 평통후로 봉하고 중랑장의 벼슬을 얻었는데, 고발장 사건으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지만 농사를 짓고 집을 지으며 재산을 불리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벗인 안정태수 손희종이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서신을 보내자 그 답으로 내심의 불만을 답신인 <보손회종서>에 쏟아냈고, 결국 이를 알게 된 황제의 분노를 사서 허리를 부러뜨려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 작가는 문자옥의 원인이 된 '문자'의 범위와 문자옥의 유형을 소개하는데, 먼저 유명한 지식인들이 법을 어겨 죽음을 당한 경우로 삼국지(三國志)의 등장인물로 유명한 한나라의 공융을 예로 든다. 한나라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공융은 원담에게 화를 사서 간신히 도망쳐 조조에 의탁하지만 연거푸 조조의 법령과 정책을 비웃고 욕설이 난무한 잡문을 썼다고 하며, 조조의 아들 조비가 원희의 아내 견씨를 맞이하자 공융은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벌했을 때 주공에게 달기를 준 이야기와 함께 조씨 부자를 비웃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고 한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공융이 조조에게 사죄의 서신을 보내지만 조조는 공융이 대신 치려와의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을 빌미로 조조는 공융이 몰래 술을 만들었다며 잡아들여 대역죄, 조정 비방죄, 망령된 말을 함부로 내뱉은 죄로 죽여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글이 유명해져 화를 당한 사례로는 송(宋)나라 시절 정치가 겸 문인으로도 유명했던 구양수(歐陽脩)를 예를 든다. 그당시 명신이었던 범중엄이 모함을 받아 좌천되자 일부 대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언을 했지만 줄줄이 좌천되고, 구양수는 비겁한 술수로 범중엄을 사지로 밀어 넣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고약납에게 격한 어조로 쓴 장문의 서신을 보냈는데, 고약납의 고발로 이 편지를 본 황제가 구양수가 대역죄인의 편을 들고 조정의 대신을 비방했다고 하여 이릉으로 쫓아낸다. 훗날 복귀한 범중엄이 구양수에게 자신의 서기관이 되어줄 것을 청하자 구양수는 "과거에 제가 님의 편에 선 것은 지금의 자리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물러날지언정 결코 님과 함께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다"라고 껄껄 웃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대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은 시론으로 화를 당한 사례로는 일곱 번의 상소로 반대파에 목숨을 잃은 송의 “진동”,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는 죽은 이의 생전 언행을 기록했다가 죽음을 당한 북송의 시인 ‘이지의“ 사건을 소개한다. 작가는 사료의 출처로 25개 왕조를 담은 역사서(二十五史)와 수십 개의 패사(稗史: 일상의 사소한 일을 기록한 야사나 소설 따위)를 참고로 했고 인물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재밌는 사례라면 고구려와도 관계가 있는 당(唐)나라 시절 원만경(元萬頃)의 <격고려문> 사례를 들 수 있다. 당나라의 대장군 이적과 함께 고려 - 책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로 부른다 - 원정에 나선 원만경은 서기로 일하며 보고나 각종 서신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군량미를 요청하는 서신을 고려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아기 위해 남녀 사이의 이별을 노래하는 시로 가장하여 보냈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한가롭게 사랑 타령이나 하다면서 불같이 화를 낸 이적 대장군에게 처형당할 뻔 한 일을 겪기도 했던 그는 대장군 이적의 명으로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격문을 쓰게 되는데, 격문에서 압록강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지킬 줄도 모르고 덤비는 어리석은 족속이 고려라며 한껏 약을 올리는 내용을 적었다. 이 격문대로 고려 조정은 압록강을 사수하고 병력을 크게 강화하자 당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중원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결국 원만경의 격문은 다 된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었고, 그는 그 죄로 영외로 쫓겨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의 이익에 반(反)하고 적국에 도움을 주는 이적(利敵) 행위를 한 셈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은인(恩人)인 셈이지만^^ 

   이러한 문자옥 사례들의 교훈은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인 것처럼 권력을 위해 아무리 글이나 언론을 탄압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모든 진실은 언젠가는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는 법이라는 것은 이 책의 사례들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역사의 진리(眞理)가 아니던가. 그러나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을 이 진리를 권력자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나 보다 - 엄밀히 말하자면 모른 척 하는 것이겠지만 -. 이 책의 출간이 설마 최근의 사태에 맞춘 불순(?)한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 시의적절(時宜適切)함은 기가 막혔다고 평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나라에도 중국 문자옥 못지 않은 필화사건들이 많았으니 그 사례들을 엮은 책도 조만간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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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프로젝트 - 2010 제4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7
이제미 지음 / 비룡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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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청소년문학상 '블루픽션상' 제4회 수상작이라는 <번데기 프로젝트(이제미/비룡소/2010년 11월)>을 읽으면서 소설가(小說家)를 꿈꿨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되었다. 책읽기를 즐겨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글을 쓰는 작가(作家)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에 푹 빠졌었던 중학생 시절 나도 추리소설을 써보겠다는 마음에 단편 몇 편을 써서 친구들에게 돌려 읽혔던 적이 있었다."재미없다","유치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 - 이제는 누렇게 바래 글자조차 알아보기 힘든 그 당시의 글을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화끈 거릴 정도니 친구들의 평이 냉정했던 것 같다 - 였지만 그래도 몇몇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들어서는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일본 만화인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孔雀王)>에 열광하여 퇴마(退魔)류 소설을 써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대학노트 여러 권 분량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습작으로 단편 몇 편을 써보기도 했었는데, 같은 시기에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을 읽어보면서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는 생각에 아쉽게도 꿈을 접어야 했었다. <번데기 프로젝트>는 이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꿈 꿔봤을 소설가가 되기 위해 열여덟 소녀가 벌이는 좌충우돌 재밌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올해 열 여덟살 소녀 정수선은 학교 성적은 4년제 대학을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이고, 스스로 왕따를 자처해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외삼촌 보증을 섰다가 홀라당 말아먹고 조그만 삼겹살집을 내신 아버지의 강압에 방과 후부터 밤늦게까지 삼겹살집에서 서빙하고 고기를 뒤집는 중노동을 고작 일당 2만원에 제공하는 현실이 싫어 종종 탈출(?)을 감행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온 아버지에게 지하철 계단도 다 못 내려가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서 어느 대학 백일장 공고문을 본 수선은 몰래 키워온 꿈이자 지겨운 삼겹살집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줄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며 바닥을 못 면하는 자신의 성적에도 문학 특기자라는 대학문을 열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방편이라고 생각해 백일장에 응모하기로 하고, 문학 담당 교사인 허무식 선생님을 찾아가 추천서를 받아 백일장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만 덜컥 입상을 하고야 만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수선의 입상 소식에 허무식 선생은 상금 1억원의 백일장에 응모하라고 강권하며 문학 코치로 나서고, 수선 또한 각종 백일장과 문학 콘테스트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허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그러나 수선은 하루종일 붙들려 있는 삼겹살집의 고된 일에 소설을 쓰기 위한 짬을 내기 힘들어 하고, 허선생은 수선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시간일기"라는 동호회를 소개해준다. 동호회 모임에서 수선은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치타"라고 별명 붙여준 "추지행"이라는 남자에게서 자신이 반복해서 꾸는 꿈을 소설로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고, 꿈 내용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단편소설을 쓰게 되고, 그 소설을 다른 백일장에 응모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본 치타는 자신이 그 소설을 돈을 주고 살 테니 어디에도 발표하지 말라는 회유반 협박반 제안을 받게 되고, 수선은 단호히 거절하고 백일장에 응모해 1등에 당선된다. 수선이 흠모하는 작가이자 백일장 심사 위원이었던 "이보험" 작가가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친구인 방송사 PD에게 수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PD는 수선에게 소설을 각색하여 드라마로 제작하자고 제의를 하게 된다. 수선의 소설은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방영되고, 며칠 후 그동안 잠잠했던 추지행이 방송사에 자신의 꿈이 원작이라며 저작권 문제를 시비삼고 남은 드라마를 방영하지 말라고 협박해온다. 그러나 저작권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방송국에서는 방영을 강행하게 된다. 며칠 후 PD는 수선을 따로 불러내 오늘자 신문을 보여주고, 수선은 자신의 소설과 관련된 충격적인 기사 내용에 크게 놀라게 된다.  

  보잘 것 없는 10대 소녀가 "소설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중년인 내가 읽어도 전혀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참 재밌고 유쾌한 소설이다. 제목인 번데기는 수선이 처음 도전했던 백일장의 과제인데, 번데기가 득시글거리는 한 남자의 눈에서 나비가 나와 날아가는 내용이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수상한 수선의 소설이자 번데기라는 흉측한 외피를 벗고 아름다운 나비로 훨훨 날아오르게 되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성장하는 동화를 연상시키는 그런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치타의 꿈 이야기부터는 미스테리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 전개 과정과 마지막 반전의 재미가 쏠쏠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중반 이후의 책읽기에 탄력이 붙게 한다.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허무식 선생님도 꽤나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10등 이상 학생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어쩌면 요즘 선생님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수선의 담임과 대비하여 소설가가 되겠다는, 어찌 보면 허황된 꿈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수선의 꿈에 용기를 불어주고 현실로 이뤄지게끔 가르치는 모습은 요즘 만나보기 힘든 인간적이고 따뜻한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천덕꾸러기 신데렐라에서 일약 천재작가로까지 신분(?) 상승한 수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청소년들에게 뭔가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교훈적인 존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직 찾지 못한 채 시계추와 같이 일상을 반복하며 공부에 지쳐가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꿈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 - 작가 또한 소설 속 수선처럼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을 보면 수선의 이야기가 결코 허황되거나 과장된 것이 아닌,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간 현실적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로써 읽어봐도 좋을 것이고, 수선이 작가가 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모험과 결국 그 꿈을 이뤄내는 장면은 소설가를 한번쯤은 꿈꿔봤을 성인들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 이루게 되는, 일종의 대리만족으로서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큰 감동은 없었지만 청소년 대상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성인들도 함께 읽어봐도 좋은 유쾌하고 재밌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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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원시인 - 진화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 논리
행크 데이비스 지음, 김소희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 갇혀 있다가 하늘을 벗어나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지가 벌써 40년이 넘어섰다. 아직까지 불가해(不可解)한 영역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과학(科學)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起源)을 밝혀낸 지가 오래되었고, 심지어 신(神)의 영역이라는 생명 창조의 단계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는 비이성적(非理性的)고 비합리적(非合理的)인 사고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게까지 느껴진다. 아직도 광신도(狂信徒)들의 집단 자살 사건이 가끔씩 뉴스에 올라오기도 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1세기판 십자군 전쟁이라는 성전(聖戰)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쓰나미 대참사는 자신들과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신(神)이 내린 천벌(天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런 비이성적인 사고가 과학과 대척점이라는 종교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빠짐없이 챙겨보고, 어젯밤 꿈자리가 좋았다고 8백만 분의 일이라는 로또 복권을 사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꼭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가 하면, 아침부터 영구차(靈柩車)를 보고는 괜히 재수 없다고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어째서 인간들은 이런 비이성적인 믿음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진화심리학자이자 대중문화 평론가인 행크 데이비스는 이 질문에 대해서 그의 저서 <양복을 입은 원시인; 진화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 논리(원서 Caveman Logic/지와 사랑/2010년 10월)>에서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 해왔지만 현대인의 뇌 안에 아직까지도 원시인의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책 읽기에 앞서 처음 들어본 “진화심리학(進化心理學)”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위키백과사전을 보니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은 동물의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며, 주로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다고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다른 사이트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학문으로 신체처럼 정신도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라고 주장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다윈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의 개념을 인간의 심리에까지 확대 적용하여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 1973년이라니 비교적 최신 이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충분한 설명은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약간의 정보는 인지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첫 장에서 작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논의거리가 되지 않는 진화론의 “자연선택”을 21세기인 지금도 미국인 대다수가 믿지 않는다니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불가해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놓고 시민들 간에 분쟁이 생기고 지역 학군 내에 혼란이 벌어진다면 양 진영을 불러놓고 서로 토론하게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불가능하다고 한탄한다. 자연선택은 그리 위협적인 이론이 아니어서 일단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면 받아들이기가 쉽다면서 진화론의 핵심인 “유전”과 “복사”부문을 설명하고, 유전자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으로 해설한다. 또한 600 만년 전부터 비롯된 인간 종의 진화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갑자기 50 만년 전 무렵 끓는 점에 이르렀고, 홍적세(10만년 전 ~ 5만년 전)에 폭발적으로 이뤄졌는데, 이러한 진화는 “언어 사용”과 “가축 사육”이라는 두 이정표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 종은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거쳐 현재 세상과 유사한 상황에서 살게끔 적응해왔는데, 이러한 적응에 내재된 몇몇 유전자들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타나고있는 것이 바로 문제라는 지적이다. 우리는 홍적세의 원시인들만큼이나 환상, 안락함, 사회적 압력에 약하며, 불완전한 감각 증거 앞에서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적극 방어하는 것을 보면 수 천년 전 원시인에 비해 그다지 진화하지 않은 듯 하다고 이야기한다. 2장부터는 우리에게 아직도 유전되고 있는 원시 논리들을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밝히는데, 우리가 종종 “모든 것이 내 탓이요”(->과도한 인과성 탐지의 오류)라고 한탄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각에 무조건 동조하기도 하고(->발견법의 오류), 아직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지각의 오류)을 예로 들고 있다. 또한 지난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해 막대한 피해를 줬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재앙을 ‘악의 도시가 신의 처벌을 받은 것’이라 평가하는 언론이나 종교인들, 우연에 불과한 일에 의미를 부여했던 카를 융(Carl Gustav Jung) -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 현상을 일치현상(Syncronicity)라고 부르며, 그 안에는 우연의 일치(Coincidence)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일치현상이 우주의 인과적 원리이자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법칙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의 해석에 경도되어 우연을 마치 신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중에게 널리 유행하고 있는 각종 심령 사업들을 예로 들고, “초능력”, “대체의학”, “필체성격분석” 등에 대해서는 그 비과학성을 증명하기도 한다 - 책에서는 “남자는 얼간이다”라는 믿음도 비과학적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믿음임을 잘 알고 있어 뺐다^^ -. 

어쩌면 그저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을 이런 비과학적인 믿음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작가는 이런 비이성적인 믿음과 종교, 즉 ‘남의 믿음’에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그런 잘못된 믿음으로 전쟁에 나가고, 그들이 저지르는 테러나 종교적 탄압 등 파괴적인 일들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원시 논리는 신이나 국가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할지 몰라도 곧 타인에 대한 증오로 확대되어 일단 자신의 신이나 국가가 최고라고 결론을 내리면, 국경선 너머나 교회 밖의 얼간이들을 참아내기는 힘들어져 그들에게 진실을 이해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는 곧 “개종이냐, 죽음이냐?” 문구의 티셔츠가 돌아다닌다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지성인들조차 심령현상, UFO, 음모론 등에 빠져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과 지도자들이 창조론을 믿으며 여전히 성경 속에서 인간의 기원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라 미국은 우익 종교집단의 정치적 참여로 인해 비이성에 잠식 되어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작가는 그렇다고 해서 미신과 종교를 제재하거나 금지시켜서는 안 되고, 인류 스스로가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사고, 올바른 과학 교육 등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와야 하며, 중독적인 원시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강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끝을 맺는다.

362 쪽의 적지 않은 분량, 체계적이지 않은 나열식 설명으로 인해 처음에 개념을 정리하면서 읽는 데 좀 애를 먹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인간의 비이성적 사고의 원인을 해석하고, 각종 사례들을 통해 비과학적인 믿음이나 신념이 인간 스로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한 점들이 꽤나 흥미로워 중반 이후부터는 읽는데 탄력을 붙일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인간의 심리, 즉 자신의 안전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행동들이 몇 만 년 전 원시인들에게서 계속 이어져 내려온 유전적인 요인이라는 해설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UFO나 심령현상, 음모론, 각종 미스테리에 꽤나 관심이 많은 나 또한 “비이성적 사고에 빠진 지성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에 괜히 찔리기도 했다. 물론 각종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에 대한 이 책의 해석에 올곧이 동의할 수 있을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엄격한 잣대로만 인간의 이성(理性)과 가치관을 평가하는 것도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너무 한쪽으로만 해석하는 논리의 오류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색다른 해석을 바탕으로 한번쯤 인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곰곰이 따져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잠깐 맛을 본 것에 불과하지만 진화심리학, 꽤나 재밌는 분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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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전아리 지음, 장유정 원작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첫사랑.
괜히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 것 같은 그런 단어다. 그렇다고 늘 떠올리게 된다면 지금 사랑에게 미안해지는, 그래서 가슴 한 켠 잘 안 보이는 곳에 꼭꼭 숨겨 두었다가 가끔씩 한번 떠올려보고는 몰래 미소 한번 짓게 하는 그런 사랑이 첫사랑일 것이다. 또한 첫사랑은 그냥 간직만 하는 것일 뿐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간 그나마 아름다웠던 추억마저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신기루”같은 사랑 - 종종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성인이 돼서 만나고는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들은 너무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것처럼- 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가슴 속에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항상 달콤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아련한 사랑으로 그려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색다른 첫사랑 이야기를 만났다. 전작인 <팬이야>에서 삼십을 바라보던 여성이 아이돌 그룹의 열성적인 팬이 되면서 겪게 되는 삶에 있어서의 변화와 사랑을 20대 특유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재미있게 그렸던 전아리 작가의 신작 <김종욱 찾기(노블마인/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원작인 뮤지컬이 이미 3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대 히트작이었고, 유명 배우인 공유, 임수정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전아리 특유의 감성과 글솜씨로 재밌게 책으로 엮어냈다. 

 잡지사에 근무했지만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편집장과 대판 싸운 효정은 그만 회사를 그만두고 스물 아홉 살에 백수 신세가 되고야 만다. 부모님께 차마 말씀드릴 수 없어 출근시간 맞춰 집을 나온 그녀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친구 혜진에게서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 소식을 듣고는 하릴없이 따라가게 된다. 다음날 효정의 실직을 알게 된 아버지는 효정에게 매일 한 명 씩 선을 보라고 강요하고, 위기를 피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당신의 첫사랑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전단지를 보게 된다. 취직겸 전단지를 들고 허름한 건물 옥탑 사무실을 찾아간 효정은 그곳에서 역시 광고회사에서 엉뚱한 아이디어만을 제시했다가 짤리고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단지 광고업을 시작해서 첫손님으로 사채업 광고 전단지 제작을 맡았다가 광고주가 도망가 버려 미처 배포도 하지 못한 전단지만 수북히 떠안게 된, 도망가버린 빈 사무실을 맡게 된 서른 세 살 노총각 성재를 만나게 된다. 성재는 능력 테스트 겸 전단지 문구대로 첫사랑을 함께 찾아보자고 제의하고, 효정은 인도 여행 시절 만났던 “김종욱”을 같이 찾아보기로 한다. 이때부터 효정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기 위한 티격태격 좌충우돌 여행이 시작된다. 통신사에 근무하는 선배를 오래전 목숨을 구해줬던 사실을 들먹여 효정이 말한 나이 대의 김종욱의 전화번호를 입수한 성재는 효정과 함께 전국으로 김종욱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나 모두 엉뚱한 동명이인이었을 뿐 그녀의 김종욱은 쉽게 찾지를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재와 효정은 서로에게 조금씩 이끌리게 되고 이끌림은 점점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한편 효정의 친구이자 연애에 있어 자유 분망한 혜진은 역시 같은 과이면서 돈 많은 연상의 여인을 노리던 플레이보이 상필과 하룻밤을 보냈다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되고는 상필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동안의 연애 신조와는 전혀 다르게 결혼을 결심하는 상필과 혜진이 효정은 영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기까지 느낀다. 

"역시 너희는 쿨하다"
아직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은 내가 말했다. 혜진은 그게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세워 흔들어 보였다.
"우린 쿨함이랑 거리가 멀어"
"너희 아니면 이 시대의 쿨함은 누가 짊어지고 가겠냐?"
내말에 혜진은 깔깔 웃었다.
"쿨한 건 그런 게 아냐. 쉽게 만나서 자고 쌈빡하게 헤어지는 거, 그건 문란한 거지.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야. 한 사람 사랑하면서 배신당할까봐 쫄지 않고 상처받을까 봐 이거저거 재지 않으면서 미친 듯이 사랑하는 거. 그게 쿨한거지"
"그래도 난 후회는 안 해. 노는 게 좋았으니까" 

김종욱 찾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성재는 효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보려고 하지만 엉뚱하게 마지막으로 남은 김종욱의 전화번호를 그녀에게 건네고는 돌아선다. 과연 효정은 그렇게 찾고 싶던 김종욱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처음 받아 들고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뮤지컬 - 아직 관람을 하지 못했다 - 에 이어 영화까지 개봉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까지 엮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영화 개봉에 맞춘 이벤트성 책이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이 먼저 들어 조금은 삐딱한 시작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첫 페이지에서부터 전작인 <팬이야>에서 보여줬던 전아리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감성의 글들을 만나보고는 삐딱한 생각들을 일지감치 접고서는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라고 까지 볼 수 있는 두 남녀가 역시 너무나도 흔한 테마인 “첫사랑 찾기”에 나서면서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첫사랑과의 만남과 사랑- 반대인 이별이라는 결말도 진부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이라는 판에 박힌 결말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결말이 참 재미있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또한 이미 결말까지 다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쓴다는 것이 어찌보면 모험일 수 도 있었을 텐데,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 원작과는 다른 색다른 이야기로 재창조해낸 전아리 작가의 글솜씨 또한 전작 못지 않게 잘 발휘되어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효정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첫사랑 김종욱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책 마지막 장의 효정의 독백으로 그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김종욱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나는 김종욱을 떠나보내거나 잊을 필요가 없었다. 첫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효정에게 첫사랑 김종욱은 결코 그와 다른 남자를 비교하게끔 만들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또한 언젠가는 다시 만나 사랑을 꼭 이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런 사랑을 가슴에 간직할 수 있었기에 그 사랑의 크기만큼 새로운 사랑을 채워넣을 수 있는 가능성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김종욱을 책으로 먼저 만났다. 이제 김종욱을 또다른 장르인 뮤지컬과 영화로 만나봐야겠다. 그래서 도대체 김종욱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친구이길래 뮤지컬로도 부족해서 영화와 책으로까지 이렇게 "김종욱, 김종욱"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요란스럽게 찾아대는지 꼭 확인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전국에 있는 동명이인(同名異人) 김종욱 씨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의 김종욱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방송에서 영화에서 한번씩 불리울 때마다 괜한 가슴 떨림을 느껴볼 수 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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