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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 정권 들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사건들이서 뭐부터 꼽아볼지 난감한데, 그중 가장 어이없고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사건이라면 21세기판 필화(筆禍)사건이라 칭할 수 있는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두 사건 때문에 우리의 민주화 시계는 ‘잃어버린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30~40년 전인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갔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나 글 때문에 화를 입는 사건”을 필화사건 - 멀리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인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원인이 되었던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들 수 있고, 가까이는 1970년 소설가 김지하의 <오적(五賊)>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이라 부르는데, 이웃 중국에서는 <문자옥(文字獄)>이라 부른다고 하며, 그 역사가 3,000년에 이를 정도로 꽤나 유구(悠久)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왕예린의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애플북스/2010년 11월)>은 중국 역사상 유명했던 문자옥 사건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시작하면서>에서 인류 역사에 남아 있는 문자옥은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일종의 '사상죄‘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계속해서 역사 속에서 문자옥을 만든 사람도, 희생된 사람도 지식인이었으며, 지식인들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교묘한 말로 없는 죄를 덮어씌우고 사지로 밀어 넣었으며, 때로는 달콤한 말로 기득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반역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배움이 남다르면 관직에 올라 천하를 평안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던 지식인들은 붓을 칼 삼아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즉 문자옥은 권력과 글의 알력이 빚어낸 감옥이었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에서 청나라 마지막이자 가장 유명한 문자옥인 <소보사건>(광서 22년 1896년)까지 총 30건의 문자옥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의 분류와 구성은 맺음말 격인 <마치면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작가는 최초의 문자옥 사건을 서한(西韓)시대 양운 사건으로 보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B.C. 548년 제나라 태사가 (太史) 태사 최서에게 죽음을 당한 사례를 최초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제나라의 대부 최서(崔抒)가 왕인 장공을 살해하고 권력을 쥐자 당시 태사(太史, 사관)는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기록했다고 한다. 최서는 태사를 처형하고 태사의 동생을 후임으로 임명했지만, 동생 또한 최서의 죄악을 그대로 적어 화를 당하고 말았고, 다시 임명된 태사 가문의 마지막 사내 또한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기록하자, 그 강직한 모습에 놀란 최서가 겁을 먹고 태사의 목을 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사건이다. 그동안 알려진 양운보다 400여년 더 앞당겨진 셈인데 작가는 그렇다고 이 사건을 중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문자옥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최서의 사레를 든 것은 이 사건이 "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춘추시대 혹은 그보다 앞선 시대에도 문자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최초로 알려졌던 양운 사건은 어떤 내용일까? 양운은 한나라 소제 때 승상을 지낸 양창의 아들로 어미가 대문호 사마천의 딸인 명문가의 자제였다. 곽광의 모반 사건을 밀고해 평통후로 봉하고 중랑장의 벼슬을 얻었는데, 고발장 사건으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지만 농사를 짓고 집을 지으며 재산을 불리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벗인 안정태수 손희종이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서신을 보내자 그 답으로 내심의 불만을 답신인 <보손회종서>에 쏟아냈고, 결국 이를 알게 된 황제의 분노를 사서 허리를 부러뜨려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 작가는 문자옥의 원인이 된 '문자'의 범위와 문자옥의 유형을 소개하는데, 먼저 유명한 지식인들이 법을 어겨 죽음을 당한 경우로 삼국지(三國志)의 등장인물로 유명한 한나라의 공융을 예로 든다. 한나라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공융은 원담에게 화를 사서 간신히 도망쳐 조조에 의탁하지만 연거푸 조조의 법령과 정책을 비웃고 욕설이 난무한 잡문을 썼다고 하며, 조조의 아들 조비가 원희의 아내 견씨를 맞이하자 공융은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벌했을 때 주공에게 달기를 준 이야기와 함께 조씨 부자를 비웃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고 한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공융이 조조에게 사죄의 서신을 보내지만 조조는 공융이 대신 치려와의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을 빌미로 조조는 공융이 몰래 술을 만들었다며 잡아들여 대역죄, 조정 비방죄, 망령된 말을 함부로 내뱉은 죄로 죽여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글이 유명해져 화를 당한 사례로는 송(宋)나라 시절 정치가 겸 문인으로도 유명했던 구양수(歐陽脩)를 예를 든다. 그당시 명신이었던 범중엄이 모함을 받아 좌천되자 일부 대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언을 했지만 줄줄이 좌천되고, 구양수는 비겁한 술수로 범중엄을 사지로 밀어 넣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고약납에게 격한 어조로 쓴 장문의 서신을 보냈는데, 고약납의 고발로 이 편지를 본 황제가 구양수가 대역죄인의 편을 들고 조정의 대신을 비방했다고 하여 이릉으로 쫓아낸다. 훗날 복귀한 범중엄이 구양수에게 자신의 서기관이 되어줄 것을 청하자 구양수는 "과거에 제가 님의 편에 선 것은 지금의 자리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물러날지언정 결코 님과 함께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다"라고 껄껄 웃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대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은 시론으로 화를 당한 사례로는 일곱 번의 상소로 반대파에 목숨을 잃은 송의 “진동”,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는 죽은 이의 생전 언행을 기록했다가 죽음을 당한 북송의 시인 ‘이지의“ 사건을 소개한다. 작가는 사료의 출처로 25개 왕조를 담은 역사서(二十五史)와 수십 개의 패사(稗史: 일상의 사소한 일을 기록한 야사나 소설 따위)를 참고로 했고 인물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재밌는 사례라면 고구려와도 관계가 있는 당(唐)나라 시절 원만경(元萬頃)의 <격고려문> 사례를 들 수 있다. 당나라의 대장군 이적과 함께 고려 - 책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로 부른다 - 원정에 나선 원만경은 서기로 일하며 보고나 각종 서신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군량미를 요청하는 서신을 고려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아기 위해 남녀 사이의 이별을 노래하는 시로 가장하여 보냈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한가롭게 사랑 타령이나 하다면서 불같이 화를 낸 이적 대장군에게 처형당할 뻔 한 일을 겪기도 했던 그는 대장군 이적의 명으로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격문을 쓰게 되는데, 격문에서 압록강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지킬 줄도 모르고 덤비는 어리석은 족속이 고려라며 한껏 약을 올리는 내용을 적었다. 이 격문대로 고려 조정은 압록강을 사수하고 병력을 크게 강화하자 당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중원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결국 원만경의 격문은 다 된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었고, 그는 그 죄로 영외로 쫓겨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의 이익에 반(反)하고 적국에 도움을 주는 이적(利敵) 행위를 한 셈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은인(恩人)인 셈이지만^^
이러한 문자옥 사례들의 교훈은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인 것처럼 권력을 위해 아무리 글이나 언론을 탄압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모든 진실은 언젠가는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는 법이라는 것은 이 책의 사례들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역사의 진리(眞理)가 아니던가. 그러나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을 이 진리를 권력자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나 보다 - 엄밀히 말하자면 모른 척 하는 것이겠지만 -. 이 책의 출간이 설마 최근의 사태에 맞춘 불순(?)한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 시의적절(時宜適切)함은 기가 막혔다고 평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나라에도 중국 문자옥 못지 않은 필화사건들이 많았으니 그 사례들을 엮은 책도 조만간 나와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