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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 날 ㅣ 투모로우 Tomorrow 1
존 마스든 지음, 최소영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호주(Australia)는 GDP 기준으로 13번째 경제 대국(2010년 기준, 한국은 15위)이지만 군사력 면에 있어서는 세계 24위(www.globalfirepower.com 2011년 기준,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 제외. 한국은 7위에 랭크되어 있다)로 중위권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군사력 수위를 다투는 세계 군사 대국들이 모두 북반구(北半球)에 몰려 있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호주로서는 “전쟁”이란 단어와 결코 무관한 그런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국토의 면적이 남한의 77배에 이를 정도 - 그럼에도 인구는 남한의 반이 채 못미치는 2천만 명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 광활한 면적에 천연자원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원 대국이다 보니 탐내볼 만한 그런 곳임에는 분명한데, 실제로 1942년 2월 19일 일본이 호주의 다윈시를 폭격해 200 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고 하며 - “오스트레일리아의 진주만 사태”라고 불리우며 “휴 잭맨”,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2008)”가 바로 이 폭격을 소재로 하고 있다 - , 열도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재앙을 맞은 일본이 생존을 위해 호주를 침공한다는 가상 소설들이 있는 것을 보면 호주에게 있어서 전쟁이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호주의 국민작가라는 “존 마스든”의 <Tommorrow 시리즈 1,2>는 바로 이처럼 호주가 자원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이웃국가에 전격 침략을 당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종의 “가상역사소설”로 호주에서 250만 권 이상이 팔렸고, 3부작짜리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총 7권의 시리즈 중 이번에 동시 출간된 1권 <전쟁이 시작된 날(원제 When the war began/솔/2011년 7월)>과 2권 <악몽의 밤(원제 The deaf of night/솔/2011년 7월)>을 읽게 되었다. 우리와는 낯선 풍경과 장소에서 8명의 청소년들이 벌이는 전쟁 이야기가 꽤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맞은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 중 “엘리”는 친구들 몇몇과 마을 근처 산인 마틴 산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헬”이라는 가마솥 모양의 지대로 캠핑을 가기로 계획한다. 어렵사리 부모님들의 허락을 얻어낸 엘리와 여섯 명의 친구들은 헬 분지와 사탄 계단 아래의 공터에서 즐거운 캠핑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던 어느날 밤 수백 대의 제트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하고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느낀다. 며칠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오던 엘리 일행은 저멀리 들판에 드문드문 여섯 군데 불이 난 것을 목격하고 며칠 전 목격한 제트기를 떠올리며 불길한 기분을 느낀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여기저기 나뒹굴어져 죽어 있는 개들과 가축들의 시체와 어른들 또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텅빈 집들만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전기가 나가 버려 텔레비전, 라디오 뿐만 아니라 전화까지 불통되어 버린 마을, 아이들은 패를 나누어 마을 탐색에 나서는 데 마을 곳곳을 순찰하는 낯선 제복의 군인들을 발견하고는 자신들이 마을을 떠나 있던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국가의 침략을 받아 자신들의 국가가 점령당했음을 깨닫게 된다. 부모가 여행가는 바람에 마을에 남아있던 친구 “크리스”와 합류하여 총 8명이 된 엘리 일행은 잔디 깎는 기계를 휘발유로 폭발시켜 군인들을 해치고는 그들이 캠핑했던 “헬”에 다시 모이게 된다. 그리고 “헬”을 그들의 은신처로 삼고 마을 어른들의 생사를 수소문하는 한편 점령군들을 공격하기로 계획한다.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8명의 남녀 청소년들은 정체불명의 적군과 맞써 자신들의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게릴라 전투에 나선 것이다. 어른들이 마을 행사장에 갖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엘리 일행들은 점령군 수송로로 이용되는 마을의 낡은 다리를 폭파시키기로 계획을 세운다. 우여곡절 끝에 유조차를 다리 밑에 쑤셔 박아 다리를 폭발시키는 큰 전과를 세우지만 그만 친구 하나가 등에 총을 맞아 의식을 잃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결국 그 친구와 남자 친구는 점령군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향하게 되고, 엘리 일행은 이제 여섯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여름 더위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두 친구가 빠져나가면서 게릴라전 활동은 소강상태에 머물게 된다. 병원에 입원한 친구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잠입하게 된 엘리 일행은 그곳에서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친구의 생사와 함께 마을 어른들이 수용소에서 큰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한 점령군에 동조해 앞잡이질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다시 헬 분지로 돌아온 그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을 찾아보기 위해 헬 분지 개울을 건너게 된다. 빽빽한 덤불숲을 지나 드디어 “하비의 영웅들”이라는 게릴라 부대를 창설하여 캠프를 운영 중인 인근 지역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청소년들이었던 자신들과는 달리 남녀 어른들과 아이들로 이뤄진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사는 그들을 이끌고 있는 하비 소령은 엘리 일행을 자신의 부대에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부대 생활을 하던 엘리 일행은 하비의 영웅들의 게릴라 작전에 투입되는데 그들이 비어 있거나 폐기 처분된 탱크나 트럭을 공격하고 전과로 삼는 얼치기 군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때 함정을 파고 있던 점령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엘리 일행은 하비의 영웅들 기지로 돌아오지만 이미 기지 또한 적군에 의해 초토화되어 버리고, 엘리 일행은 다시 헬 캠프로 돌아오게 된다. 라디오에서는 남쪽 지방을 탈환하고 미국 또한 이 전쟁에 간접적인 개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도 엘리 일행의 마을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점령국의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심지어 하비의 영웅들을 이끌던 하비 소령은 점령군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고, 엘리 일행의 전쟁은 갈수록 힘겨워지기만 한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되찾고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즐거운 캠핑을 마치고 돌아온 마을, 집들은 텅텅 비어 버리고 가족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8명의 소년 소녀들이 자신의 마을을 침범한 적군들에 써 전쟁을 벌인다는 이 소설은 전쟁은 일종의 설정일 뿐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어느날 갑자기 깨어 버리자 일순 당황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그 상황에 피동적으로 휩쓸려 가는 게 아니라 적군에게 게릴라전을 불사할 정도로 능동적인 대응에 나서게 된다. 아직은 철이 없기만 한 그들이 그렇게까지 전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허울 뿐인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바로 자신들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 즉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잃고 나니 그 어느 것보다 소중했던 자신들의 “일상”이 주는 행복을 되찾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위험천만한 전쟁을 몸소 수행하면서 스스로 조금씩 변해간다. 학교에서 장난만 일삼던 말썽꾸러기는 멋진 통솔력과 추진력을 발휘하여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고, 얌전하기만 한 소녀는 그 누구보다도 정찰에 적극적이고 폭발에 열광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렸으며, 총을 맞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려내기 위해 적군의 병원에 자진으로 걸어 들어가 모진 고초를 당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한 친구는 입에 술을 달고 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각각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전쟁을 힘겹게 치러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전쟁 전의 철없던 아이들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을 깨닫게 되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동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작품을 썼다는 작가는 자신의 경력을 십분 살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이기도 한 “엘리”의 눈높이와 시각에 맞춰 아이들의 심리 묘사와 성장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이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재미있긴 하지만 물론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게릴라전을 펼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긴 하다. 잔디 깎는 기계를 휘발유로 폭탄처럼 폭발시키거나 이제 겨우 임시 면허를 딴 소녀가 유조차나 불도저를 손쉽게 몰지 않나, 적군이 점령하고 있는 도심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염탐하고, 별다른 거리낌 없이 부상당한 적군의 머리에 총을 쏘는 장면, 그리고 겨우 여덟 명 밖에 되지 않은 소년 소녀들에게 어이없게 테러를 당하는 장면 들은 사실성과는 거리가 먼 그런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쟁의 사실성을 강조한 “전쟁 소설”이 아니라 그런 전쟁 속에서 성장해가는 청춘들의 성장을 그린 “성장 소설”이라고 한다면 몇 가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들은 눈감아 줘도 되지 않을까?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몰입감과 멋진 재미를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한 권 한 권 읽다 보니 과연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에서 아이들의 “전쟁”과 “사랑”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저절로 궁금하게 만드는 재미있었던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어서 후속권들이 출간되어서 아이들 전쟁의 결과를 하루 빨리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