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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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 또는 “호부호자(虎父虎子)”, 즉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멋있는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몇 편 기억이 난다. 우선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코믹 액션 <엄마는 해결사(원제 Stop! Or My Mom Will Shoot/1991)>이 생각나고 집안 내력은 못 속인다고 아버지(숀 코넬리)와 아들(해리슨 포드), 둘 다 유명한 보물 사냥꾼 - 정확히는 도굴꾼(?)이 맞지 않을까? - 인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원제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1989) - 4편인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탈 왕국의 해골 (원제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 에서는 존스의 아내와 아들도 보물 사냥에 나서니 이 집안은 “도굴꾼”이 가업(家業)이 되어 버렸다 - 이 떠오르며, 소설로는 최근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마리아비틀>에서 킬러인 아들과 손자가 위험에 처하자 몇 십 년 만에 총을 든 “킬러 부부”가 생각난다. 이렇게 2대(代)가 함께 나오는 영화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주인공이자 영웅인 아들이나 딸에게는 그들보다 더 뛰어나고 한 편으로는 더 극성맞은 부모가 있다는 “설정”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못말리는 2세대 커플에 한 커플을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의 소설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원제 女王陛下のアルバイト探偵 / 비채 / 2011년 9월)>의 “사이키 부자”를 말이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SAIKI INVESTIGATION)”이라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사이키 료스케”와 함께 탐정 일을 해온 올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 3 학생 “사이키 류”는 자신들에게 종종 사건을 의뢰해온 국가정보기관 책임자에게 부탁해 도쿄대를 뒷구멍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는데, 때마침 사이키 부자에게 국가기관에서 동남아 어디쯤 있는 국가인 ‘라일 왕국’의 공주 “미오”의 경호를 부탁해온다. 귀빈이니 만큼 국가가 나서야겠지만 라일 왕국의 현 국왕이 위독해지면서 차기 왕권을 노린 왕비들과 정치세력이 얼키고 설킨 복잡한 내정과 외교 관계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 없었던 터라 사이키 부자에게 비밀 경호를 부탁해온 것이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아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경호에 나서는 데 귀국 첫날부터 마중 나온 라일왕국 대사관 직원이 암살당하고, 세계적인 킬러들이 나서질 않나, 설상가상으로 라일 왕국의 비밀 종교 단체까지 거들면서 상황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류가 폭탄 테러범에 의해 온 몸에 폭탄을 두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몰리지만 통쾌하게 해결한다 싶더니 미오 공주가 종교 단체에 의해 납치당해 라일 왕국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종교 단체 본부로 끌려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철저한 애프터서비스가 생명인 사이키 부자는 고립무원의 적지인 라일 왕국으로 건너가는데, 고립무원의 적지이다 보니 왕국 정보기관에 쫓기고, 늪에서는 악어 떼를 만나지 않나, 왕국 반군들에게 체포되기도 하는 등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과연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

건물 주인이자 하드보일드 열혈 팬인 찻집 여주인 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들과 염문이나 뿌리고 다니는 한량(閑良) 그 자체인 아버지와 뒷구멍으로 대학 들어갈 꿍꿍이나 하고 있는 아들이라는 “함량 미달” 일 것 만 같은 부자(父子) 콤비가 비밀리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 공주를 경호한다는 이야기인 이 책은 만화풍의 표지 그림처럼 꽤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하드보일드 명작이라는 <신주쿠 상어>의 작가답게 책에는 저격(狙擊), 폭탄 테러, 독침, 도심 추격전 등등 첩보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션씬들이 펼쳐지고, 일본과 라일왕국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쥐는 위기 상황들과 활극이 연속적으로 펼쳐지지만 마치 청소년용 대상으로 한 것처럼 그다지 잔인하거나 참혹 스럽지 않게 묘사 - 작품에서 죽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 - 된다. 이런 활극에 공주와 류의 달콤한 로맨스, 그리고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뻔한 결말, 어쩌면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상황 상황들이 재미있어 이야기에 푹 빠져 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이 책의 재미는 역시 사이키 부자라는 설정이 주는 재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하릴없는 한량일 것 만 같지만 단지 매뉴얼로 공부해봤음에도 헬기를 몰아대고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지극히 침착 - 정확히는 별거 아닌 것처럼 툭툭 말하는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가 맞다고 할까? - 히 대처해 단숨에 해결해버리는 아버지와 역시나 아직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척척 몰면서 일대 추격신을 펼치고 세계적인 킬러들에게도 척척 맞서는 - 물론 여러번 납치도 되고 온몸에 폭탄을 두르는 인질 노릇도 하지만 - 아들, 코믹스러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위기의 순간에서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두 부자가 펼치는 액션씬과 상황극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두 부자의 활약이 이번 단 권으로 끝나는 일회성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 권의 시리즈물 - 이 책은 순서로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로 나오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정도라니 개그 캐릭터 같으면서도 멋지고 화끈한 액션을 펼치는 이 두 부자의 매력에 반한 독자가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묵직한 하드 보일드 액션극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스러울 수 도 있겠지만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꺼리로는 제격인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부디 이 “아르바이트 탐정” 시리즈가 국내에도 계속 출간되어 두 부자의 활약을 좀 더 만나볼 수 있기를, 그리고 지난 2005년에 제작되었다는 <돌아온 아르바이트 탐정> - 재일 교포인 “최양일” 감독이 연출했다고 하는데 최양일 감독이 하드보일드 액션 계열에서는 꽤 이름 높은 감독이라고 한다 - 도 꼭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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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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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不語 怪力亂神(論語 述而篇)

공자(孔子)께서는 괴이함(怪)이나 무력(力), 난동(亂), 귀신(神)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논어 제 6편 술이)

라는 말씀이나 ‘인간도 제대로 못 섬기는 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으며 삶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는 말씀처럼 “괴이(怪異)”는 일상의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그저 공상꺼리에 지나지 않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괴이” 만큼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 꺼리가 또 있을까? 여기에 추리 소설적인 밀실 트릭과 연쇄살인, 기막힌 반전까지 곁들인 “호러 미스터리”라면 공포와 추리소설 장르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만난 것 같은 기대를 절로 하게 만들 것이다. 본격 미스터리와 일본 민속학적 호러를 결합한 “미쓰다 신조(三津田 信三)”의 <산마처럼 불길한 것(원제 山魔の如き嗤うもの/비채/2011년 8월)>이 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그런 작품이라 하겠다. 그것도 포장만 요란하지 막상 먹을 꺼리가 없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그런 싸구려 세트가 아니라 어찌 내 입맛을 알았는지 입에 쩍쩍 달라붙는 그런 맛있는 것만 고르고 골라 담아낸 최고급 선물 세트 같은 거 말이다. 

책은 자신의 고향 마을인 하도에 있는 삼산(三山)에 올라 예로부터 촌락에 전해지는 ‘성인 참배’를 하게 된 “고키 노부요시”의 원고에서 시작한다. 산림 지주 집안인 “고키” 가의 넷째 아들이었던 노부요시는 미뤄뒀던 성인 참배 의식을 치루기 위해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하룻동안 집 뒤편의 삼산(三山)에 있는 사당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이 의식이 그만 길을 잃는 바람에 인근의 금산(禁山) 부름산으로 들어가면서 하루를 묶는 일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길을 헤매다가 산 속에서 발견한 외딴 집을 발견한 노부요시는 하루 묵어가기를 청하는데, 그 집에는 인근 마을인 구마도의 “가스미”가 첫째 아들인 다쓰이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어딘가 수상쩍은 가족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은 노부요시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쓰이치 가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침 식사를 하다 만듯 음식들만 놓여져 있고 문고리가 잠겨 있는 밀실 상태에서의 깜쪽같이 사람들만 사라져 버린 이 괴이한 현상에 놀라 뛰쳐나온 노부요시는 구마도의 또 다른 집안인 “리키리하”의 가주 “가지토리 리키히라”를 만나 설명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말에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이런 노부요시의 괴이한 경험을 담은 원고가 월간 추리 잡지 <서재의 시체>를 발간하는 출판사 “괴상사”로 보내져 오고 편집자 “소후에 시노”는 괴기소설 및 변격 탐정소설 작가이자 일본 각지를 여행하며 괴이담을 수집하고, 가는 곳마다 불가사의한 현상, 기묘한 일, 믿기지 않는 괴이와 마주쳐서는 해결까지 하는 독특한 탐정 “도조 겐야”에게 이 원고를 건넨다. 그런데 이 도조 겐야, 꽤나 특이하다. 괴이담을 수집하면서도 이야기로서 즐길 뿐 결코 해석하려 들지 않는, 그러면서 막상 사건을 맡게 되면 지벌이나 저주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 추리, 검증하는, 이런 검증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야 비로소 괴이로 인정하는 그런 탐정이다. 이런 그의 성향 때문에 “괴이 수집가”, “반(反)탐정”으로까지 불리지만 최종적으로는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서 종종 탐정 의뢰까지 받는 그런 인물이다. 부름산에 존재한다는 “산마”라는 마물과 노부요시의 원고가 흥미롭긴 하지만 겐야는 자신처럼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는 노부요시의 처지에 더 공감하게 된 도조는 이 괴이한 사건을 수사해보기로 결심하고 구마도의 리키히라를 찾아간다. 겐야는 리키히라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원래 명칭이 “금산(金山)”으로 실제 금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금이 나오는 산”. 부름산의 유래와 마물 “산마” 이야기, 그리고 구마도와 하도 가문들 이야기들을 수집하면서 수사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노부요시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산 속 외딴집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출입문이 단단히 잠겨있는 밀실 상태에서 얼굴에 불(火)이 붙어 있는 상태인 시체는 그 지역 동요(童謠) 속 “백색지장님 오른다” 구절처럼 어딘가에 올라가는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시체는 가스미 가의 둘째 아들인 “다쓰이”로 밝혀지고, 겐야는 밀실 트릭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가 중요하다는 자신의 지론대로 밀실을 만든 이유에 집중해서 수사를 해나간다. 그런데 살인사건은 한 건으로 그치지 않고 가스미 가 아들들이 줄줄이 살해당하고, 겐야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리키히라까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것도 엽기적이고 끔찍한 방법으로.

처음에는 책 읽는 진도(進度)가 꽤나 더뎠다. 20 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영 헷갈려서 첫 부분의 “주요 등장 인물”을 꽤나 자주 열어봐야 했고,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다른 일본 특유의 토속 전설에 약간 거부감이 있었던 터라 낯설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1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고키 노부요시의 원고도 분위기는 공포스럽게 몰아가고 있지만 그다지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지루함마저 느껴졌다.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괴짜 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불가사의한 현상, 즉 괴이(怪異)를 이성적으로 해결해낸다는, 그렇다고 모든 괴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지를 벗어나는 일은 괴이로 인정할 줄 안다는 설정이 꽤나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와 함께 과연 노부요시의 원고에 등장하는 괴이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절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이지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렇다고 안이하게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한심하다.' 
 

또한 공포도 겐야가 마을 사람들을 번갈아 만나 부름산에 얽힌 각종 괴담을 수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우리의 “고려장(高麗葬)”을 연상케 하는 “기로전설(棄老傳說)”, 즉 부름산에서 산마(山魔)를 만나지만 그 산마가 바로 자신이 버린 어머니였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사내이야기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대로 산을 내려오지만 결국 뒤돌아보는 사내의 눈에 산마가 된 수많은 여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일본 영화 <주온>의 한 장면이 연상되어 목덜미가 다 서늘해질 정도로 무서웠다. 또한 가스미 가 아들들이 구마도 지방 전래동요에 맞춰 하나씩 살해당하는 대목에서는 오래전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의 공포스러움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읽는 내내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미궁 속으로 빠져 버리는 사건들, 중간에 겐야가 정리하여 제시한 사건에 대한 의문점도 40여 가지가 넘을 정도로 의문투성이의 사건이 과연 어떻게 해결될까 싶어 자꾸만 뒷 페이지를 열게 만들 정도로 궁금해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게 되면 누가 범인일까 미리 예측해보기도 하는데, 이 책은 살인 사건이 거듭될 수 록 더 혼란스럽고 기괴해져 도저히 범인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그래서 더 결말이 궁금해지는 그런 미스터리라 할 수 있겠다. 도대체 저 많은 의문거리를 어떻게 풀어낼까 혹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엉뚱한 결말로 끝내는 것일까 하는 의심도 잠시 마지막에 모든 의문 하나하나에 해답을 제시하는 겐야의 추리 솜씨에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명쾌하게 결론 맺는다. 읽고 나서도 왠지 동의하기 어려운 그런 결말이 아닌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깔끔한 결말이 마치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어려운 수학 문제를 깔끔하게 풀어냈을 때의 그런 통쾌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이처럼 밀실살인과 연쇄 살인, 짐작하기 힘든 기막힌 플롯과 반전, 명쾌한 결말 등 완벽한 추리소설적 구성을 기본 얼개로 하면서도 상상하면 할 수 록 점점 더 무서워지는 - 늦은 밤에 읽어 결국 꿈에 산마가 나타나는 악몽을 꾸었다. 특히 수십 수백 명의 산마가 얼굴을 맞대고 나를 노려보는 끔찍한 악몽 말이다 - 공포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책, 호러와 미스터리의 재미를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앞서 말한대로 최고급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었다. 

다른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서평들을 읽어 보니 대부분 호평인 것 보면 이 책에 대한 재미가 나만의 과장된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요코미조 세이시”의 <킨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는 분도 있는데, <킨타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삼수탑>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아 나로서는 뭐라 판단할 수 가 없을 것 같다.  또한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기괴한 괴담들도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이기심과 공포심이 만들어낸 한낱 거짓에 불과하다는, 어쩌면 이 책의 주제와 닮아 있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항설백물어>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나또한 최근 <속항설백물어(비채/2011년 7월)>을 읽었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비슷한 주제와 이야기 구조이지만 단편 모음인 <항설백물어>는 좀 더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고, 이 책은 한 가지 사건 뿐이어서 다채로움은 없지만 좀 더 심도 있고 구체적인 사건 전개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할까? 두 권 다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어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의미 없지만 공포스러움과 추리 소설로서의 플롯과 반전의 구성은 <산마처럼 비웃는 것>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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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타 이모탈 시리즈 5
앨리슨 노엘 지음, 김은경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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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노엘”의 <이모탈 시리즈>의 첫 권 <에버모어(북폴리오)>를 읽고 서평 등록한 날이 2011년 8월 29일이니 5권 <나이트 스타(원제 Night Star/북폴리오/2011년 8월)>까지 근 한달 만에 이 시리즈 5권을 숨 가쁘게 읽어왔다.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 의외로 재미있다는, 그리고 현대판 신화(神話)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이 시리즈, 이제 결말까지 한 권만 남기고 있어 왠지 아쉬움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권이 나오면 같이 읽을까 하는 생각에 미뤄뒀다가 4권에서 주인공 “에버”의 절친 “헤이븐”이 적(敵)으로 돌아서면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해서 금세 책장을 열 수 밖에 없었다.

4권 <다크 플레임>에서 연인(戀人)이자 에버를 줄곧 괴롭혀왔던 “로만”이 “에버”와 “주드”의 손에 죽자 “헤이븐”은 에버에게 분노와 저주를 퍼붓고는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하면서 로만을 대신한 에버의 강력한 적으로 돌변한다. 주드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헤이븐을 경계하던 어느날, 에버는 로만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 줄 알았던 데이먼의 해독제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다. 바로 싸움 와중에 해독제 병이 깨지면서 묻어 버린 로만의 셔츠가 바로 그 방법이다. 에버는 지식의 전당을 찾아가 로만의 셔츠를 구하는 방법을 묻지만 전당은 묵묵부답이고 지친 마음에 데이먼을 찾아가는데, 그 곳에서 데이먼의 그녀에게 감춰온 비밀, 즉 전생(前生)인 남부 노예 시절에 데이먼이 에버를 가족에게서 잔인하게 떼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로만의 음모와 전생의 또다른 연인 주드의 등장으로 여러번 흔들렸지만 데이먼에 대한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던 에버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데이먼의 곁에서 떠나 버린다. 과연 에버에게 운명의 상대는 데이먼인가 아니면 주드인가. 마음의 혼란은 더욱 깊어가면서 괴로움 또한 커져가는 에버에게 헤이븐이 찾아온다. 엘릭서를 요구하는 헤이븐와 엘릭서를 로만의 셔츠와 맞바꾸자는 에버 사이에 한판 싸움이 벌어지고, 에버는 섀도우 랜드로 추락하여 그곳에서 데이먼이 숨기고자 했던 비밀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오해와 혼란에서 회복하고 데이먼이 자신의 진실한 운명이라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에버는 서머랜드에서 알 수 없는 노래를 읊조리는 이상한 노파를 만나게 된다. 과연 ‘그녀가 가보지 않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곳’의 의미는 무엇일까? 원하는 것을 모두 창조해 낼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공간 “서머랜드”에 짙게 드리워진 이 불길한 기운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야기는 시리즈의 대단원인 6권 <에버래스팅(원제 Everlasting / 2011년 11월 국내 출간 예정)>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간다. 

이번 5권은 적으로 돌아선 헤이븐과의 갈등, 데이먼의 감춰진 비밀이 들어나면서 혼란스러움에 데이먼과 주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에버의 심리,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의문의 인물 등 전권 들 보다도 얇은 분량(350 여 쪽) 임에도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마치 결말을 위해 이야기들을 응축시켜 놓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졌을 에버의 데이먼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쉽게 흔들릴 수 있다니 전권들 못지 않은 에버의 우유부단함이 역시나 실망스럽고 답답하기까지 하지만 - 아마도 이런 점이 내가 로맨스 소설을 꺼려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굳건할 것 만 같은 사랑이 자그마한 오해로 유리잔처럼 금세 깨져버리고 서로 확인해보지 않고 주변만 맴도는 질질 늘어지는 사랑이야기들이 영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 은 시련과 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는, 제목 그대로 완전한 ”불멸의 사랑(Immortal)"을 이루기 위한 과정 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로맨스가 아직도 나에게는 익숙하진 않지만, 이제는 갈수록 점입가경에 이르는 이야기의 결말이 도대체 어떻게 맺어질지, 그리고 에버와 데이먼의 불멸의 사랑은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해서 마지막 권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과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시리즈이라 할 수 있겠다. 아직 최종 결말이 나오지 않았고 <이모탈 시리즈>가 다른 시리즈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성취와 재미를 갖고 있는지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아 비교할 수 는 없어 성급한 평가일 수 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라면 나처럼 무딘 중년 남성 독자들이 읽어봐도 재미있어 할 만한 그런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11월에 출간된다는 마지막 결말 <에버래스팅>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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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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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문학이 태동하던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특이(特異)”한 문학인을 뽑으라면 제일 먼저 시인 “이상”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특이”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한국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라는 그의 “천재성(天才性)”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근 1 세기가 지난 지금 - 작년(2010년)이 그의 탄생 100주년의 해였다 - 도 난해(難解)하기만 그의 시(詩)에 대한 평가가 나와 같은 범인(凡人)들에게는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엇갈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의 난해한 시와 파란만장 - 시 만큼 이해하기 힘든 - 했던 그의 삶 또한 화제꺼리가 되기도 하는 데, 그가 1933년 발표한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를 모티브로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건축 기사로 재직했다는 점을 결합한 팩션 미스터리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이상과 야수파 곱추 화가 구본웅, 그리고 기생 금홍의 충격적인 성 스캔들을 그린 영화 <금홍아 금홍아(김유진 감독/1995)>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에 읽은 임종욱 작가의 <이상은 왜? 1,2(자음과모음/2011년 5월)>은 역시나 베일에 쌓여 있는 이상의 죽음, 즉 1936년 9월 3일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이듬해 1937년 2월 사상 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3월에 건강 악화로 출감되어 4월 17일 오전 4시,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향년 만 26년 7개월의 나이로 객사(客死)한 그의 마지막 생애 7개월 여를 팩션 미스터리 형식으로 구성해낸 소설이다. 

책은 1936년 이상이 도일(渡日)하던 시기와 2009년 현재, “나(정문탁)”가 이상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가 겪게 되는 살인 사건이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936년 9월 상순 어느날, 이상은 아내가 몰래 넣어둔 지폐를 여행 경비 삼아 경성을 떠나 평생을 각혈과 과로에 시달린 심신이 안식과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여긴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간다. 동경 시내 허름한 하숙집에 여장을 푼 이상은 자신의 전처(前妻)이자 조선을 들썩이게 한 성 스캔들의 대상이었던 “금홍”과 그녀의 새 서방 “방지온”등을 만난다. 그때 백범 김구가 이끄는 암살단 소속으로 여러 건의 일본 고위층 암살로 악명(惡名) 이 높았던 암호명 “까마귀”의 예고장이 일본 천왕가 인근 야스쿠니 신사에서 발견되고 까마귀가 일본 천왕 암살을 예고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동경은 벌집 쑤신 듯이 발칵 뒤집히고, 1920년 간도 학살로 일선 부대에서 쫓겨나 한직(閒職)에 머물고 있던 “기무라” 대위에게 까마귀 체포를 위한 특별 수사 본부가 맡겨진다. 그 무렵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들과 외국인들의 행적을 조사하던 기무라와 수사팀은 까마귀를 소재로 한 “오감도(烏瞰圖)”라는 시(詩)를 발표했었고 마치 암호(暗號)처럼 난해하기만 한 시를 썼던 이상을 주목하고 그의 주변에 수사요원들을 배치해 이상을 감시한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될 뿐 빼앗긴 조국에 대해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이상은 방지온에게서 건네 받은 “백범일지(白凡日誌)”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참가했던 과거를 괴로워하는 하숙집 주인, 그리고 밤중에 그를 찾아온 “까마귀”를 통해 조선의 현실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한편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2009년 현재, 소설가인 “나”는 이상의 마지막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하게 되고, 한국에서 같이 동문수학했던 일본인 교수에게서 숙소와 함께 그의 연구를 도와줄 “가와무라 소조”라는 여학생을 소개받게 된다. 소조와 함께 그녀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신사(神社)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이상”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位牌)를 발견하게 되고, 이상과의 인연의 한 자락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소조의 친한 동생이자 재일교포 3세 “도리타니 다다오”가 같은 연극 동아리 선배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자 확인은 미뤄둔채 그 살인사건에 휘말리고야 만다. 과연 이상의 마지막 생애 7개월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9년 현재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이상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페이지를 거듭할 수 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독립운동도 가담했다는 사실도 없고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관을 담은 글 또한 찾아 볼 수 없는 이상이 사상 불온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불과 2개월 여 만에 이국 땅인 동경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상의 죽음은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이런 이상의 죽음이라는 사실(事實)에 당시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본 천왕 시해 기도를 결부시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런 미스터리가 숨어 있었다는 “팩션 미스터리”로 재구성해내고, 거기에 2009년 현재 발생한 살인사건이 사실은 재일 교포가 우익 열혈 청년을 살해한 사건으로 위장하여 한일(韓日)간에 새로운 갈등을 야기해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極右) 세력의 음모가 숨어 있다는, 그리고 그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상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얽힌 비밀도 함께 밝혀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책은 두 권 800 여 페이지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고 재미도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우선 1936년과 2009년의 빈번한 시점 교차를 들 고 싶다. 책에서는 1936년의 이상과 기무라 대위, 그리고 현재 정문탁, 세 가지 시점으로 교차되면서 전개되는데 너무 시점 변화가 빈번해서 한 쪽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이렇게 별개의 사건들을 교차하는 방식의 서술을 싫어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 탓으로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딱 2% 부족한 이야기를 들 고 싶다. 작가는 충실한 고증과 조사를 통해 이상의 마지막 생애 7개월의 미스터리를 재현해냈다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충격적인 결말은 아닌 오히려 밋밋함마저 느껴졌고, 2009년 현재 시점에서 정문탁이 겪게 되는 살인 사건의 결말과 이상의 죽음이 남긴 비밀도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수준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읽으면서 이상의 정체가 사실은 전설의 암살자 “까마귀”였다는, 그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도 천왕 암살을 위해서인데 발각되어 고문 끝에 죽었다는, 그가 남긴 난해하기만 시들이 사실은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에게 보내는 암호문 - 책에서도 이상이 암호문 형식으로 썼다는 가상(假想)의 시가 등장하긴 하지만 - 이었을 것이라는, 지극히 만화(漫畵)적인 상상을 하면서 읽었기 때문일까? 이렇게 써놓으니 자기 혼자 지레 짐작하고 그 짐작에 맞지 않다고 실망스럽다고 투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좀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이야기를 기대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대이다 - 만큼 제대로 마무리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하는 독자의 푸념 정도로 이해해 주길 바래본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부담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팩션 미스터리 소설이다. 임종욱 작가 작품은 <1780 열하(생각의 나무/2008년 8월)> - 이 작품도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에 숨겨진 비밀을 그린 팩션 미스터리 소설인데 여기에도 “정문탁”이 등장한다. - 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데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팩션 소설들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여서 팩션 장르를 즐겨 읽는 나로서는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그런 작가로 생각된다. 전작보다 이번 작품이 훨씬 나은 재미와 성취를 보여준 만큼 앞으로 더 멋지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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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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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로 유명한 <미지와의 조우 (원제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는 UFO 또는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 분류 방법(근접조우; close encounter)에서 3번째 단계, 즉 “살아있는 존재(animate beings; 여기서는 UFO와 외계인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의 관측과 만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그런데 UFO나 외계인을 시각적으로 목격(관측)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적 교감” 방식도 이런 분류 방법에 포함시키는 데, "제3종 근접조우“에서도 "F. 존재나 UFO가 관측되지 않았지만 대상자는 어떠한 ‘지적 교감’을 경험”이라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지만, 별도로 분류하여 “제5종 근접조우”, 즉 외계 생명과 “텔레파시”, “자동기술” 방법 등을 통해 의도적, 자발적, 인간 주도적 상황 하에 만들어진 공동 양방향의 접촉 사건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외계인과의 만남 분류 서두부터 설명하는 이유는 영국의 SF 소설가 “존 윈덤”의 <초키(원제 Chocky / 북폴리오/2011년 9월)>가 바로 이 “제5종 근접조우”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상상 친구” 정도로만 여겼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교감을 다룬 이 소설,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열 두 살이 된 소년 “매튜”가 나이에 맞지 않게 혼잣말을 시작한 것은 4월 말, 5월 즈음부터였다.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하루, 스물 네 시간이라고 설명하면서 누구와 다투는 듯한 말투가 들려 살펴보니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마음에 걸려 아내에게 물어 보니 2,3 주 전에도 그런 행동을 했었다고 하니 꽤 된 일이다. 처음에는 매튜의 여동생인 “폴리”의 상상 친구 - 보통 취학(就學)전 아이들이 가상의 친구를 실제로 존재하는 친구인 것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 였던 “피프” 정도이겠거니 했는데 대화 주제가 “이진법”이나 “우주공학” 등 아이가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지식 수준을 넘는 주제였다. 매튜는 “초키”라는 존재가 자신에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하는데, 뭔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나(아버지 데이비드)”는 아내(어머니 “메리”)를 설득해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매튜와 이야기를 나눠 보게 한다. 친구는 단순한 상상 친구가 아닌 일종의 “귀신 들림” 현상으로 진단하면서 흥미를 보이는데, 나와 아내는 그런 진단이 영 마땅치가 않아 좀 더 두고 보기로 한다. 그런데 갈수록 매튜의 기행(奇行)은 심각해져서 변변치 않던 그림 실력이 갑자기 “천재화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아져 버리고, 수영이라고는 하룻 나절 밖에 배우지 않은, 그것도 수영이 싫어 열의를 보이지 않고 숨기만 했던 매튜가 동생이 익사할 위험에 처하자 놀라운 수영 솜씨를 발휘해 구해내어 지역 신문에 보도될 정도가 되자 “나”(아버지 데이비드)와 아내(어머니 메리)는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정신과 의사 친구의 소개로 권위자를 만난 후 매튜는 “정상”으로 돌아온 듯처럼 보여 한시름을 놓지만 매튜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과연 매튜는 무사히 돌아올까? 그리고 “초키”는 어떤 존재일까? 매튜에게만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 읽으면서는 이 책이 아이가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사물과 세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초키”는 그런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겪어가면서 성장통을 자신을 대신하여 겪게 하는 의인화된 존재, 즉 상징적 존재를 의미하는 일종의 “성장 소설”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지가 거듭될 수 록 주인공 매튜에게 미스터리한 일들이 발생하고 “초키”라는 존재가 비현실적인 존재이거나 또는 상징적 존재가 아닌 “실재(實在)”하는 존재, 그것도 외계 지성체(知性體)였다는 결말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책 홍보 글에 직접 언급하고 있어 여기서도 그냥 밝혀둔다 - 이 꽤나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 책이 단지 앞에서 언급한 “제5종 근접조우”를 소재로 한 외계인과 지구 소년의 만남이라는 소재가 주는 의외성과 충격성만을 강조 -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소재여서 “식상함”마저 들었을 것이다 - 하는데 있지 않고 그동안 “우주전쟁”이라는 대립관계로만 주로 설정되었던 외계인을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운명의 존재로 설정하고, 또한 그들의 시각에서 과학기술의 진보라는 미명하에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로 언젠가는 파국에 다다를 현 인류문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는 것도 주목해볼 만 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제 의식이나 경향은 외계인들이 인류의 미래를 진실로 염려하고 있다는 몇몇 책 - 대표적으로 프랑스 농부 “빌리 마이어”가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온 “샘 야제”라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기록했다는 <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오다카 요시야 저/시어사/1990년)를 들 수 있다. 출간된 책인데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절판된 것 같다 - 들이 있긴 한데 실제 외계인을 만났는지 진위(眞僞) 자체가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어 “믿거나 말거나” 식 화제꺼리에 불과하다면, 이 책에서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전에 이런 논란을 차단하여 주제에 올곧이 집중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을 SF 소설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소재는 분명 “SF"적이긴 하지만 기준이 애매해서 메시지로만 판단하면 우리보다 월등한 지성체, 이 책에서처럼 외계인일 수 도 있고 아니면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神)들이나 창조주(創造主), 고대의 영령(英靈)들, 또는 인격화된 지구, 즉 “가이아” 등 어떤 것으로 대체해도 될 그 어떤 존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일종의 “신비주의(神秘主義)” 소설 또는 “영지주의(靈智主義)” 소설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보다 시각적인 SF 장치나 초키의 명확한 정체를 기대했던 SF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 도 있겠고, 이런 소재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메시지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는 영 마땅치 않을 그런 책일 수 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메시지에 올곧이 동의할 수 는 없지만, 소재와 이야기, 모든 면에서 40 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신선하고 색다른 재미를 선보이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니 책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어떤 시각적인 효과가 담기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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