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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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님의 서평을 읽고 도서관에 바로 신청한 책이다. "드럽게 까탈스러운 나에게서 별 5개를 뽑아먹은" 이라는 표현에 확~관심이 쏠렸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작가가 쓴 스릴러를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스릴러소설을 좋아하면서도 그동안 국내 작가에게는 관심도 기대도 안했던 점이 갑자기 미안해졌다고 할까...

 

한마디로 어디에서 펼쳐 읽어도 바로 몰입될 정도로 스릴러가 줄 수 있는 긴장감, 섬뜩함, 기발함을 갖춘 작품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해도 단 하나 얻을 수 없는 젊음과 청춘. 그 젊음의 에너지를 향한 늙고 추한 욕망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다니 그야말로 짜릿한 시간이었다. 

늙고 병든 육체안에서도 결코 죽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나 또한 그런 욕망의 주체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근본적인 힘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탐욕과 욕망이 남을 짓밟고 빼앗아옴과 동시에 그것에 취해 중독이 되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괴물이 되는지를 '젊은 몸을 조종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노인들을 통해 보여준다.

 

p.299

파우스팅의 여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남선은 취해 잠들었을 은민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아이이자 나의 청춘이자 나의 분신이다. 나는 그녀의 후원자이자 절대자가 되고 싶다. 아니 그녀가 나고 내가 그녀가 되고 싶다. 남선은 더 밀어붙이고 싶었다. 중독되어가는 걸 알고도 남선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천억이라는 돈이 있는데 100억만 내면 내가 원하는 젊은 몸을 선택해 내 마음대로 조종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비록 늙고 아픈 몸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 씩 젊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활기와 쾌락, 건강을 느낄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이로부터 양심을 지킬 수 있을까?

 

기발하고도 독특한 설정의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작가는 '이 어마무시한 스토리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지루할 새도 없이 이야기가 끝날 즈음 또 한 번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기도 하고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거 같다. 한국작가의 독특한 스릴러, 재미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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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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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리뷰가 대만족인 반면 나는 참으로 힘들게 꾸역꾸역 읽었다. 50번째 생일을 두려워하는 늙은 게이 레스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인물인데, 문화와 감성이 달라서 였을까...읽으면서 글 자체가 이해가 안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엄청나게 웃긴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 난 2번 정도 피식~하고 웃었던거 같다. 약간 병맛 개그랄까, 난 확실히 병맛을 좋아하지 않는거 같다.

 

영리하고 재치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나 "실연을 당한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삶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갖고 돌아오지 않겠느냐..." 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기에 '딱히 재미도 없는데 계속 읽어야 할까?' 10번은 고민했던거 같다. 수시로 과거의 상념에 빠지는 레스 덕분에- 이 점이 특히나 힘들었는데- '아, 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못 읽겠구나...' 싶었다.

 

다른 책 같았으면 그냥 덮었을텐데 퓰리처 상 수상작이라니까! 내가 읽은 퓰리처 수상작은 <로드>하나니까, 허영심이 발동, 또 다들 재밌고 웃기고 감동적이라고 하니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오기가 발동했던거 같다. 그리고 7일에 걸쳐 결국엔 읽은 것이다.

솔직히 부끄럽다. 나의 무식함으로 인해 위트있는 소설을 이해못한거 같아서.

 

내가 미국 뉴욕에 살았을 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 시절 길에서 또 일하는 데서 게이들을 많이 봤는데, 정말 레스처럼 마른듯한 몸매에 멋쟁이이고 진짜 모델과 같은 아우라를 풍긴다. 길거리를 세련되게 걸어다니는 잘생긴 남자는 대체로 게이라고 보면 된다고 누군가 말해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같이 매우 예의바르고 친절했다는 점이다.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서 우연히 경험한 그들의 부드러움과 세심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울컥한 적도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되었다. 그들도 차별받는 소수집단이고 나 또한 동양에서 온 약자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슬픔을 느낀 구절을 적어본다. 모로코에서 두 소년이 서로 팔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슬픔을 느끼는 레스.

 

p.216~217 

두 소년은 서로에게 팔을 두르고 있다. 레스에게는 너무 낯설어 보인다. 그걸 보고 있으니 슬퍼진다. 그의 세계에서는 한 번도 이성애자 남성들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라케시의 거리에서 게이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거리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한들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지금 이 청소년들처럼 모래언덕에 앉아 서로의 품에 안긴 채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없다. 허클베리 핀에 대한 톰 소여의 사랑.

 

사랑이란...레스의 레즈비언 친구 조라의 말.

 

p. 231

"나더러 평생의 사랑을 만났다고 하더라." (중간 생략) "하지만 평생의 사랑 같은 건 없다는 걸 다들 알잖아. 사랑은 그렇게 두려운 게 아니란 말이야. 사랑은 씨발, 다른 사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개를 산책시키는 거고 세금을 내는 거고 악감정 없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거야. 삶에 동맹을 두는 거라고. 사랑은 불이 아니고 벼락도 아냐. 사랑은 그녀와 내가 늘 해왔던 그런 거 아냐? "

 

이 책은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가볍고 위트가 있다.  다루는 주제는 사랑, 인간관계, 일과 커리어, 나이듦과 외로움, 성소수자의 정체성 등과 같은 살면서 우리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고민들이다. 가볍고 유쾌하지만 때로는 심오한 통찰과 철학적인 사유를 재치있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의 장점인 이런 위트를 더 잘 이해했으면 좋았겠지만, 레스가 긴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샌프란시스코 자기 집 현관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선, 삶이란 뒤죽박죽 엉망이기도 하지만 어딘가엔 뜻하지 않은 선물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50번 째 생일, 나에게도 올텐데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레스를 생각하며 삶의 밝은 면을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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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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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 한 여자의 깔끔하면서도 통쾌한 코믹 복수극. 3부작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1부작 <오르부아르>도 읽어보고 싶다. 사기, 배신, 음모 이런 이야기를 잘 다루는 작가는 싫어할 수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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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죽음 -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 The Death of Stalin>의 원작!
파비앵 뉘리.티에리 로뱅 지음, 김지성.김미정 옮김 / 생각비행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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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과 검은색의 표지가 스탈린 시대 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래픽 노블이다.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읽지 않지만 이동진 평론가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영화<스탈린이 죽었다>의 원작이라고 해서 보게 되었다.

 

1953년2월 28일,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생중계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공연을 들은 스탈린은 연주가 너무 좋았다며 녹음본을 받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공연은 생중계였으므로 녹음이 없었고, 방송국장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지게 된다. 할 수 없이 연주자들을 다 불러 한 번 더 똑같이 연주하자고 하는데, 마리아라는 피아니스트가 스탈린을 위해 연주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녀의 가족이 스탈린에 의해 수용소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엔 돈을 받고 설득을 당한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연주가 다시 시작되지만 너무 떨려 긴장한 지휘자가 쓰러지고 급기야 다른 지휘자를 막무가내로 데려와 간신히 녹음을 마치게 된다. 얼마나 급하게 데려왔으면 이 지휘자는 집에서 입는 가운과 슬리퍼 한짝만 신은 체로 지휘를 한다. 절대권력의 광기 안에서 이 얼마나 코미디같은 상황인지... 이 책은 단 한 칸의 그림으로 당시의 상황을 그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우여곡절 끝에 녹음이 끝나고 레코드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피아니스트가 자신이 쓴 편지를 레코드에 끼워서 보내게 된다. 그 편지에는 스탈린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마침내 레코드를 받아든 스탈린은 이 편지를 발견, 읽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된다.

 

철저한 감시와 공포정치가 지배하던 스탈린의 시대. 누군가가 죽거나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이 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절대 일인자가 쓰러졌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쓰러져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이 책은 함축적인 언어와 개성넘치는 그림들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특징을 과장되게 그렸음에도 그 표정은 살아있는 사람 못지 않게 사실적이라 그들이 품고 있는 추악한 욕망과 암투가 그대로 전달이 된다.

 

쓰러진 스탈린...절대 권력앞에서 언제 숙청당할지 모르던 베리야를 비롯한 측근들은 죽어가는 스탈린의 치료를 미루며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지를 궁리를 하게된다. 권력의 허무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죽은 스탈린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그저 시체일 뿐, 그 주위엔 새로운 권력을 향한 욕망만이 드글거릴 뿐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적절하게 뒤섞여 새로운 시각으로 그 당시 상황을 인상깊게 보여준다. '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정확성이 아니라 시각의 진실성'이며 '만화는 역사를 자유롭게 해석할 자격이 있다'고 스탈린의 평전을 쓴 장-자크 마리는 책 뒤에 실린 발문에서 말한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마리아의 편지는 존재하긴 했으나 스탈린이 그 편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의 죽음과 그녀의 편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적절한 상상을 가미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당시 소련의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극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파비앵 뉘리가 쓰고 티에리 로뱅이 그린 이 작품은 역사를 그들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으로는 느끼기 힘든 그 어떤 본질을 강렬하게 포착해낸 '짧고 굵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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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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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야기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마지막 이야기에서 분노와 공포에 떨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731부대의 만행을 다룬 마지막 이야기는 읽다가 중간에 그만둘 뻔 했다. 도저히 읽을 용기가 안 나서.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고통받은 자들의 이야기이기에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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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16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고 싶은데 기회가 되지 않네요.

독서모임에서 한 번 추천해 볼까 싶네요.

coolcat329 2019-05-16 17:25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용으로 정말 좋을거에요. 다양한 의견이 나올거 같아요.