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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대폭발 1 ㅣ 나남창작선
로재성 지음 / 나남출판 / 2012년 4월
평점 :
2011년 11월 18일 “국립방재연구원”- 사실 이전까지는 이런 기관이 있었는지 존재조차 몰랐었다 - 에서 보도자료 한 건을 발표했고 인터넷 신문들이 이 자료로 도배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보도 자료 내용은 바로 “백두산 화산 폭발” 모의실험 결과였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유해물질 확산 대기모형(ALOHA)’에 따라 실시한 모의실험 결과에 따르면 겨울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8시간 만에 화산재가 울릉도를 뒤덮고 12시간 뒤에는 일본에 도달해 동북아의 항공운항이 마비된다는 관측이 나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2012년 2월 20일 KBS 교양 프로그램 <과학 카페; 236회 사이언스 이슈 “백두산 화산 대폭발”>편에서 이 내용을 다시 한번 다루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백두산 폭발 규모를 2010년 4월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수십 배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이며, 특히 백두산 천지에 담긴 20억 톤의 물이 지하 마그마와 만나게 되면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백두산 폭발”이 그저 흥미 거리의 과학적 이슈였으면 좋겠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예로 최근 몇 년 사이 백두산 주변에 지진이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2002년을 기점으로 한해 수백 회 이상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하며, 백두산 높이가 2002년 이후 마그마 웅덩이가 팽창해 약 10cm가 높아졌고, 2006년 10월 1일 러시아 인공위성은 백두산 표면 온도가 확연하게 높아졌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관측 결과를 토대로 남한 지질학자는 백두산이 2, 3년 이내에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양강도와 함경북도 주민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걱정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북한 당국이 빠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하니 남북한 모두 백두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백두산이 폭발하면 동북아에 재앙 온다”, 한국일보. 2012.5.4. 발췌). 어쩌면 “백두산 폭발”은 근시일 이내에 우리들에게 일어날 가장 실현 가능한 “대재앙(大災殃)”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실제 일어난다면 우리에게는 “종말론(終末論)”적인 끔찍한 재앙이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 상상이라면 이보다 더 경이롭고 스펙터클 - 차마 “재미있는” 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 한 사건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백두산 폭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최근에 만났다. 우리나라 작가인 “로재성”의 <백두산 대폭발 1,2(나남/2012년 4월)>이 바로 그 책이다.
2016년 2월 8일 백두산 기슭 북서쪽 방향에 새롭게 건설한 인구 20 만명 규모의 도시 “보하이(渤海)” 시에서 제 8회 동계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린다.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은 2년 뒤 열리는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의 김을 빼고 백두산이 중국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날짜까지 변경하면서 개최하는 대회이지만 가장 큰 이슈는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백두산 화산 폭발 소문을 무마하기 위한 대회이기도 했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알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백두산 인근 북한의 함경도와 량강도 일대에서수천 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동상들과 사진, 기념물들이 일제히 내륙으로 옮겨지는 하는 장면들이 미국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또한 백두산 폭발시 쏟아지는 용암과 화산재를 피해 스노모빌과 설상차를 이용해 죽음의 경주(競走)를 하는 이른바 “데스 카니발”을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이 보하이 시에 속속들이 모여 들고, 백두산이 폭발하는 예수가 재림(再臨)한다는 사이비 종교의 8천 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도 모여 든다. 이런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화산 전문가이자 백두산 폭발이 임박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임영민” 교수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백두산 폭발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와 몇몇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된다. <한성일보> 열혈 여기자이자 한국 굴지의 대기업 백두개발 “황우반” 회장의 예비 약혼녀인 “오수지”는 기자생활 마지막 특종을 잡기 위해 임영민의 아들이자 대학 동창생이기도 한 “임준”과 함께 임영민의 죽음과 백두산 폭발의 진상을 캐기 시작한다. 또한 국정원 대북정보팀 또한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는 백두산 폭발을 대비하기 위해 보하이 시에 모여든 한국인 대피 계획을 세우고 임영민의 죽음을 수사하면서 북한의 계속되는 이상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남북한 공작원들과 이번 동계아시안게임과 백두산 폭발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황우반 회장의 세력들, 백두산 일대에 대규모 투자를 한 중국 기업가 세력 등등 여러 세력들이 얽히고 설켜 물 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오수지와 임준도 수차례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여러 사건들 끝에 2016년 2월 15일 동계 아시안 게임은 7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식이 열린다. 그런데 그 순간,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 거대한 구름이 하늘로 치솟고, 지진과 산사태로 인근 도시들이 쑥대밭이 되고 용암과 화산 쇄설물들이 백두산 자락을 타고 흘러 내려와 인근을 덮치게 된다. 여기에 지진으로 영변의 핵시설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방사성 물질들이 화산재와 함께 편서풍을 타고 백두산 인근 일대와 일본까지 덮치게 되고, 수풍댐이 붕괴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마을 또한 물에 잠기며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진으로 인해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건물들과 아파트, 주택들이 무너져 내리고 소양감 댐마저 붕괴되면서 수도권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버린다. 백두산 폭발 전 남침(南侵)을 계획했던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이 머물던 삼지연 별장에 화산재와 용암이 들이 닥쳐 실종되면서 흐지부지되지만 일부 특수부대의 준동으로 서울 일대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여기에 북한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휴전선을 밀고 내려오면서 경기북부와 인천, 강화도, 서해 5도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도 데스 카니발 경기는 예정대로 개최되고, 수많은 선수들이 용암과 화산재, 지진에 의해 죽으면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유투브로 생중계되는 이 죽음의 질주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하고, 도박 자금도 천문학적인 액수에 다다르게 된다. 한쪽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재앙이겠지만 한쪽에서는 생사를 건 극한의 유희(遊戱)가 벌어지는 인세(人世)의 지옥(地獄)이 백두산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작가가 책 첫머리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 최고의 화산학자인 “윤성효” 교수 - 앞서 말한 2,3년 내 백두산 폭발 가능성을 전망한 학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두 번 읽고 고쳐 주셨다고 밝히고 있다 - 의 감수(監修)로 백두산 폭발 후 남북한, 중국, 일본에 불어 닥칠 대재앙의 모습을 대단히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줄거리 소개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가상 도시 “발해” - 천 년 전 발해 멸망이 바로 백두산 화산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니 중의(重義)적인 의미가 내포된 설정인 듯 하다 - 가 백두산 폭발로 인해 쏟아지는 암석들과 화산재, 용암, 지진으로 쑥대밭이 되고, 백두산 동쪽인 북한 지역도 초토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들을 마치 재난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지진에 의해 붕괴되면서 방사능 물질이 쏟아져 나와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일본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마치 지난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로 대참사를 연상시켜 끔찍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처럼 한반도 일대를 종말론적 상황까지 처하게 만드는 백두산 대폭발이 얼마나 위험하고 공포스러운지를 작가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여느 기사나 교양 프로그램보다도 더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백두산 대폭발에 따른 대참사에 대한 묘사는 참 뛰어난 데 이야기(Story)는 많이 아쉽다. 작가는 과학적 팩트만을 늘어놓는 딱딱한 내용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편소설이 쓰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데, 너무 많은 이야기와 비현실적인 전개와 결말이 결국 “과잉”이 되어 버린 셈이 되었다. 주인공인 오수지와 임준은 툭하면 납치되었다가 풀려나고 대재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존한다. 여기에 임준의 아버지나 북한 화산학자 이수근은 이야기 전개에 따라 죽음과 생존을 반복해서 역시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연쇄살인을 저지른 “킬러”는 두 주인공을 노리지만 어이없게 붙잡혀 버려 긴장감이나 스릴은 커녕 실소까지 자아내게 만든다.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들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나 영변 핵시설 장면들은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이겠지만 그다지 그렇게 상세한 묘사나 설명이 필요 없는 역시나 “과잉”이고, 오수지의 약혼자이자 임준과 갈등관계를 형성하는 “황우반”의 음모나 임준과의 관계도 애매모호하게 이어지다가 막판에 이르러야 밝혀지는데 그다지 설득력이나 공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재미를 주는 설정이라 할 수 있는 “데스 카니발”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설정 -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대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건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연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될까? -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백두산 폭발을 둘러싼 남북한 공작원과 중국 첩보 조직의 암투, 백두산 폭발을 타개하기 위한 북한의 남침 계획이나 난민 작전, 대폭발 후 북한 권력층 내부 갈등과 특수부대에 의한 게릴라전, 중국과 남한, 미국의 군사적 대립 등등 백두산 폭발을 제외하고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도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나올 법한 참 흥미롭고 재미있을 이야기들인데, 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설정 하나 하나의 스릴과 재미를 살리지 못하고 그만 어정쩡한 이야기들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곁가지의 이야기와 등장인물은 삭제하고 재난 소설 특유의 재미와 감동, 즉 대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공포와 절망감, 그런 가운데에서 피어나는 휴먼 드라마적인 감동을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분명한 구분이 되지 않는데, 시간대별, 장소대별로 표기 - 예를 들어 “2012년 2월 17일 PM 2:35, 함경북도 영변” 형식으로 말이다 - 를 했었으면 좀 더 현실감을 살리고, 시간과 장소 장면 전환에 있어서 명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공들여 쓴 작품을 올곧이 즐기지 못하고 평가 절하하는 것 같아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한 글이고, 다른 곳도 아닌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그 재난을 겪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남이 아닌 “우리”들이기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이 갈 수 밖에 없어서 쓴소리를 했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야기 면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백두산 대폭발로 야기되는 참상에 대한 묘사 만큼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사실감 넘치니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