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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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김중혁 작가의 책.

음악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집으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해서 읽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인데, 슬프게도 기대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 계속 읽긴 했지만 읽으면서 큰 재미는 못 느꼈다. 그러나 작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은 인상적이었다.

8편의 단편 중 <비닐광 시대>, <엇박자 D>가 좋았고 기억에 남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구절을 적어본다.

이건 정말 세상에서 하나뿐인 음악들일까. 이 사람들의 음악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디제이인 것이다.
<비닐광 시대(Vinyl狂 時代)> - P104

무선 헤드셋에서 다시 엇박자D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명은 하나도 켜지질 않았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둠 속이어서 그런 것일까.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간 생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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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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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우연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이 마치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초반에는 살짝 지루했으나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과 그로 인해 뻗어 나가는 이야기의 알 수 없음(다소 황당무계한)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었다.

그러나 이언 매큐언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와 같은 독자로서 갖게 되는 애정은 생기지 않는다.

초반 주인공이 왜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 절실하게 이해가 안갔고 다른 설정들도  억지스러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란게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이런 우연은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대에 얽힌 우연과 그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건 작가의 힘이며 이런 점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은 13년 전 뉴욕에서 산 책이다. 폴 오스터는 뉴욕의 작가였고 뭔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나로선 꼭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당시 <뉴욕 3부작>도 같이 사서 먼저 읽었는데,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계속 책을 읽게는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현실 같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짜증이 났었다. '이토록 멋진 제목의 책을 왜 이렇게 썼지?'라며 속으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로 폴 오스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급기야 한국으로 들어올 때 <뉴욕 3부작>은 갖고 오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텐데 아마도 뉴욕에서 힙한 그의 작품을 이해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었던거 같다. ㅋㅋ

지금 다시 읽는 다면 그 때와는 다를까?

 

좋아하는 작가도 아닌데 폴 오스터의 책은 2권이 더 있다. <부루클린 풍자극>, <우연의 음악>.

당연히 안 읽었고 올해 안에 한 권 더 읽어 볼 생각이다. 그 때가서 <뉴욕 3부작>을 다시 읽을지 결정할거 같다.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단락.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 내 뒤쪽으로 라구나 해변 마을이 귀에 익은 세기말의 미국적 소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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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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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에서 나온 너무나 탐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3번 째 책, <클림트>.

100권 기획의 이 시리즈는 100인의 전문가가 다양한 분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발자취를 따라 12개국 154개의 도시를 찾아 떠나는 교양인문 기행서라고 한다. 현재 8권까지 나왔는데, 아르테의 야심찬 기획이니 만큼 나도 야심차게 한 번 이 시리즈를 다 모아볼까 고민 중이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클림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던 장소들을 찾아가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근원을 생각하고 정신을 느껴보는 예술기행이라는 점이다.

 

1862년 태어나 1918년까지 살다 간 클림트는 '뼈속까지 빈 사람'이었다. 그런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20세 초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를 이해해야 하는데, 작가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클림트의 작품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클림트의 작품이 왜 그 당시 화가들의 작품과 그렇게 다르고 독창적인지, 왜 예술의 영감을 과거에서 찾았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19세기 말 '미래보다는 과거를 갈망한 도시' 빈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p.39

빈이 클림트의 도시인 것은 단순히 클림트가 빈에서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클림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는 빈의 자취가 드러난다. 빈의 세기말 분위기, 빈의 귀부인들, 빈의 과잉 장식 취미, 빈의 과거 지향적 가치관, 빈의 화려한 궁정들, 그런 모든 요소가 클림트의 그림에 스며들어서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클림트의 사인만큼이나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이 도시 빈과 오스트리아 제국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이 책을 읽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나도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까마득한 1997년...유럽 배낭 여행을 갔었는데 그야말로 클림트는 커녕 유럽 역사도 거의 모르고 막무가내로 그저 호기심에 떠난 여행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갈 즈음에는 유럽의 수많은 성과 성당에 익숙해지다 못해 질리기 까지 한 상태라 인문교양 지식이라곤 전혀 없는 나에겐 슬슬 피로함이 몰려 들던 때였다. 빈은 모짜르트의 도시 짤스부르크로 가기 전 잠깐 들려보는 도시였고 별 기대 없이 갔었는데, 그 첫인상은 무식한 나에게도 참 기이하게 다가왔다. 그 어떤 도시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 거리에서 클래식 음악이 들리고 공원 한쪽에선 남녀가 왈츠에 맞춰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그야말로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 느낌은 유럽 여행을 통틀어 너무나 강렬하여 나중에 한국에 돌아온 후 여행담을 얘길할 때 꼭 나오곤 했다.

오죽하면 구스타프 말러가 이렇게 말했을까 만약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빈으로 가겠다. 빈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고.

시대에 역행해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빈의 보수성, 제국의 쇠퇴까지도 외면하게 했던 예술에 대한 향유와 그 보수성이 20세기 후반에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클림트가 평생 살았던 도시 빈, 중세 황금빛 예술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라벤나, 여름 휴가 때마다 에밀리와 함께 보냈던 아터 호수에 이르기까지 비록 책이지만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그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클림트 평생의 연인이자 동반자였던 에밀리 플뢰게와의 관계, 클림트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가족들, 함께 활동했던 동료 화가들과의 일화, 그리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의 죽음을 통해 인간 클림트를 좀 더 깊이있게 입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1918년 클림트의 죽음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몰락한다. 제국은 몰락했지만 자신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길 바랬던 클림트, 그의 작품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그 찬란한 황금빛을 여전히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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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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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묻혀져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관한 이야기. 그 진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더 어그러지는 삶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8편의 소설집이다.

 

8작품 모두 미스터리해서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해 중간에 멈출 수 없는데, 반면에 그에 대한 해답은 드러나지 않아 한 편 한 편이 끝나고 나서도 자꾸 앞 장을 뒤적이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독자에게 그 답을 미루듯이 얄밉게 뒤로 빠지는 작가.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은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는 독자에게 김 박사가 누구인지 직접 써보라고 빈 칸을 마련해 주기까지 한다. 김 박사가 난 누군지 모르겠는데...

다른 작품도 이런식으로 모호하게 끝나 읽고 나서도 내가 제대로 이해는 한건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든다. 인간 삶의 진실한 모습은 누군가의 기록이나 말로는 결코 그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을 작가가 소설 그 자체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한다.

 

이기호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중장편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희비(喜悲)가 공존하는 그의 작품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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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프로젝트 -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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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맨부커 상 최종후보까지 올라갔던 스코틀랜드 작가의 작품.

 

내가 이 책을 읽은 첫 번째 이유는 스코틀랜드 작가의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국이지만 내가 책 속에서 자주 접했던 잉글랜드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생각하는 스코틀랜드는 일단 위스키가 유명하고 따라서 술을 많이 마시고 보수적이며 타지인들에게 텃새도 심할거 같은, 일반적인 유럽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유럽 대륙과는 떨어져 있는 섬나라 영국의 북부 시골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그에 대한 기록. 안 끌릴 수가 없었다.

 

1869년 스코틀랜드 북부 총 9가구가 사는 작고 가난한 마을 컬두이에서 가족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17살 소년 로더릭 맥레이. 범인은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잡혀 자신이 범인이라고 시인을 하고 재판을 받게 된다.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이다.

 

이 책은 마을 사람들의 진술, 범인인 로더릭 맥레이의 해명, 부검보고서, 의사의 진단문, 재판기록으로 구성 되어있다. 마치 소설가가 상상력으로 쓴 글 같지가 않고 그저 있는 사실을 기록한 글 같아 읽으면서 '이게 정말 실화인가, 어디까지가 사실이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읽게 된다.

책 뒷표지에 "하나의 살인 사건, 서로 다른 기록들" 이라는 문구가 나중에 뭔가 대단한 반전이나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잔뜩 긴장하면서 읽었다. 17살 소년이 확실히 3가족을 살해했고 또 자신이 죽였다고 인정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반전이라고 기대할게 없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긴장감과 흡입력이 있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내려놓기 힘들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9세기 스코클랜드 소작농의 생활상과 함께 당시 사회상, 사법 제도 등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생활해 나가야 하는 하층민들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지배자들에게 부당한 착취와 억압을 당함에도 그에 맞서 저항도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소작농들의 삶. 소설 속 로더릭의 살인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일어난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했던 소년. 그러나 비참한 현실 앞에서 로더릭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 소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추리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다가 막판 반전이 있는 그런 범죄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소설'이라는 역자 후기가 나온다. 범인은 처음부터 밝혀지기 때문에 누가 범인 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이며 '범인을 비롯해 등장하는 사람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이다. 왜 죽였는가...표면적으로 드러난 답은 지배층의 부당한 횡포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기록들을 읽어보면 '혹시나'하는 의심과 함께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게 된다.

역자는 맨부커상 위원회가 이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 작품에서 장르소설 이상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범죄소설처럼 사건의 명확한 진실은 알 수 없다. 등장인물들의 진술과 진단, 범인의 고백을 통해서만 각자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색다른 소설형식으로 독서의 즐거움을 준 소설이었다. 자칫 심심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기록의 형식으로 이토록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다니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도 많이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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