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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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우연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이 마치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초반에는 살짝 지루했으나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과 그로 인해 뻗어 나가는 이야기의 알 수 없음(다소 황당무계한)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었다.

그러나 이언 매큐언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와 같은 독자로서 갖게 되는 애정은 생기지 않는다.

초반 주인공이 왜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 절실하게 이해가 안갔고 다른 설정들도  억지스러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란게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이런 우연은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대에 얽힌 우연과 그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건 작가의 힘이며 이런 점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은 13년 전 뉴욕에서 산 책이다. 폴 오스터는 뉴욕의 작가였고 뭔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나로선 꼭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당시 <뉴욕 3부작>도 같이 사서 먼저 읽었는데,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계속 책을 읽게는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현실 같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짜증이 났었다. '이토록 멋진 제목의 책을 왜 이렇게 썼지?'라며 속으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로 폴 오스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급기야 한국으로 들어올 때 <뉴욕 3부작>은 갖고 오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텐데 아마도 뉴욕에서 힙한 그의 작품을 이해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었던거 같다. ㅋㅋ

지금 다시 읽는 다면 그 때와는 다를까?

 

좋아하는 작가도 아닌데 폴 오스터의 책은 2권이 더 있다. <부루클린 풍자극>, <우연의 음악>.

당연히 안 읽었고 올해 안에 한 권 더 읽어 볼 생각이다. 그 때가서 <뉴욕 3부작>을 다시 읽을지 결정할거 같다.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단락.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 내 뒤쪽으로 라구나 해변 마을이 귀에 익은 세기말의 미국적 소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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