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부전자전(父傳子傳)” 또는 “호부호자(虎父虎子)”, 즉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멋있는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몇 편 기억이 난다. 우선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코믹 액션 <엄마는 해결사(원제 Stop! Or My Mom Will Shoot/1991)>이 생각나고 집안 내력은 못 속인다고 아버지(숀 코넬리)와 아들(해리슨 포드), 둘 다 유명한 보물 사냥꾼 - 정확히는 도굴꾼(?)이 맞지 않을까? - 인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원제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1989) - 4편인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탈 왕국의 해골 (원제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 에서는 존스의 아내와 아들도 보물 사냥에 나서니 이 집안은 “도굴꾼”이 가업(家業)이 되어 버렸다 - 이 떠오르며, 소설로는 최근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마리아비틀>에서 킬러인 아들과 손자가 위험에 처하자 몇 십 년 만에 총을 든 “킬러 부부”가 생각난다. 이렇게 2대(代)가 함께 나오는 영화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주인공이자 영웅인 아들이나 딸에게는 그들보다 더 뛰어나고 한 편으로는 더 극성맞은 부모가 있다는 “설정”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못말리는 2세대 커플에 한 커플을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의 소설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원제 女王陛下のアルバイト探偵 / 비채 / 2011년 9월)>의 “사이키 부자”를 말이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SAIKI INVESTIGATION)”이라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사이키 료스케”와 함께 탐정 일을 해온 올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 3 학생 “사이키 류”는 자신들에게 종종 사건을 의뢰해온 국가정보기관 책임자에게 부탁해 도쿄대를 뒷구멍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는데, 때마침 사이키 부자에게 국가기관에서 동남아 어디쯤 있는 국가인 ‘라일 왕국’의 공주 “미오”의 경호를 부탁해온다. 귀빈이니 만큼 국가가 나서야겠지만 라일 왕국의 현 국왕이 위독해지면서 차기 왕권을 노린 왕비들과 정치세력이 얼키고 설킨 복잡한 내정과 외교 관계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 없었던 터라 사이키 부자에게 비밀 경호를 부탁해온 것이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아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경호에 나서는 데 귀국 첫날부터 마중 나온 라일왕국 대사관 직원이 암살당하고, 세계적인 킬러들이 나서질 않나, 설상가상으로 라일 왕국의 비밀 종교 단체까지 거들면서 상황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류가 폭탄 테러범에 의해 온 몸에 폭탄을 두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몰리지만 통쾌하게 해결한다 싶더니 미오 공주가 종교 단체에 의해 납치당해 라일 왕국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종교 단체 본부로 끌려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철저한 애프터서비스가 생명인 사이키 부자는 고립무원의 적지인 라일 왕국으로 건너가는데, 고립무원의 적지이다 보니 왕국 정보기관에 쫓기고, 늪에서는 악어 떼를 만나지 않나, 왕국 반군들에게 체포되기도 하는 등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과연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
건물 주인이자 하드보일드 열혈 팬인 찻집 여주인 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들과 염문이나 뿌리고 다니는 한량(閑良) 그 자체인 아버지와 뒷구멍으로 대학 들어갈 꿍꿍이나 하고 있는 아들이라는 “함량 미달” 일 것 만 같은 부자(父子) 콤비가 비밀리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 공주를 경호한다는 이야기인 이 책은 만화풍의 표지 그림처럼 꽤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하드보일드 명작이라는 <신주쿠 상어>의 작가답게 책에는 저격(狙擊), 폭탄 테러, 독침, 도심 추격전 등등 첩보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션씬들이 펼쳐지고, 일본과 라일왕국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쥐는 위기 상황들과 활극이 연속적으로 펼쳐지지만 마치 청소년용 대상으로 한 것처럼 그다지 잔인하거나 참혹 스럽지 않게 묘사 - 작품에서 죽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 - 된다. 이런 활극에 공주와 류의 달콤한 로맨스, 그리고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뻔한 결말, 어쩌면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상황 상황들이 재미있어 이야기에 푹 빠져 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이 책의 재미는 역시 사이키 부자라는 설정이 주는 재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하릴없는 한량일 것 만 같지만 단지 매뉴얼로 공부해봤음에도 헬기를 몰아대고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지극히 침착 - 정확히는 별거 아닌 것처럼 툭툭 말하는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가 맞다고 할까? - 히 대처해 단숨에 해결해버리는 아버지와 역시나 아직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척척 몰면서 일대 추격신을 펼치고 세계적인 킬러들에게도 척척 맞서는 - 물론 여러번 납치도 되고 온몸에 폭탄을 두르는 인질 노릇도 하지만 - 아들, 코믹스러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위기의 순간에서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두 부자가 펼치는 액션씬과 상황극이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두 부자의 활약이 이번 단 권으로 끝나는 일회성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 권의 시리즈물 - 이 책은 순서로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로 나오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정도라니 개그 캐릭터 같으면서도 멋지고 화끈한 액션을 펼치는 이 두 부자의 매력에 반한 독자가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묵직한 하드 보일드 액션극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스러울 수 도 있겠지만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꺼리로는 제격인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부디 이 “아르바이트 탐정” 시리즈가 국내에도 계속 출간되어 두 부자의 활약을 좀 더 만나볼 수 있기를, 그리고 지난 2005년에 제작되었다는 <돌아온 아르바이트 탐정> - 재일 교포인 “최양일” 감독이 연출했다고 하는데 최양일 감독이 하드보일드 액션 계열에서는 꽤 이름 높은 감독이라고 한다 - 도 꼭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