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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 가디언이 심층취재한 줄리언 어산지의 모든 것
데이비드 리.루크 하딩 지음, 이종훈.이은혜 옮김, 채인택 감수 / 북폴리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29세의 호주출신 해커 “줄리언 어산지”.
그냥 사진만 보면 고생이라고는 하나도 해보지 않은 어디 부잣집 도련님처럼 말쑥하게 생겨 총이라고는 잡아보지 못했을 것만 같은, 어디 위험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남자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이 남자가 요새 뉴스에서 가장 큰 핫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 25만 건이 공개되는, 미국 입장에서는 가히 재앙이라고 불릴만한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 일으켜 전 세계를 경악케 했던 해커 그룹 “위키리크스(Wikileaks)”를 이끈 장본인이자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음험한 비밀 작전에 의해 사망한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보니 그에 관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이 출간되고 있는데, 그간의 책들이 줄리언 어산지를 수십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의 음험하기 짝이 없는 세계 지배 전략을 낱낱이 까발린 “영웅”으로 부각시키거나 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사마 빈 라덴”과 맞먹는, 아니 그 이상으로 위험한 테러리스트 쯤으로 몰아가는 흥미 위주의 책이었다면 이번에 출간한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데이비드 리, 루크 하딩 공저/원제 Wikileaks/북폴리오/2011년 8월)>은 영국의 공신력 있는 대표적 일간지이자 “위키리크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가디언(The Guardian)"지가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가 벌여온 일련의 폭로 과정을 심층 취재하여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아낸 작품이란 점에서 그간의 작품들과는 차별성을 보여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첫머리인 “감수의 글(채인택)”과 “서문(앨런 러스브리저)”에서는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가 그동안 해왔던 일련의 폭로 과정들을 우리에게 설명한다. 감수자인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부 부장은 이 책은 어산지와 처음 접촉하고 전 세계에 비밀을 폭로할 계획을 함께 세웠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들이 썼기 때문에 어산지와 위키리크스가 어떻게 하나의 세포에서 하나의 개체로 성장했는지를 가장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위키리크스의 은밀한 내부에 대한 가장 과감한 리크스(유출)이라고 평가한다. <가디언> 편집국장인 ‘앨런 러스브리저“는 이 책은 무명의 한 해커에서 갑자기 세계적 유명 인사로 떠오른, 새로운 미디어의 메시아로, 또는 사이버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자 어느날 갑자기 미국의 제 1 순위 ’공공의 적‘으로 등장한 줄리언 어산지란 인물에 곤한 이야기라고 밝히며, 그가 케냐의 나이로비를 떠나 위키리크스의 규모와 잠재력을 키우려는 야망을 세워나가고 뉴스의 핵(核)으로 급부상한 2010년까지 어산지의 폭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가디언> 지의 일련의 역할들을 먼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책에서 소개된 줄리언 어산지의 약력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자. 줄리언 어산지는 1971년 7월 3일, 호주 북부 퀸즐랜드 주 타운즈빌에서 태어나 연극을 각색하고 연출했던 의붓아버지와 분장, 의상, 무대 디자인을 담당하며 인형극 공연자로 활동하기도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런 가정환경이 그를 변신 전문가, 즉 헤어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꾸고 영국 시골 신사 또는 아이슬란드 어부나 노부인 등 다양한 옷차림으로 나타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붓아버지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속하면서 어산지의 의붓 동생을 두고 이혼소송과 양육권 다툼을 벌였던 어산지 가족은 이혼 재판이 끝난 다음에도 의붓 아버지가 계속 쫓아다니는 바람에 이리저리 도망다녀야 했다고 하는데, 이런 피신 생활은 2010년 위키리크스의 폭로 자료 때문에 미국 첩보 기관의 추적으로 다신 한번 되풀이하게 된다. 열 서너 살쯤 되었을 때 8비트 가정용 컴퓨터를 처음 다루게 된 그는 과학에 대한 흥미가 점점 커지면서 여러 도서관을 돌아다녔고, 곧이어 해킹을 접했으며, 열일곱 살 무렵에는 경찰이 집을 급습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열 여덟살 되던 해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하자 결혼했지만 불안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경찰이 마침내 불법 해커 동아리를 압박해오자 아내는 20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떠났고, 이무렵 우울증으로 한동안 입원했던 어산지는 인간관계란 분명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컴퓨터 작업의 “엄격성”에 매료되면서 본격적인 해커의 길에 나서게 된다. 1991년 무렵 아마도 호주에서 손꼽히는 해커였을 어산지는 여러 공공기관과 통신 업체, 심지어 미군 비밀방위 데이터 네트워크(MILNET)까지 해킹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고, 1994년 호주 연방 경찰에 의해 기소되어, 1996년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비교적 관대한 처분이 내려졌던 어산지는 무보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다양한 인권운동가들과 만나 전세계 인권 유린 사태를 접하게 되고, 훗날 오픈 소스 운동으로 알려진 활동의 하나로 몇몇 무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1999년 초반 그는 누설자들의 웹사이트라는 게념을 제시하고 마침내 위키리크스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그저 평범한 해커에 불과했던 어산지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든 첫 사건은 무엇일까? 바로 어산지 지난 2010년 4월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38분짜리 비디오 파일일 것이다. 2007년 이라크에서 <로이터통신> 소속 현지 기자와 주민들이 미군 헬기의 오인공격으로 숨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던 이 영상에는 무장 헬리콥터가 여기저기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기관포를 발사해 흙먼지가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가운데 몇몇이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과 이 살육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부상자와 그를 구하려는 운전사를 또다시 기관포를 발사하는 끔찍한 장면과 함께 ”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게 잘못이지“라는 헬기 조장사의 육성이 담겨 있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장면임에도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파문이 미약하자 2010년 6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 7만 6,900 건의 미공개 문서들을 공개하면서 어산지는 드디어 ”미국의 공적 1호“가 되고, 2010년 10월에는 ”이라크 전쟁일지“를, 11월에는 ”미국 국방부의 외교 전문“을 공개하기에 이르게 되고 어산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에까지 오르게 된다 - 그러나 2010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에는 압도적인 차로 네티즌 선정 1위로 선정되지만 아깝게도(?)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3위에 오르는 데 그치고 만다 -. 책에는 이처럼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탄생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대 폭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소개와 함께 처음 그저 폭로를 일삼는 ”악동“ 수준에 머물렀던 그가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가디언>지와 같은 주류 언론 매체들과 손잡으면서 자신이 제보받아 유력언론에 제공한 온갖 전쟁 관련 정보와 외교 비밀 문서에 대한 분류, 확인작업, 중요도 결정, 보도 시기까지 언론에 위임하게 되고, 자신은 정보들에 대한 평가를 회피하고 ”위대한 폭로자“로 거듭나게 된 배경들을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미국 외교 비밀 문서 내용 중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P.346~347, 그리고 부록 “미국 외교 대사관 전문” 중 P.416~P.419) - 정확히는 북한 - 도 포함되어 있는데, 젊은 세대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더 이상 북한을 유용하거나 믿을 만한 동맹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또한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는 한 남한이 통치하는 통일한국과 사이좋게 지낼 것이며 미국과 ‘우호적 동맹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요컨대 중국은 골칫거리인 이웃나라 북한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대목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하고 있진 않지만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미 대사관의 평가도 유명한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혈질(hot-tempered)에 대부분의 정책적 이슈들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인 지식과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인물로 외교 정책의 모든 측면에서 능숙했다고 평가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졸 학력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신참이지만 확고한 신념과 견해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반기문 총장은 서로 다른 성향의 대통령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각 대통령의 집권 시절 고속으로 승진했다고 설명했고, 또한 “한국 엘리트 교육의 산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영웅”인가 아니면 위험하기 그지없는 “테러리스트”일까? 이 책은 그런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탈리아의 잡지 <롤링스톤>이 그를 데이비드 보위 같은 전설적인 인물로 그리면서 내린 평가로 대신한다.
“(웹에서부터) 지상으로 내려온 남자.... 사이버펑크로 행세하며 메가톤급 폭발력으로 지구상의 권력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장본인!....올해의 록스타!”(P.399)
그동안 여러 신문들의 기사와 방송 보도 프로그램들, 그리고 몇 몇 책들을 통해서 접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탄생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한쪽으로 편항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세하게 묘사한 책을 읽게 되니 조금이나마 그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다. 앞으로도 그가 부디 21세기에도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잃지 않으려고 온갖 음모들을 획책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추악한 실체를 온 세상에 드러내주기를, 그래서 우리에게 “진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온전히 밝혀 주기를. 그런 그의 폭로가 계속되어 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