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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로 유명한 <미지와의 조우 (원제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는 UFO 또는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 분류 방법(근접조우; close encounter)에서 3번째 단계, 즉 “살아있는 존재(animate beings; 여기서는 UFO와 외계인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의 관측과 만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그런데 UFO나 외계인을 시각적으로 목격(관측)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적 교감” 방식도 이런 분류 방법에 포함시키는 데, "제3종 근접조우“에서도 "F. 존재나 UFO가 관측되지 않았지만 대상자는 어떠한 ‘지적 교감’을 경험”이라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지만, 별도로 분류하여 “제5종 근접조우”, 즉 외계 생명과 “텔레파시”, “자동기술” 방법 등을 통해 의도적, 자발적, 인간 주도적 상황 하에 만들어진 공동 양방향의 접촉 사건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외계인과의 만남 분류 서두부터 설명하는 이유는 영국의 SF 소설가 “존 윈덤”의 <초키(원제 Chocky / 북폴리오/2011년 9월)>가 바로 이 “제5종 근접조우”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상상 친구” 정도로만 여겼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교감을 다룬 이 소설,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열 두 살이 된 소년 “매튜”가 나이에 맞지 않게 혼잣말을 시작한 것은 4월 말, 5월 즈음부터였다.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하루, 스물 네 시간이라고 설명하면서 누구와 다투는 듯한 말투가 들려 살펴보니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마음에 걸려 아내에게 물어 보니 2,3 주 전에도 그런 행동을 했었다고 하니 꽤 된 일이다. 처음에는 매튜의 여동생인 “폴리”의 상상 친구 - 보통 취학(就學)전 아이들이 가상의 친구를 실제로 존재하는 친구인 것처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 였던 “피프” 정도이겠거니 했는데 대화 주제가 “이진법”이나 “우주공학” 등 아이가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지식 수준을 넘는 주제였다. 매튜는 “초키”라는 존재가 자신에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하는데, 뭔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나(아버지 데이비드)”는 아내(어머니 “메리”)를 설득해 정신과 의사인 자신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매튜와 이야기를 나눠 보게 한다. 친구는 단순한 상상 친구가 아닌 일종의 “귀신 들림” 현상으로 진단하면서 흥미를 보이는데, 나와 아내는 그런 진단이 영 마땅치가 않아 좀 더 두고 보기로 한다. 그런데 갈수록 매튜의 기행(奇行)은 심각해져서 변변치 않던 그림 실력이 갑자기 “천재화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아져 버리고, 수영이라고는 하룻 나절 밖에 배우지 않은, 그것도 수영이 싫어 열의를 보이지 않고 숨기만 했던 매튜가 동생이 익사할 위험에 처하자 놀라운 수영 솜씨를 발휘해 구해내어 지역 신문에 보도될 정도가 되자 “나”(아버지 데이비드)와 아내(어머니 메리)는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정신과 의사 친구의 소개로 권위자를 만난 후 매튜는 “정상”으로 돌아온 듯처럼 보여 한시름을 놓지만 매튜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진다. 과연 매튜는 무사히 돌아올까? 그리고 “초키”는 어떤 존재일까? 매튜에게만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 읽으면서는 이 책이 아이가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사물과 세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초키”는 그런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겪어가면서 성장통을 자신을 대신하여 겪게 하는 의인화된 존재, 즉 상징적 존재를 의미하는 일종의 “성장 소설”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지가 거듭될 수 록 주인공 매튜에게 미스터리한 일들이 발생하고 “초키”라는 존재가 비현실적인 존재이거나 또는 상징적 존재가 아닌 “실재(實在)”하는 존재, 그것도 외계 지성체(知性體)였다는 결말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책 홍보 글에 직접 언급하고 있어 여기서도 그냥 밝혀둔다 - 이 꽤나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 책이 단지 앞에서 언급한 “제5종 근접조우”를 소재로 한 외계인과 지구 소년의 만남이라는 소재가 주는 의외성과 충격성만을 강조 -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소재여서 “식상함”마저 들었을 것이다 - 하는데 있지 않고 그동안 “우주전쟁”이라는 대립관계로만 주로 설정되었던 외계인을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운명의 존재로 설정하고, 또한 그들의 시각에서 과학기술의 진보라는 미명하에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로 언젠가는 파국에 다다를 현 인류문명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는 것도 주목해볼 만 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제 의식이나 경향은 외계인들이 인류의 미래를 진실로 염려하고 있다는 몇몇 책 - 대표적으로 프랑스 농부 “빌리 마이어”가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온 “샘 야제”라는 외계인과의 만남을 기록했다는 <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오다카 요시야 저/시어사/1990년)를 들 수 있다. 출간된 책인데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절판된 것 같다 - 들이 있긴 한데 실제 외계인을 만났는지 진위(眞僞) 자체가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어 “믿거나 말거나” 식 화제꺼리에 불과하다면, 이 책에서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전에 이런 논란을 차단하여 주제에 올곧이 집중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을 SF 소설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소재는 분명 “SF"적이긴 하지만 기준이 애매해서 메시지로만 판단하면 우리보다 월등한 지성체, 이 책에서처럼 외계인일 수 도 있고 아니면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神)들이나 창조주(創造主), 고대의 영령(英靈)들, 또는 인격화된 지구, 즉 “가이아” 등 어떤 것으로 대체해도 될 그 어떤 존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일종의 “신비주의(神秘主義)” 소설 또는 “영지주의(靈智主義)” 소설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보다 시각적인 SF 장치나 초키의 명확한 정체를 기대했던 SF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 도 있겠고, 이런 소재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메시지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는 영 마땅치 않을 그런 책일 수 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메시지에 올곧이 동의할 수 는 없지만, 소재와 이야기, 모든 면에서 40 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신선하고 색다른 재미를 선보이는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니 책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어떤 시각적인 효과가 담기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