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교과서는 과연 진실(眞實)만을 담고 있을까?
침략 전쟁을 서구 제국주의 침탈애서 벗어나 아시아 제 민족의 공동 발전, 즉 대동아공영권(大同亞共營圈)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미화(美化)하고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역사 교과서나 우리 민족이 세운 국사인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를 자신들의 일개 지방 정권으로 묘사하는 중국 역사 교과서는 차치(且置)하더라도 우리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사(國史)”도 정권에 따라 그 논조(論調)가 수시로 바뀌니 진실성을 한번쯤은 의심해볼 만도 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제주 4·3 사건”은 불순분자(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무장봉기였고, “광주 민주화 운동”- 그 당시에는 “광주 사태”로 불렸었다 - 은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의 사주에 의한 테러 또는 반역이었다고 교육을 받았었다. 90년대 이후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적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 명칭 또한 바뀌면서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 의미가 다시 축소되고, 좌편향(左便向) 국사 교과서가 위험하다며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더니 결국 법정으로까지 비화(법원 "좌편향 역사교과서 수정명령 취소하라" -노컷뉴스.2010.9.12.)되는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왜곡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닌가 보다. 중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대국이자 비판의식이 그 어느곳보다 높다고 알려진 미국의 역사 교과서들도 하나같이 자신들이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과대 포장하는 자국중심주의(自國中心主義) 기술이 대부분이라니 말이다. 왜곡 없는 진실한 미국 역사를 알리기 위한 강연, 연구, 집필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W.로웬의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원제 Lies My Teacher Told Me / 휴머니스트/ 2010년 10월)>은 실제 미국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역사 교과서 18종을 낱낱이 분석하여 역사 왜곡 사례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일종의 교과서 비평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서문인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자신의 책이 한국에서 간행되는 것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가 먼저 한국과 미국은 정치·경제·문화 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상대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미국의 공식 역사가 아니라 진짜 역사를 안다면 미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오늘날 한국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놓고 이웃한 중국, 일본과 갈등관계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들은 함께 20세기 일본에서 나온 일본 우익 교과서의 역사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고구려라는 면 과거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 때는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과거에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등 강대국에게 자주 침탈을 당했기 때문에 '한국은 순전히 희생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런 스토리 라인은 논쟁을 회피한다는 단점이 있고, 무기로서의 역사, 국익의 관점에서의 역사를 내세우면 국가의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과거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민감한 문제인 친일파 문제나 전후 제주도 탄압(앞에서 언급한 제주 4·3사건)등을 놓고도 해석이 다양한데 이는 현재에도 이 사건이 당파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며, 그런 이해관계는 어느 한쪽에서 과거에 관해 '아는 것'을 왜곡할 수 있고, 당파성을 피하기 위해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서 저자들은 밋밋한 서술을 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한국 역사가나 학자에게 유용한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감히 말하자면 '한국 역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의 모태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기대하며, 자기 민족의 모든 행위를 옳다고 믿고 옹호하는 국수주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질책하는 사람'인 애국자가 필요하다고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조금은 장황한 서문들 - 책에는 한국어판 서문과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을 싣고 있다 - 을 읽고 나면 본격적으로 미국 역사 교과서의 왜곡 사례들을 조목조목 열거한 본문이 나오는데, 잘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0)”와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 대통령(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의 왜곡 사례를 제일 먼저 예로 든다. 맹인에 농아라는 장애를 딛고 일어나 “박애주의자”가 되어 장애인들을 위해 활동했었다고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의 성인 이후의 일대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 급진적 사회주의자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공산주의 신생국을 찬양하고,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가 하면, 사회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유세에도 동참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고 한다. 민족 자결주의 제창자로 우리 독립운동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러시모어산 대통령 얼굴 조각의 다섯 번째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는 윌슨 대통령은 사실은 연방정부의 인종차별과 외국(라틴아메리카,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단행한 반민주주의 정책을 펼쳤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왜곡이 필요했을까? 헬렌 켈러의 경우에는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는 미국 사회의 풍토 때문에 그녀의 사회주의 활동을 애써 감추거나 누락하게 되었고, 윌슨의 반민주주의 정책들은 미국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는 우려 - 우리식으로 하면 국격(國格)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까? -와 영웅만들기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계속해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화, 미국의 건국신화라 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 이야기, 인디언, 베트남 전쟁, 9.11. 테러이후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공격과 이라크 침공 등의 각종 왜곡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의 해피 엔딩 마무리에 대해서 이러한 해피엔딩은 패배의 인정이며 미래에 관해 참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고, 우리 역사의 흐름에 관해 참된 사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가정하는 교과서 저자들은 암묵적으로 우리 역사가 우리의 미래에 진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시인하는 셈이라고 말하며, 이런 식으로라면 학생들이 역사 공부가 자신들의 미래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학생들을 탓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역사를 이렇게 가르치는 걸까? 국가나 미국 최고 상류층에 의한 의도적 개입이라는 음모론(陰謀論)을 떠올려 볼 만도 한데 작가는 상류층이 출판사를 통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통제가 교과서의 내용에까지 이르지 않는데, 그 이유가 교과서가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면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즉 교과서의 문제점을 상류층의 통제로만 설명할 수 는 없으며, 그보다는 교과서 출판의 영역에 작용하는 특별한 압력이 미국사 교과서의 획일성과 지루함을 상당히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그 특별한 압력을 “교과서 채택위원회”, “출판사”, “저자”, “교사”, 그리고 이미 문화적 거짓말이 사회 전체에 각인되어 있어 교과서가 그런 거짓말 수록하는 이유와 교과서가 논쟁을 피하는 이유를 바로 우리가 원하는, 즉 “우리 모두”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은 우리 자신을 위축시킬 따름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서슴없이 비판하는 미국인을 보면 깊은 인상을 받는 것처럼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에서 역사가의 의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학생은 조국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과 더불어 조국을 비판할 줄 아는 소양을 개발해야 하는데, 혹 우리는 언제부턴가 민주주의를 포기한 게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또한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 결과로서 비롯된 사례로 베트남 전쟁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교육받은 미국인들이 매파(베트남 전쟁 지지)가 많다는 조사 결과를 들면서 그런 이유가 교육받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교육과 성공에 도움이 된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는 데서 기득권(충성심)을 가지게 되며, 미국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노골적으로 종용하는 “사회화” 교육으로 인해 학교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사회화가 진척될수록 개인은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판단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낙관적 교육관을 가지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고, 이 견해가 사회에 팽배할 수 록 학생들은 자연히 교육을 좋게 여기며, 교육 받은 사람이 베크남 전쟁을 더 잘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교육을 좋게 보면 미국식 개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어 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구현했거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견해가 우세해지고, 기회의 평등을 믿을수록 학생들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빈곤이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간주하게 된다고 잘못된 역사 교육의 폐해를 지적한다.
작가는 마지막 장인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역사는 현재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하며, 우리가 양성해야 할 미국인은 다양한 사회계급과 인종적 배경을 가지고 양성이 어울려 역사의 힘 - 과거의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의 행위를 고취하고 정당화하는 능력-을 통제하는 사람이어여 하며, 과거는 따분한 상투적 문구의 원천이 아니라 개인과 민족으로서의 미국인들에게 진지한 가르침을 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성공적인 미국사 교육이 배출한 인재는 미국에 관한 기본적인 사회적 사실들을 알고, 그 사실들을 형성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들은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힘과 이데올로기적 힘을 알게 된 미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변화로 이끌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다양한 역사적 주장을 점검하고 전형적인 진실을 의심하고, 과거가 현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잘 알기 때문에 역사가 현실과 무관하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하며 책을 끝을 맺는다.
첫 출간 당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라는 서론 제목을 달았던 이 책은 1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며, 이번 개정판 서론 제목이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인 것을 보면 그 반향이 어느 정도 미국 역사 교육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아직 이 책처럼 우리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자국중심주의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한국 현대사의 고전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나 현대사(現代史)를 민족주의적,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공과(功過)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려는 강만길 교수와 한홍구 교수 등의 책들, 각종 민간역사연구소에서 출간하고 있는 대안 역사교과서들, 최근 우여곡절 끝에 국민 성금으로 편찬해낸 민족사 문제 연구소의 <친일파인명사전>, 영웅 중심의 제국주의적 고대사 서술에서 벗어나 상호 연관적인 동아시아사로 해석하는 박노자 교수의 역사 교양서 등이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난 이러한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分斷)이라는 특수적 상황에서는 결국 주류(主流)가 될 수 없는 소수 의견으로 치부되기 일 수이며 심지어는 색안경을 끼고 빨갱이 서적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한국 역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의 모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기대처럼 이 책이 우리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들을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개인적으로 바래본다. 그리고 애국자란 국가의 행동을 무조건 옹호하고 지지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질책하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정의야말로 우리 국사 교육의 모토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